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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8 편
문명의 시작
(The Dawn of Civilization)
. 한때 유란시아에 주둔했던 멜기세덱
. 1934년
68:0.1 이 글은 인류의 진정한 문명이 동물의 존재보다 조금 나은 지위에서부터, 그 중간 시대를 거쳐, 불완전하지만 더 높은 인종 사이에서 진화한 후기 시절에 이르기까지, 길고 긴 인류가 전진하며 투쟁했던 이야기의 시작이다.
문명은 종족이 획득한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물려받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아이들은 모두 문화가 있는 환경에서 길러져야 하며, 한편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은 그 교육을 새로 받아야 한다. 문명의 우수한 자질들―과학ㆍ철학ㆍ종교―는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의 유산으로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 이 문화적 업적은 오직 계몽되어 관리된 사회적 유산에 의해서만 보존된다.
달라마시아 선생들이 협동 체제에서 사회적 진화를 개시하였고, 30만 년 동안 인류는 집단으로 활동하는 개념 속에서 양육되었다. 청인은 누구보다도 많이, 홍인은 어느 정도, 흑인은 가장 적게, 이 초기의 사회 교육으로 인하여 이익을 보았다. 근래에는 황인(yellow)종과 백인종이 유란시아에서 가장 진보된 사회 발전을 보여 주었다.
1. 보호하는 사회화 (Protective Socialization)
68:1.1 사람들은 가까이 모이면, 종종 서로 좋아하는 법을 배우지만, 원시인은 형제 정신, 그리고 동료들과의 사회적 접촉에 대한 욕구가 자연스럽게 넘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초기 종족들은 슬픈 체험을 겪음으로 “뭉치는 가운데 힘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유란시아에서 인간의 형제 사랑을 즉시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자연적으로 오는 형제 정신의 부족이다.
연합 관계는 일찍부터 생존을 치르는 값이 되었다. 혼자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가해진 어떤 폭행에도 반드시 복수할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고 증언하는 부족의 표시를 하지 않는 한 속수무책이었다. 카인의 시절에도 집단 관계를 가리키는 어떤 표시가 없이 혼자서 바깥에 돌아다니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문명은 사람이 비명에 죽지 않게 하는 보험이 되었고, 한편 사회의 수많은 법적 요구에 순응함으로 그 보험료를 지불하였다.
원시 사회는 이처럼 필요의 상호성과 강화된 결합의 안전성에 기초를 두었다. 인간 사회는 이렇게 고립된 두려움과 마지못해 조정하는 결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진화해 왔다.
원시 인류는 일찍부터 집단이 그 개별 단위의 단순 합계보다 훨씬 크고 강력하다는 것을 배웠다. 1백 명이 힘을 합쳐 한뜻으로 일하면 큰 돌을 움직일 수 있다; 잘 훈련된 평화 수호자 스무 명은 성난 폭도를 제지할 수 있다. 그래서 단지 많은 사람과 관련을 가지는 것 보다는, 오히려 지능적인 협력 자들을 조직한 결과로 사회가 탄생했다. 그러나 협동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특성이 아니다; 처음에는 두려움을 통해서, 그런 다음 나중에는 영원한 위험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비하고 시간의 어려움을 만난 가운데서 그것이 가장 유익하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에 협동하기를 배운다.
그래서 원시 사회로 일찍 조직된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공격뿐만 아니라 그들의 동료들에 대한 방어에서도 더 성공적이었다; 그들은 더 큰 생존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좌절에도 불구하고 문명은 꾸준히 유란시아에서 발전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간의 많은 실수들이 인류 문명을 멈추거나 파괴하는 데 실패한 것은 연관된 생존 가치의 향상 때문이다. 사람이 많은 실수를 저질렀어도 지금까지 인간의 문명이 정지되거나 파괴되지 않은 것은, 오로지 사람과의 관계를 가짐으로 생존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68:1.6 그러한 현대 문화 사회는 호주 원주민과 아프리카의 부시맨, 그리고 피그미족의 특징을 나타내는 원시적 사회 조건이 오늘날 남아있음을 잘 드러난다. 이 뒤떨어진 민족들 사이에서, 얼마큼 초기의 집단 적개심, 개인적 의심, 그리고 모든 원시 종족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상당히 반사회적인 다른 특성이 관찰될 것이다. 고대에 사교성이 없던 종족들의 이 불쌍한 잔재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개인주의 성향이 사회적 진보에서 더 효력 있고 강력한 조직 및 결합과 경쟁해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 주는 증언이다. 60~80km마다 다른 방언을 쓰는 종족, 뒤떨어지고 의심이 많은 이 반사회적 종족들은, 행성 영주 유형 참모진의 가르침, 그리고 아울러 후일에 아담 집단의 종족 개량자들이 기울인 노력이 없었다면, 너희가 지금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을 것인지를 보여준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현대의 표현은 무지한 망상이요, 한때 허구였던 “황금시대”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황금시대 전설의 유일한 근거는 달라마시아와 에덴의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개선된 사회들은 유토피아 같은 꿈의 실현과 거리가 멀었다.
2. 사회 발전의 요인 (Factors in Social Progression)
68:2.1 문명화된 사회는 혼자 살기 싫은 것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초기 노력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상호 간의 애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어떤 원시 집단들의 현재 격동 상태는 초기 부족들이 무엇을 겪어 왔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그러나 비록 한 문명의 개인들이 서로 충돌하고, 서로 싸울지라도, 문명 자체가 노력과 투쟁의 일관성 없는 한 덩어리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침체의 치명적인 단조로움이 아니라 진지한 노력을 하는 증거이다.
지적 수준이 문화적 진보 속도에 상당히 기여했지만, 사회는 근본적으로 개인의 생활 방식에서 위험 요소를 줄이도록 설계되었고, 그것은 삶에서 고통을 줄이고 쾌락 요소를 증가시키는데 성공한 것만큼 빠르게 진보했다. 이처럼 사회단체 전체가 운명의 목표를 향하여―멸종하든 살아남든―자아 유지인지 자아 욕구의 충족인지에 따라서, 천천히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지나친 자기만족이 문명을 파괴하는 반면, 자아 유지는 사회를 탄생시킨다.
사회는 자아의 영속, 자아 유지, 그리고 자기만족에 관한 것이지만, 인간의 자아실현은 많은 문화 집단의 즉각적인 목표가 될 가치가 있다.
자연인의 집단 본능은 지금 유란시아에 존재하는 그런 사회 조직의 발전을 설명하기에 도저히 충분하지 않다. 비록 이 타고난 사교적 성향은 인간 사회의 밑바닥에 깔려있지만, 사람의 사회성 대부분은 획득한 것이다. 인간들이 초기에 교제하도록 이바지한 두 가지 큰 영향은 배고픔과 성욕이었다; 이러한 본능적인 충동들은 인간이 동물의 세계와 함께 가진다. 인간들을 한데로 몰고 붙들어 둔 다른 두 가지 감정은 허영심과 두려움, 특히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역사는 오랜 세월에 걸친 인간의 음식 투쟁 기록일 뿐이다. 원시인은 배가 고플 때만 생각했다; 식량을 저장하는 것은 원시인에게 첫 극기, 자아의 단련이었다. 사회의 성장과 함께, 배고픔은 상호 교제의 유일한 동기가 되지 않았다. 수많은 다른 종류의 욕구, 여러 가지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모두 인류가 더욱 가까이 교제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는 인간의 욕구 과잉 성장으로 인해 초과로 공급되어 있다. 20세기의 서구 문명은 사치의 엄청난 과부하와 인간의 욕구 및 열망의 과도한 증가로 지쳐서 신음한다. 현대 사회는 광범위한 상호연관성과 매우 복잡한 상호의존성의 가장 위험한 단계의 긴장을 견디고 있다.
68:2.6 배고픔, 허영, 그리고 귀신 공포증은 계속하여 사회에 압력을 주었지만, 성욕의 만족은 일시적이고 돌발하는 것이었다. 성욕만으로 원시인 남녀가 가정을 유지하는 무거운 짐을 지도록 강요되지는 않았다. 초기의 가정은, 남자가 자주 만족되지 않을 때 느끼는 성욕의 불만, 그리고 여자의 헌신하는 모성애에 기초를 두었으며, 여자는 얼마큼 이 모성애를 모든 고등 동물의 암컷과 함께 가진다. 무력한 아기의 존재는 남자와 여자의 활동이 초기에 구별되게 하였다. 여자는 안정된 거주를 유지해야 했고, 거기서 여자는 땅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이른 시절부터, 여자가 있는 곳을 언제나 집으로 여겼다.
곧 사라지는 성욕의 열정 때문이 아니라 먹을 것이 필요한 결과로서, 이처럼 여자는 일찍부터 발달하는 사회 계획에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여자는 자아의 유지에 꼭 필요한 협동자였다. 여자는 먹을 것을 마련하는 사람이요, 짐 싣는 동물이요, 사납게 분개하지 않고 큰 혹사를 견디곤 하는 동반자였고, 이 모든 바람직한 특성 위에, 여자는 성욕을 만족시키는 수단, 항상 옆에 있는 수단이었다.
문명 속에서 지속하는 가치를 가진 거의 모든 것이 가족에서 뿌리를 가진다. 가족은 처음으로 성공한 평화 집단이었고, 남자와 여자는 그들의 대립 관계를 어떻게 조절하는지 배우면서, 동시에 아이들에게 평화의 추구를 가르쳤다.
진화에서 결혼의 역할은 단지 개인 행복의 실현이 아니라, 종족을 살아남게 하는 보험이었다. 자아의 유지와 자아의 영속은 가정의 진짜 목표였다. 자아의 욕구 충족은 어쩌다 일어나며, 성적 결합을 보장하는 미끼인 것을 제외하고, 꼭 필요하지는 않다. 자연은 살아남기를 요구하지만, 문명의 솜씨는 결혼의 기쁨과 가정생활의 만족감을 계속 늘인다.
만약 허영심이 자존심, 야망, 명예를 덮기 위해 확대된다면, 우리는 이러한 선입견들이 어떻게 인간관계의 형성에 기여하는지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놓는지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감정들은 앞에 나서서 뽐내 보일 청중이 없다면 쓸데없기 때문이다. 곧 허영심은 다른 감정과의 충동을 연상시켰는데,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만족시킬 수 있는 사회적 무대를 필요로 했다. 이 집단의 감정은 모든 예술, 의식, 그리고 모든 형태의 운동 경기 및 경쟁을 시작하게 하였다.
68:2.11 허영심은 사회의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 이 계시가 있을 때, 허영심 많은 세대의 빗나간 노력은 상당히 특화된 문명의 복잡해진 구조 전체를 늪에 처박고 가라앉히려고 위협한다. 쾌락은 오래전부터 굶주림에 대한 욕구를 대신해 왔다; 먹고 살기 위한 정당한 사회적 목표는 저열하고 위협하는 형태의 자아 욕구 충족으로 재빨리 변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한 활동은 사회를 건설하지만, 자제하지 않은 자아 욕구의 충족은 어김없이 문명을 파괴한다.
3. 사회를 만드는 귀신 공포증의 영향
(Socializing Influence of Ghost Fear)
68:3.1 원시적 욕구는 최초의 사회를 낳았지만, 귀신을 무서워하는 것은 사회를 단결시키고 사회적 존재에 인간 이상의 모습을 부여했다. 일반적인 두려움은 생리학적인 것이었다: 육체적인 고통에 대한 두려움, 만족스럽지 못한 배고픔, 또는 지구상의 재난에 대한 두려움이 그렇다; 그러나 귀신에 대한 두려움은 새롭고 숭고한 종류의 공포였다.
아마도 인간 사회의 진화에서 가장 큰 단 하나의 요인은 귀신 꿈이었다. 비록 대부분의 꿈이 원시인의 mind를 크게 교란시켰지만, 귀신 꿈은 실제로 초기의 인간을 공포에 떨게 했고, 영혼 세계의 모호하고 보이지 않는 상상의 위험으로부터 상호 보호를 위해 기꺼이 그리고 진지하게 미신을 믿는 몽상가들을 서로의 품으로 몰아넣었다. 귀신 꿈은 동물과 인간 종류의 mind 사이에서 가장 일찍 나타나는 한 가지 차이점이었다. 동물은 사후의 생존을 상상하지 않는다.
이 귀신 요인을 제외하고, 모든 사회는 근본적 필요와 생물학적 기본 욕구에 기초를 두었다. 그러나 귀신 공포증은 문명에 새로운 요인을 도입하였고, 이 두려움은 개인의 기본적 필요를 넘어, 집단을 유지하는 싸움조차도 훨씬 뛰어넘어 퍼져나갔다. 죽은 사람의 떠나간 영을 무서워하는 것은 새롭고 놀라운 형태의 두려움으로 나타났고, 소름끼치게 하는 이 강력한 공포는 초기 시대의 허술한 사회 질서를 채찍질하여, 고대에 철저하게 훈련되고 잘 통제된 원시 집단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의미 없는 이 미신 가운데 더러는 아직까지도 내려오며, 미신으로 실체가 아닌 초자연적인 것을 두려워함을 통해서, “지혜의 시작이 되는, 주를 두려워함”을 나중에 발견하도록 사람의 mind들을 준비시켰다. 진화로 생긴 근거 없는 두려움은 계시로 영감을 받은, 신을 경외하는 느낌으로 바뀌도록 고안되어 있다. 귀신을 두려워하는 초기의 제사는 강력한 사회적 유대가 되었고, 그 아득한 시절 이후로 늘, 인류는 대체로 영적 성향을 얻으려고 애써 왔다.
배고픔과 사랑은 사람을 뭉치게 하였다; 허영심과 귀신 공포증은 사람을 하나로 묶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만으로는 평화를 조장하는 계시의 영향 없이, 인간 상호 간의 의혹과 짜증의 부담을 견딜 수 없다. 초인간 근원의 도움 없이 사회의 긴장은 어떤 한계에 이르자 폭발하며, 이러한 사회적 동원의 영향들―배고픔, 사랑, 허영, 두려움―은 인류를 전쟁과 학살로 몰아넣는다.
인류의 평화 성향은 자연스러운 자질이 아니다; 그것은 계시된 종교의 가르침으로부터, 진보하는 종족들의 축적된 체험에서, 특히 평화의 왕, 예수의 가르침에서 비롯된다.
4. 풍습의 진화 (Evolution of the Mores)
68:4.1 모든 현대의 사회 제도는 너희의 야만인 조상이 가졌던 원시 관습의 진화로부터 생겨난다; 오늘날의 관습은 지난날의 관습이 수정되고 확장된 것이다. 습관은 개인에게 있고, 관습은 집단에 있으며, 집단의 관습은 민속 방식이나 부족의 전통―군중의 관습―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초기 시작으로부터 오늘날 인간 사회의 모든 제도는 그들의 보잘것없는 기원을 가진다.
풍습은 집단 존재의 조건에 맞춰 집단생활을 조정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풍습은 인간의 첫 사회 제도였다. 그리고 이 모든 부족의 반응은 고통과 치욕을 피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쾌락과 권력을 누리려고 애쓰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민속의 기원은, 언어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의식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것이며, 따라서 언제나 신비에 싸여 있다.
귀신 공포증은 원시인들이 초자연적인 것을 상상하게 했고, 따라서 윤리와 종교가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미칠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다음에 윤리와 종교는 대대로 사회의 도덕관과 관습을 다치지 않고 보존하였다. 풍습을 일찍 확립하고 구체화한 한 가지는, 죽은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다가 죽었든 그 방법에 몹시 마음을 쓰며, 그래서 그들이 육체를 입고 있을 때 존중했던 생활 규칙을 감히 가볍게 멸시하는 살아 있는 필사자에게 끔찍한 벌을 퍼부으리라는 믿음이었다. 이 모두가 오늘날 황(yellow)인종의 조상 존중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나중에 개발되는 원시 종교는 풍습을 안정시키면서 귀신 공포증을 크게 강화했지만, 진보하는 문명은 점점 더 공포의 속박과 미신의 노예로부터 인류를 해방시켰다.
사람을 해방하고 자유롭게 만드는 달라마시아 선생들의 가르침 이전에, 원시인은 풍습의 의식에 무력한 희생자가 되었다; 원시 야만인은 끊임없는 예식에 둘러싸였다. 아침에 깨어날 때부터 밤에 동굴에서 잠에 곯아떨어질 때까지 한 모든 일은―그 부족의 풍습에 따라서―행해져야만 했다. 야만인은 풍습이라는 압제에서 노예였다; 그의 삶에 자유롭고, 자발적이고, 독창적인 것은 없었다. 더 높은 정신적 존재, 도덕적 존재, 사회적 존재를 향한 자연스러운 진보는 없었다.
초기의 인간은 관습에 사로잡혀 있었다; 야만인은 진정한 관습의 노예였다; 그러나 새로운 사고방식과 개량된 생활 방법을 감히 시작한 부류로부터 변화들이 계속 생겨났다. 그렇지만, 원시인의 타성은 너무 빨리 진보하는 문명에 잘못 적응하는 파멸의 길로 너무 갑자기 굴러떨어지는 것을 막는 생물학적 안전장치가 된다.
68:4.6 그러나 이러한 관습은 순전한 악이 아니다; 그들의 진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급진적 혁명에 의한 대대적인 수정에 나서는 것은 문명의 지속에 거의 치명적이다. 관습은 문명을 하나로 묶어 연속시키는 끈이었다. 인류 역사의 길은 버려진 관습과 쓸모없는 사회적 관습의 잔재들로 널려 있다; 그러나 더 낫고 더 적당한 관습을 채택한 것을 제외하고, 자체 풍습을 버린 문명은 하나도 지탱하지 못했다.
한 사회의 생존은 주로 그 풍습의 진보적 진화에 달려 있다. 관습의 진화 과정은 실험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생각이 제시된다―경쟁이 뒤따른다. 진보하는 문명은 진보적인 생각을 수용하면서 지속된다 시간과 환경은 마침내 생존을 위해 더 적당한 집단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것은 각각의 분리되고 고립된 변화가 더 낫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니, 정말로 아니다! 왜냐하면 유란시아 문명의 오랜 전진하는 투쟁에서 아주 여러 번 퇴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5. 토지 이용 기술―유지하는 기술
(Land Techniques―Maintenance Arts)
68:5.1 토지는 사회의 무대이다; 사람들은 배우이다. 인간은 토지의 상황에 맞게 자신의 성과를 조정해야 한다. 풍습의 진화는 항상 인구 비율에 달려 있다. 분별하기 어렵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인간의 토지 이용 기술, 즉 유지관리 기술과 생활 수준은 민속, 풍습의 총합과 같다.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한 적응의 합은 그의 문화적인 문명과 같다.
초기 인류 문화는 동반구의 강을 따라 생겨났고, 문명의 진보에는 네 가지 큰 단계가 있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수집 단계. 먹어야 되는 것, 배고픔은 산업 조직의 첫 형태, 원시적인 식량 수집 행렬을 초래했다. 때때로 그러한 기아 행진 행렬은 16km나 되는 거리를 먹을 것을 얻으며 땅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원시 유목민 단계의 문화였고, 지금 아프리카의 부시맨이 이 생활 방식을 따른다.
2. 사냥 단계. 무기 도구의 발명은 인간이 사냥꾼이 될 수 있게 해주었고 따라서 식량 노예로부터 상당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중대한 전투에서 주먹을 심하게 다친, 생각 깊은 어느 안돈 사람이 팔 대신에 기다란 막대기를, 그리고 주먹 대신에, 힘줄로 끝에 단단한 부싯돌 조각을 묶어서 쓰는 관념을 다시 찾아냈다. 많은 부족이 이런 종류의 생각을 따로 해냈고, 이 여러 형태의 망치는 인간의 문명에서 크게 전진하는 한 걸음이었다. 오늘날 몇 명 호주 원주민들은 이 단계를 지나서 거의 진보하지 않았다.
68:5.5 청인은 전문적인 사냥꾼이며 덫 꾼이 되었다; 그들은 강에 울타리를 쳐서 물고기를 대량으로 잡았고, 나머지를 겨울에 쓰려고 말렸다. 여러 형태의 기발한 올무와 덫이 사냥감을 잡는 데 이용되었지만, 이보다 원시적 종족들은 더 큰 동물을 사냥하지 않았다.
3. 목축 단계. 이 단계의 문명은 동물을 길들임으로 가능해졌다. 아랍인들과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더 최근의 유목민들 중 하나이다.
목축 생활은 식량에 노예가 된 상태로부터 더욱 부담을 덜어 주었다. 사람은 그의 자본에서 생기는 이익, 곧 가축 떼의 증가분으로 사는 것을 배웠다; 이것은 문화와 진보를 위하여 더 많은 여가를 제공했다.
목축 이전의 사회는 남녀가 협동하는 사회였지만, 동물 사육의 확산은 여자를 사회에서 노예가 되는 처지로 전락시켰다. 그전에는 동물의 고기를 확보하는 것이 남자의 의무였고, 먹을 채소를 마련하는 것이 여자의 일이었다. 따라서 남자가 생활의 목축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자의 위엄은 크게 떨어졌다. 여자는 여전히 생활에 필수인 채소를 생산하느라고 수고해야만 했고, 한편 남자는 풍부한 동물의 고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고작 동물의 떼가 있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되었다. 이처럼 남자는 비교적 여자로부터 독립되었다. 목축 시대를 통하여 내내, 여자의 지위는 꾸준히 떨어졌다. 이 시대가 끝날 무렵, 여자는 단지 인간 동물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동물의 떼가 노동하고 새끼를 낳도록 기대한 것처럼, 일하고 인간의 자식을 낳는 신세로 떨어졌다. 목축 시대의 남자는 가축을 지극히 사랑했다; 아내에게 더 깊은 애정이 발달할 수 없었던 것이 더욱 안타깝다.
4. 농업 단계. 이 시대는 식물을 경작함으로 시작되었고, 이것은 최고의 물질문명을 대표한다. 칼리가스티아와 아담 모두가 원예와 농업을 가르치려고 애썼다. 아담과 이브는 목동이 아니라 채소를 가꾸는 사람이었고, 채소 재배는 당시에 상급 문화였다. 식물의 재배는 모든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농업은 세계 토지 인구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농업은 이전의 문화 단계의 목축하는 직업과 겸할 수도 있었다. 세 단계가 겹칠 때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땅을 갈았다.
68:5.11 목자와 토지를 경작하는 자 사이에는 언제나 마찰이 있었다. 사냥꾼과 목자는 투사요, 싸움을 좋아하였다. 농사꾼은 평화를 더 사랑하는 종류였다. 동물과의 연관성은 투쟁과 힘을 암시한다; 식물과의 연관성은 인내심과 조용함 그리고 평화를 심어준다. 농업과 산업은 평화로운 활동이다. 그러나 세상의 사회 활동으로서 이 두 가지의 약점은, 흥분과 모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는 사냥 단계로부터 목축 단계를 거쳐서, 땅에서 농사짓는 단계로 진화했다. 그리고 이 진보하는 문명의 각 단계에서 유목민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남자는 갈수록 더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산업은 농업을 보충하고 그 결과로 더욱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시민 계급에는 비농업 집단이 늘어났다. 그러나 가장 높은 사회 발전조차 늘 건전한 농업의 기초 위에 서야 한다는 것을 그 지도자들이 깨닫지 못한다면, 산업 시대는 살아남기를 바랄 수 없다.
6. 문화의 진화 (Evolution of Culture)
68:6.1 사람은 땅의 생명존재이며, 자연의 자손이다. 아무리 간절하게 땅에서 도망치려 해도,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너희는 티끌이요, 티끌로 돌아갈 것이다”하는 것은 모든 인류에게 글자 그대로 진실이다. 인간의 근본적 싸움은 땅을 위한 것이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 원시 인간의 처음 사회관계는 이 토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었다. 땅-인구 비율은 모든 사회 문명의 기초가 된다.
인간의 지능은, 예술과 과학의 수단으로, 땅의 소산을 증가시켰다; 동시에 자손의 자연 증가가 어느 정도 통제되었고, 따라서 문화 문명을 건설하기 위한 생활 유지와 여가가 마련되었다.
인간 사회는, 인구가 토지 기술에 따라서 정비례로, 그리고 주어진 생활 수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선언하는 법칙에 지배된다. 이 초기 시대 동안, 심지어 현재보다 더 많이, 인구와 토지에 관계된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양쪽의 추정 가치를 결정했다. 땅이 풍부한 시대 동안에―황무지― 인간의 필요성은 컸고, 따라서 인간의 삶의 가치는 훨씬 높이졌다; 따라서 생명의 손실은 더욱 끔찍한 것이었다. 토지 부족과 인구 과잉 기간에, 인간의 삶은 상대적으로 값싸져서 전쟁, 기근, 전염병에 관심을 덜 쏟았다.
토지의 소산이 감소하거나 인구가 증가하면, 피할 수 없는 투쟁은 다시 시작된다; 인간 본성의 가장 나쁜 특성이 표면으로 드러난다. 토지 소산의 증가, 기계 기술의 확장, 인구의 감소는 모두 인간 본성에서 좋은 면이 발달하도록 촉진하는 경향이 있다.
개척 사회는 인류의 서투른 면을 발전시킨다; 영적 문화와 함께, 예술과 참된 과학적 진보는, 토지 인구 비율보다 약간 낮은 농업과 산업 인구의 지지를 받을 때 삶의 더 큰 중심에서 모두 가장 잘 번창했다. 도시는 좋든 나쁘든, 반드시 그 거주자들의 권력을 몇 배로 늘인다.
68:6.6 가족의 크기는 항상 생활 수준에 영향을 받아 왔다. 그 기준이 높을수록, 확립된 지위나 점진적인 멸종의 시점까지, 그 가족은 더 작아진다.
모든 세대에 걸쳐 삶의 수준이 단순히 양적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생존 인구의 질을 결정해 왔다. 지역 계급의 생활 수준은 새로운 사회적 계급과 새로운 풍습에 기원을 두고 있다. 생활 수준이 너무 복잡하거나 지나치게 사치스럽게 될 때, 그것은 빠르게 자살하게 된다. 카스트는 밀집된 인구가 만들어내는 치열한 경쟁에서 높은 사회적 압력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초기의 종족들은 종종 인구를 제한하기 위해 고안된 관습에 의존했다; 모든 원시 부족은 기형아와 병든 아이들을 죽였다. 아내를 사들이는 시절 이전에 여자 아기들은 자주 살해되었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 가끔 목이 졸리기도 했지만, 가장 잘 쓰이는 방법은 내버리는 것이었다. 쌍둥이의 아버지는 보통 하나를 죽여야 한다고 우겼는데, 이는 여러 아기를 낳는 것은 마술이나 부정행위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체로, 동성의 쌍둥이는 살려 두었다. 쌍둥이에 대한 이 금기는 한때 거의 보편적이었지만, 결코 안돈 족속의 풍습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 안돈 종족은 쌍둥이를 언제나 행운의 전조로 여겼다.
많은 종족이 낙태 기술을 배웠고, 이러한 관습은 미혼자들 사이에서 출산에 대한 금기가 확립된 후에 매우 흔해졌다. 처녀가 제 자식을 죽이는 것은 오랫동안 관습이었지만, 보다 문명화된 집단들 사이에서 이 사생아는 소녀의 어머니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많은 원시 부족들이 낙태와 유아 살해의 관행으로 사실상 몰살당했다. 그러나 풍습 관행의 명령과 상관없이, 일단 젖을 빨린 뒤에는 죽음을 당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모성애는 너무 강하다.
심지어 20세기에도 이러한 원시적인 인구 통제의 잔재가 남아있다. 호주에는 어머니가 두세 명 이상의 아이를 키우는 것을 거부하는 부족이 있다. 한 식인종 부족이 다섯 번째 태어난 아이마다 먹어치운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어떤 부족들은 아직도 불운한 날에 태어난 아이들을 다 죽이며, 그 결과 전체 아기의 약 25%가 죽는다.
68:6.11 세계의 관점에서 볼 때, 지난날에 인구 과잉은 결코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전쟁이 줄어들고 과학이 점점 더 인간의 병을 통제하면, 그것은 가까운 미래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때에 세계 지도층의 지혜를 크게 시험하는 일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유란시아 통치자들은 정상 이하의 극단적이고 엄청나게 증가하는 집단 대신에 평균적이거나 안정된 인간의 증식을 촉진할 통찰력과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보통 인간은 양육되어야 한다; 보통 사람은 문명의 중추이자, 종족에서 돌연변이 천재들이 나오는 근원이다. 보통 이하의 사람은 사회의 통제 아래에 있어야 한다; 동물 수준보다 높은 지능을 요구하는 낮은 수준의 산업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것보다 그 이상을 출산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인류의 상급 유형을 위한 진정한 노예제도와 속박을 증명하기 위해 그렇게 낮은 수준이 요구되고 있다.
[한때 유란시아에 주둔했던 한 멜기세덱이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