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한국의 기도 도량 / 서산 상왕산 개심사
굽고 뒤틀린 나무 기둥, 무심의 경지를 노래하다
천년세월 고스란히 품은 도량
지장·시왕 모신 명부전 유명
경허선사 선풍 오롯이 깃들어
▲향나무와 배롱나무가 그늘을 드리워 열기를 식힌다.
코끼리가 목을 축인다는 못은 ‘마음을 연다’는 개심사를 제 속에 담고도 입을 닫았다.
침묵은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일 게다.
전날 내린 비로 서산 상왕산 계곡이 목을 축였다.
가뭄에도 개심사가 품은 신심이 천년을 흘러 내려온듯 했다. 메마른 마음의 갈증을 푼다.
일주문 앞에서 생계를 위해 산나물 펼쳐 놓은 아낙네도 기대로 부푼다.
입술이 마르고 갈라졌어도 하루벌이를 바라는 눈빛이 촉촉했다.
길 양옆으로 허리 굽혀 객을 맞는 소나무는 간혹 부는 시원한 바람에
제 머리카락 늘어 놓고 솔향을 흩뿌렸다.
소나무 숲 그늘을 따라 천천히 걸으니 돌계단이 시작된 곳서 비석 2개와 마주했다.
세심동(洗心洞)과 개심사(開心寺)다. ‘마음 씻는 골짜기’와 ‘마음 여는 절’이라니.
108 돌계단 앞 비석 2개가 일주문 같다.
마음 여는 절이 상왕산 골짜기에 자리 잡았으니 때 묻은 마음 잘 씻고 가란 얘기일 게다.
개심사 가르침을 모르는 척, 흙 그리워 돌계단 피해 개심사로 올랐다.
이리 저리 고개 늘어뜨린 소나무들이 생긴 대로 세월 흐른 대로 몸을 맡겼는지 구불구불했다.
수없이 오르내렸을 참배객 마음이
커다란 돌탑 무더기로 영글어 있는 곳에 이르러서야 계단에 발을 올렸다.
돌탑 맨 위 아슬아슬하게 선 돌을 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쉬이 고개 들지 못했다.
개심사에는 시간이 쉬어가고 있었다. 아름드리 나무가 그늘을 드리워 한 여름 열기를 식혔다.
상왕산(象王山) 코끼리가 목을 축인다는 못,
그 건너편 배롱나무는 꽃을 피우기 위해 치열하게 햇볕 받아들이며 녹음을 짙게 드리웠다.
배롱나무의 시간은 오로지 만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못은 개심사를 제 속에 담고도 입을 닫았다. 풍경도 말을 아꼈다.
종일 소리에 갇혀 지내던 일상들이 자취를 감추자 시간도 더디 갔다.
침묵은 비로소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일 게다.
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며 합장 반배로 반쯤 마음 낮추고,
이어진 계단 따라 해탈문에 이르렀다.
▲ 세월에 몸 맡긴 종각 기둥
시간마저 쉼표를 찍는 곳에 이르자 세상사에 쫓기던 마음이 쉬어 간다.
해탈문 왼쪽 안양루와 범종각도 천년 가까운 세월 풍파 견디며 저 곳에 있었다.
범종각 기둥은 휘고 굽은 채로 지붕을 받치며 범종을 감싸 안았다.
그 긴 세월 동안 범종은 중생들의 번뇌를 깨고자 음성공양을 올렸으리라.
100년도 못살면서 괜히 마음만 추켜세우다 부러지고 넘어졌던 객 마음도 유연해지길 바라본다.
안양루는 유명한 서화가 혜강 김규진이 쓴 ‘상왕산개심사(象王山開心寺)’ 현판을 머리에 얹었다.
마당은 5층석탑과 대웅보전(보물 제143호), 무량수각, 심검당, 안양루가 나눠 쓰고 있었다.
대웅보전(보물 제143호)에 들어
국내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아미타삼존불상(보물 제1619호)에 참배한 뒤 마당에 나오자
심검당(尋劍堂, 문화재자료 제358호)에 마음을 빼앗겼다. 나무기둥이 예사롭지 않았다.
갈라진 틈과 낡은 나무결에선 세월이 뚝뚝 묻어났다. 사람 손으로 깎고 다듬지 않았다.
나무 생김새 그대로 심검당 지붕을 떠받고 있었다.
지금은 종무소 문이 돼버린 문도, 문턱도 휘어지고 굽이쳤다.
심검당을 끼고 오른쪽으로 조금 걸으니 해우소가 눈에 띈다. 생태화장실이었다.
옛 절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근심 덜고 나면 살포시 낙엽을 떨궈야 했다. 휴지도 없으니 뒷물을 해야 한다.
▲천년 세월을 짊어진 심검당.
개심사는 백제가 무너지기 불과 6년 전인 654년(의자왕 14), 혜감 스님이 창건했다.
스님은 개원사(開元寺)라 이름 지었고, 처능 스님이 중건한 뒤
1350년(고려 충정왕 2)에 이르러서야 개심사로 불렸다.
1300여년이라는 유구한 세월동안 옛 멋 그대로를 유지한 데는
덕숭총림 수덕사 문중스님들 마음씀씀이 덕이다.
절 살림을 맡았던 주지스님들 고집을 듣고 나니
왜 이렇게 옛 절의 단아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지 알았다.
입적한 전 주지 선광 스님은
“풀 한 포기 돌 하나도 함부로 손대지 않겠다”는 말을 누누이 해왔다고 한다.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유홍준에게도 절 소개 하지 말라고 당부했을 정도다.
저자는 당시 일화를 문화유산답사기에 기록해뒀다.
스님은 “사람 몰려들면 개심사는 끝이에요. 사람떼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죠?”라며
저자에게 절 얘기를 쓰지 말라 일렀다고 한다.
현 주지스님인 동덕 스님에게도 가풍은 그대로 이어진 모양이다.
스님은 고집스럽게 신식 해우소를 만들지 않고 옛 모습을 살리려 노력했다.
오가는 객들 불편과 절 살림을 돕는 불자들 원성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스님네들은 절대 사치하면 안 돼요. 좀 넉넉하다고 낭비하면 못씁니다.
옛날 두 수좌가 걸망지고 큰스님 계신다는 절을 찾았지요. 법 구할 요량이었습니다.
절 밑 개울에 이르자 상추 이파리 한 장 떠내려 오는 걸 봤지요.
수좌들은 ‘이 절에 큰스님 사신다더니 볼 것도 없다’며 돌아서려던 찰나였습니다.
노스님 한 분이 허겁지겁 절에서 상추 이파리 하나 건지러 헐레벌떡 뛰어내려 왔어요.
그걸 보고 큰스님 밑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시주 아까운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 열고 씻으며 오르라는 개심사 입구 돌계단 숲길.
옛 이야기를 들려준 동덕 스님은 수좌다.
수행자의 깐깐함이 아름답게 배어 있었다.
한국불교 선종 중흥조 경허선사가
개심사에서 머물며 두문불출 정진한 곳이란 사실도 알려줬다.
선사가 깨달음을 얻은 뒤 이곳에서 더욱 마음을 갈고 닦았다고 했다.
특히 만공, 혜월, 수월 스님 등
경허선사 세 수법제자 가운데 둘째였던 혜월 스님이 개심사서 인가를 받았다.
혜월 스님은 정혜사를 찾은 경허선사의 법문이 화두가 돼 인연을 맺었다.
형체 없는 붉은 사람이 항상 눈, 코, 귀, 입을 통해 들락날락 한다는
선사 법문이 마음에 벼락을 친 게다. 지게를 하거나 밥을 지을 때,
밭을 갈면서도 그 말씀이 떠나지 않았다.
1주일이 지나 홀로 짚신을 삼다 뭔가 깨달음이 있어
그 길로 개심사에 머물던 선사를 찾아 경계를 점검 받았다.
“스님, 관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뜻이 무엇입니까”하고 대차게 물었다.
그러자 선사는 졸고 있던 눈을 뜨지도 않은 채 “그것말고, 또”라 일렀다.
잠시 뒤 눈 뜨고 문 밖을 보자, 혜월 스님이 묵묵히 주먹 하나를 높이 들고 서 있었다.
그제야 선사는 “들어와 앉으라”며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4~5년 뒤 선사는 혜월 스님을 수법제자로 인정하고 전법게를 내렸다고 한다.
헌데 개심사가 지장기도도량으로 어떻게 유명해졌는지는 스님도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이런 얘기를 전했다. 노인들이 자주 개심사 명부전을 찾는다 했다.
그 분들이 “스님,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개심사 명부전 참배 몇 번 했는지 묻는다고 합디다.
명부전이 어딥니까”라고 자주 묻는다고 했다.
한 번은 개심사 이름이 새겨진 광명진언 소책자 택배가 1박스 왔다.
궁금해서 전화로 연유를 물었더니 4대 지장기도도량에 법보시를 했단다.
배추머리 김병조씨가 명부전 지장보살 개금불사를 시주한 뒤
방송일이 잘 풀렸다는 말도 들었다고 스님은 전했다.
차담을 나눈 뒤 명부전으로 향했다. 주련부터 살폈다.
“지장대성위신력(地藏大聖威神力) 지장보살 위신력은/
항하사겁설난진(恒河沙劫說難盡) 억겁을 두고 설명해도 다하기 어려우니/
견문첨례일념간(見聞瞻禮一念間) 보고 듣고 예배하는 한 생각 사이에/
이익인천무량사(利益人天無量事) 사람과 하늘에 이익 무량하여라.”
▲참회 없이 감히 맘 부릴 수 없다. 명부전 금강역사와 시왕.
명부전은 쉽게 발을 들일 수 없었다.
문 옆으로 금강역사가, 지장보살 좌우엔 명부의 재판관 10명이 노려보고 있었다.
삼배다. 서늘한 눈초리들 가운데 오직 지장보살만 지긋이 객을 내려다봤다.
재판관 중 5번째가 염라대왕이다. 지장보살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변론을 하는 거란다.
염라대왕은 이생에서 행했던 질문을 던지는데, 개심사 명부전을 몇 번 참배했느냐 묻는단다.
참배하고도 뒷맛이 개운치 않아 계속 뒤를 돌아봤다.
마음자리가 불편한 걸 보니 여물지 않은 제 신심이 못내 아쉬웠다.
누구든 붙잡고 명부전을 물었다.
개심사 공양주 보살을 대신해 며칠간 공양주를 하러 온 불국화(64) 보살을 만났다.
그녀는 지난해부터 왔단다. 아들 생일에 꾼 꿈이 개심사로 그녀를 이끌었다.
꿈에 나타난 친구가 활짝 웃으며 사찰을 안내했고,
개심사를 찾아와보니 공양주 보살이 꼭 같은 얼굴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지장보살이 맺어준 인연이라 했다.
공양주 보살은 1년6개월 전부터 명부전서 늘 새벽 3시에 공양올리고 지장기도를 하고 있단다.
도량서 만난 다른 보살은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두 모신 곳이 국내에 별로 없다”며
“참배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라고 했다.
개심사를 나섰다. 못에 자리한 배롱나무가 다시 밟혔다. 배롱나무는 백일홍이다.
100일간 찬란하게 붉은 꽃 피우고 진다.
그리고 나머지 265일은 꽃 피우고자 소리 없이 치열하게 물 빨아들이고 햇볕 받는다.
시간도 쉬어가는 곳 개심사, 천년 세월이 꾸밈없이 드러난 이곳에서
우리네 신심은 백일홍처럼 만개할 수 있을까. 치열하게 신심 키울 수 있을까.
세속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마주한
“불심으로 마음열고 일주문 내려가는 길”이란 주지스님의 말씀이 예사롭지 않다.
굽고 휘어진 나무가 무심을 노래한다. 스스로 닫은 마음, 속살까지 씻을 순 없는 노릇이다.
2012. 07. 11
최호승 기자
법보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