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요즘 누구나 할 것 없이 세상 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매일 뉴스와 신문에서 접하는 많은 소식들이 지금 세상이 얼마나 각박하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피부에 스며들도록 전해주고 있다. 누구는 사는게 힘들어 자녀와 함께 아파트에서 투신동반자살을 하고 또 누구는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이고 또 누군가는 혼자 자살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힘든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강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것인지 또한 위대한 것인지를 위화는 이 소설을 통해 진솔히 보여주고 있다.
줄거리…
“이희야, 유경아, 게으름 피워선 안돼. 가진, 봉하야, 잘하는구나. 고근아, 너도 잘한다.”
“소가 자기만 밭을 가는 줄 알까봐, 몇 개 이름을 불러 그를 속인 것이오. 다른 소도 밭을 갈고 있다고 알면 신이 날 것이고, 그러면 밭 가는 일도 힘이 날 것이 아니겠소.”
주인공 복귀(富贵)라는 노인이 한마리 뿐인 소 복귀를 속이기 위해 여러 마리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화자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자신의 일생을 들려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치 우리 나라 황희 정승이 만난 시골 농부(검은소 누런소 이야기)를 보는 듯 하다.
복귀는 도박에 미쳐 집안의 많은 재산을 용이에게 모두 날리게 된다. 그 후 농부가 되어 열심히 일을 하지만 어머니의 병환을 위해 시내로 가다가 국민당 군사로 전쟁터에 끌려나가게 되고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겨우 집으로 돌아온 그는 용이가 지주계급으로 몰려 죽음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용이가 아니였더라면 자신이 그렇게 죽을 운명이였음을 알고 복귀는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자신을 위협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모두 운명이다. 옛말에 큰 재난에 죽지 않으면 반드시 훗날에 복을 받는다고 했으니 내 나머지 반생은 분명 점점 나아질 것이다.’
풍족하기는커녕 끼니를 잇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복귀의 집은 행복이 찾아온다. 아내 가진과 딸 봉하 그리고 착한 아들 유경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날 유경은 학교 교장선생님의 출산에 수혈을 해주다가 피를 모두 빼주어 죽게된다.
“유경이가 이젠 이 길을 달릴 수가 없어요.” 양을 위해 늘 풀을 뜯으러 뛰어다니던 유경이의 죽음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가진의 대사다.
아들의 황당한 죽음 앞에서도 복귀는 전쟁 때 만났던 춘생이 그 교장선생님의 남편임을 알고 모든 것을 체념하며 받아들인다.
유경이 죽은 후 복귀의 집은 늘 암울하지만 봉하의 결혼과 함께 다시 행복이 찾아온다. 봉하만을 사랑하는 편두 이희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밝은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 하다.
그러나 착하디 착한 벙어리 딸 봉하는 아들인 고근을 낳고는 그만 죽고만다.
봉하가 죽은 후 복귀의 대사가 가슴 아프다.
나의 두 아이들은 모두 그렇게 아기를 낳다가 죽었어. 유경이는 남의 아이를 낳다가 죽었고, 봉하는 자기 아이를 낳다가 그렇게 되었고.
봉하가 죽고 손자 고근이 남았다. 그러나 이제 아내 가진의 차례일까…
“다시 태어난다 해도 우리가 함께 지내기를 원해요.” 라는 말을 하고 가진은 죽는다.
가진에 이어 사위 이희도 사고로 죽고 마지막 남겨진 고근 마저도 복귀가 삶아 놓은 콩을 먹다 배가 터져 죽는다.
너무나 많은 죽음을 접하는 복귀는 고근의 죽음 앞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고근이가 과연 죽을 수 있는 건가 없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기가 막혀서 차마 울음도 나오지 않더구만.’
그리고 복귀는 이제 노인이 되었고 혼자 남겨졌다. 그의 옆에는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늙은 소 한마리가 있을 뿐이다.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정말 순식간에 지나버렸어. 정말 평범하게, 아무 욕심도 없이 살아왔지. 나는 말일세. 바로 그런 운명이였던 거야. 나는 그러한 삶이 오히려 그런 대로 괜찮았다고 여긴다네. 사람이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거야. 여태껏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일세.’
노신은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지경을 갈림길과 막다른 길로 집약하였다던가? 소설 속의 복귀는 역사적으로 아주 힘든 시기를 살아낸 인물이다. 그는 운명 앞에서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순응하며 그렇게 담담히 인생을 살아냈다. 지주계급에서 농민으로 몰락 할 때에는 금전 대신 가족을 사랑하는 맘을 찾게 됨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하고 또한 가족들이 죽어가는 장면 앞에서도 허허롭게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살아나갈 때 더 많은 고통을 받는 것이지. 막상 죽어갈 때가 되면 자기를 편안하게 할 방법을 생각하는 법이라네.’
하지만 극 중 인물이 담담하면 할수록 읽는 독자는 그 비감함을 더욱 절절히 느끼게 되는 것인지 소설 속의 주인공이 하나 둘 죽어갈 때마다 마치 내 주변의 소중한 것을 잃는 것처럼 가슴이 저려왔다. 더구나 이제서야 행복을 찾았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항상 더 큰 절망이 찾아오는 장면에서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난 단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위화의 소설 속에서는 절망과 함께 항상 따뜻한 무언가를 묻어난다.
슬프고 황당한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을 아무렇치도 않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행동과 체념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행복, 또 사랑까지도 - 함께 있어 어울리지 않을 듯한 내용도 그의 손끝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독자로 하여금 눈물보다는 웃음을 짓도록 만드는 것이 그만의 능력이 아닌가 싶다.
요즘 세상을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각박하다. 사람이란 참 이기적인 동물이라서 남의 힘든 모습을 보며 아~ 그래도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낫구나. 하며 위안을 삼는 듯 싶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위화는 소설 속에서 이 세상에 추하고 쓸모없는 삶이란 없고 누구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요즘같이 삶과 치열한 전쟁을 치뤄야 하는 시기에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위화에 대해…
1960년생 .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마련해준 도서대출증을 이용해 매일 책을 읽으며 소년 시절을 보낸 그가 소설가로 나선 것은 1983년 단편소설 <첫번째 기숙사 第一宿舍>를 발표하면서부터다. 곧바로 <18세에 집을 나서 먼길을 가다 十八岁出门远行>,<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世事如烟>등 실험성 강한 중 단편을 내놓으며 '중국 제 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급부상했다. 이후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 在细雨中呼喊>으로 작품 활동의 일대 변화를 예고한 그는 중국의 역사성과 본토성이 체현된 두 번째 장편소설 <살아간다는 것 活着>을 통해 마침내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가파른 중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인간이 걸어가는 생의 역정을 그려낸 이 작품은 장이모 감독에 의해 영화화(국내에서는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위화현상'을 일으키는 일련의 기폭제가 됐다. 1996년 출간된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 许三观卖血记>는 위화가 명실상부한 중국의 대표작가로 자리를 굳힐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다. 국내에도 소개된 이 소설에서 위화는 살아가기 위해 그야말로 목숨 건 매혈 여로를 걷는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희비극이 교차하는 구조적 아이러니로 드러내면서 한층 정교하고 심화된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이 밖에 수필집 <나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 我能否相信自己>와 <고조 高潮>가 있다.
소설 속 배경에 대해서…
국공내전 : 중국에서 항일(抗日)전쟁이 끝난 후 중국 재건을 둘러싸고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벌어진 국내전쟁.
문화혁명 :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주도된 극좌 사회주의운동.
영화<인생>에 대해서… 장예모 감독, 공리 주연
앞서 위화에 대해에 적었던 것 처럼 우리 나라에서 상영한 <인생>은 바로 위화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을 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주로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실망을 한다고 하는데 조금씩 달라진 내용과 상상에 못미치는 영상이 늘 부족하게 느껴지기 때문인 듯 하다. 그러나 난 소설에서 영화로 만들며 재미를 위해 혹은 영상미를 살리기 위해 달라진 장면을 보며 가끔 웃음을 짓는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 자체를 재미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달라진 내용을 살펴보자면 - 소설 속 복귀는 농부가 되지만 영화속에서는 인형극을 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또한 아들 유경이도 피가 뽑혀져 죽는 게 아닌 후진하던 트럭이 친 담장에 깔려 죽는다. (이 상황 또한 황당한 건 마찬가지지만)
또, 소설 속의 비참한 결말이 모두 사라지고 사위와 손자 그리고 아내 가진이 살아 있는 그리고 앞으로는 희망이 찾아올 것임을 예고하며 끝을 맺는다.
공리의 신선한 연기력과 장예모 감독의 훌륭한 연출에 힘입어 이 영화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역사적 배경과 중국인들의 삶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함께 추천하고픈 작품…
허삼관 매혈기 : 위화의 또 다른 작품으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우리 나라에서도 현재 스테디 셀러로 자리매김을 했다. 허삼관이라는 가난한 노동자가 삶의 기본양식을 지키기 위해 아홉차례에 걸쳐 피를 파는 사연을 기둥 줄거리로 하고 있으며 국공합작과 문화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현대사를 작품 속에 담고 있다.
김약국의 딸들 : 토지로 잘 알려진 박경리의 작품이다. 일가의 비참한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살아간다는 것과 조금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통영을 배경으로 김약국 집안 딸들의 사랑과 불륜, 죽음을 그리고 있다. 또한 재미있는 사실은 이 작품도 영화로 만들어 졌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