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 중에 ‘시다바리’라는 말이 있다.
하찮은 심부름꾼이나 아랫사람, 졸개들을 일컫는 말이 ‘시다바리’다.
그런데 ‘시다바리’의 어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저마다 이런저런 설을 내놓고 있지만 억지스럽게 끌어다붙인 주장이 대부분일 뿐, 수긍할 만한 주장은 별로 없는 편이다.
우선, 아랫사람을 일컫는 말 “시다(した)”가 일본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시다바리’라는 말을 쓰지 않기 때문에, 덮어놓고 ‘시다바리’가 일제의 잔재라 몰아붙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일본어로는 ‘테시타(てした, 手下), 코모노(こもの, 小物), 소쿠(そく, 走狗)’ 같은 말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시다바리’란 말을 쓰지 않는다. ‘시다바리’는 한국인들이 한국식 조어법에 따라 일본어와 한국어를 합쳐 만들어낸 말이다.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많이 쓰는 말로 “하바리”란 게 있다. “하빨, 핫바리, 합바리, 합빠리”라고도 한다. 형편없는 삼류대학을 가리켜 ‘순 하빠리 대학’이라고 한다.
“하바리”는 ‘품질이 아주 낮은 것’을 가리키는 말로 한자 下에 [-바리]라는 접미사를 붙인 것이다. [-바리]는 본 쾌도난마 블로그의 다른 포스트에서 설명한 바 있다. 몹시 인색한 사람을 “꼼바리”, 사사건건 반대만 일삼아 일이 틀어지게 만드는 사람을 “트레바리”, 잡기를 잘하는 사람을 “잡바리(짜바리=형사)”, 군인을 비하하여 이르는 말 “군바리” 같은 말에 쓰이는 그 [-바리]이다. [-바리]의 어원에 대하여는 다른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시다바리"는 국어사전에 없지만, “하바리(下바리)”는 국어사전에도 실려 있다.
한자 下의 일본어가 시타(した)이다.
“시다바리”가 먼저였는지 “하바리”가 먼저였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이들 말이 약간 다르게 쓰인다. 사람에게는 주로 “시다바리”를 쓰고, 물건에는 “하바리”를 쓰고 있는 것이다.
가령 ‘내가 너의 졸개냐?’라는 뜻으로 말할 때에는 ‘내가 니 시다바리냐?’라고는 말하지만, ‘내가 니 하바리냐?’라고는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 사과 완전 하빨이네’라고는 하지만 ‘이 사과 완전 시다바리네’라고는 하지 않는 것이다.
어원이 일본어에서 비롯됐든 중국어에서 비롯됐든 언어란 것은 쉬지 않고 계속하여 분화를 거듭하며 변해가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어에서 어떤 것을 많이 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바리]를 일본에서는 주로 “-야(や. 屋)”이라고 한다. 물론 존경할 만한 전문가라는 뜻보다는 ‘-꾼/-쟁이’의 뜻이기는 하지만.
한국어 [-바리]에 아주 가까운 일본어는 “-하라(はら, 輩)”가 있다. 일본에서 下輩라 쓰고 “시타바라(したばら)”라고 한다면 그것은 [시다바리]와 완전히 그대로 통하는 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