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허게 쌈질 밖에 모르는 깡패 하나가 각하들이 들락거리는 각하동(각화동) 큰집(감옥, 점잖게 말해서 교도소)에서 나왔다. 깡패라고 자못 거물처럼 으스댔는데, 두부 가지고 마중 나온 시러배놈도 한 명 없었다.
‘어메, 환장하것네. 근께 이것들이 나를 어찌 보고 이런디야? 암튼 이제 나와슨께 지그들은 디져부렀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다 빈 주먹질을 몇 번 해대는 그 깡씨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요란했 다.
‘남편장(남평장)은 너무 멀고 서방인가 거그 그 말바우 시장에 가서 어쩌코롬 국밥이라도 한 그릇 묵어야제. 암 남편이나 서방이나 그 놈이 그놈이제.’
깡씨는 오직 믿고 살아온 주먹으로 헛손질 몇 번 하더니, 주절주절 혼잣말을 주절이며 가까운 서방 쪽으로 발걸음을 잡았다. 거기에 말바우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저 놈은?’
말바우 시장으로 갔지만, 호주머니는 무일푼이라. 여전 석냥의 김삿갓 보다 못한 신세를 한탄하며 국밥집 근처를 비루먹은 개 모양 침을 꼴딱이며 비실비실 도는데, 눈에 확 띄는 게 있다. 주먹 하나로 남편장이고 서방장이고간에 평정을 한 깡씨의 눈이 그만 확 뒤집혀졌다.
감방 동기였다. 잿빛 승복을 점잖게 입고 목탁을 치면서 염불을 외우고 있는 것이다.
앞에 놓인 불전함에는 돈도 이상 수북했다. 지켜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고 그 불전함에 계속 돈을 놓는 것이다.
‘오메, 오메 저거시 무슨 조화랑가?’
국밥 냄새에 이미 환장을 한 깡씨의 창자가 이번엔 돈 냄새에 또 한 번 환장을 했다.
“나무아비타불, 관세음 보살…, 보살, 보살…….”
“저거시 겁나게 머시기헌 재주를 가저구만이. 어메 이자 요 주먹은 조또, 머또 아니네.”
각하동 큰 집에 있을 때다. 지금 승복을 입고 있는 감방 동기가 한 말이 떠올랐다.
“어메 근께 깡패를 헐라면 형씨 같이 해서는 안 되아라. 헐라면 거 머시냐, 미국의 ‘조지고 부셔라’(조지 부시) 대통령처럼 해야 한당께라. 머시든지 ‘조지고 부셔!’ 해야 쓴당께라우. 그러든지, 누구에게나 ‘아비!, 아비!’ 하고 간살을 부릴줄 아는 일본의 ‘아비’(아베) 수상처럼 간살을 잘 부려야 허지라우, 에또 머시냐, 그랑께 ‘조지고 부셔라’ 대통령이 말 한 마디 탁 튕긴께 우리나라 ‘너무혀’(노무현)대통령도 해도 너무 헌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이라크 놈덜 디져도 ‘노무일’(남의 일)이여, 노무일인께 나 몰러 하면서 군대를 파병시킵디여 안? 그라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여라우. 누구에게든지 너 말 ‘터블레’?, 너 마빡 ‘터질레?’ 하고 잘난 척 하는 영국의 ‘터블래’(토니 블레어) 수상, 아, 글고 또 머시냐? 그루지아라고 들어봤소? 거 구 소련에서 독립한 나란디(나라인데) 잘 몰라도 돼요. 암튼 그 그루지아의 ‘애달아도 쉬파리되야’(에두아르도 쉐바르드나제) 대통령도 백성들이 머시라고 하면 ‘잔소리마, 그러케 애달아도 느그들은 쉬파리(쇠파리) 되야부러’하고 목에 힘주다가도 조지고 부셔라의 말에 군사를 이라크로 파견했당께요. 거 오스트레일리아의 조옷나와도(죤하워드) 총리, 근께 누가 뭐래도, 멋 나와도 지맘대로 해뿌리는 그 조옷나와도 총리도 조지고부셔라 앞에서는 설설 긴다잖소? 참 그라고 본께 그 둘이가 같은 종씨구만이라우. 어디 조씨께라우? 한번 알아봐야것네이. 암튼 또 머시냐? 알바아니아(알바니아)도 한 몫하는디”
여기서 잠깐 얘기가 끊어진다. 우리 깡씨가 질문을 한 것이다. 말도 안되는 말로 안 체를 했다.
“이거봐. 거 무신 말인지 대충은 알것는디, 알바 아니야는 우리가 알바 아니잖여? 다 아러뿌리면 재미 업잔여?”
“허허, 모름시로 왜 그러시오. 듣기나 하랑께라우. 근께 알바아니아의 ‘아프로들 모이시오’(알프레드 모이씨유) 대통령은 조지고 부셔라의 앞잡이가 되어 세계만방을 향해 외치지요. 이러코롬 두 주먹 불끈 쥐고 아프로들(앞으로들) 모이시우! 조지고 부셔라의 개들은 아프로들 모이시우! 하고 외친당께라우. 근께 그 정도는 되어야 깡패재, 안 그요?”
밑도 끝도 없는 말로 큰 집에 신세지고 있는 동기들을 감동 시키던 승복 입은 사내였다.
그러니 승복 입고 돈 버는 것쯤이야 식은죽 먹기인지도 모른다.
그 때 깡씨와 승복 입은 큰집 동기의 눈길이 마주쳤다.
그 순간이다. 난데없는 소리가 그 승복 입은 감방 동기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길건너, 나무 아비타불, 국밥집, 관세음보살, 기둘려, 기둘려, 보살 보살 보살. 길건너, 나무아비타불, 국밥집, 관세음 보살, 기둘려, 기둘려, 보살 보살 보살 보오살…”
‘그려, 그라제. 지가 날 무시혀? 그려. 기둘리제. 국밥 한 그릇 떠억 배창시 터지게 먹고 얼마든지 기둘리제.’
남편이고 서방이고 간에 주먹 하나로 장바닥을 평정했던 깡씨는 이제 눈길 하나로 큰집 동기를 평정하고 거들먹거리며 길 건너 국밥집을 향했다.
“아, 사람 한 놈 주기면 살인범이요, 둘 주기면 살인마요, 여럿 주기면 대통령이랑께요. 조지고 부셔라는 지그 나라도 부족해서 여그 저그 세계 사람들까지 악마인가, 악의축인가 머신가 해대면서 주기닝께 대통령이재라아. 아, 멀리 갈꺼 없재라. 아, 거 두환이 보시오. 지그 고향에 공원까지 세운다 안 합디여. 이자 나도 나가먼 고등으로다가 머릴 써서 불쌍한 백성들 등쳐먹을라요. 이자 여그는 다시는 안올라요. 형님도 주먹 함부로 쓰덜 마시오. 머리빡만 잘 굴리면 등쳐먹고 잘 살면서 여그 안와도 된당께라. 나가 책임질테니께 잘 계시다 나오시오? 기다리것구만이라.”
큰 집을 먼저 나가면서 승복 입은 사내가 하던 말이 후딱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랴, 그랴, 29만원인가 밖에 없는 놈도 잘 살고, 정태순가 그 자식도 잘살고, 수십억 수백억 세금 도둑질 해먹어도 잘 사는디, 이자 나도 대그빡 잘 굴려서 크게 살아야지. 남편이고 서방이고 간에 주먹질 그만 둬야제. 주먹질 안혀도 국밥 먹자녀? 안 그려?’
황금 돼지해는 역시 황금돼지해인가보다. 우리 깡씨 기분 좋아 히죽거리며 서방 말바우 시장 길 건너 국밥집으로 들어선다.(2007.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