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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제르바이잔에서 COP29가 열리고 있는데, 화석연료 로비스트가 1770명 이상 참석했다. 전 세계 대표단보다 그 수가 더 많다. 전용기를 타고 날아와 회담장 복도마다 장사진을 이룬 채 악취를 풍기며 화석연료를 팔아먹는 중이다. 이를 두고 한 기후정의 활동가가 폐암 회의에 참석한 담배 로비스트 같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1995년 이래 기후-생태위기에 직면한 인류의 운명에 대응해보자고 지금까지 29차례 지구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리고 이번 29번째 회담이야말로 COP 체제의 불가능성을 적나라하게 현시한다. 최근 COP 회담은 이집트, 아랍에미르트, 아제르바이잔으로 이어지며 연속 3년 동안 소위 석유 국가에서 열렸다. 석유와 가스를 팔아치우며 지구를 불태우는 산유국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정상회담. 바로 그 모순 속에 이 회담의 불가능성이 자리한다. 이집트와 아랍에미르트에서의 회담은 산유국과 화석연료 기업들이 펼치는 엑스포 잔치와 진배없었다. 시위도 못하게 금지했다. 여기에 아제르바이잔은 한 술 더 뜬다. 회담 직전에 아제르바이잔 대표단이 게걸스레 가스를 팔아먹는 모습이 글로벌 위트니스라는 국제감시조직의 낚시에 걸려 전 세계에 송출돼 공분을 샀는가 하면,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회담 연설에서 자기 국가의 화석연료 매장량이 '신의 축복'이라고 주장했다. 계속 뽑아서 팔아먹겠다는 이야기다. 또 아르메니아 탄압을 정당화했다. 계속 억압하겠다는 이야기다. 대놓고 화석연료를 증산하겠다는 아제르바이잔에서, 1770명이 넘는 화석연료 로비스트들이 각국 대표단보다 더 많이 모인 회담장에서, 기후위기에 대해 도대체 무슨 논의를 할 수 있겠는가.
2.
그레타 툰베리는 이번 아제르바이잔 회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COP29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후정의의 핵심 원칙이 COP29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제르바이잔은 화석연료 추출을 확대하려는 극도로 억압적인 국가이며 민족청소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화석연료 추출은 물론, 아제르바이잔의 아르메니아 집단 학살과 인권 유린를 문제 삼은 것이다. COP29가 바로 화석연료 추출과 인권 유린에 대한 완벽한 그린워싱이라는 주장이다. 그녀는 지금 다른 기후활동가들과 함께 아제르바이잔 회담을 보이콧하며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한편, 프랑스는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의 문제적 연설 이후에 프랑스 대표단을 철수시켰다. 이미 회담 전부터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 30여 명의 정치인이 회담 불참을 촉구한 바 있다. 프랑스가 이렇게 철수라는 강수를 둔 배경에는 남다른 인권 감각 때문이 아니라 아르메니아와의 오래된 유대 관계 때문이다.
3.
회담 직전에 파푸아뉴기니는 COP29 불참을 선언했다. 주요 탄소배출국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립서비스만 요란하게 전시하는 회담에 진저리를 낸 것이다. 파퓨아뉴기니는 지금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산사태와 홍수, 그리고 해수면 상승으로 기후 이재민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파푸아뉴기니의 배출량은 미미할 뿐만 아니라 1인당 배출량만 봐도 한국의 1/30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 십수년 동안 부유한 북반구는 기후 배상에 대해 입만 주절거렸을 뿐이지 지금까지 유의미하게 책임을 진 적이 없다. 파푸아뉴기니가 진저리를 내며 회담에 불참한 이유다. 지금 현재 아제르바이잔에선 남반구 활동가들과 북반구의 기후정의 활동가들이 연일 다양한 퍼포먼스와 시위를 벌이며 '기후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세계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4.
아르헨티나가 COP 대표단을 철수시켰다. 이례적이다. 극우 대통령 밀레이의 결정이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 불리우는 밀레이가 보기에, 트럼프가 또 다시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할 게 분명하다. 따라서 COP29에 있을 이유가 없다. 트럼프의 그림자가 아제르바이잔 회담장에 드리워진 것이다. 달리 말하면, 트럼프 당선으로 인해 또 다른 화석연료 지정학이 등장했고 이는 현재의 COP 체제의 불안정성을 더욱 형해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항간에서는 트럼프 당선이 COP29를 압도해버려 회담의 의미가 줄어들었다고 분석한다. 화석연료 매장량을 신의 축복이라고 자랑하며 인권 유린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의 저 뻔뻔함도, 아르헨티나의 급작스러운 철수도, 허수아비 미국 대표단의 유명무실함도, 맥빠진 회담장의 분위기도 트럼프 당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5.
COP29가 개최되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 회담 직전에 바쿠 해안가에 향유고래 사체가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실제가 아니라 벨기에 환경 예술가들의 설치 작품이다. 저 죽은 고래는 붕괴되는 지구 생태계를 상징한다. 기묘하게도 고래 사체 위로는 아제르바이잔의 랜드마크인 '화염의 탑'이 보인다. 석유와 가스 매장량을 자랑하기 위해 불꽃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남실대는 석유 불꽃 아래 죽은 고래. COP29의 실패를 이미 증거하는 장면처럼 보였다. 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지켜보는 마음이 참 그렇다. 유엔 일각에서는 현재의 COP 체제를 혁파해야 유의미한 이야기가 진행될 거라는 주장이 슬슬 나온다. 진작부터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산유국을 제외하고 감축을 명시하는 부유한 북반구에서 회담을 여는 게 아니라, 기후위기에 침잠되는 남반구 지역에서 회담이 개최되어야 한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허리케인에 삶터가 작살나고, 염분 침입으로 농사가 망쳐진 지역에서 돌아가며 회담을 개최해야 그 의미가 적실하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저 각다귀 같은 화석연료 로비스트들의 전면적인 배제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COP 체제의 근간이 되는 '시장 기반의 해법'에 대한 정치적 기각과 반성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엉망진창의 COP29, 그리고 트럼프의 귀환. 암담한 첩첩산중. 따라서 새로운 화석연료 지정학을 압도할 새로운 COP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