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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말씀 2013년1월13일[일] - 2013년 1월18일[금] | |||
요일 |
제 1 독서 |
화답송 |
영성체 송 |
복음 | |||
13[일] (백) 주님 세례 축일 |
[1독] 이사야서 42,1-4.6-7<또는 이사 40,1-5.9-11> |
주님이 당신 백성에게 강복하여 평화를 주시리라. |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보았다. 그래서 이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였다. |
[2독] 사도행전 10,34-38<또는티토 2,11-14; 3,4-7> | |||
[복] 루카 3,15-16.21-22 | |||
14[월] (녹) 연중 제1주간 월요일 |
히브리서 1,1-6 |
모든 천사들아, 하느님께 경배하여라. |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
마르코 1,14-20 | |||
15[화] (녹) 연중 제1주간 화요일 |
히브리서 2,5-12 |
당신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을 아드님이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
마르코 1,21ㄴ-28 | |||
16[수] (녹) 연중 제1주간 수요일 |
1독] 히브리서 2,14-18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
2독] 갈라티아서 4,4-7 | |||
복] 마르코 1,29-39 | |||
17[목] (백)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
히브리서 3,7-14 |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라. |
마르코 1,40-45 | |||
18[금] (녹) 연중 제1주간 금요일 |
히브리서 4,1-5.11 |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
주님, 당신의 기적들을 낱낱이 전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 찬미하나이다. |
마르코 2,1-12 |
이 서간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스무 해쯤 지난 50년 초, 사도가 고린토에 도착하고 나서 조금 뒤 디모테오가 데살로니카의 소식을 가지고 왔을 때에 발송되었을 것이다. 이 때에는 복음과 관련된 여러 전통이 이미 꼴을 갖추었지만, 현재의 복음서들은 아직 저술되지 않았다. 물론 신약성서에는 데살로니카 1서보다 더욱 오래 된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본문들이 있기는 하지만, 문학적인 관점에서는 이 서신이 그리스도교 최초의 문헌이 된다.
3. 데살로니카 2서
데살로니카 2서는 바오로 사도가 1서를 보내고 나서 조금 뒤에 썼다는 것이 상당히 공통된 견해이다. 사실 발신인과 수신인이 같음을 드러내는 동일한 인사말로 시작하는 이 두 서신은(1데살 1,1과 2데살 1,1-2), 초대 교회에서부터 아무런 이의 없이 바오로의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데살로니카 2서를 바오로가 직접 집필하였느냐는 친저성(親著性)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우선 여남은 낱말이 이 2서에만 나오고 바오로의 다른 저술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바오로의 친저성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심각한 사항이 되지는 못한다. 이보다는 데살로니카 1서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2서에서는 몇몇 낱말이 바오로의 다른 서신들에 나오는 것과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데, 그 사실도 바오로가 이 서신을 썼다는 것을 부정하는 데에는 더 이상 충분한 단서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두 서간을 주의 깊게 비교해 보면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
(1) 이 두 문서는 문학적으로 독특한 유사성을 드러내는데, 데살로니카 2서의 많은 표현, 때로는 절 전체가 1서에서 따온 것 같이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2데살 2,1-12의 특수한 가르침을 제외하고, 2서 처음부터 끝까지 세 장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좌우 구절들을 비교해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1데살 1,2-3 ─ 2데살 1,3
1데살 2,12 ─ 2데살 1,5
1데살 3,13 ─ 2데살 1,7
1데살 3,11-13 ─ 2데살 2,16-17
1데살 2,9 ─ 2데살 3,8
1데살 5,23 ─ 2데살 3,16
1데살 5,28 ─ 2데살 3,18
이 두 서간이 이처럼 비슷하게 된 것은 사도가 1서를 발송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바로 2서를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처럼 연이어 서간을 보냈다면, 1서를 쓸 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상황이 데살로니카에서 갑자기 벌어졌음을 전제해야 하는데, 2서에서는 그러한 상황의 급변을 엿볼 수가 없다. 또 1서의 어조는 열정적이고 감동적인데 2서의 어조는 상당히 장엄하며, 1서의 문체는 단순하고 직접적인데 2서의 문체는 상당한 손질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불과 몇 주 간격으로 같은 사람들에게 써 보낸 두 서신이 왜 이렇게 다른지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2) 세상 종말에 벌어질 사건들에 관한 데살로니카 2서의 가르침은(다음 단락 참조), 주님의 날이 갑자기 들이닥친다는 1데살 5,1-6의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다. 데살로니카 1서는, 사람들이 적어도 겉으로는 평화를 누리는데 아무런 중간 과정 없이 갑자기 파멸이 닥친다고 가르치는 반면에, 2서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재림하시기 전에 인간 역사의 여러 단계가 이어지는 모습을 서술한다는 사실이 더욱 기이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문제를 묵시 문학의 특성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복음서 자체에서도 볼 수 있듯이(마르 13장 참조), 묵시 문학에서는 종말이라는 사건의 돌연성과 종말의 사건을 예고하는 표징이라는 두 주제가 뒤섞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오로가 필요에 따라 세상 종말에 관해서 가르치기는 하지만(1데살 4,13─5,3; 1고린 15,20-24), 한동안 배교가 이루어진다거나 ‘그리스도의 적’이 등장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데살로니카 2서의 본질적인 목적이 바로 이러한 묵시 문학적 장면들을 설명하려는 것임이 분명하다(2데살 2,1-12). 만일 이 서간의 목적이 기존의 가르침을 더욱 명확히 하거나 바로잡는 것이라면, 왜 문서로든 구두로든 주님의 날이 “밤도둑처럼”(1데살 5,2) 예상하지 않은 때에 들이닥치리라고 강조한 예전의 가르침을 단순히 상기시키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2데살 2,5).
이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지만, 옛 교회 전통에서도 중시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결정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데살로니카 2서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정한 상황에 응답하는 서신이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주님의 날이 빨리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여기저기에서 신도들이 불안해 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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