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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릇파릇하게 젊었던 30여년전 애절한 절창(絶唱)으로 '한오백년'을 불러 어르신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가객(歌客)이 인생의 황혼기에 경쾌하고 달콤한 리듬으로 '헬로'를 불러 젊은이들의 감성을 뜨겁게 자극하고 있다. 대중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던 가수 조용필이 '박제(剝製)된 전설'에서 뛰쳐나와 한국가요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조용필은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이다. 최근 네이버 뮤직을 통해 생중계된 '프리미어 쇼케이스-헬로'는 총 25만 명이 실시간으로 관람했다. 이는 인기 아이돌 그룹이 앞서 기록한 수치의 2배에 달한다. 발매 당일 반나절 만에 2만장이 매진된 조용필의 19집 앨범은 완판됐다. 음반 발매 첫 날 1000장이 넘게 팔린 것은 3년 전 JYJ의 The Beginning(더비기닝)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그 앨범을 사려고 300m이상 줄을 선 모습이 지난주 조간신문 2면을 장식했다. 그동안 음반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20대가 조용필의 19집 '헬로'를 사기위해 지갑을 열었다는 조사결과도 등장했다.. 가히 조용필 신드롬이다. "조용필 노래는 세대와 시공을 초월했다"는 평론가의 지적도 있고 아이돌그룹 소속사에 가왕의 화려한 컴백에 '울상'을 짓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영원한 오빠' 조용필은 이미 '국민가수'였고 가왕'이었다. 몇년전 모일간지에서 가요평론가와 음반제작자, 가수들을 대상으로한 해방이후 최고의 가수에서 설문조사에서 조용필은 리스트의 맨꼭대기에 자리했다. 평론가들의 아낌없는 찬사가 줄을 이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조용필은 아직도 저평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난 조용필이 우리 대중음악사에 거대한 산맥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분출해야할 음악적인 에너지가 남아있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조용필은 현재진행형 가수라는 점을 간파한것이다. 어찌보면 조용필 열풍은 대중음악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회학적인 현상이다. 지금 60대는 젊다. '세시봉'으로 각광 받았던 가수 김세환도 환갑을 훨씬 넘겼지만 얼마나 젊은가. 신체적인 나이만 젊은것이 아니라 생각도 젊다. 조용필은 이시대 수많은 젊은 중노년층의 로망을 실현한 가수다. 인생 1막에서 은퇴했지만 나이를 초월해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싶은 열망 말이다.
하지만 조용필은 우연히 열풍을 일으킨것은 아니다. 그는 독학으로 음악을 배워 시대의 트렌드를 선도했고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40년간 정상을 지켰다.
그는 비주류로 시작했다. 외국어대학을 나온 국민배우 안성기와 고교동창인 조용필은 대학을 가지 못했다. 20대초부터 밤무대가 그의 일터였다. 사이키조명이 번쩍이는 미군부대 무대가 그의 음악학교였다. 27세인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 전까지 무명의 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마초파동으로 추락했으나 '창밖의 여자'로 부활하면서 그의 음악적 재능이 빚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완벽을 추구했다. 진성, 가성, 탁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가수라는 평을 듣는 조용필은 가창력에 관한한 평론가들조차 언급을 피한다고 한다. 피를 토할만큼 스파르타식 훈련을 거듭한 결과다. 국내 최고의 세션맨으로 구성된 자신의 밴드 '위대한 탄생'의 사소한 실수에도 불같이 화 낼만큼 음악에는 타협도 없고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혁신적인 가수였다. 대한민국 가수중 그만큼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히트시킨 인물은 없다. 끝없이 음악적인 변화를 모색하면서 대중의 감성을 파고든 것은 오랜기간 정상을 지킨 원동력이다. 새앨범 '헬로'는 아예 외국작곡가에게 곡을 맡겼다.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것이다.
조용필은 6.25사변이 일어난 1950년생이다. 이 세대는 얼마나 험난한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세월을 보냈는가. 보릿고개를 겪고 유신독재를 경험했으며 한강의 기적과 압축성장의 주역이었다. 하지만 일할 수 있는 힘이 있어도 이젠 뒷전으로 물러나야 세대이기도 하다. 63세 조용필은 영원한 현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웅변했다. 스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력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무엇보다 젊은이와 소통하려면 자신의 고정된 이미지를 깨고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인생을 길어지고 일할수 있는 나이는 늘어난 중노년층에게 조용필은 '바운즈'와 '헬로'를 부르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 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