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겨울, MBC <
일요일 일요일 밤에> ‘
이경규가 간다’ 코너를 통해 한밤중에도 정지선을 정확히 지킨 한 장애인 부부가 감동을 전한 바 있다. 죽을 때까지 양심을 지키겠다던 부부를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가난하고 몸 불편한 우리가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1996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화제의 코너이던 ‘이경규가 간다-교통질서 지키기’ 에서 정지 신호를 지켜 양심냉장고 1호 주인공이 된 장애인 부부를 기억하시는지. 당시 시각은 새벽 4시, 한적한 여의도 도로에서 수많은 차량이 정지 신호가 켜졌는데도 무시하고 지나가던 정지선을 지킨 그들의 양심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전해주었다.
그 주인공 이종익(45세)·김유화(43세)씨 부부를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장맛비가 계속 내리던 날. 우산을 제대로 들 수조차 없는 부부와 한쪽 어깨에 비를 다 맞으며 엄마 아빠를 위해 우산을 든 두 아들이 스튜디오를 찾았다. 부부는 10년 전보다 살이 조금 붙었지만 여전히 밝은 모습이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냐고 묻자 김씨의 유쾌한 답변이 이어진다.
“벌써 10년이나 흘렀네요. 남편이 딱 한 번 속도위반으로 범칙금을 냈어요. 그때 양심에 털 났었죠. 요즘은 CCTV가 많아져 법을 어기면 바로 걸리기 때문에 무서워서 더 양심적으로 살아요.”
방송이 나간 후 그들이 노점에서 근근이 꾸려오던 인형 장사는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덕에 잘되었다. 노점 앞을 무심코 지나던 사람들이 알아보고 인형 하나라도 더 사주었다고.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잠시뿐이었다. 양심적으로 살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좋은 일이 많아야 하는 것이 순리지만 이들 부부의 지난 10년은 그렇지 않았다.
순탄치 않던 지난 10년어느 정도 생계를 보장하던 노점 인형 장사는 IMF가 닥치면서 접어야 했다. 장애인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식당을 용기 내어 개업했지만 그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아무리 씩씩하게 살려고 해도 장애인이라는 현실이 그들을 괴롭혔다.
“아는 분에게 어려운 사정을 얘기했더니 용기를 주면서 ‘주방 일을 도와줄 테니 식당을 해보라’고 하셨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저는 카운터, 그분은 주방 일을 하고 남편은 시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 나르면서 열심히 장사를 했어요. 그런데 장사가 생각만큼 잘되지 않았어요.”
‘살림만 하던 주방장의 손맛이 좋지 않아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그녀와 ‘장애인이 주인이라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주방장은 서로를 탓했지만 결과 없는 싸움이었다. 주방장을 바꾸면 장사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새 주방장을 만나봤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식당에 김씨가 안 나온다는 약속을 지켜준다면 주방 일을 하겠다고 했다. 부부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고, 주방장은 오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별수 없이 가게 문을 닫았다.
“저희가 몸이 불편해서 손님들을 부담스럽게 한다는 거였죠. 물론 각오는 했지만 막상 일을 당하니 힘들고, 슬프고, 절망스러웠습니다. 커가는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야 할지 막막했어요. 사람들이 많이 원망스러웠죠. 음식을 맛으로 먹지 사람 보고 먹는 것은 아니잖아요.”
안타까운 눈빛으로 기자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게 8년 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일을 구하지 못해 부부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조금씩 아껴 쓰며 살고 있다. 정부는 부부가 생계를 유지할 만한 돈이 있다며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엄마의 눈물을 알아챘는지 옆자리를 조용히 지키던 큰아들 성호(16세)군이 유쾌한 어투로 분위기를 바꾼다.
“어머니께서 아끼고 아껴 남겨놓으신 돈을 제가 다 까먹고 있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삶의 희망이 되어준 두 아들한꺼번에 닥친 어려움 속에서도 부부가 웃음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두 아들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부의 자랑거리이자 버팀목이다. 장애인 부모 밑에서 바르게 커준 아이들이 고맙기만 하다. 하지만 부부는 자신들의 장애 탓에 아이들이 너무 일찍 어른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성호군이 초등학생일 때였다. 김씨는 아들을 마중 나가겠다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집 밖에 나왔다가 아들이 보는 앞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두 다리가 꼬인 것. 다른 아이들 같으면 엄마가 부끄러워 도망갈 법도 한데 성호군은 행여나 엄마가 다쳤을까 큰 소리로 그녀를 부르며 달려왔다. 자신의 몸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그녀를 번쩍 안아 등에 업고 “엄마, 괜찮아?”라며 연신 물었다고 한다. 아들 등에 업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커버린 어린 아들에게 미안했고, 한편으론 아들이 대견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큰아들을 의지하기 시작한 것이. 엄마가 미용실에 가면 꼭 따라와 제일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권해주고, 사람들이 “엄마가 너에게 어떤 존재니?”라고 물으면 “친구 같은 엄마”라고 대답하는 큰아들이 그녀는 자랑스럽다. 그녀에게 큰아들은 ‘자원봉사자’이기도 하다.
“설거지며 빨래며 무료로 다 해줘요(웃음).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집안일에는 도가 텄죠. 귀여운 둘째는 일을 시키면 설거지는 얼마, 청소는 얼마 하며 장난스럽게 돈을 요구하지만 큰아들은 용돈도 받지 않아요. 그러니 자원봉사자죠.”
그녀의 말에 둘째아들이 발끈한다. 엄마에게 ‘공짜는 없다’라는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려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두 아들은 장애인이지만 양심을 지키며 바르게 사는 부모가 자랑스럽단다. 엄마, 아빠가 정직하게 욕심내지 말고 살라고 가르쳐주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기 때문. 장애인으로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온 엄마, 아빠가 더 이상 다치지 않고 살았으면 한다. 성호군에게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냐고 묻자, “공부하러 간다고 하고 친구들과 놀러간 적이 있다”고 말하며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표정이 애교스럽다. 김씨가 “집에 가서 보자”고 호탕하게 웃으며 눈을 흘기자 성호군이 “다 엄마 뜻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해 주위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그 엄마에 그 아들이다.
부족한 것 없이 자라도 사춘기 자녀와 부모는 갈등하고 사이가 나쁘게 마련이다. 이종익씨 가족의 구김살 없이 화목한 모습은 그것만으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실 부부와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웠지만 두 아들의 친절한 ‘통역’이 있어서 인터뷰가 가능했다.
“몸은 이래도 우리도 뭔가 할 수 있어요. 아이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당당하게 산다면 언젠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뀔 날이 올 거예요. 우리가 달라져야 사회에서도 다르게 받아들일 것 아니에요?”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힘겨워했지만 인터뷰 내내 대화를 이끌어가며 재치 있는 말로 주위를 유쾌하게 만든 부부. 이씨 가족과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의 행복은 진정 육신과 물질에 있지 않음을 깊이 깨달았다.
출처 : 우먼센스
첫댓글 가슴도 찡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 그들의 성실하고 정직한 삶이 미소를 짖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