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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군산 53코스
새창이다리-금광교-옥성마을-광지산마을-
서기마을-죽동마을-군산저수지 수변길-석교들-
대려마을-옥회천-백석마을-원당마을-외당마을
20230614
1.'구슬뫼길' 느릅나무 밑의 욕망
군산으로 들어와 서해랑길 53코스를 출발한다. 군산에 대하여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금남정맥 산줄기 종주 때 오성산을 거쳐 금강 하구에 이른 것, 장항선 열차를 타고 장항에 도착하여 장항 도선장에서 군산 도선장으로 배를 타고 군산으로 들어와 월명산과 채만식 생가를 찾아간 본 일, 지금은 폐점한 14층 건물 군산횟집에 온 일,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선유도를 찾아가 본 일 등 군산에 몇 차례 와 보았지만 군산 남쪽 대야면에는 처음으로 발을 딛는다. 대야면의 넓은 들 바깥쪽 만경강 갈대습지에 조성된 자전거길을 따라 내려간다. 길에는 금계국 흐드러진 노란 꽃들이 여름의 햇볕을 받아 여름빛을 뿜어내고, 개망초 하얀 꽃들도 그 사이에서 달걀 노른자같은 노란 꽃밥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만경강 건너편 김제 지역은 아침에 걸어온 청하면 장지산리, 장산리 지역, 만경읍 소토리 임석산 아래의 소토마을, 화포리 토정마을, 조앙산과 조앙사 그리고 53코스 탐방의 빛나는 조망지였던 만경낙조전망대가 분명히 확인된다.
강변의 자전거길은 만경강 제방도로와 나란히 가다가 대야면 지경리 지경교 앞에서 만나 동행한다. 지경리(地境里)는 군산시 대야면과 회현면의 경계가 되는 곳이라는 의미로 '지경리(地境里)'라 명명되었다고 한다. 지경교를 건너 대야면 지경리에서 회현면 증석리로 넘어갔다. 지경교는 지경 승수로(地境 承水路) 위에 놓인 다리이다. 승수로가 무엇일까? 승수로(承水路)는 상류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논밭이나 주거 지역에 흘러들지 않도록 만든 배수로를 의미한다고 한다. 만경강으로 흘러드는 승수로는 지경승수로, 증석승수로, 금광승수로 등이 있다.
회현면 증석리 강변길에 삘기꽃이 흐드러진다. 띠꽃이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삘기꽃이라고 부르는데, 전라도 지역에서는 삐비꽃이라 이른다. 학창 시절 해남 출신 이동주(1920~1979) 시인의 '강강술래' 시를 배울 때 처음으로 삐비꽃을 알았다. "여울에 몰린 은어(銀魚)떼//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 빙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래에/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白薔薇) 밭에/ 공작(孔雀)이 취(醉)했다."(이동주의 '강강술래' 부분) 여인들이 강강술래 원무를 추러 나온 모습이 은어 떼처럼 반짝인다. 삐비꽃처럼 하얀 손을 서로 잡고서 달무리처럼 서서히 돈다. 강강술래를 부르는 소리에 삶의 설움이 솟아나고 백장미꽃 같은 달빛이 하얗게 비치는 백사장에서 여인들은 공작새가 되어 취한다. 삐비꽃은 언제나 이동주 시인의 '강강술래'와 학창 시절 이 시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함께 떠오른다. 그때 젊으셨던 선생님은 특이하게도 파머곱슬머리를 하신 것으로 기억된다.
서해랑길 53코스는 군산 중심부로 들어가는 탐방코스이다. 한반도 둘레길이라면 당연히 만경강 하구까지 내려가 옥구반도 해안을 따라 금강하구로 이어져야 하는데, 군산공항 등 군사시설 때문인지 서해랑길은 군산시 회현면, 옥산면 중심부를 통과하여 군산시 중심부 근처 옥산면 당북리 외당마을에서 끝난다. 그래서 서해랑길은 증석승수로의 증석교를 건너 회현면 금광리 금광승수로의 금광교 앞에서 금광교를 건너 만경강 하구로 내려가지 않고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금광리 간척농지로 나간다. 잠시 금광교로 나가서 만경강과 만경강 하구쪽을 조망하였다. 새벽의 어둠 속에서 걸었던 모악기맥의 진봉산과 국사봉, 전선포제방길, 꽃뱀이 새벽잠에 취해 있던 진봉방조제 제방길, 가로수가 실루엣으로 멋진 풍경을 보여준 지평선로, 진봉방조제 배수문과 진봉리 관기마을, 진봉면과 만경읍의 징게맹게 외배미들이 모두 확인된다. 진봉반도 금만평야를 동쪽으로 돌아 만경강 새창이다리를 건너 군산으로 넘어온 일이 꿈만 같다.
길손이 걷는 한반도 둘레길은 국토 사랑의 길, 길손은 조태일(1941~1999)의 '국토 서시'를 읖조렸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조태일의 '국토서시 (國土序詩)' 전문) 길손은 발바닥이 다 닳도록, 숨결이 다 타오르도록, 우리 국토를 사랑으로 걷고 있다. 우리 국토의 풀잎 하나, 돌맹이 하나, 벌판과 하늘에 뿌려진 혼령들까지 사랑하며 내 국토를 배우고자 하는 단순한마음으로 서해랑길을 탐방하고 있다.
군산시 회현면은 만경강에 잇닿아 있어 드넓은 간척 농지가 펼쳐져 있으며, 금광리 들녘은 이 간척농지의 중심이 되는 것 같다. 금광승수로 둑방길을 따라가다가 금광배수문을 건너 금광리 들녘으로 나갔다. 금광리 들녘에는 신기촌마을, 옥성마을, 옥흥마을이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에는 옥구반도의 옥구읍이 만경강 하구에 자리하고 옥구반도 해안 옥서면에는 군산공항이 자리하고 있다. 북서쪽에 군산의 중앙 지역인 옥산면이 자리하는데 서해랑길 53코스 종점인 옥산면 당북리가 멀리 가늠된다. 금광리 들녘은 모내기를 마친 모벼들이 푸르게 싱싱하고, 여름날 오전 10시경의 햇빛을 받아 그 푸름이 더 반짝인다. 해오라기와 백로가 논에서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풍경은 한가하고 평화로운 삶의 원형처럼 느껴진다.
옥성마을의 옥성이 무슨 뜻이고 또 옥흥은 무엇일까? 마을 입구 표석에 마을 이름에 대하여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으면 탐방객이 마을의 유래를 알고 지나갈 터인데 그런 설명이 없다. 군산향토문화대전이나 군산시청, 군산문화원 홈피에도 이런 설명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 고창, 부안, 김제 지역의 향토문화대전에는 상세하지는 않지만 지명에 대한 유래를 밝히고 있어 군산과는 차이가 있다. 옥성마을 짜투리땅에 마늘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마늘쫑이 길게 솟아 있고 그 끝에 홍자색 꽃이 동그랗게 피어 있다. 꽃이 피기 전에 마늘을 뽑기에 마늘꽃을 흔하게 만나볼 수 없다. 마늘꽃은 달래꽃, 산부추꽃과 유사하지만 그 색채가 더 짙은 자주색이다.
옥성마을을 거쳐 회현면 금광리 간척농지 안쪽의 북쪽에 자리한 광지산마을로 향한다. 금광리 들녘의 농로 양쪽 밭에 맥류 보급종 채종포(採種圃)라고 적힌 안내판이 적혀 있고 누런 맥류가 자란다. 채종포(採種圃)는 씨앗을 받기 위하여 특별히 마련하여 가꾸는 밭)이라고 한다. 맥류 이름을 몰라 밭에서 일하는 농군 아주머니에게 물어 보니 귀리라고 알려 주신다. 아, 이것이 귀리로구나. 그런데 밭 표지판에 이렇게 어려운 용어들을 써붙일까? 쉬운 우리말로 적으면 얼마나 좋을까? 보급종 씨앗을 받기 위해 이 밭에서는 귀리들을 재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지역은 예전에 회미현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래서 옛 지명을 살려서 '회미로(澮尾路)'라는 도로명이 붙은 도로를 가로질러 광지산(光芝山)마을로 들어갔다. 광지산마을에 높이 솟은 나무에 하얀 꽃들이 피어 있다. 처음에는 보고서 지나쳤는데 또 한 그루가 민가 뒤에서 자라고 있다. 무슨 나무일까? 할머니 한 분께 알아 보았더니 쭝나무라고 한다. 쭝나무, 쭉나무? 찾아보니 일반적으로 참죽나무라고 하는 나무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참죽나무는 이태조의 어진을 모신 전주의 경기전(慶基殿) 뒷담에 거의 붙어 자라는 보호수 참죽나무로 나이는 약 250년 정도 된다. 참죽나무는 잎이 지는 갈잎나무로 키 20미터, 지름이 1미터에 이른다. 나무껍질은 세로로 비늘처럼 길게 일어나서 갑옷 같으며 흑갈색이다. 잎은 아까시나무처럼 겹잎이고, 긴 타원형의 작은 잎이 10~20개씩 붙어 있다.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종모양의 하얀 꽃이 가지 끝에서 밑으로 처지면서 피고 향기가 난다."(박상진의 '우리 나무의 세계'에서) 아, 쭝나무, 쭉나무, 참죽나무가 내 삶의 소중한 존재로 자리하게 되었다.
광지산마을 북쪽 끝에 두릉 두씨 광지산공파 종중제각과 그 왼쪽에 두연령 행적비가 세워져 있다. 아, 이 지역이 두릉 두씨 집성촌인가 보군. 알아 보니 "두승손(承孫)은 조선 시대 옥구에 세거한 두릉 두씨(杜陵杜氏)의 입향조로서, 태종 조에 관직이 병마우후(兵馬虞候)에 이르렀다. 그가 15세기에 만경(萬頃)에서 옥구로 입거한 이후 그의 후손들이 군산시 회현면 금광리와 옥산면 당북리 및 금성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으며, 군산 지역에서 큰 성씨가 되었다."(향토문화대전) 그렇구나. 두보의 후손들이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니 놀랍군. 학창 시절 두보와 이백 시가 국어 시험에 출제되었었지. 우리나라 최초로 두보의 번역시 <두시언해>가 간행된 게 성종 때던가. 당나라의 대표적인 두 시인, 두보는 시성이요 현실파, 이백은 시선이요 낭만파. 두보는 끊임없는 노력파로 우국적인 시들이 많은 것 같다.
회현면 금광리에서 대정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래 푸른 잎들이 무성한 팽나무 한 그루가 멋지게 자라고 있다. 나뭇가지의 푸른 잎들 사이로 자잘한 초록 열매들을 달고 있는 팽나무의 자태가 자연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 같다. 팽나무 뒤로는 마치 호화로운 궁전 같은 지성어린이집이 있어 자연과 인공의 대비를 이룬다. 상상의 궁전처럼 아름다운 건물에서 어린이들이 무엇을 꿈꿀까? 팽나무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 초록의 무성한 잎과 씨앗을 맺어 새 생명을 축복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궁전에서 나와 팽나무와 그 맞은편 언덕에 밤나무꽃들이 무성하게 피어 있는 자연의 풍경을 매일 보면서 미래의 꿈들을 키우리라 믿는다.
금광리 광지산마을에서 고개를 넘어 회현면 대정리 면소재지로 넘어오면, 회현보건지소, 회현농협, 회현면사무소 등의 관공서와 만난다. 회현면사무 앞에서 회현사거리 방향으로 회현면 대정리의 중심도로 '회현로'를 따라, 회현파출소, 회현중학교, 회현초등학교, 서기마을 입구를 지나서 청암산 생태학습장 입구에 이르렀다. 바쁘게 걸었다. 햇볕이 서서히 뜨거워지고, 몸에 땀이 솟는다. 어떻게 지나왔는가? 회현중학교 뒤뜰에 들어가 혁명 시인 김남주의 '사랑은' 시비와 목장승 한 쌍에 적힌 문구도 읽었다. 길손의 가슴이 뭉클했다. 학생들이 '사랑은' 시가 품은 인고의 기다림과 미래를 위한 희생정신과 나눔정신을 배우고, 목장승 한 쌍에 적힌 문구 '어떤 세상을 만들까', '나를 무엇에 쓸까'가 학생들의 가슴에 꽂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런 마음이 갈수록 비정해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회현면 대정리에서 청암산 생태학습장으로 가는 길에서 행정 구역이 대정리에서 세장리로 바뀐다. 지금은 군산저수지라고 불리는 옥산저수지가 1939년에 축조되었는데, 그 이전까지 청암산 남쪽 사람들이 군산 시내에 가기 위해 넘나들넌 고개가 사오개 고갯길이라고 한다. 사오개 고개를 넘어 군산호수 둘레길 수변산책로를 따라 이어간다. 이 길은 군산시에서 명명한 '구불길'에 속하는 길로서,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수풀이 우거진 군산도보행 길'을 뜻한다. 구불길은 모두 1~8길 172km로 조성되어 있다. 군산호수 둘레길은 구불4길 '구슬뫼길'로서 서해랑길은 '구슬뫼길' 일부와 동행한다.
군산 중심부의 남쪽 군산호수와 청암산 자락의 군산호 둘레길이 아름답다. 대숲길의 정취, 드넓은 호면, 유실수들의 열매들, 구부러진 숲길, 군산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군산 북쪽 군산항과 월명산, 금강 하구에만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길손은 군산호와 둘레길의 매력에 취했다. 이 길을 너무 빠르게 걸었다. 잠시 동행한 일행과 함께 느릅나무 옆 등받이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며 캔맥주를 마셨다. 새벽부터 배낭에 지고온 캔맥주가 그런 대로 차가움을 유지하고 있다. 목을 넘어간 찬 맥주가 가슴을 쓸고 몸에 퍼져간다. 유진 오닐의 '느릅나무 밑의 욕망'에서 느릅나무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길손은 느릅나무 옆 벤치에서 불태웠던 욕망을 식히며 느릅나무 새 꿈을 꾼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영탄, 생명의 신비에 경외.
군산호 호면에 초록의 가시연잎이 떠있다. 가시연꽃은 언제 피어날까? 7~8월 피어난다. 가시연 자주색 꽃이 호면에 솟아오르는 풍경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대숲길을 지나면 편백나무 산림욕장이 나온다. 회현면 세장리에서 옥산면 옥산리로 넘어와 군상호 제방에 이르렀다. 한산한 여름날의 오후 풍경, 탐방객들은 많지 않아 한적하다. 청암산 자락의 구불4길 '구슬뫼길'과 동행하여 군산호 입구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아, 공원에 가시연꽃 조형물이 있다. 쉼터 의자 원판그늘막 위에 가시연 자주꽃 목각 조형물에 눈이 번쩍 뜨였다. 대형 대나무 오리, 토끼와 거북이 등의 조형물이 있었지만 길손은 오직 가시연꽃 목각 조형물에 감동했다. 공원 조형물 조성자의 심미안에 감탄한다.
군산호 입구의 주차장을 내려가면 군산시 옥산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에는 옥산면 면소재지 옥산리 여로마을과 서남쪽에 대려마을, 그 서쪽에 금성리, 이 지역 앞쪽으로 석교들이 드넓게 펼쳐진다. 옥산리 북쪽의 당북리 지역은 빌딩숲이 솟아서 군산시 중심 시가지에 바싹 다가서 있다. "석교(石橋)들은 옥산리 석교마을 이름에서 유래하였으며, 옥산면 금성리의 군산저수지에서 시작하여 경암동의 금강으로 유입되는 경포천에 의해 형성된 충적평야 지역이다. 석교들은 지역 범위는 군산시 옥산면 옥산리 일대의 좁은 지역이다. 동쪽은 옥산면 소재지 여로마을, 서쪽은 당북리 구릉지, 남쪽은 금성산, 북쪽은 전주와 군산을 연결하는 국도 21호선에 의해 쌍봉리 '평사들'과 경계를 이룬다. 남쪽은 금성산과 당북리 야산 사이로 남쪽의 옥구읍 수산·이곡 평야와 연결된다. 경포천의 지류 옥회천이 흐르고 있으며, 군산과 옥구를 연결하는 옥구선 철도가 남북으로 지나고 있다."(향토문화대전 참조)
드넓은 석교(石橋)들을 가로지른다. 옥산리 대려마을 앞을 거쳐 석교들 동쪽을 가로지르고 대려2호 양수장 앞에서 석교들 서쪽을 가로지른 뒤 지방도 제709호선 하포로를 횡단하여 경포천의 지류 옥회천 앞으로 나아갔다. 상습침수 지역인 이곳에 홍수를 대비하여 옥회천을 정비공사하고 있다. 옥회천에서 남쪽을 내다보면 옥산면 금성리와 회현면 대정리, 그 서쪽에 옥구읍 일대가 가늠된다. 돗대산이 바로 앞에 보이고 그 앞에 군산-옥구 옥구선 철도가 지나가고 있다. 옥구선 철둑 아래 지하통로를 통하여 돗대산 아래 백석로로 나갔다. 제한 시간에 맞추어 숨가쁘게 달렸다. 주말의 밤일지언정 이렇게 숨가쁘게는 즐길 수 없을 것이다. 백석마을, 원당마을을 거쳐 외당사거리를 지나 '월명로'로 들어섰다. 군산 중심시가지의 중심도로 '월명로'답게 빌딩숲이 솟구쳐 있다. 석교들의 수평적 아름다움을 성큼성큼 걸었는데 수직적 빌딩숲의 공포를 아장아장 걷는 느낌이 든다. 빌딩숲에서 길손은 공포의 난장이가 되었다. 들길의 아름다움이 빌딩숲의 공포에 흩어진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8.92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3분
새창이다리 북단 새창이전망대 입구 난간 기둥에 서해랑길 53코스 시작점이 붙어 있다.
군산시 대야면 복교리 신촌마을 앞 새창이다리 뎈광장 입구에 서해랑길 이정목과 서해랑길 52·53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동행하는 일행은 신촌마을 앞 만경강 제방길을 따라 앞서가고 있다.
군산시 대야면(大野面) 복교리(福橋里)는 조선 시대 임피군 남사면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기존에 있던 신창리, 장좌리, 상리, 남우리, 신복리, 차상리, 남삼면의 오산리, 석화리 일부와 남이면의 입석리, 하죽산리의 일부를 통폐합하여 옥구군 대야면 복교리를 개설하였다. 1995년 1월 1일 군산시와 옥구군의 도농 통합에 따라 옥구군 대야면 복교리에서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복교리로 편제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거리 20.5km, 소요시간 6시간 30분, 난도 보통이며, 주요 경로는 금광교, 회현면사무소, 죽동마을, 군산호수 등이다
이곳은 만경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만경대교와 새창이연꽃마당입니다. '새로 작은 창고'라는 뜻의 신장(新倉)에서 유래하여 새창이라는 여름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부터 나루인 신창진(新倉津)이 있어 사람들과 문물의 교류가 왕성했던 곳입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만경강 일대 넓은 평야 지대에서 수확된 양곡을 일본으로 수탈하는 통로로 쓰였던 슬픈 역사의 이야기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반도 모습으로 조성된 새창이연꽃마당은, 민경강 생태가 회복하는 모습과 연꽃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만경강의 푸른 물길과 잘 어울리는 곳입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만경강의 푸른 물길과 역사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이곳에서 머물러 쉬어가세요.
만경강을 가로지르는 청하대교, 건너편 왼쪽은 김제시 청하면 장지산리, 뒤쪽 중앙은 입석산으로 만경읍 소토리 지역이다.
건너편이 만경 제2경 새창이나루터이며, 새창이다리(옛 만경대교), 만경대교, 서해만경강교 등 세 개의 다리가 보인다.
새창이연꽃마당을 둘러보고 싶지만 동행하는 일행을 좇아 청하대교 방향으로 바삐 걷는다.
만경강변 자전거길과 위쪽 제방길이 나란히 이어진다. 서해랑길은 길가에 금계국 노랗게 핀 자전거길을 계속 따라왔다.
강변에 푸른 갈대습지가 형성되어 있고, 금계국 노란 꽃과, 개망초 하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건너편은 입석산과 와석산, 오른쪽 뒤는 율산, 김제시 만경읍 소토리 지역이다.
만경강은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율치의 밤샘에서 발원하여 군산시 대야면·옥구읍을 거쳐 서해로 흐르는 강이다. 현재는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인해 서해로 직접 흐르지 않고, 새만금 간척 지구로 유입된다. ‘만경(萬頃)’이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 하천의 하류에 입지하였던 만경현[현 김제시 만경읍]에서 유래되었다. 본래 만경은 백제 시대에는 두내산현(豆內山縣)이었는데, 신라 시대에 만경현으로 개칭되어 김제군에 속했다. 고려 시대에는 임피현(臨陂縣)에 속하였으며, 1913년 김제군에 편입되었다. ‘만경’의 ‘경(頃)’은 ‘백만 이랑’이란 뜻으로, 넓은 들을 의미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만경강 건너편 왼쪽에 만경읍 소토리 율산, 오른쪽에 화포리, 중앙 뒤에 몽산리 몽산, 만경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만경강은 길이 54㎞, 유역 면적 1,571㎢이다. 총 제방 길이는 110㎞이며, 정비 완료 제방은 98㎞이고, 보강 필요 제방은 11㎞이다. 1982년 10월 11일 「대통령령 제16535호」에 의해 국가 하천으로 지정되었다. 예전부터 관개와 주운(舟運)에 이용되어 왔다. 만경강 유역에는 전라북도 전주시·익산시·김제시 등이 위치하고, 전라선·호남 고속 도로·서해안 고속 도로가 만경강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만경강 하구 일대 새만금 간척 사업은 전라북도 군산시·김제시·부안군에 총길이 33㎞의 방조제를 축조하여 총면적 4만 100㏊의 토지를 조성하는 대규모 간척 사업이다. 33㎞의 새만금 방조제는 2010년 4월 개통되었고, 현재는 내부 개발이 진행 중이다. 새만금 간척 사업은 국토의 외연적 확장과 농어촌 발전 기반 조성, 수자원 확보, 지역 종합 개발, 간척 농지 개발 및 쾌적한 복지 농어촌 도시를 건설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대규모 갯벌을 매립하는 간척 사업의 영향으로 인해 갯벌 생태계 파괴, 수산 자원의 고갈, 해양 오염의 증가 등 여러 가지 환경 문제의 발생이 우려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강변의 자전거길이 만경강 제방도로와 만났다. 지경교는 군산시 대야면 지경리와 회현면 증석리를 경계한다.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지경리는 1914년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대야면과 회현면의 경계가 되는 곳이라는 의미로 '지경리(地境里)'라 칭하였다. 군산시 대야면 지경리는 조선 시대 임피군 남사면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내상리, 하리와 남산면의 만자리, 차상리, 구복리 일부 그리고 남삼면의 오산리, 우덕리, 우산리의 일부와 서삼면의 동화리 일부를 통폐합하여 옥구군 대야면 지경리를 개설하였다. 1995년 1월 1일 군산시와 옥구군이 도농 통합되면서 옥구군 대야면 지경리에서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지경리로 편제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지경 승수로 왼쪽은 군산시 회현면 증석리, 오른쪽은 대야면 지경리이다. 오른쪽 뒤에 지경리 면소재지를 가늠한다.
군산시 대야면 지경리는 해발 고도 153m의 고봉산 줄기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가 대야뜰의 일부로 평야 지대이다. 대부분의 주민이 대야뜰을 중심으로 한 논농사에 종사하고 있다. 동쪽으로 대야면 복교리, 서쪽으로 회현면 원우리, 남쪽으로 회현면 증석리와 만경강 하류지역에 접하고, 북쪽으로 개정면 통사리, 대야면 산월리에 접하고 있다. 대야면의 면소재지로 대야면 주민 센터가 있으며, 군산시 보건소 제 2청사가 위치해 있다. 교육 시설로 군산 남 고등학교와 옥구 중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국도 26호선이 경유하고, 지방도 711호선과 지방도 718호선이 경유하며 철도 교통은 장항선 대야역이 운영중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대야역은 2020년 대야면 산월리로 신축이전하였다.
군산시 지경 승수로가 만경강에 합수한다. 왼쪽 뒤에 김제시 만경읍 소토리 율산, 건너편 중앙에 만경읍 화포리 토정마을, 중앙 오른쪽에 만경낙조전망대, 그 뒤가 조앙산과 주행산, 그 오른쪽 낮은 구릉 뒤에 화포마을, 걸어온 지역을 분명히 확인한다.
회현면 증석리에서 증석교를 건너 금광리로 넘어간다.
증석 승수로 위 증석교를 건넌다. 건너편에 회현면 금광리 들녘이 펼쳐지고 왼쪽 뒤에 청암산이 가늠된다.
'증석(曾石)'이라는 지명은 이 지역을 개간(開墾)할 때 개간한 모양이 시루의 구멍과 같아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시루 '증(甑)'자에서 '증(曾)'으로 바뀐 과정은 분명치 않다. 군산시 회현면 증석리는 만경강 가에 제방을 쌓아 형성된 간척지로 대부분 충적 평야 지대이다. 남쪽으로 만경강 하구에 접하고, 만경강 건너 지역은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 이웃하고 있다. 수자원이 풍부하고 지방도 711호선이 일부 경유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증석 승수로가 만경강에 합류한다. 건너편 왼쪽은 만경읍 화포리 지역으로 조앙산 오른쪽 낮은 구릉지 뒤가 화포마을이다. 중앙 뒤쪽에 만경읍과 진봉면 지역의 만경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서해랑길 53코스는 출발지에서 금광리다리까지 7.1km 거리를 만경강변 북안(北岸) 자전거길을 따라 이어간다.
새만금간척사업에 의해 만경강에 드넓은 갈대습지가 형성되었다. 습지 바깥에 하얀 삘기꽃과 노란 금계국이 흐드러진다.
서해랑길은 금광교차로에서 금광교를 건너지 않고 오른쪽 금광승수로 둑방길로 이어진다.
금광승수로가 만경강에 합류한다. 만경강 건너편은 망경읍과 진봉면 지역의 만경평야이다. 오른쪽 뒤에 모악기맥의 산줄기가 가늠된다. 아침에 오른쪽 뒤에 보이는 진봉산을 넘어 국사봉 자락길을 거쳐 진봉방조제를 걸었다.
만경강은모악기맥을 휘돌아 모악기맥 끝 봉우리 봉화산 아래서 서해바다에 빠진다. 모악기맥 산줄기들이 왼쪽 뒤에 이어진다.
군산시 회현면(澮縣面) 일대의 간척농지가 펼쳐져 있다.
군산시 회현면은 월연리, 금광리, 대정리, 세장리, 고사리, 학당리, 원우리, 증석리를 관할한다. '회현'이라는 지명은 옛 회미현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회미'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회미현(澮尾縣)은 원래 백제의 부부리현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허성도 번역]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회현 지역은 삼한 시대 마한 땅으로 고려 16대 예종 때는 회현현이었고, 조선 시대에는 옥구군 장면과 풍면 일대의 지역이었다.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풍면과 장면 두 개 면이 통합되어 전라북도 옥구군 회현면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1월 1일 군산시와 옥구군의 통합으로 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이 되었다. 회현면의 북쪽은 청암산 등 고도 1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고, 남쪽으로는 만경강 유역의 충적평야와 해안 간척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회현면 금광리 금광승수로 둑방길을 따라와 앞의 금광배수문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녘으로 나간다.
군산시 회현면은 군산시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대야면, 서쪽은 옥구읍, 남쪽은 바다 건너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면, 북쪽은 군산시 옥산면과 개정면에 이웃하고 있다. 면의 북쪽에 옥산 저수지(군산저수지)와 대위제가 있어 부근 평야 지대에 물을 풍부하게 공급하고 있다. 지방도로 709호선과 718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전주-군산 간 고속화도로가 인근에 있고, 전주·김제 방면 우회도로가 개설되면서 군산과 전북 지역을 잇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특히 만경강 강변에 위치한 충적평야와 해안 간척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은 '옥토 진미'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금광배수문 앞 쉼터정자에서 10여 분 휴식을 취하고 금광리 들녘의 농로를 따라오고 있다.
오른쪽은 금광리 신기촌마을, 왼쪽은 금광리 옥성마을이다. 서해랑길은 왼쪽 옥성마을을 통과한다.
군산시 회현면 금광리는 조선 시대 옥구군 장면 지역에 상응한다. 1910년 군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옥구군 장면, 풍면을 병합한 옥구군 회현면이 개설되었고, 금광리 역시 회현면 관할 지역으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군산시와 옥구군의 통합에 따라 군산시 회현면 금광리로 편제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금광리 옥성마을 앞 들녘이 푸르다. 왼쪽 뒤는 금광리 옥흥마을이라고 가늠한다.
군산시 회현면 금광리는 만경강 하구에 제방을 쌓아 만든 간척지가 대부분인 지역이며 보리와 쌀 위주의 농업을 위주로 주민들이 생활한다. 회현면 금광리는 월평 마을, 월평 2구, 원당 마을, 광지산 마을, 금당 마을, 신기촌, 옥성 마을, 옥흥 마을, 옥삼 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으며, 광산 앞들, 쑥뎅잇들, 신기촌 뒤뜰, 회남들, 회섯들 등의 들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 학당리, 서쪽으로 월연리, 남쪽으로 만경강 하구에 접하고 북쪽으로 회현면 사무소가 소재하고 있는 대정리와 이웃하고 있다. 지방도 718호선이 북쪽을 경유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옥성마을 짜투리땅에서 마늘이 예쁜 꽃을 피웠다. 건너편 마을은 금광리 신기촌마을이다.
옥성이 무슨 뜻일까? 마을 유래를 알리는 표석을 세우는 게 좋을 듯하다.
금광리 옥성마을에 남평 문씨 문갑수 공적비가 삼문 중 동협문 안에 세워져 있다.
지방도로 제744호선 남군산로를 가로질러 건너편 광지산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맨 왼쪽은 원당(元堂)마을, 침밭산 오른쪽에 금당(金堂)마을, 중앙 농로 뒤의 마을이 광지산(光芝山)마을이라고 가늠한다. 그리고 왼쪽 뒤에 청암산(靑巖山)이 보인다.
농로 양쪽에 맥류 보급종 채종포(採種圃, 씨앗을 받기 위하여 특별히 마련하여 가꾸는 밭)에 귀리들이 재배되고 있다. 건너편 마을은 원당(元堂)마을일 것이라 짐작한다.
농로를 따라와서 '회미로(澮尾路)'로 나왔다. '회미로' 광지산(光芝山)마을 입구의 집들이 광채를 빛낸다.
회미로에서 광지산(光芝山)마을은 왼쪽 광지산(光芝山)길로 진입한다. 뒤쪽에 보이는 곳은 회현면 학당리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쭉나무라고 하는 참죽나무가 광지산마을에 높이 솟아 꽃들을 피우고 있다.
광지산마을 입구에서 광지산길을 따라 광지산마을을 통과하였다. 왼쪽 뒤에 그리고 오른쪽에 참죽나무가 치솟아 있다.
광지산(光芝山)길을 따라간다. 왼쪽에 두릉 두씨 광지산공파 종중제각, 광지산길 오른쪽에 궁전 같은 지성어린이집이 있다.
두릉 두씨 광지산공파 종중제각 왼쪽에 두연령 행적비가 세워져 있다.
두승손(承孫)은 조선 시대 옥구에 세거한 두릉 두씨(杜陵杜氏)의 입향조이다. 태종 조에 관직이 병마 우후(兵馬虞候)에 이르렀다. 그가 15세기에 만경(萬頃)에서 옥구로 입거한 이후 그의 후손들이 군산시 회현면 금광리와 옥산면 당북리 및 금성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으며, 군산 지역에서 큰 성씨가 되었다. 아들 두세준(杜世俊)은 세종 조에 효행으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자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세워주었으며, 증손자 두사순(杜思順)은 청백리로 유명하며, 현손[증손자의 아들] 두정란(杜廷蘭)은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전투에서 순절한 충신이다. 그의 묘가 군산시 회현면 고사리 척동 마을 주변 야산에 있는데, 척동 마을을 둘러 싼 주변의 야산에는 현재 두릉 두씨 옥구 입향조 두승손의 묘 외에도 남원 양씨(南原梁氏) 옥구 입향조 양의생(梁宜生)의 묘, 진주 강씨 옥구 입향조 강원전(姜元鐫)의 묘, 담양 전씨(潭陽田氏) 옥구 입향조 전윤평(田允平)의 묘, 광산 김씨(光山金氏) 경력공파(經歷公派)의 입향조 김덕양(金德良)의 묘와 각각의 제각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그윽한 팽나무 푸른 잎들이 무성하다. 팽나무 뒤에 지성어린이집이 있다.
회현면 금광리 지성어린이집 건물이 궁전 같다.
회현면 금광리 광지산마을에서 고개를 넘어 회현면 대정리로 넘어간다. 일행이 나무를 쪼는 오색딱따구리를 관찰하고 있다.
회현면 대정리로 넘어와 회현교회 앞을 거쳐 회현보건지소 앞을 지난다. 서해랑길은 회현농협 앞에서 오른쪽길로 이어간다. 왼쪽 뒤에 청암산(靑巖山)이 보인다.
大政里 지명은 1914년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대지산(大芝山)의 '大'와 구정리(九政里)의 '政'을 따서 새로 만든 것이다. 회현면 대정리는 조선 시대에는 옥구군 장면 지역이었다. 1910년 군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옥구군 장면, 풍면을 병합하여 옥구군 회현면이 신설되었고, 대지산, 구정리, 죽동 일부와 박면의 박박리 일부를 병합하여 대정리를 개설하였다. 1995년 군산시와 옥구군이 통합되면서 군산시 회현면 대정리로 편제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회현면사무소 앞에서 왼쪽 회현사거리 방향으로 지방도 제718호선 회현로를 따라간다.
군산시 회현면 대정리는 만경강 하구의 회현 제방을 쌓아 형성된 간척 지대와 넓은 충적 평야 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남쪽으로 만경강 하구에 접하고 있다. 대지산 마을, 중전 마을, 내기 마을, 서기 마을, 평유동 마을, 구평 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자리하고 있으며, 회남들, 회서들, 이판수논 등의 들이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학당리, 서쪽으로 수산리와 이곡리, 남쪽으로 월연리와 금광리에 접한다. 북쪽으로 금성리와 세장리와 이웃하고 있고, 지방도 709호선이 경유한다. 회현면 주민센터가 소재한 곳이며 군산시 지정 유형 문화재 제 7호 영묘재가 위치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금광교 3.4km, 청암산 입구 1.2km 지점, 지방도 제718호선은 회현사거리에서 지방도 제709호선과 만난다.
회현로를 따라가다가 회현사거리에서 대위로 방향의 회현중학교(澮縣中學校) 후문 버스정류소를 살폈다.
회현중학교(澮縣中學校)는 지역 내 중학교가 없어 교통이 불편하던 군산으로 통학하는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1970년 9월 10일 회현중학교 설립 추진 위원회를 발족하였다. 1971년 1월 16일 설립 인가를 받고, 같은 해 4월 20일 개교하였다. 2014년 2월 13일 제 41회 졸업식으로 5,06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교가와 상징물] 1. 교가 : 마한의 정기어린 계령산 아래/ 부푼 꿈 꽃 피우려 모인 우리들/ 새롭고 씩씩하게 갈고 닦아서/ 내 나라의 샛별도리 회현중학교/ 2. 교목은 낙우송이고, 교화는 철쭉이다. 2014년 현재 총 8학급에 217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회현사거리 입구에 회현파출소가 있다. 위쪽은 지방도 제709호선 옥산·군장산업기지 방향이다.
서해랑길은 지방도 제709호선 회현로를 따라 옥구·군산공항 방향으로 이어간다. 오른쪽 뒤에 대정리 서기마을이 보인다.
잠시 왼쪽 회현중학교 뒤뜰로 들어가 조성물을 살펴본다.
회현중학교 뒤뜰에 혁명 시인 김남주(1946~1994)의 '사랑은' 시비가 세워져 있다.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김남주의 '사랑은' 전문)
회현중학교 뒤뜰 목장승 한 쌍의 문구 '어떤 세상을 만들까', '나를 무엇에 쓸까'가 학생들의 가슴에 꽂히기를 바란다.
회현중학교 뒤뜰을 살피고 회현로로 나와 회현로를 따라간다.
회현면 대정리 서기(西基)마을 입구를 지난다.
회현초등학교(澮縣初等學校)는 1935년 4월 1일 회현 공립 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고, 같은 해 4월 15일 개교하였다. 1949년 9월 1일 용화 초등학교를 분리 개교하였고 1956년 3월 30일 오봉 분교장을 인가 받아 운영하다가 1969년 3월 1일 분리 개교하였다. 1992년 3월 1일 증석 초등학교의 폐교로 일부 통합하였다. 2014년 2월 14일 제 75회 졸업식으로 총 7,18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교가와 상징물] 1.교가[작사: 두진열, 작곡: 문남철] 닭재에 어린정기 포근히 퍼져/ 즐거운 웃음 속에 피는 새싹들/ 바르게 갈고 닦아 얼른 자라서/ 피우리 꽃 피우리 우리 고장을/ 빛나리 우리학교 고운 꽃동산/ 자랑의 회현초교 우리 배움터/ 2.교목은 회화나무로 높은 기상과 지혜를 의미한다. 교화는 철쭉으로 진솔한 사랑의 마음씨를 의미한다. 교조는 까치인데 지혜와 바른 인성, 보은을 의미한다. 2014년 현재 총 8학급에 155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중앙 뒤에 회현면 세장리 청암산(靑巖山)이 보인다.
청암산(靑巖山)은 군산시 옥산면 금성리와 회현면 세장리 경계에 펼쳐져 있다. 옥산면 일대는 옥구읍·옥산면·회현면 일대와 함께 금성 산지에 해당된다. 금성 산지는 해발 100m 내외의 저산성 산지와 충적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청암산은 해발 117m로 구릉성 산지이다. 옥산면 남쪽에 위치하여 옥산면과 회현면의 경계가 된다. 북쪽으로 이어진 금성산과 함께 청암산은 군산 저수지, 또는 옥산 저수지로 불리는 제2 수원지를 품고 있다. 옥산 저수지 입구에서 청암산 정상까지는 약 2.5㎞이며, 등산로가 잘 마련되어 있다. 정상에는 전망대와 삼각점이 있다. 전망대에 서면 옥구읍 수산리·상평리·이곡리와 회현면의 금광리까지 펼쳐진 수산 이곡 평야, 그리고 만경강 하류를 조망할 수 있다. 북쪽으로 금성산을 마주하고 있으며, 남서쪽으로 옥구읍 일대의 산지인 영병 산지를 조망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회현면 대정리에서 세장리로 넘어왔다. 중앙에 보이는 고개가 사오개, 그 왼쪽에 회현면 세장리 죽동마을이 자리한다.
군산시 회현면 세장리(細長里)는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옥구군 요동, 장제리, 세동, 죽동 일부와 옥구군 박면의 여로리 일부를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세동(細洞)과 장제의 명칭을 합하여 세장리라 부르게 되었다. 군산시 회현면 세장리는 조선 시대 옥구군 장면과 박면 지역이다. 1995년 1월 1일 군산시와 옥구군이 통합되면서 군산시 회현면 세장리로 편제되었다. 회현면 세장리의 지형 대부분은 100m 이하의 구릉성 산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쪽에 청암산이 펼쳐져 있다. 북쪽에 옥산 저수지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죽동 마을, 신성동 마을, 사오개 마을, 가운데 뜸 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북쪽으로 군산시의 대표적인 저수지인 옥산저수지가 있으며 남쪽에는 규모가 작은 죽동제가 위치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마을 뒤편 청암산은 샘산, 봉메산으로 불렸으며 죽동마을은 청임산 지역에 위치하면서 저수지를 끼고 있는 마을 특성상 지하수위가 낮아 공동으로 이용하는 샘이 많았다. 이중 사오갯샘은 회현면 고사리, 내정리, 월평리 사람들뿐만 아니라 회원 외 지역사람들까지 찾아와서 물지게로 물을 길어가는 진풍경이 연출되었을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고 물맛이 좋기로 옥구군에서는 소문난 샘이었다. 마을사람들은 해방 직후 콜레라가 발병하여 인근 마을 사람들은 7할이 병에 걸려 죽었으나 죽동마을은 한 사람도 콜레라에 해를 입지 않은 것은 오직 사오갯샘의 효험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설명안내판)
옥산저수지가 축조된 1939년 이전에 회현면 사람들이 옥산이나 군산시내를 가기 위해 넘어다니던 고개라고 한다.
1.사오개는 옥산저수지(현재 군산저수지)가 축조된 1939년 이전에 회현면 대정리, 월연리, 세장리 사람들이 옥산이나 군산시내를 가려면 넘어야 하는 청암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고개의 이름이다. 당시 6척 이상의 큰 길이 시내까지 연결되어 있었고 회현 사람들과 군산시장통을 이어가면서 민초들의 숱한 사연을 담고 있는 길이기도 하였다. 아쉽게도 옥산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사오개에서 옥산면 신성동까지의 대부분 길은 물 속에 잠기게 되었다. 도로교통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사오개는 회현 사람들을 세상과 연결하는 고갯길이었다.
2.대나무숲 - 마을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1930, 40년대경 만경강 하구 마을에서 옥서 하제까지 민물고기, 바닷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가던 어촌마을 사람들이 죽동마을에 매년 농사 시작 전에 대나무를 사기 위해 몰려들었고, 댓글 흥정이 끝나면 달구지에 대나무를 다발로 차곡차곡 실어 먼지 풀풀거리는 진흙길을 되짚어 해안 쪽으로 가곤했는데 그 대나무는 밀물과 썰물을 이용한 고기잡이 방식인 '쑤기놓기'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대나무밭에서 대나무를 잘라 파는 일이 논에서 벼를 재배해서 나오는 소득보다 대여섯 배 많았기 때문에 현재보다 대나무 군락이 폭넓게 분포하였다.
1.사오갯길 - 예로부터 청암산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 군산시장까지 오고가던 초입고개가 사오개이며 이 고개를 연결하여 죽동마을을 크게 감도는 길을 사오갯길로 명명하였다. 2.죽동마을 - 편마암으로 이루어진 해발고도 100m 미만의 산지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뒤편으로 군산저수지와 청암산이 위치해 있다. 대골은 세장리에서 으뜸가는 대나무가 많다고 하여 대골 또는 죽동이라 불린다. 사오개는 대골 동쪽이 되는 마을로 사오개 고개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안쪽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어 풍수적으로 배산임야(背山臨野) 지형의 자연마을이다.
군산호수 둘레길 수변산책로를 따라 이어간다. 이 길은 군산시에서 명명한 '구불길'에 속하는 길로서,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수풀이 우거진 길을 여유, 자유, 풍요를 느끼며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은 이야기가 잇는 군산도보행 길'을 뜻한다. 구불길은 모두 1~8길 172km로 조성되어 있다. 군산호수 둘레길은 구불4길 '구슬뫼길'로서 서해랑길은 구슬뫼길 일부를 따라간다.
청암산 생태학습원을 지나서 군산저수지가 처음으로 조망되는 곳에 이른다.
구불4길 '구슬뫼길'과 동행한다. 제방 입구 2.01km 지점으로 청암산 산행과 산책하는 분들이 점심을 즐기고 있다.
군산호 둘레길은 그윽한 대나무들이 밀집해 있다.
한 아주머니가 대숲에 들어가셔서 죽순을 따가지고 나오셔서 사진에 담았다.
대나무의 땅속줄기에서 돋아나는 어리고 연한 싹이다. 대나무의 품종 중, 왕대(왕죽)·솜대(분죽)·죽순대(맹종죽)의 어린순을 통칭한다. 성장시기가 매우 짧아 봄의 특정 시기에만 수확할 수 있어 계절성이 강한 식재로 생으로 유통되거나 가공된 통조림 형태로 접할 수 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통조림의 죽순은 주로 중국산이다.(대한민국 식재총람)
군산호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회현면 세장리에서 옥산면 옥산리로 넘어온 것 같다. 호수에 가시연들이 자란다.
산림욕장 편백숲을 왼쪽으로 돌아나간다.
드디어 군산호 제방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군산저수지 둘레길과 청암산 표석이 군산호 제방 서남쪽 입구에 세워져 있다. "청암녹색나눔숲은 복권기금(산림청녹색자금)의 지원으로 조성되었습니다."
군산호 제방 동북쪽 입구 전망대에서 걸어온 제방길과 오른쪽 뒤의 금성산을 조망하였다.
군산호수 둘레길은 청암산 품에 안긴 군산호수공원의 수변산책로를 말한다. 청암산 일대는 1939년 수원지로 조성되었으며, 1963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2008년 지정해제될 때까지 45년 동안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되어왔다. 상수원은 현재 군산호수공원이라 불리며 그 면적은 2.34㎢에 달한다. 수변산책로변은 보존 가치가 높은 다양한 습지식생환경으로 야생 동식물의 중요한 서식처이기에 학생들의 자연학습 장소로 제격이다. 둘레길 초입은 억새숲으로 가을이면 은빛 장관을 연출한다. 동행인과 이야기하며 걸으면 4시간 정도 소요되며, 호수내음과 녹음이 울창한 수풀의 그윽한 향기가 기분을 안정시켜준다.(대한민국 구석구석)
옥산저수지라고 불렸던 군산저수지가 엄청나게 넓다. 사오개에서 서쪽 둘레 수변산책로를 따라왔다.
군산저수지(옥산저수지)는 과거 상수원보호구역으로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며 지금은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또한 이곳은 옥산저수지를 보호하는 것처럼 둘러친 방풍림과 원시림이 그대로 전개되어 있다. 만약에 수원지로 사용하지 않고 개방되었다면 지금의 원시림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옥산저수지는 자연이 주는 깨끗한 수풀속의 공기와 원시림이 전개된 자연을 볼 수 있는 자연생태 탐방로로 제격이며 이곳은 등산로와 주변 산책로가 있어서 등산과 도보여행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명소이다.(군산시 문화관광)
가시연꽃 조형물이 눈에 번쩍, 대나무 오리 조형물 등이 조성된 공원 아래는 청암산입구 주차장이 있다.
군산호 공원 동북쪽 입구 아래 청암산입구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가시연꽃 목각 조형물이 아름답다.
전북천리길 중 구불길 4길 '구슬뫼길' 중 3번, 2번, 1번을 따라왔다.
군산호 입구 공원에 '청암산이좋다', '토끼와 거북이', '가시연꽃' 등의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군산호 동북쪽 입구에 군산관광안내도, 군산 청암산에코라운드, 구슬뫼길 종합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길이 9.4km, 호수길 2시간20분, 군산호수 입구 - 시종점. 호수와 산, 그것만으로도 멋진 구불4길(구슬뫼길). 시작부터 멋진 녹지 사이로 들어가는 길이다.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역답게 그 자체가 거대한 생태공원이다. 제방을 따라 걷다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좀 더 수변의 운치를 감상하고 싶다면 수변길을 따라 걸어도 좋다. 대나무숲과 왕버드나무 군락 등 호수 주변으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은 걷는 이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수련이 피어난다. 생태학습이 가능한 잘 조성된 습지관찰원을 지나 얕고 좁은 고개를 넘어가면 호수와 산, 그것만으로도 이미 이 길의 멋은 완벽 그 자체이다.
군산호수 청암산 - 청암산은 과거 푸른산이라는 의미의 취암산과 샘산으로도 불리워졌고, 이후 청암산으로 명칭이 바뀐 것으로 전해지며 1939년 수원지로 조성·1963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2008년 3월 지정해제될 때까지 45년 동안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되어 온 힐링의 장소이다.
옥산저수지를 내려와 옥산면 면소재지 옥산리 여로마을 앞 농로를 따라간다.
농로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동쪽에 옥산면 면소재지 옥산리 여로마을이 보인다.
‘옥산’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에 있는 옥산이라는 산의 명칭을 따서 칭하게 되었다. 옥산리는 조선 시대 옥구군 박면 지역이다. 남동쪽으로 구릉성 산지가 나타나며 옥산 저수지가 위치해 있고, 대부분 지역은 평야로 논농사가 행해지고 있다. 여로 마을, 대려 마을, 내류 마을, 옥교 마을, 외류 마을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옥산, 소매산, 일산 등의 구릉성 산지가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 옥산면 남내리, 서쪽으로 당북리, 남쪽으로 금성리와 회현면 세장리에 이웃하고, 북쪽으로 쌍봉리에 접하고 있다. 특히 남동쪽에 군산시의 대표적인 저수 시설로 군산시 회현면과 옥산면에 걸쳐 있는 옥산 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북쪽에 동서 방향으로 국도 21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지방도 709호선이 일부 경유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옥산면 옥산리 여로마을 앞 농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대려마을 방향으로 향한다. 왼쪽에 돗대산, 그 오른쪽에 빌딩숲이 보이는 곳이 서해랑길 53코스 종점인 옥산면 당북리 외당마을이다. 이 들녘을 석교들이라 이르며, 앞의 북쪽은 전주와 군산을 연결하는 국도 제21호선에 의해 옥산면 쌍봉리의 '평사들'과 경계를 이룬다.
군산시 옥산면은 옥산리, 남내리, 쌍봉리, 당북리, 금성리를 관할한다. '옥산(玉山)'은 대려동 북쪽에 있는 작은 산으로 이 산에는 꼭대기에 흰 돌이 있다는 의미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옥산의 이름을 따서 '옥산면'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우리말의 '돐뫼'로 표기되며 '돌머리', '돌메'로도 쓰인다. '돌머리'는 쌍봉리 봉서 마을의 옛 이름으로 현재도 그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한편, '옥산'이란 지명은 조선 시대 옥구현의 다른 명칭이며, 관련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옥산리'라는 지명은 조선 후기 고문헌과 고지도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사실을 기록한 『신구 대조』에 새로 신설된 옥산면과 함께 촌락 지명인 옥산리(玉山里)가 처음 등장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왼쪽에 옥산리 대려마을이 보인다. 서해랑길은 이 들녘을 가로질러 맨 오른쪽 끝에 보이는 '옥산닭집'으로 이어간다.
군산시 옥산면은 본래 전라북도 옥구군 지역이었다. 박지산[군 산천]의 이름을 따서 박지산면 또는 줄여서 박면이라 하였다. 1910년 군산부(群山府)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전라북도 옥구군 옥산면으로 신설되었다. 1995년 전라북도 군산시와 옥구군의 통합에 따라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이 되었다. 군산시 옥산면의 남쪽은 금성산 등 고도 1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고, 북쪽으로 경포천 유역의 넓은 충적 평야가 펼쳐져 있다. 군산시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군산시 개정면, 서쪽은 옥구읍, 남쪽은 회현면, 북쪽은 수송동과 개정동에 이웃하고 있다. 국도 21호선과 지방도 709호선이 면의 중앙에서 교차한다. 군산 시내에 인접한 근교 전원 농촌 지역으로 도시화의 진전에 따라 도·농 생활 복합 지역이 되었다. 면의 남쪽에 옥산 저수지가 있다. 옥산 저수지 인근은 구불길의 4코스이기도 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왼쪽 뒤 옥산리 여로마을 농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농로를 따라와 '산성로' 대려마을 입구로 나왔다.
옥산리 산성로에서 가야할 길을 바라본다. 서해랑길은 산성로에서 곧바로 오른쪽으로 꺾어 바로 앞 중앙에 보이는 '옥산닭집' 앞을 거쳐 중앙에 보이는 돗대산 아래 백석마을로 이어진다. 오른쪽 빌딩숲이 있는 당북리 외당마을이 53코스 종점이다.
옥산면 옥산리 면소재지 여로마을이 왼쪽 뒤에, 중앙에 대려마을이 보인다. 군산저수지 아래로 내려와 이곳으로 걸어온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로 건너편 옥산닭집이 이정표 구실을 한다. 서해랑길은 수로 건너편 농로를 따라 대려2호 양수장 방향으로 이어간다.
대려2호 양수장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시멘트 농로를 따라 드넓은 석교들을 가로질러 오른쪽 돗대산 방향으로 이어간다.
석교들 남서쪽 지역이다. 앞쪽은 옥산면 금성리 일대로 왼쪽에 내류마을과 외류마을, 그 오른쪽에 칠다리마을이 가늠된다. 그리고 그 너머는 옥구읍 일대이며, 왼쪽 끝에 보이는 산이 영병산(領兵山)일 것이다.
1.군산시 옥산면 금성리(錦城里)는 옥산면에서 관할하는 다섯 개 법정리 중 하나로, 옥산면 면 소재지 남서쪽에 위치해 있다. '금성(錦城)'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에 있는 해발 고도 125m의 금성산(錦城山)에서 유래하였다. 옥산면 금성리 대부분은 평야이며 논농사 지역이다. 남쪽에 금성 저수지, 북쪽에는 금성산이 자리하고 있다. 옥산면 금성리에는 금성 마을, 내류 마을, 박박리 마을, 방죽안 마을, 버들 마을, 안버들 마을, 외류 마을, 유동 마을, 칠다리 마을, 큰떰 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회현면 세장리, 서쪽으로 옥구읍 이곡리, 남쪽으로 회현면 대정리, 북쪽으로 옥산면 당북리와 접하고 있다. 지방도 709호선이 서쪽 끝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경유한다.
2.영병산(領兵山)은 해발 120m의 저산성 산지이다. 옥구읍 오곡리관련항목 보기와 어은리의 경계에 있다. 영병산 줄기의 끝은 북쪽으로 옥구읍 선제리까지 이어지고, 남쪽 끝은 옥구읍 어은리에서 만경강 하구와 접한다. 영병산의 지리적 위치와 해발 고도로 볼 때, 옥구읍 일대를 비롯하여 옥서면 일대와 고군산 군도까지 조망이 가능하나, 현재는 정상으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옥산면 옥산리에서 당북리로 넘어와 '하포로'를 가로질러 공사장 앞을 통과한다. 하포로 왼쪽 아래에는 옥산면 금성리와 옥구읍 상평리 지역이 있을 것이다.
아래 왼쪽에 보이는 곳은 옥산면 금성리 지역이고, 오른쪽 지역은 옥구읍 일대이다. 이곳은 상습적인 침수피해 지역이어서 옥회천 지방하천을 정비공사하고 있다. 옥회천은 경포천으로 흘러든다고 한다.
금강 수계권 지방 하천 京浦川은 군산시 경암동 경포 배수 갑문을 종점으로 금강 하구에 유입하는 하천이다. 경포는 오늘날 군산시 중동 로터리 지역으로 서래 포구, 혹은 슬애 포구로도 알려진 포구이다. 당시에는 현재 중동 농협 건너편이 배를 대는 포구였고, 인근은 초가집이 꽉 들어찬 어촌 마을이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서래산[예전 군산역 뒤 바위산]을 등지고, 군산 최대의 자연 하천인 경포천을 앞에 둔 어촌 마을이었는데, 당시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을 슬애라고 불렀다. ‘슬애’란 ‘서래’의 군산식 발음인데, 서울에 가는 포구라는 뜻이다. ‘슬애’를 한문으로 기록하려니 ‘서울 경(京)’에 ‘포구 포(浦)’를 사용하여 ‘경포’라 부른 것이다. 군산포가 조창을 중심으로 한 관용 포구였다면, 경포는 조선 시대 군산의 어업과 상무역이 가장 활발했던 민간인 포구였다. 경포에는 경장시라는 오일장이 열렸다. 경장 시장은 경포에서 경포천을 따라 조금 안쪽으로 올라가 현재의 경장동 예그린 아파트 인근에 위치하였다. 일명 설애 장터라고도 불렸다. 유역에 석교뜰을 이루고 개정뜰에서 유입되는 하천과 합류하며 아흔 아홉 다리를 지나 현재 군산 경찰서 부근의 금강 하구에 유입된다. 경포천은 1982년 10월 11일 지방 하천으로 지정되었다. 하천의 총연장은 8.92㎞, 수립 연장은 8.92㎞, 유역 면적 54.6㎢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해랑길은 밀밭 건너편 옥구선 철도 아랫길을 오른쪽으로 따라가다가 지하통로를 통하여 건너편 돗대산 아래로 넘어간다.
군산시 옥산면 당북리 돗대산은 돛대산이라고도 한다. 『한국 지명 총람』에는 흰돌[白石] 서쪽에 있는 산으로 모양이 돛대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다른 이름인 발이산과 관련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발이산(鉢伊山)은 현의 북쪽 3리[1.2㎞]에 있는데, 진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옥구읍 일대는 옥산면·회현면 일대와 함께 금성 산지에 해당된다. 금성 산지는 해발 고도 100m 내외의 저산성 산지와 충적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돗대산은 금성 산지에 포함되며 해발 91m의 구릉성 산지이다. 귀가 네 곳이고 능선이 네 곳으로, 혼자 솟아 있는 모습이 어느 방향에서 봐도 산의 모양이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돗대산 정상에서 만경강과 금강이 모두 보이고, 옥산뜰과 옥구뜰, 회현들을 조망할 수 있다. 옥산면은 돗대산을 중심으로 옥산리, 남내리, 쌍봉리, 당북리, 금성리 등 5개 마을의 22개 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왼쪽 뒤 옥산리 여로마을 앞 농로에서 중앙의 대려마을 앞을 통과하여 드넓은 석교들을 가로질러 왔다. 오른쪽은 금성산인 듯.
금성산錦城山은 군산시 옥산면 금성리와 옥산리 경계에 펼쳐져 있다. 옥산면 일대는 옥구읍·옥산면·회현면 일대와 함께 금성 산지에 해당된다. 금성 산지는 해발 고도 100m 내외의 저산성 산지와 충적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금성산은 해발 126m의 저산성 산지이다. 북쪽으로는 군산의 도심과 남으로는 평야와 내륙의 뜰과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현재 금성산은 군산시가 개설한 구불길의 5코스 중 물빛길의 시작점이다. 금성산에는 박지 산성이 있어서 만경강을 이용해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는 곳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군산 저수지, 또는 옥산 저수지로 불리는 제2 수원지가 위치해 있다. 옥구읍 수산리·상평리·이곡리, 회현면의 금광리까지 펼쳐진 수산 이곡 평야를 조망할 수 있다. 남쪽으로 청암산을 마주하고 있으며, 남서쪽으로 옥구읍 일대의 산지인 영병 산지를 조망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군산과 옥구를 연결하는 '옥구선' 철도 아래를 따라와서 철둑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돗대산 아래 백석마을로 이어간다.
지하통로를 나와 농로를 따라 돗대산 아래 백석마을로 향한다. 오른쪽 뒤 빌딩숲이 53코스 종점인 당북리 외당마을이다.
농로에서 백석로로 진입하여 오른쪽으로 꺾어 돗대산 아래 백석마을로 이어간다. 종점까지 1.5km가 남았다.
백석마을 앞 백석로를 따라 원당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백석로를 따라 당북초등학교 앞으로 이어간다.
백석로 옆에 '최종희부뚜막' 음식점이 있는데, 이 지역에서는 유명음식점인 것 같다.
당북초등학교 앞을 지나 외당사거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군산시 옥산면 당북리에 있는 공립 당북초등학교(堂北初等學校)는 1949년 9월 1일 당북 국민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고, 같은 해 10월 25일 개교하였다. 신풍 초등학교, 미룡 초등학교, 옥산 초등학교, 상평 초등학교에서 2, 3, 4학년 학생을 편입시켜 5학급으로 편제하였다. 80년대 이후 이농 현상과 농어촌 학교 취학 기피로 인해 학생 규모가 감소하였다. 2014년 2월 14일 제 63회 졸업식으로 총 2,71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교가 : 금강의 세찬물결 우리의 기상/ 군산의 넓은 들 우리의 마음/ 배움의 횃불이 밝혀진 이곳/ 배달의 얼을 받은 어린 역군들/ 착한맘 한맘으로 굳게 뭉치어/ 빛내자 우리학교 당북초등학교/ 2.교목은 향나무, 교화는 철쭉, 교조는 비둘기이다. 2014년 3월 현재 총 11학급에 187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백석로'에서 외당사거리를 지나 '월명로'로 들어선다.
월명로 외당마을 버스정류소 직전 가로등 기둥에 서해랑길 54코스 시작점 표지가 붙어 있다.
외당마을 버스정류소 옆에 서해랑길 53·54코스 안내도와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서해랑길 53·54코스 안내도와 함께 서해랑길 53코스 탐방 종주를 기념한다. 거리 20.5km, 소요시간 6시간 30분, 난도 보통이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 탐방한 결과 18.92km, 5시간 3분이 걸렸다. 거리에 왜 오차가 생겼을까?
첫댓글 서해랑길 53코스 19km도 완주하시고~~
군산호가 있다는 것도 알았네요.
넓어서 둘레길을 다 돌기는 힘들겠지만 한 번 들러보고싶습니다.
군산 인근에는 제가 사는 고양시와 같은 지명~백석,원당이 있어 친근감이 더~~ㅎ
원당, 백석. 원당 북쪽 당북리. 당북초등학교, 외당마을. 군산호가 멋지더군요.
군산 구불길을 언제 걸어보고자 합니다.
꿈마니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