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내 일요일의 일정을 물어온다.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여행을 즐기는 엄마를 위하여 함께 동행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그러나 직장인들에게 주말과 주일은 얼마나 황금 같은 휴식인지를 충분히 알고 있기에 고맙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또한 아직 미혼이다 보니 휴일이면 한창 데이트를 약속하고 자신의 일상에도 바쁜 나이가 아니던가? 그러함에도 엄마의 일정을 헤아리며 함께 동행 해주려는 마음이 차마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늘 혼자라도 괜찮다 말하지만 아들은 소소한 일상이라도 엄마랑 함께 할 수 있을 때 후회 없이 하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혼자 다녀오겠다고 말하면서도 떠날 채비를 하고 아들을 만나는 여행의 시작은 당연히 든든하고 행복하다. 이번 주에는 논산에 있는 탑정호 출렁다리를 목적지로 두고 떠나기로 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올라야 하므로 남악에 있는 아들에게로 들러 함께 출발하였다. 아들은 차에 오르면서 항상 빈손으로 오는 일이 없다. 커피와 간식을 준비해오고 오늘 간식은 아몬드를 종류별로 들고 올랐다. 두 시간여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소소한 일상부터 속엣말까지 나누다 보면 어떤 메시지 하나를 보낼 때 기나긴 잔소리보다는 더 이해하는데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일요일 오전 11시 쯤 출발하여 논산까지 200km거리를 당일에 다녀오기에는 부담되는 거리였으나 탑정호출렁다리 주변에 도착하고 보니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시간이었다. 우리는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해 온 레이크힐 탑정스테이크에서 점심부터 챙겨 먹기로 했다. 레이크힐 탑정스테이크에는 5성급 호텔 출신 셰프님들께서 조리하시는 논산 최고의 레스토랑이라 한다. 매장 층고가 높다보니 쾌적함은 물론 창문으로 들어오는 탑정호 출렁다리의 뷰가 참으로 시원하고 아름답다. 여러 가지 메뉴 중 오랜만에 먹어보고 싶은 파스타와 아들의 단골 메뉴인 왕돈까스를 주문하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아들은 벌써 밥값 계산을 끝낸 상태였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늘 그랬다. 서로 먼저 계산을 하려는 마음으로 기회만 보는 것이다. 아마도 세월 흘러 아들과의 여행이 생각나거나 아들에게 오늘이 추억될 때면 슬그머니 웃음이 머금어질 일이다. 탑정호 출렁다리는 충청남도 논산시 휴양관광산업의 랜드마크로 특별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호수 위에 설치된 가장 긴 출렁다리로 KRI 한국기록원에 인정받았다. 우리는 탑정리 석탑을 중심으로 탑정호 출렁다리를 건너 수변데크길을 걷고 4-1 주차장을 지나 소나무 노을섬과 둑방을 경유하여 마치 음악분수가 시작하는 시간에 물과 빛 그리고 음악이 어우러지는 낭만과 힐링의 탑정호 음악분수쇼까지 관람하였다. 또한 중간 중간에 놓여진 벤치에 앉아 숨 돌릴 틈 없이 약 2시간 정도의 탑정호수의 트레킹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원점회기하여 탑정호의 노을과 야경보다는 여기까지 달려왔으니 탑정호에서 가까운 신동엽문학관을 들러보기로 했다. 이는 문학인으로써 전국의 어디를 가더라도 주변에 자리한 문학관은 꼭 들러오는 편이다. 오늘은 탑정호에서 서해안고속도로 쪽 부여에 있는 신동엽 문학관을 둘러 볼 참이다. 신동엽은 부여에서 태어난 시인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1967년에 발표된 ‘껍데기는 가라’가 있으며 이후 ‘참여시의 절정’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비로소 문단의 조명을 받았다. 1969년, 국민방위군 때 감염된 간디스토마가 간암으로 악화되어 만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진보적인 시인이었던 신동엽의 문학관을 순례하는 발길이 잦은 이곳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라 한다. 전시관에는 시인의 육필 원고를 비롯해 인병선 시인과 주고받은 편지와 사진 그리고 즐겨 읽던 책과 다양한 유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와 관련한 자료들은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유가족의 노력으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전시관을 다 둘러보고 나오려던 차에 관장님을 만났다. 관장님께서는 옥상정원으로 올라가보면 푸른색 기와의 신동엽 생가를 한눈에 넣을 수 있다는 안내를 해주시고 밖으로 나와 신동엽 길까지 함께 걸으며 여러 가지 설명도 세심하게 챙기셨다. 나도 시를 쓰고 있다며 명함을 교환하고 지난 퇴직기념으로 출간했던 시집 <가슴과 가슴사이>를 신동엽 문학관에 기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낡아가는 자연스러운 문학관의 모습이 그의 시를 닮았다는 생각과 함께 신동엽의 길을 빠져나왔다. 수년 전부터 전국의 유적지와 관광지는 충분히 돌아보았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곳들도 막상 여행을 떠나 현지를 둘러보면 익숙한 지명 뒤에 숨어있는 빛나는 이야기들이 참으로 새롭다. 오늘도 아들과 나는 참 알뜰하게 살았다. 우리는 무조건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들과 함께 떠나온 오늘의 휴식은 지난 한 주간을 충분히 힐링하였으며 다음 한 주간을 위한 충분한 에너지가 될 것이기에 넉넉한 가슴으로 우리 둘은 각자의 둥지를 찾아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