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더 기다릴 수 없습니다" 물속서 연설한 장관한은진 입력 2021. 11. 12. 00:02 댓글 35개
[모두가 지구의 사람들] 지구인들의 삶 직격하는 '기후변화 폭탄'
투발루 외무장관 사이먼 코페가 바다에 들어가 연설을 하고 있다. 코페 장관이 들어간 바다는 원래 육지였다. 로이터 유튜브 영상 캡처
지난 2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세계 지도자들이 모였다. COP26은 남태평양 가운데에 위치한 섬나라 투발루의 외무장관 사이먼 코페의 연설 영상을 공개했다. 코페 장관은 영상에서 “지금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어 말뿐인 약속을 기다릴 수 없다”며 “기후 이동성(Climate Mobility, 날씨 관련 재난으로 인한 비자발적 이주 현상)이 가장 먼저 보장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코페 장관을 비추던 카메라는 곧 그가 들어갔던 바다를 담았다. 정장 차림을 한 채 바다에 들어갔던 코페 장관은 “촬영은 옛날에 육지였던 곳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실제 투발루의 평균 육지 고도는 해발 6피트 6인치(약 2미터)밖에 되지 않으며 매년 0.5㎝씩 물이 올라오고 있다. 인구 1만2000명의 작은 나라 투발루는 코페 장관의 말처럼 최악의 경우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투발루에게 단순한 위기감을 주는 걸 넘어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COP26에 깜짝 등장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섬나라들의 회의가 열린 회담장을 찾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하와이 출신임을 강조하면서 “섬나라는 광산의 카나리아”, 즉 섬나라를 통해 기후변화의 낌새를 미리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섬나라에게 지구 온도 상승폭 2.7도와 1.8도는 차이가 크다”고 전했다. 각국이 이익을 위해 책임을 돌리며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섬나라들은 말 그대로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인구 6만 명의 섬나라 마셜제도는 지속적인 기후위기로 가뭄과 홍수에 시달린 끝에 아예 국가 차원에서 생존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COP26에 참석한 티나 스테지 마셜제도 환경특사는 “주요 나라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걸 서둘러야 한다”며 “기후변화를 일으킨 부유한 나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팔라우의 수랑겔 휩스 주니어 대통령 또한 COP26에서 “지금처럼 느리고 고통스럽게 우리를 죽일 바에는 차라리 우리 땅을 폭격하라”며 비판했다.
각 나라들은 COP26에서 내용을 부풀리며 장밋빛 목표치를 내세웠지만 지구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 중국은 전력난으로 지난 4일 하루만 1188만톤의 석탄을 생산했다. 인도는 넷제로(탄소 순 배출량 0) 달성 시점을 국제사회 기준인 2050년보다 무려 20년 늦은 2070년으로 못박았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에 기후위기 피해 보상금을 달라고 하고, 각국은 각자의 입맛대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게 평가한 뒤 회의에 제출했다. 그 사이, 정말로 기후위기로 인해 생존 문제가 달린 사람들의 처절한 외침은 잊혀졌다.
부동산 가격이 보여준 기후변화… 더 이상 남일 아니다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모습. 왼쪽은 현재의 모습, 오른쪽은 기온이 3도 올랐다고 가정해 구현한 사진. 클라이밋 센트럴 제공
생존 문제를 겪는 건 외딴 섬나라 뿐만이 아니다.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벤저민 키스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인 고급주택가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비치 발 하버의 2018년 평균 주택가격은 2000년대 초에 비해 거래량과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바닷물이 올라오면서 당장 위험한 곳은 비교적 안전한 곳에 비해 거래량이 16~20% 적고 가격도 5% 정도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과학자들은 2045년까지 지금처럼 기온이 오른다면 30만호의 해변가 집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 주장했다. 기후위기를 무시한 채 보편적인 집값 하락이라고 보기에 변화는 심상치 않다.
중국 광저우의 모습. 왼쪽은 현재의 모습, 오른쪽은 기온이 3도 올랐다고 가정해 구현한 사진. 클라이밋 센트럴 제공
베트남 하노이의 모습. 왼쪽은 현재의 모습, 오른쪽은 기온이 3도 올랐다고 가정해 구현한 사진. 클라이밋 센트럴 제공
그린피스가 지난해 발표한 ‘2030년 한반도 대홍수 시뮬레이션’. 그린피스 갈무리
미국의 기후변화연구단체 클라이밋 센트럴은 바닷물이 오르면 가장 위험한 나라로 중국,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를 꼽았다. 대한민국은 기후변화 영향을 매우 크게 받을 인구 2500만 명 이상 20개 나라에 포함됐다. 특히 상승하는 바닷물은 조용히 항구도시 부산을 삼키고 있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의 백사장은 2016년 기준 13만4884㎡였으나 2020년 11만3079㎡, 대략 축구장 세 개만큼 줄어들었다. 그린피스는 기후위기에 놓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시로 경기도 고양, 화성, 안산, 인천 남동구 등 수도권을 꼽았다. 남의 동네, 남의 일이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많은 도시가 위험에 빠졌다. 외국도 아닌 우리나라 안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난민이 생길 가능성을 빼놓을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고했지만… 기후변화, 어디까지 왔나
2009년 10월 몰디브 바닷속에서 진행된 내각회의. 연합뉴스
2009년, 로맨틱한 휴양지로 알려진 섬나라 몰디브에서 내각회의가 열렸다. 정치인들은 정장을 입은 채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잠수복을 입고 산소통을 짊어진 채 바다에 들어갔다. 국제사회에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몰디브 정치인들의 모습은 잠시 주목을 받았지만, 아직도 몰디브는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몰디브에서 수중 회의가 열렸던 2009년으로부터 12년이 흘렀지만 몰디브의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COP26에 참석한 섬나라들은 모두 “지구의 기온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지난 10일(현지시간) COP26에 참석한 일부 국가들은 석탄발전 중단에 대해 “일부만 찬성한다”거나 단서를 다는 등 기후위기 해결과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중국은 아예 불참했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감축량 목표도 턱없이 낮았다. 섬나라 뿐만 아니라 선진국들도 기후위기에 처해 있음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목표였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이번 COP26을 두고 “정치인들이 미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척 연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러 평가를 의식한 COP26 의장국인 영국은 “내년 말까지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재검토해 파리 협정에 맞도록 강화하자”고 제안했지만 아직 내용이 부실하다는 의견도 많다. 이제는 정말 현실로 다가온 기후변화를 준비하고 막기 위해 어떤 목표를 세울지 12일 폐막할 COP26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