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5시 2015.8.25
제목: 태몽이야기
1. 오늘은 태몽(胎夢)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신다고요? 태몽이라 하면 아이를 밸 때 꾸는 꿈을 말하잖아요?
그렇습니다. 모두들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지요.
우리 아나운서도 아이들 낳을 때 태몽 꾸셨지요?
2. 예, 저는 …
아주 훌륭하고 예쁜 삶을 살 것 같습니다.
예, 태몽은 아이를 배기 전에도 꾸고, 아이를 배고 나서도 꾸지요. 꿈을 꾸는 주체도 당사자인 아이의 어머니 아버지가 꾸기도 하지만, 시아버지 시어머니 등 주변 사람들이 대신 꿈을 꿔서 알기도 합니다. 태몽은 다른 꿈과는 달라서 꿈을 꾸고 나면 바로 태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주 둔한 사람이 아니면, 그 느낌이 분명하게 전달됩니다. 아무래도 생명탄생에 대한 신비감이 불러 온 예지력에 의한 것일 겁니다. 해석은 조상 대대로 이어 온 오랜 경험으로 본 원형상징의 의미로 이뤄지지요.
3. 생명에 대한 신비감이 태몽으로 온다는 얘기인 데요? 그럼 태몽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보통 무엇이 있는가요? 남녀 성별?
그렇지요. 보통 남녀성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별에 대한 감지 말고도 태어날 아기의 수명이라든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예지력도 보여줍니다. 가령, 태몽으로 돈을 줍는 꿈을 꾸었다면 그 아기는 나중에 큰 부자가 될 것이고, 용이 등천한 꿈을 꾸었다면 과거에 급제하여 큰 벼슬을 할 사람이라는 것과 같습니다.
4. 예전에 보니, 우리 고소설에서도 이런 태몽이야기가 자주 나오던 같던데, 혹시 어떤 것이 있나요?
예, 고소설에는 단골 화소로 등장하고 있지요. 이는 소설의 주인공이 태어나기 전부터 비범함을 나타내기 위한 서사장치로 보면 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춘향전>이지요. 춘향의 부모가 산신기도로 자식을 기원하던 어느 날 춘향의 어머니 월매의 꿈에 하늘의 신선인 적송자가 죄를 지어 내려왔는데, 덕유산의 산신령이 월매에게 드러갈 것을 지시한 꿈을 꾸고 낳은 아이가 바로 춘향입니다. 이는 비록 당시 퇴기의 딸로 미천한 신분이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사또의 아들과 혼인을 하여 신분상승을 하고, 또한 변 사또의 나쁜 습관을 고쳐 올바른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 엄청난 일을 할 것이라는 암시를 나타낸 것이라 보면 됩니다.
5. 그런 뜻이 있었군요. 박사님은 강원도 전역을 다니며 이런 조사를 많이 한다고 하셨는데요. 태몽의 예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재미있는 실례 몇 개만 들어주세요?
예, 고성군 해상리에서 2002년도에 조사한 내용인데요. 그 ㄷ아시 80세인 정명숙 제보자의 경험담입니다. 제보자 정명숙 할머니가 아들 용길이를 낳을 때 호랑이 꿈을 꾸었답니다. 꿈에 호랑이가 시어머니 자는 방에 성큼 들어오더니 불이 활활 타올랐다. 그래서 보니 문이 열려있기에 저 문 닫아라 문을 왜 열어놓았니 했는데 낳고 나니 아들이었다고 했습니다.
또 정명숙 제보자 옆에 계시던 동네 할머니는 이런 태몽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꿈에 마당에 나갔더니 새 떼가 아주 많더라고요. 그래서 손을 펼치고 “새야, 새야. 한 마리만 앉아라.”하니, 한 마리가 손바닥에 냉큼 앉았다. 그런데 빨갛고 파란 털이 난 것이 얼마나 예쁜지 안방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한 마리여서 “외로워 어떻게 노니”하고, 한 마리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밖으로 나가 손을 펼치면서 “한 마리만 더 와라”했더니, 또 한 마리가 내려앉기에 그래서 두 마리를 갖다 놓고 놀다가 꿈에서 깼다. 그래서 꿈을 꾸고 며느리가 연달아 손주딸을 둘 낳았다고 했습니다.
2002년 당시 83세였던 전세근 제보자는 우물에 떠 있는 달 꿈을 꾸고 아들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제보자는 아들을 낳을 때 꿈을 꿨는데, 밤에 마당에 있는 우물 안을 봤더니, 그 속에 아주 동그란 달이 떠 있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우물 안에 달이 떠 있으니 물맛이 좋겠구나 하면서 들여다보고 있다가 꿈을 깼는데 자식을 낳고 보니 아들이었다.
또 화천 신대리에 사시던 당시 86세의 조옥희 할머니는 정말 후일담까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는데요. 첫 아들 가졌을 때 호랑이가 꿈에 보였는데, 아들이 있는데 호랑이가 와서 장손 가락을 꽉 깨물어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결국 장손이 죽고 둘째가 장손이 되었다. 둘째 아들 가졌을 때는 어디 가서 고물을 주워서 대들보까지 닿도록 쌓아 두었는데, 아들이 나중에 커서 창고를 얻어서 짐을 쌓아 놓고 파는 유통업을 하고 있다. 첫딸을 낳았을 때는 꿈에 누가 담뱃대를 주는 것을 받아 쥐었는데, 담뱃대는 아들을 낳아야 하는데 딸을 낳았으니, 그게 그만 죽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6. 참 태몽을 무시하면 안 되겠네요. 태몽의 예지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아들딸에 대한 성별 뿐 아니라, 죽고 사는 수명에 대한 것도 미리 알려주는 군요. 그런데 박사님 제가 예전에 강릉 오죽헌에 갔더니 몽룡실이라는 방이 있고 그곳에서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이율곡 선생을 낳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율곡 선생의 아버지 이원수 공의 경험담은 아주 특별하다면서요? 애기해 주세요?
예, 그렇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태몽과 결부된 이야기입니다. 바로 ‘너도 밤나무’라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율곡은 어머니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낳은 것으로 오죽헌의 몽룡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 이원수에게도 일화가 있다.
이원수가 한양에 있다가 아내가 보고 싶어서 강릉으로 가던 길이다. 평창의 봉평에서 날이 저물어 주막에 들렀다. 주막에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주모가 방에 들어와서 같이 잠자리를 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을 했다. 그런데 어떤 연유인지 이원수는 한사코 거부하고 일찍 일어나 강릉으로 향했다. 강릉에 도착하니 부인이 미리 잠자리를 준비해 두고 이원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 신사임당도 언니 집에 갔다가 남편 이원수가 올 것 같아 일찍 집으로 온 것이다. 그런데 살풋 잠든 사이에 황룡이 등천을 하는 꿈을 꾸었다. 분명히 태몽인 것을 감지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원수와 신사임당은 율곡을 낳았던 것이다.
이원수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던 길에 전에 머물렀던 봉평의 주막에 들렀다. 대장부 체면에 주모의 간청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이원수는 주모에게 그날은 미안했다고 하면서 오늘은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주모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날은 이원수의 얼굴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있어서 잠자리를 같이 하면 훌륭한 아들을 둘 것 같아서 잠자리를 요구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이를 잘 기르라고 하면서 아이가 열일곱 살이 되면 호환에 갈 것이라고 하였다. 이원수는 정신이 번쩍 들어 그러면 아이를 구할 방도도 알지 않겠냐고 하였다. 주모는 밤나무 천 그루를 심으라고 하였다. 밤나무 천 그루가 호환을 막아줄 것이라고 하였다. 너도 밤나무이야기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율곡이 커서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어떤 노인이 찾아와서 율곡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이원수는 주모의 말이 생각나서 율곡을 왜 보여 달라고 하냐며 묻자. 노인은 율곡을 잡아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원수는 아들의 수명을 늘리려고 밤나무 천 그루를 심어서 공덕을 쌓고 방비하였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노인은 밤나무를 보여 달라고 하였다. 노인과 같이 가서 밤나무를 세는데 아무리 세어도 한 그루가 모자랐다. 그랬더니 노인은 공덕이 모자라니 이제는 율곡을 먹어야 겠다고 하였다. 그때 옆에 있던 나무가 “나도 밤나무, 나도 밤나무, 나도 밤나무”라고 외쳤다. 노인은 “너도 밤나무냐.”고 묻자. 또 그 나무가 “나도 밤나무”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노인은 커다란 호랑이로 변해서 가면서 못내 아쉬워했다고 한다.
7. 태몽이야기 정말 얽힌 이야기가 많고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태몽이야기가 향유되는 데는 어떤 의의가 있을 것 같은 데요?
예, 분명 태몽이야기가 전승자에 의해서 향유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태아에 대한 기대감 충족이 가져온 것일 겁니다. 태어날 아이가 어떻게 생겼고, 성별이 무엇이며, 커서 무엇이 될 것이고, 잘 커서 가계를 잘 잇기를 바라는 마음이 태몽의 예지력을 중심으로 향유되었을 겁니다.
둘째는 생명탄생에 대한 신비감이 태몽이야기를 향유하게 했을 겁니다. 아기가 태어난다는 신비감, 정말 대단하잖아요. 이런 마음은 곧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꿈의 예시적 기능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아기의 탄생을 기원하며 태몽이야기를 이어간 것이지요.
8. 참, 예쁘고 멋진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재롱을 부리면서 자라는 아이들을 볼 때 마다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어요. 태몽이야기, 오늘 박사님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