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홈리스의 좌절과 분노가 짙게 배인 회현역 지하도
---------------------------홈리스들의 야간상담 이야기
캐럴 송조차 침묵하는 남대문시장의 밤이었다.
저녁 9시경, 남대문시장으로 물건을 띠러 오는 장사치들을 실은 관광버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서 있어야 할 거리는 적막했다.
밤장사로 먹고 사는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사라진지 오래다.
한참 시끌벅적해야할 남대문시장이 침묵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주머니가 닫혀
열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홈리스의 친구들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나오는 야간상담.
오늘도 다섯 명의 아침을여는집 입소 가족들과 남산과 회현역으로 야간상담을
나왔다.
남산, 회현 3-4, 회현 6-7, 3개조로 나뉘어 야간상담에 자원 활동가들을 투입했다.
내가 맡은 구역은 지하철 4호선 회현역 6,7번 출구 지하도였다.
대략 6~7명 정도의 홈리스들이 나름대로 차분하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소란해졌다는 지하철 2호선 을지로 입구역 지하도에서 회현역으로
노숙 장소를 옮겨보려고 사전답사(?)를 온 김구용(가명) 씨를 먼저 만났다.
회현역은 처음이라고 밝힌 김씨는 내일부터 짐을 분위기 좋은 이쪽으로
옮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뭐 필요한 것은 없나요.
가능한대로 구해다 주겠”다고 하니, 뜻밖에도 그는 불만을 털어놓았다.
“얼마 전에 아름다운 가겐가 뭔가 하는 곳에서 옷을 나눠주었잖아.
가뜩이나 잠바때기는 남아도는데, 왜 그런 것들을 나눠 주는지 모르겠어.
우릴 무시하는 가야 뭐야. 나눠줘도 좋은 것 좀 나눠주지,
왠 쓰레기들만 나눠주는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히려 속옷이나 양말 같은 건데.”
김씨의 푸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수 없었다.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홈리스들에게 무엇을 제공할 때,
그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주고 싶었던 것을 주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홈리스들에게 무엇을 나눠 주더라도 공급자 중심의 시각을 버리지 못했다.
수요자 입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나눠야 한다는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과
자세조차도 어길 때가 많았다.
양말 한 짝, 칫솔 하나, 면도기 한 개를 그들에게 제공하더라도
‘필요에 따른 공급’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김씨에게 한 수를 배우고 머리가 띵해진 채 커피를 회현역 6,7번 출구에 있는
홈리스 분들에 따라주었다.
그들의 이런 푸념 저런 푸념을 듣다 보니 어느새 10시,
우리는 회현역 3,4번 출구 쪽으로 이동하였다.
회현역 3,4번 출구로 들어서니,
술 마신 젊은 홈리스가 심하게 주사를 부리고 있었다.
경험 많고 나이 지긋한 홈리스들은 조용히 잠을 청하고 있었으나,
그는 우리들에게 대화를 하자는 건지 싸우자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시비조의 말을 걸고 있었다.
대략 20대 후반으로 보인 그의 행패는 참기가 힘들었다.
만약 야간상담이라는 공적활동이 아니라 거리를 걷다가 부닥쳤다면
조용한 골목에서 한 방 매겼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 정도로 눈꼴시게 행패를 부렸지만,
그들의 소란 행위 속에 깔린 좌절과 분노가 내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청년 홈리스의 행패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된 기형적 사회구조의
경쟁에서 낙오된 청년의 분노였고, 좌절이었다.
그들의 분노와 좌절이 얼마나 컸으면,
홈리스의 인권과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우리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을까?
상담을 같이 나간 아침을여는집 입소인들이 그의 행패를 보고 한마디 씩 던졌다.
“내 아들뻘밖에 안 되는 어린놈이 그리 설쳐 되니 미치겠더라구.
간이고 쓸개고 빼놓고 그 놈들을 대해야지, 안 그러면 싸움밖에 안 나겠어.”
“우리들이 없었다면 아마 그 새끼들 경찰한테 뒈지게 맞았을 겁니다.
경찰이 아까 왔다 갔어요. 우리들 덕택에 그 놈 횡재한 겁니다.”
“아마, 그놈들 그렇게 계속 행패 부리다면 누구에게 맞더라도 뒈지게 맞을 거야.”“때릴 필요까지 있겠어. 술 취해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갈 때,
뒤에서 밀어 버리면 그만이지 뭐.”
섬뜩했다. 얼마나 시달렸거나 눈꼴셨으면 이런 말들을 할까?
복지 서비스의 수요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받다가,
복지 서비스의 제공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다보니 간도 쓸개도 빼놓고
홈리스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침을여는집 입소인들의 말을 옆에 서서 듣던 나는,
아침을여는집 입소인들의 이야기도 젊은 홈리스의 분노와 좌절도
모두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거리는 오늘도 냉혹했다. 연말이면 소음공해를 일으키던 캐럴 송도 사라진
거리이니,
그 냉혹함은 직접 거리에 서 보지 않고는 모를 것이다.
남대문시장의 한적함과 거리의 냉혹함이 홈리스들을 지하도의 어둠 속으로
내모는 현장에서 난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