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긴급전화 1366 경북센터장 진원 스님
혐오·차별·폭력,
‘할육무합’(割肉貿鴿) 용광로에 쏟아부어야 성평등 구현
군산 동국사 불교학생회 출가 하겠단 사람 없자
“그럼, 내가 간다!”
“절밥 값 안 하시나?”
진오 스님 일침에 불교 사회역할 각성
보호·의료·교육·법률기관 검·경찰과도 네트워크
‘원 스톱 보호망’ 첫 도입
가정 폭력은 ‘범죄’ 집안다툼 치부 시각
하루빨리 걷어내야
급진적 페미니즘 대두에 혐오·배제 요소도 등장
성평등 지향 속 ‘홍역’
갈등 폭 줄여가며 남녀 함께 할 수 있는 ‘여성운동’ 전개 기대
진원 스님은 “만 생명을 차별 없이 사랑하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대장부”라며
“대장부적 혜안으로 바라본다면
양 극단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혐오는 언제든 떨쳐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매월 8일은 ‘보라데이’다. ‘자세히 보라’, ‘관심 있게 보라’는 의미다.
또한 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멍 자국이 보라색임을 상징한다.
가정폭력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내 가정은 물론 이웃 가정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경찰청이 2018년 이재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전달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 6월까지 가정폭력으로 16만4020명이 검거됐다.
‘가정폭력 방지법’을 전격 시행(2006)한 지 10년을 넘어서는 시점부터 지금까지도
한 해 4만건, 하루 약 100건의 가정폭력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에 나타난 여성 피해자 비율은 75%.
남성 피해자도 분명 존재하지만 여성 피해자가 압도적으로 많기에
가정폭력은 여성 인권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본다.
‘여성긴급전화 1366’은 여성 권익 향상과 가정폭력 긴급 구호를 위한 전문 기관이다.
상담·신고 전화번호인 1366은
‘1년 365일에 하루를 더한 서비스’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는데,
정성을 다하겠다는 마음이 엿보인다.
‘보라데이’ 캠페인을 주도적으로 펼치는 단체가 ‘여성긴급전화 1366’이다.
서울, 부산, 제주, 강원, 충청, 인천 등 전국에 센터가 포진하고 있는데
경북센터(054-1366)가 대표적이다.
긴급 전화·초기 상담은 물론 보호시설, 의료·교육·법률기관, 검·경찰, 행정기관 등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즉각적이면서도 입체적인 맞춤형 솔루션 서비스를 전개하고 있다.
또한 성폭력, 성매매, 결혼이민 피해여성 및 동반자녀
긴급구조·보호 프로그램도 실행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계층·분야에서 불거지는 문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원 스톱(One-Stop) 보호망’이라고 하는데 경북센터가 처음(2014)으로 도입·구축했다.
2011년에 이어 2014년에도 여성가족부 장관 표창을 수상한 바 있다.
센터장은 2009년부터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진원 스님이다.
2017년 국민훈장동백장을 수훈했다.
진원 스님은 중·고등 학창시절부터 군산 동국사(東國寺)의 불교학생회에서 활동했다.
특이하게도 매년 동국사 불교학생회 소속의 누군가가 출가를 단행했는데,
1986년에는 누구도 나서지를 않았다고 한다.
“아무도 없나? 그럼, 내가 출가한다!”
도반들이 케이크에 켜놓은 촛불 한 번 ‘훅∼’ 불고는 수덕사 일주문으로 들어섰다.(1986.6)
조용하던 수덕사 계곡에 어린이 법회(불교학교)를 마치고 나온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게 했던 장본인이 진원 스님이다.
1994년 조계종 개혁불사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진원 스님은
김천으로 걸음하고는 ‘김천 다문화센터’의 부센터장(2006∼2009)을 맡았는데 사연이 있다.
어느 날, 당시 다문화센터장을 맡고 있던 진오 스님이 부센터장을 맡아달라고 청해 왔다.
처음엔 사양했다. 그러자 “양심 좀 가져보라!”는 핀잔과 함께 비수가 날아들었다.
“진원 스님, 절밥 드시고 이리저리 ‘왔다갔다’만 하실 겁니까?”
신선한 충격이었다. 더 이상 말 않고 승낙했다.
사회복지법인 직지사 복지재단은 ‘경북센터 1366’을 수탁(2009) 하고는
곧바로 진원 스님에게 맡겼다. 진원 스님은 지난 10년 동안 혼신을 다해 지휘했다.
2010년에는 1만1110건의 상담(전화·내방·방문·사이버)이 이뤄졌는데,
2018년에는 2만2895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현장 상담만도 2010년에 347건이었지만 2018년에는 1689건으로 대폭 늘었다.
보호 인원도 2010년에는 175명이었지만 2018년에는 643명을 기록했다.
여성들이 자신의 권익을 찾고자 하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통계이자,
경북센터의 신뢰도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가정폭력의 심각성과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소견을 듣고자 경북센터 사무실로 향했다.
신고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 폭력 현장을 목도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정말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궁금했다.
사전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긴급피난처에 들어설 수 없다.
“초기 신고전화를 통해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인근 지역의 경찰출동을 요청합니다.
몽둥이로 맞은 피해자는 물론, 가위나 칼에 찔린 채 떨고 있는 여성도 있습니다.
가해자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입니다. 아이들은 작은 방에 앉아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그런 때는 피해자부터 응급실로 급히 이송합니다. 아이들은 일단 저희가 맡습니다.”
경북센터는 피해자를 위한 일정부분의 응급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 또한 처음으로 실행했다.
“응급치료를 마치면 저희들이 마련해 놓은 긴급피난처(쉼터)에 머물 수 있도록 합니다.
여기서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약 1주일 정도입니다.
상담을 통해 집안에 갈등은 없었는지, 상습 폭행인지,
아동학대는 없었는지를 세심하게 체크해 가족 전체의 안전성을 진단합니다.
귀가 후 더 심한 폭력이 예상될 경우 피해자가 장기간 머물 수 있는 주거공간을 제공합니다.”
경북센터는 현재 안전가옥 개념의 집 20채를 확보해 놓은 상태다.
아이들도 함께 지낼 수 있고, 안전프로그램에 따라 무리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조치한다.
긴급피난처와 안전가옥 확보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분리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업 실패로 30년 넘게 알코올 의존 증세를 보인 남편의 폭력에
20년간 우울증과 경계성 성격장애에 걸린 피해자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우울증과 함께 거식증에도 걸렸습니다.
전문가 상담과 꾸준한 약물치료로 가족 모두 호전됐습니다.
그 사이 남편도 알코올 중독 프로그램을 받아들여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안전가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경북센터는 피해자에게 여성인권과 가정폭력에 항거할 법적 상식을 전하고
취업도 적극 돕는다. 자신감을 일깨워 홀로설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이혼·별거를 포함한 법적 검토도 권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가정을 깨려는 게 아닙니다. 또 하나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켜주기 위함입니다.
남편 곁으로 돌아갈 것인지 이혼이라는 선택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인지는
자존감을 회복한 피해자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경북센터가 마련해 놓은 긴급피난처. 장기간 머무를 수 있는 ‘안전가옥’ 20채도 확보해 놓았다.
가정폭력에 대한 심각성은 재범(5년 이내 기소유예 이상의 처분 전력)률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4.1%였던 재범률은 2018년 6월 기준으로 8.9%로 두 배 이상 치솟았다.
‘솜방망이 처벌이 한 몫 하고 있다’는 의견에 진원 스님도 동의한다.
“가정폭력 사범이 구속수사를 받는 경우는 검거인원의 1%도 안 됩니다.
검거된 피의자라 해도 검찰에 기소되지 않고
‘가정보호사건’으로 법원에 송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경우 형법이 아닌 ‘가정폭력특별법’에 따라
상담이나 친권행위 제한, 사회봉사 등의 처벌만 받습니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라고 해도 가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사소한 다툼’ 정도로 여기게 하는 ‘가정폭력특별법’ 보완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경북도 내 10개 시와 13개 군을 경북센터가 맡고 있지만
전담 인원이 부족해 전 지역을 직접 다니며 꼼꼼하게 상담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보완책으로 민·관·경 합동이동사무소 ‘네잎클로버’를 가동해
가정폭력 사각지대에까지 만전을 기하고 있다.
2018년 한 해 동안 페미니즘 이슈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미투(Me Too)운동이 중심에 서 있었고
불법촬영 근절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도시 한 복판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낙태죄 폐지는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까지 올랐다.
국가·경제는 남성, 가정·육아는 여성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성평등’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진단도 쇄도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여성 권리’에 따른 대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남·여성 혐오’를 동반한 갈등도 촉발됐다.
일각에서는 모든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남성중심주의를 제거한 사회 재구성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페미니즘을 이끌고 있는 운동가·학자 간의 논쟁과 그에 따른 충돌도 보인다.
“일단 미투가 시사하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 범죄라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폐습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성 희롱·추행을 가벼이 여기는데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여성의 권리주장이 대두되는 가운데 혐오·배제 등의 불합리한 요소도 등장하고 있지만
성평등 사회를 조성하는 과정 중의 ‘홍역’이라 봅니다.
그러나 그 홍역이 너무 길면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여성운동이 전개되기를 기대합니다.”
진원 스님은 부처님 법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부처님께서 법문 하실 때는 불보살과 사부대중은
물론 시방법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함께 지옥아귀축생도 초청합니다.
현대의미로 풀면, 선남자 선여인은 물론 죄를 짓고 감옥에 간 사람도
‘어서 오라’ 손짓 하는 겁니다. 여기에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생명을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으로 본 부처님 마음에는
젠더, 페미니즘이라는 특별한 영역자체도 없습니다. 고귀한 생명만 있을 뿐입니다.”
차별과 혐오라는 장벽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일언을 부탁드리자
진원 스님은 부처님께서 보이신 전생담 중 ‘할육무합(割肉貿鴿)’을 전했다.
최초 신고·접수를 통해 위급한 사안이라 판단되면 경찰출동을 즉각 요청한다.
매에게 쫓기던 비둘기가 급히 시비왕(부처님 전신) 품으로 피신했다.
‘그 비둘기는 제 밥입니다. 저는 배고픕니다. 제 생명도 소중합니다.’
비둘기 대신 자신의 살점을 내어줄 터이니 그것으로 생을 이어가라
당부한 시비왕은 저울 한 쪽에 비둘기를 앉혀 놓고 비둘기 무게만큼의 살점을 올려놓았다.
저울은 꿈쩍도 않는다. 두 다리를 올려놓았다. 저울추는 여전히 비둘기에 쏠려 있다.
온몸을 올려놓자 저울은 수평을 이뤘다.
“불교에서 ‘대장부’라 함은 남자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만 생명을 차별 없이 사랑하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을 대장부라 합니다.
대장부적 혜안으로 바라본다면 양 극단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혐오는 언제든 떨쳐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여성긴급전화 1366 경북센터’를 이 땅에 우뚝 서게 한 원동력은
바로 온몸을 던져 생명을 구하겠다는 ‘할육무합’ 정신이었음을 알겠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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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원 스님은
- 1986년 수덕사로 출가.
- 동학사·중앙승가대 졸업. 동국대 선학과 석사수료.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석사.
- 2000년∼현재 김천 개운사 주지
- 2009년∼현재 여성긴급전화 1366 경북센터장
- 2017년 국민훈장동백장 수훈
2019년 3월 20일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