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립보서2 : 13 “비전 찾기”
이번 여름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강사 목사님이 장래에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비전 때문에 고민하는 학생들이 생겼습니다.
비전을 찾아야 한다는 숙제를 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비전 찾기’란 제목으로 비전에 대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특별히 학생들이 잘 듣기 바랍니다.
그리고 학부모들도 잘 들으시고 자녀들에게 비전에 대해서 잘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비전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1) 먼저 비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전이란 자신이 장래에 이루고 싶어 하는 꿈을 말하는데,
국어사전에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전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전이란 막연한 꿈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분명한 계획이나 전망이 보이는
꿈을 말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구약시대의 인물 중에 아브라함을 봅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1-2)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비전입니다.
미래에 보이는 비전이 무엇입니까?
‘내가 네게 지시할 땅’이 비전입니다.
또 ‘큰 민족을 이루는 것’과 ‘아브라함의 이름이 창대케 즉 유명해지는 것’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비전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은 아브라함은 알지도 못하고 가본 적도 없는 땅입니다.
그러나 그 땅은 분명히 있습니다. 장차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신 가나안 땅이죠.
그리고 실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대로 그 땅에 들어갔었고,
그 후손 이스라엘백성들도 그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그 비전의 땅에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주신 비전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루었고,
그 이름이 오늘 우리가 다 알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게 되었으니
아브라함은 과연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한 사람을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그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지금은 고기 잡는 어부에 지나지 않지만 너는 장래에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전도자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장차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전도자가 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비전입니다.
실지로 베드로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는 비전이란 단순히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확실한 꿈이란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비전도 확실한 것이었고, 베드로의 비전도 분명한 것이었지 않습니까?
또 하나는 비전이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비전도 베드로의 비전도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것이었지
않습니까?
이제 비전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정리해 볼까요?
비전이란? ‘미래에 대한 확실한 꿈으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2)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알 수 있을까요?
오늘날도 구약시대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것처럼,
혹은 예수님이 직접 베드로에게 찾아가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에게 직접 나타나서
말씀하실까요? 아닙니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님이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니 우리 각 사람에게 어떤 비전이 있는지 알게 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비전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 빌립보서 2장 13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비전을 주실 때 가장 먼저 주시는 것은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고교 1학년 때 ‘목사’가 되고 싶은 소원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청년의 때가 되니까 목사의 가는 길이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목사가 되겠다고 한 말은
그땐 몰라서 철이 없어서 한 말이니까 취소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목사의 길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할 수 없었어요. 도망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 생각이 났어요,
결국은 그것이 내가 스스로 택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소원으로 주셨던
비전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게 하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셨죠.
이처럼 하나님은 오늘 우리 각자에게 비전을 주실 때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의 소원을 불어 넣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넣어 주신 소원이 바로 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세 번째로 우리 마음에 품은 모든 소원이 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일까요?
아닙니다. 사람의 소원이 자기가 품는 소원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이 있어요.
그것을 잘 분간해야 합니다. 어떻게 분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알려 주신 방법인데 마태복음 6장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31절에서 32절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여기서 이방인은 아직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않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않은 이방인들도 마음에 소원을 품고
꿈을 꿉니다. 그 사람들도 인류를 위해서 큰 뜻을 품고 비전을 갖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이 가지는 비전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 아닙니다.
주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자신이 잘 먹고 잘 살고 출세
하는 꿈을 꿉니다.
설사 인류를 위해 큰일을 하리라는 꿈을 꾼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세상에 알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꿈을 비전이라 하지 않고 야망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야망과는 다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 예수님이 가지라고 하신 비전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입니다.
그래서 내 가슴에 품은 소원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그것은 자신의 야망일수도 있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일 수도 있습니다.
내 욕망과 내 이름을 위해서 가슴에 품은 꿈이 있다면 그것은 야망이며 비전이 아닙니다.
내가 가슴에 품은 꿈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 때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인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언제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발견하게 될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오늘날은 옛날처럼 하나님께서 '펑!' 하고 직접 나타나서 우리에게
비전을 말씀해 주시지 않습니다.
오늘 날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 지침서가 있습니다.
그 지침서가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 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어떤 소원이 일어날 때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인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십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세우신 담임목사나 전도사님의 조언을 들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지도하고 있는 신앙의 스승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비전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길 때에 찾아집니다.
기드온은 밀을 타작하다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비전을 보고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로 열심히 물고기 잡다가 예수님을 만나 비전을 얻게 되었습니다.
기도원에 들어가서 금식기도 해야 얻는 것이 아닙니다.
비전은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신앙생활하면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찾아지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에겐 비전도 쉽게 찾아지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고등학생 때 목사가 되는 소원을 품었더라도 그 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목사 되는 것이 비전인지도 모르고 다른 길로 갔을 것입니다.
비전이란 환상을 보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신앙생활하면서 성경보고
기도하는 가운데 때가 되면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밀림의 성자’로 불리는 슈바이처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음악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만 행복하게 지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서른 살 이후부터는
남을 위해 살겠다는 인생의 목표를 정하게 됩니다.
철학, 신학 박사이자 유명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라는 명예를 버리고 의사가 되어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 밀림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원주민들을 치료해 주고 병원을 지어 평생 동안 헌신적으로 봉사했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슈바이처박사가 처음부터 아프리카 의료선교사가 되는 비전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철학에 관심이 있어서 열심히 철학을 공부하여 철학박사가 되었고, 그리고
좀 더 깊은 신앙을 얻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될 꿈도 꾸었을 것입니다.
오르간 연주하는 것이 좋아 훌륭한 연주가가 되기도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의 마음속에 나만의 행복만을 위해서 사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기로 결단합니다.
그것이 바로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을 위하여 의료선교를 하는 소원을 가지게 되었고
열심히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비전이었고 그는 그 비전을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열심히 신앙생활하면서 자기 자리 잘 지키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준비되었다 싶으면 하나님이 성령으로 감동하셔서 마음속에 강렬한 소원을 불러일으키시고
비전을 품게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 학생들은 비전을 찾으려고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지 마세요.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서 지금은 배우는 시기이니만큼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세요.
그러면서 장래에 어떤 일을 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까 꾸준히 하나님께 질문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으세요.
그러면 때가 되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강렬한 어떤 소원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비전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슈바이처 박사에게 한 기자가 ‘박사님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입니까?’라고 묻자
슈바이처 박사는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 할 때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비전을 이루는 삶을 살 때가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살기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사는 사람에게
이 모든 것 즉 행복한 삶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비전을 가슴에 품고 남을 행복하게 하고 자신도
행복하게 되는 비전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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