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그림-강병호 | “으아앙! 쪼꼬미야, 미안해. 오빠가 정말
미안해!”
찬솔이는 베란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다리를
버둥거리고, 팔을 휘저 어 가슴을 쳐도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어떻게
내가, 어떻게 내가 너를 먹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저녁 식사에 닭볶음탕이 올라왔을 때 찬솔 이는 냉큼
닭다리를 가져다가 맛있게 뜯어 먹었다. 엄마가 남은 닭다리를 아빠
밥그릇 에 올려놓자 은솔이 누나는 입술을 삐죽이 며 찬솔이를 흘겨봤다.
“왜? 지난번엔 엄마랑 누나가
먹었으니까 이번엔 아빠랑 내 차례라고.”
닭은 왜 다리가 두 개밖에 없는
걸까. 네 개 라면 좋을
텐데. 닭 요리를 먹을 때마다
누 나와 찬솔이가 다리를 서로 먹겠다고 싸우 자 엄마가 규칙을 정했다. 이번에 엄마와 누나가 먹으면
다음엔 아빠와 찬솔이가 먹는 걸로.
국물에 밥을 싹싹 비벼 먹고 나자 배가 흡족하게
불렀다. 역시 반찬은 고기반찬이
최고야. 찬솔이는 똥을 누지 못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찬솔이는 베란다로 갔다. 오늘은 꼭 산책을
시켜주겠다고 했던 쪼꼬미와의 약속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쪼꼬미야, 미안해. 내일은 꼭
산책시켜 줄게. 진짜야.”
그런데, 쪼꼬미가
없었다. 철창 우리 속에도 베란다에도
쪼꼬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제야 찬솔이는 저녁에
맛나게 먹었던 닭 요리가 떠올랐다. 맛있게 냠냠 뜯어먹은 고기가
쪼꼬미였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뱃속이 울렁거리며 금세라도 토할 것 같았다.
“무슨
일이니? 찬솔아.”
찬솔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엄마가 깜짝 놀라
뛰어왔다.
“어떻게 우리 쪼꼬미를 죽일 수
있어! 어떻게 우리 식구인 쪼꼬미를
먹을 수 있어!”
찬솔이는 엄마를 향해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찬솔이의 눈에서 눈물이 쉼
없이 주룩주룩 흘렀다. 동그랗게 뜬 엄마의 눈이
가늘어지며 활처럼 휘었다.
“그럴 리가
있겠니. 쪼꼬미는 찬솔이의 귀여운
동생인데.”
찬솔이는 울음을 그치고 엄마를
봤다. 눈물 콧물을 소매로 쓱 닦고
난 후에도 흐느낌은 여운처럼 남아 있었다.
“오후에 고모님이
오셨어. 쪼꼬미가 좁은 철창 우리에
갇혀 있는 걸 보시고 불쌍하다고 시골로 데려가 키우신다기에 그렇게 하시라고 했어. 찬솔이에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쪼꼬미도
안됐잖니. 늘 좁은 곳에
갇혀서.”
“쳇, 오랜만에 오셨으면 하루
주무시고 가시지.”
찬솔이에게 고모는 할머니 같은
존재였다. 할머니는 찬솔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고모가 주름지고 거친 손으로
찬솔이를 쓰다듬어 줄 때면, 찬솔이는 살아계셨다면
할머니의 손길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했다. 고모가 시골로 간 후로 자주
만나지 못해 찬솔이는 늘 고모가 그리웠다.
“농장 일이 바빠서 오늘
내려가셨어. 찬솔이 못 만나서 아쉽다고
하셨단다.”
고모부가 퇴직한 후에 고모네는 시골로 이사를
했다. 거기에서 농작물을
키우고, 돼지와
닭, 염소 같은 동물들을
키웠다.
“주말에 고모네
놀러가자, 찬솔아. 쪼꼬미가 잘 지내고 있는지
가서 보자.”
고모네 집에는 열세 마리의 닭들이 살고
있었다. 수탉이 두
마리, 암탉이 열한
마리. 닭들은 횃대 위를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고, 흙바닥 위를 구르며 가려운
등을 긁기도 했다. 낮에는 마당에 나가 벌레를
잡아먹거나 곡식 낟알을 주워 먹고, 밤이면 닭장 속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찬솔이는 친구 닭들 사이에서 쪼꼬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쪼꼬미는 어느 때보다 활기찬
모습이었다. 찬솔이를 보자 반갑게 달려와
‘꼬꼬댁’하고 인사를
했다.
“쪼꼬미가 알을
낳았단다. 와서
보련?”
찬솔이는 고모를 따라 닭장 안으로
들어갔다. 볏짚 무더기 위에 작고 예쁜
달걀이 놓여 있었다. 찬솔이는 두 손으로 달걀을
감쌌다.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지 따뜻한 기운이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고모네 밥상은 풀떼기
밥상이었다. 찬솔이가 싫어하는
초록, 주황, 노랑 채소들이 상 위에 놓여
있었고, 쪼꼬미가 낳은 조그만 달걀이
포근한 달걀찜이 되어 상 위에 올랐다.
밥상을 앞에 두고 고모와 고모부는 두 손을 곱게
모으고 게송을 읊었다. 찬솔이네 가족들도 따라서
손을 모았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을까. 내 덕행으로는 받기
부끄럽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깃들었으니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고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농장일을 돕느라 구슬땀을
흘려서일까. 제 손으로 거둔 채소들로
반찬을 만들어서일까. 공양게를 읊고 나니 음식에
대해 숙연한 마음을 지니게 되어서일까. 풀떼기 밥상 위의 음식들이
하나하나 다 맛있었다.
찬솔이는 보들보들한 달걀찜을 한 숟가락 입속에 떠
넣었다. 쪼꼬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왔던
작고 가냘픈 병아리가 어느새 쑥쑥 자라 달걀을 낳았다고 생각하니, 흐뭇하고
자랑스러웠다. 봄이 오면 저 작은 달걀
속에서 작은 생명이 태어날 거라고 고모가 말했다. 쪼꼬미가 낳은 달걀에서는
쪼꼬미를 닮은 병아리가 나오겠지.
찬솔이는 부끄러워졌다. 예전에 찬솔이가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닭들도 쪼꼬미와 같은 존재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다른 존재에게 빚을 지는 거라던,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한
존재의 생명을 먹는 거라던 엄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 비로소 알게 됐다.
다음 날 아침, 찬솔이는 변기 위에
앉았다. 뿌웅, 하고 경쾌한 방귀 소리가
나더니 똥꼬에서 굵고, 길고, 촉촉한 똥이 부드럽게 쑥
빠져나왔다. 정말
상쾌했다.
농장일을 도우면서 몸을 많이 움직였기
때문인지, 모처럼 채소 반찬을 많이
먹었기 때문인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음식을 먹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힘들이지 않고 이렇게 쉽게
똥을 눌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찬솔이는 변기에 앉아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처음으로 맡아본 구수한
똥냄새가 콧속으로 쑥 들어왔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