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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4.13 03:30
대동여지도와 김정호
▲ 22권의 지도를 모두 펼쳐 연결한 대동여지도의 모습. 세로 약 6.7m, 가로 약 3.8m의 대형 전국 지도가 완성돼요.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청은 지난달 30일 일본에서 들여온 새로운 형태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공개했어요. 대동여지도는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1804~1866 추정)가 제작한 지도예요. 지금까지 38점이 남아 있고, 그중 3점이 보물로 지정될 만큼 우리나라 전통 지도를 대표해요. 이번에 공개된 대동여지도는 1864년 제작한 목판본에 채색이 돼 있어요. 또 1856~1859년 김정호가 만든 또 다른 지도 '동여도(東輿圖)'에 실린 지리 정보가 여백 부분에 추가로 쓰여 있는 게 특징이에요. '대동여지도'와 '동여도'가 하나의 지도에 담겨 있는 희귀한 사례죠. 대동여지도는 어떤 특징이 있고, 김정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아볼까요.
전통 지도의 결정판, 대동여지도
중앙집권 체제를 추구했던 조선 왕조는 효율적인 통치와 행정, 그리고 영토 확장과 국토 방위를 위해 지도를 자주 만들었어요. 각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지리지(地理志)도 만들었어요. 지도가 그림이라면 지리지는 글로 적은 거예요. 1481년에 완성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은 각 군현(郡縣)의 역사와 풍속, 지형, 특산물, 교통 등이 자세하게 적혀 있지요.
'대동여지도'는 김정호가 1861년(철종 12년) 세상에 내놓은 전국 지도예요. 우리나라의 지도 제작 전통을 하나로 모았을 뿐 아니라 현대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확하고 실용적이에요. 그는 조선의 국토를 남북 120리(里) 간격의 22개 '층'으로 나눴어요. 각 층의 지도는 1권의 책으로 묶었지요. 병풍처럼 펴고 접을 수 있도록 해 휴대가 간편하고 보기 쉽게 만들어졌어요. 이렇게 제작된 22권의 책을 모두 펼쳐 연결하면 세로 약 6.7m, 가로 약 3.8m 크기의 대형 전국 지도가 완성돼요.
대동여지도는 한반도의 뼈대가 되는 산줄기를 중심으로 우리 국토의 자연환경을 정밀하게 묘사했어요. 이 지도에는 국토의 모든 산이 백두산에서 비롯된 산줄기, 곧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갈라져 나간 것으로 그려져 있어요. 물줄기는 곡선으로, 도로는 직선으로 표현해 구별했어요. 도로에는 10리마다 점을 찍어 지도를 보는 사람이 직접 거리를 계산할 수 있게 했어요. 이는 근대적인 측량 기술로 제작된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확하다고 해요.
대동여지도에는 서울과 지방의 행정 중심지와 경계를 정확하게 표기하고, 도로와 역참(驛站·말을 갈아타던 곳), 창고와 목장 등 다양한 정보를 함께 수록했어요. 또 전국에 흩어져 있던 산성과 봉화 등 군사시설을 꼼꼼히 표기했어요.
대동여지도는 현대 지도처럼 기호를 활용해 1만1700여 개에 달하는 많은 지명을 쉽고 빠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했어요. 이러한 기호들은 '지도표(地圖標)'라는 일종의 '일러두기'로 정리해서 이해하기가 쉬웠지요.
김정호는 많은 사람에게 지도를 보급하기 위해 대동여지도를 목판(木版) 인쇄본으로 만들었어요. 대동여지도를 간행하려면 약 60매 정도의 목판이 필요한데 현재 12매가 남아 있어요.
조선 지도학의 거인, 김정호의 생애
김정호는 많은 지도와 지리지를 남겼지만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이는 김정호의 신분이 중인(中人·조선 시대 신분 계급 중 중간 계층)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는 재능과 열정, 그리고 부단한 노력으로 조선 지리학과 지도학의 성과를 집대성하는 커다란 업적을 남겼어요.
김정호는 평생 청구도(靑丘圖)와 동여도, 대동여지도 등 3대 대형 전국 지도를 제작했어요. 또 모든 고을의 지리 정보를 담은 동여도지(東輿圖志)와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등 3종의 전국 지리지를 편찬했어요. 이 중 동여도지는 그가 지도와 지리 연구를 시작하면서 쓴 첫 지리지예요. 책 곳곳에 많은 교정과 첨삭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그가 얼마나 성심을 다해 지리 연구에 몰두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날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에 대한 인식은 약간 잘못된 측면이 있어요.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초등학교 교과서인 '조선어독본(朝鮮語讀本)'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동여지도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요. 어려서부터 지도에 관심이 많았던 김정호는 백두산을 8번이나 오르고 전국을 3번이나 답사해서 딸과 함께 지도를 만들어 나라에 바쳤는데, 흥선대원군은 국가 기밀인 지리 정보가 유출될 것을 염려해 지도를 압수하고 김정호 부녀를 옥에 가둬 버렸다는 줄거리예요. 이 이야기는 광복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의 교과서에 실렸어요. 아직도 조선어독본의 내용이 맞는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1925년 최남선이 신문에 쓴 글이 바탕이 된 것으로, 이를 뒷받침할 다른 역사적 근거가 없다고 해요. 조선총독부에서 이 이야기를 교과서에 실은 것은 '김정호처럼 위대한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조선'을 묘사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어요. 책 뒷부분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러일전쟁과 조선토지조사사업 때 널리 활용됐다는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어 대조를 이루죠. 조선어독본에는 김정호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위인이지만 시대를 잘못 만난 비극적 영웅으로 묘사됐지요. 하지만 김정호가 아무런 기반 없이 혼자 힘으로 대동여지도를 완성한 것은 결코 아니에요. 대동여지도는 조선 초기부터 만들어진 수많은 지도와 지리지가 집대성된 결과물이라고 보는 게 맞아요. 조선 사회가 성취한 국가적 능력과 문화적 수준의 일부가 김정호라는 큰 나무를 통해 열매를 맺은 것으로 보아야 한답니다.
▲ 대동여지도는 책으로 묶어 접고 펼 수 있게 만들었어요. 휴대가 간편하고 보기 쉽지요. /국립중앙박물관
▲ 서울과 주변 지역을 그린 대동여지도. /국립중앙박물관
▲ 지도에 쓴 기호를 정리해 둔 ‘지도표(地圖標)’(사진 왼쪽)와 함경도 지역의 지도. /국립중앙박물관
▲ 대동여지도의 표제 목판. /국립중앙박물관
▲ 함경도 갑산 지역 지도의 목판. /국립중앙박물관
이병호 공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기획·구성=김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