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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수도원은 수도원다운 수도원이 부재한 한국 교회에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수도원이다. 그것도 어느 교단이나 교회들이 세운 수도원이 아니라 한 성직자가 집념으로 일궈낸 ‘영성의 도장’이다. 그 성직자는 바로 엄두섭(86) 목사. 1967년 40여년간의 현장목회를 마감한 뒤 젊은 날의 ‘목마름’을 기어코 풀기 위해 포천시 화현면 화현2리에 돌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장로회신학교(현 장로회신학대학교) 1기 출신인 그는 생의 후반부를 죄다 바쳐 건설한 이 수도원을 모교에 기증했다. 현재는 수도원에서 머지않은 구리시의 작은 아파트에서 정양하고 있다. 현재 은성수도원은 ‘장신대 경건훈련원’이란 이름으로 대학원생들의 경건훈련 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은성수도원이 장신대생 경건훈련원으로 쓰이게 된 데는 주선애 박사의 헌신이 숨어있다. 평소 수도원 생활에 그리움을 가지고 있던 주 박사는 고령에 이르러 쇠약해진 엄 목사님의 형편을 아시고 수도원을 인수,아파트 정양생활의 길을 열어주신 다음 수도원을 장신대에 기증한 것이다.
필자가 은성수도원을 찾아간 날은 마침 장신대 대학원생들이 신학기를 맞아 3박4일간 영성훈련 중이었다. 평소 ‘수도원 모델의 신학교육’을 제안해 온 필자로서 개신교의 유수한 신학대학 중 하나인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고용수 박사)에서 약식이기는 하지만 신학생들을 수도원에 입소시켜 집중 영성훈련을 실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하다는 마음과 함께 한없이 부러웠다.
참고로 요즘 교회 일각에서 ‘영성훈련’이란 말을 비판하는 분들이 있다. 영성을 훈련할 수 있느냐는 비판적 논리다. 그러나 영성도 노력하고 훈련해야 개발되고 강화된다. 경건도 훈련해야 하고(딤전 4:7) 예수 닮기도 사모하고 훈련해야 한다(엡4:13). 영성도 훈련 받고 교육 받아 길러야 한다. 영성 훈련을 게을리하는 자들의 트집에 주눅들 일이 아니다.
현재 이 경건훈련원은 매주 금요일부터 주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영성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대개 대학원생 중심으로 20명씩 입소한다. 대강의 일정을 보면 입소 첫날 저녁예배와 성찬식 뒤 중보기도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개인기도에 집중하는데 매일 80분씩 5차례 기도한다. 그리고 개인 또는 소그룹으로 매일 지도교사(교수 및 2인의 목사)와 영적 상담을 하고 친밀한 교제를 갖는다. 매일 저녁 예배와 주일 오전예배를 드리며 기도는 획일적인 모임을 피하고 개인이 주님과의 만남과 영적 교제를 갖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학원생의 영성훈련을 책임맡고 있는 유해룡 교수는 “외부의 관심과 보도조차도 순수한 영적 몰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영성 지도교수로서의 이같은 사려 깊음에 공감하며 적잖은 감명을 받았다.
수도원을 처음 일구며 엄두섭 목사가 실시한 수도의 일과는 전통적인 수도사들의 성무일과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특징적인 것은 노동량이 많다는 것. 이 때문에 엄 목사는 고령에 무리를 하여 지금은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더욱이 황혼기에 이른 남편의 수도원 개척을 돕기 위해 상일꾼 역할을 한 강숙희 사모는 현재 지병이 깊다. 이로 인해 엄 목사는 7년전 20년간의 수도원 생활을 접고 세속(?)으로 돌아왔다.
그는 ‘나의 수도원 생활은 설익은 열매’라고 말한다. 자신의 영적 투쟁의 결산을 이처럼 겸손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수도사 엄두섭 선생의 고결한 내면의 향기에 기인한 듯하다.
엄 목사의 수도생활에 있어 또 하나의 특징은 매일 밤 자정에 기상하여 성경읽기와 관상기도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하루의 시작은 자정부터가 아닌가. 오후 7시 취침,자정 기상,새벽 1시까지 관상기도,3시까지 영적 독서(성경 및 경건서적),5시까지 집필 및 일과 계획 및 잡무처리를 하고 5시부터는 오전·오후시간을 거의 노동하면서 묵상과 기도로 일관한다.
이때의 기도는 수도사에게 가장 중요한 ‘관상기도’(觀想祈禱)로서 ‘듣는 기도’이지 ‘구하는 기도’가 아니다. 일상의 소원은 모두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기도를 통해 심령을 깨끗이 비우고 주님의 임재와 영적 합일에 이르는 기도이다.
엄 목사는 수도 생활을 돌아보며 “노동에 치중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영적 성숙이 부족했다”고 겸손해 한다. 또 “수도에 정진하겠다고 찾아온 젊은이들도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퇴원하고 만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비록 소수이지만 그동안 열매를 맺은 남녀 수도사들은 충북 금천에 나시릿수도원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에 성빈수도원 등을 만들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교회에 사실상 개신교 수도원의 모델을 개척한 엄두섭 목사는 이렇게 소망한다. “한국교회가 힘을 모아 교파를 초월하여 사용할 수 있는 본격적인 개신교 수도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해야 합니다.”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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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