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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장 책쓰기 스크랩 - The Screwtape Letters 18 -
주님 사랑 추천 0 조회 29 17.08.25 15: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8


사랑하는 웜우드에게

아무리 슬럽갑이 학장으로 있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더라도 성적 유혹의 일상적인 기술 정도야 배웠겠지.

우리 같은 영들한테는 무척이나 따분한 주제이니만큼(필수적인 훈련 과정이긴 하다만), 나는 건너뛰기로 하마.

그러나 이와 관련된 좀더 포괄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배워 두워야 할 내용이 상당히 있다.

원수의 요구는 딜레마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철저히 금욕하든지 타협의 여지 없는 일부일처제를 택하든지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거지. 우리 아버지께서 첫 번째 대승을 거두신 이래, 우리는 철저한

금욕을 아주 어려운 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일부일처제로 탈출해 나가지 못하도록 지난 몇 세기에

걸쳐 여러 통로들을 차단해 버렸지. 우리는 시인과 소설가들을 동원하여, 인간들이 ' 사랑에 빠졌다 ' 고 말하는 별나고도

대체로 오래 가지 못하는 경험만이 유일하게 믿을 만한 결혼의 근거라고 설득해 놓았다.

결혼한 후에도 이런 흥분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고 지속되어야만 한다고, 그렇지 못한 결혼생활은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속삭였지. 이건 원수의 생각을 패러디한 거란다.

지옥의 전체 철학은 '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과 별개 ' 라는, 특히 ' 하나의 자아는 다른 자아와 별개 ' 라는

원칙을 인식하는 데 있다. 즉, 나한테 좋은 건 나한테 좋은 거고, 너한테 좋은 건 너한테 좋은 거지.

누군가 얻은 게 있으면 다른 누군가는 잃은 게 있는 법이다. 심지어 무생물도 다른 사물들을 공간에서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존재한다. 그러니까 자기가 확장되려면 다른 사물을 밀어내거나 흡수해야만 하지.

자아가 확장될 때도 마찬가지야. 짐승한테 흡수란 잡아먹는 것이고, 우리한테 흡수란 강한 자아가 약한 자아의

의지와 자유를 빨아들이는 것이라. ' 존재한다 ' 는 것은 곧 ' 경쟁한다 ' 는 뜻이야.

원수의 철학은 이렇게 명백한 진리를 계속해서 회피하려는 시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는 모순되는 걸 목표로 삼고 있지. 그가 볼 때 만물은 여러 개인 동시에 어쨌든 하나라구.

한 자아한테 좋은 것은 다른 자아한테도 좋은 것이고, 그는 이 불가능한 일을 사랑이라고 부르는데,

이 천편일률적인 만병통치약은 그 작자가 하는 모든 일뿐 아니라 심지어 그 작자의 모든 성품-저 자신의 주장에

따른 성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에서도 감지해 낼 수가 있다.

원수 자신도 순수한 수학적 단일 개체가 되는 데 만족을 못 하고 자기가 하나인 동시에 셋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속셈은 이 사랑이니 뭐니 하는 터무니없는 말의 근거를 바로 자기의 본질에서 찾으려는 데 있다.

원수는 또 유기체라는 걸 물질계에 만들어 냈지. 유기체란 요소들이 서로 경쟁하게 되어 있는 자연의 숙명을

거슬러 서로 협력하게 되어 있는 음란한 발명품이야.

원수가 성을 인간 번식의 수단으로 채택한 진짜 동기는, 그가 성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만 보아도 훤히 알 수 있다.

성은 우리한테 아주 무해한 것이 될 수도 있었어. 신부가 신랑을 잡아먹음으로써 결혼식을 끝내는

거미들처럼, 단순히 강한 자아가 약한 자아를 먹이로 삼는 또 하나의 방식일 수 있었다구.

그런데 유독 인간들의 경우에만 성적 욕망을 느끼는 양자 사이에 쓸데없이 애정을 끼워 넣을 게 뭐냐.

뿐만 아니라 원수는, 자식은 부모에게 의존하게 하고 부모에겐 자식을 부양하려는 욕구를 줌으로써 ' 가족 ' 이라는 유기체

비슷한 걸 만들어 냈다. 아니, 사실은 유기체보다 더 해롭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은 유기체보다 더 독자적이면서도

더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더 책임감 있게 연합하니까.

실제로 이 모든 것은 어떻게든 인간을 사랑안에 끌어들이려는 또 하나의 방책에 불과하다.

웃기는 건 이제부터야. 원수는 결혼한 부부를 ' 한몸' 이라고 불렀지.

그 작자는 ' 행복하게 결혼한 부부' 라든가 ' 사랑에 빠져 결혼한 부부 ' 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지만,

우리는 인간이 이 점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잘 숨겨 놓을 수 있다.

바울이란 인간이 ' 한몸 ' 이라는 말을 결혼한 부부한테만 한정해 쓴게 아니라는 점도 잊어먹게 할 수 있지.

그의 관점에 따르면 단순한 교접도 ' 한몸 ' 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까 ' 한몸 ' 이란 사실 성교의 진짜 의미를 쉽게 표현한 말인 게야. 하지만 우리는 인간들이

' 한몸 ' 이라는 걸 ' 사랑에 빠지는 일 ' 에 대한 수사학적 찬사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실상을 알려줄까. 한 남자가 한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면 싫든 좋든 두 사람 사이에는

초월적인 관계가 성립된다. 인간은 그 관계를 영원히 즐기든지, 영원히 참아 내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해.

이 초월적 관계는 애정과 가정을 만들어 내게 되어 있고, 인간이 순종하며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실제로 이런 결과를 얻는 경우가 아주 많이 있지. 우리는 이 참 명제로부터, ' 인간들이 " 사랑에 빠졌다 " 고

부르는 애정과 두려움과 욕망의 합성물이야말로 결혼생활을 행복하거나 거룩하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근거 ' 라는 거짓 명제를 끌어낼 수 있다.

이런 오류를 조작해 내는 건 쉬운 일이야. 서유럽에서는 원수가 의도한 바 정절과 생식력과 선의를 두루 갖춘

결혼을 하기에 앞서 ' 사랑에 빠지는 일 ' 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

늘 그런 건 아니지만, 회심하기 전에 종교적인 감정을 먼저 느끼는 일이 잦은 것과 같은 현상이다.

바꿔 말하면 원수가 결혼의 결과로 약속한 것들을 고도로 채색하고 왜곡해서, 그것이야말로 결혼의 근거인 것처럼

인간들을 부추기라는 게야.

여기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 성욕을 절제할 은사가 없는 인간인데도 자기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결혼을 해결책으로 선택하지 못하게 할 수 있지.

우리의 공작 덕분에 인간들은 ' 사랑에 빠지는 ' 것 이외의 동기로 결혼한다는 걸 그야말로 저열하고

냉소적인 행동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서로 돕고 순결을 지키며 후손에게 생명을 물려주기 위해 배우자에게 충실하겠다는 다짐을, 폭풍처럼 몰아치는

감정보다 훨씬 더 저급한 걸로 여긴다구(환자가 결혼예배를 몹시 불쾌하게 여기도록 손쓰는 일도 잊지는 않았겠지?)

둘째, 실제로는 성적인 매력에 홀린 것뿐인데도 상대방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 사랑한다 ' 고 믿어 버리게 할 수 있다. 남자들은 ' 사랑했다 ' 는 걸 핑계 삼아 자기가 저지른 죄과에서 벗어나려

들 뿐 아니라 배우자가 이교도이든 바보천치든 바람둥이든 자기는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므로

그 결과에는 책임이 없다고 생각할 게야.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번 편지에서 좀더 자세히 이야기 하도록 하마.


너를 아끼는 삼촌,

Screwt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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