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경남 내륙은 언제나 낯설다.
지리산에 가로막혀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함양-거창-합천-의령 등으로 이어지는
경상 내륙지방으로의 여행은
그래서 항상 설래고 미심쩍다.
함양 동호정은
대전 진주 간 대진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거창방향으로 들어가다보면
호젓한 국도변에 갑자기 나타난다.
함양 거창 등 지리산 자락에 은거하였던
많은 선비들의 청아한 족적들이
서원으로 누각으로 정자로 흩어져 있는 곳
동호정의 멋스러움은
정자의 크기에 걸맞게 정자 앞을 흐르는
개울의 거대한 너럭바위로 완성된다.
20평은 넘어보이는 이 너럭바위엔
옛 선인의 이름들이 새겨지고
오목한 곳들에 빗물이 고이고
드러누어도 좋을 편안함이 있다.
거창은 전통적으로 선비의 고장이다.
산고수려하고 타 지역과의 경계가 분명하여
지역 자체 내에서 면학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문화가 이어져 왔다.
수승대와 그 옆 구연서원이 대표적 유적인데
수승대의 사철 맑고 푸르름과
구연서원의 고즈넉함이 잘 증명해준다.
함양과 마찬가지로 거창 땅에도
향기로운 이름을 가진
수많은 선비적 삶의 발자취들이 넘쳐 난다.
그 대표적 흔적이 수승대이다.
시리도록 차가운 계곡의 물들이
거대한 돌을 감싸고 돌아가는 곳
사람들은 왜 이곳저곳에 이름을 남길까.
그것이 영구적이지도 않고
자랑스러운 행위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알텐데도
바위에, 나무등껍질에, 술집 벽에.....
바위에 새겨진 이름 하나하나엔
그 이름에 맞는 삶이 있었을 것이다.
왔다 갔다는 흔적일 수도 있고
영구적으로 자신을 남기고자한 욕망일 수도 있겠다.
거창의 황산리엔
20여 가구의 고택 체험지구인
황산고가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타 지역의 여느 고택 또는 한옥지구처럼
새로 지은 듯한 날렵하고 깨끗한 고택들이 어니라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선비들의 삶이 묻어나는
그야말로 고택들이다.
고택체험은 도시민들에겐
하루밤 로망 같은 것이다.
전주한옥마을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한옥체험은 많이 불편하다
기본적으로 전통한옥의 구조가
작은 방과 실외 화장실인데
최근 실내 화장실로 개조 과정에서
그나마 작은 방이 더 작아지고
입식문화에 어쩡쩡하게 맞추어 가느라
침식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이 마을처럼 민간이 생활하는 한옥마을의 방 하나 빌려 자는 일은
여관과는 다른 불편함을 미리 감내해야 한다.
이 곳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