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불교, 실천불교 진각종 인덕 정사와 연주정 전수
/ 윤시내
내가 연주정 전수를 만난 것은 2003년 7월, 미주현대불교의 제 3회 연꽃축제에서였다. 워싱턴에 있는 수상 식물원(Kenilworth Aquatic Gardens)에서 열리는 수련과 연꽃 축제에 동참하여줄 것을 부탁하였더니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연주정 전사는 쾌히 승낙하였다. 동참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던지 하겠노라고 자원하고 나섰다.
축제 날 연주정 전수는 마침 방학중이라 한국에서 와있던 대학생들을 몇 명 데리고 나와서 컵 모자 한 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의 재료가 담긴 종이컵을 관람객에게 나눠주었다. 한 사람이 쓸 재료를 따로 미리 준비해왔기 때문에 혼잡이 없고 진행이 빨랐다. 유치원 아이들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까지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웃고 떠들며 꽃잎파리를 부치고, 넓은 챙과 고무줄을 달아 완성된 모자를 서로 머리 위에 얹혀놓고 써보며 즐거워했다. 식물원 연못에 핀 연꽃 사이로 자기가 만든 연꽃 모자를 쓴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갔다. 열 한시부터 네 시까지 시간이 언제 가는지 모르게 흘러갔다.
두 번째로 연주정 전수를 만난 것 역시 연꽃 덕분이었다. 수상 식물원 책임자로부터 동네 학생들을 위해 연꽃 모자 만드는 프로그램을 하루 와서 해줄 수 없느냐는 문의를 받고 연주정 전사에게 연락했더니 이번에도 두말없이 하겠다고 나섰다. 필요한 재료는 다 준비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개비가 하루종일 뿌리던 12월 중순, 우리는 약 20여명의 학생과 5-6명의 선생님들에게 한국위 위치를 지도에서 보여주고, 불교란 무엇인지, 명상을 어떻게 하는지, 등을 간단히 알려주고 나서 연꽃모자를 만들었다 (미주현대불교 2004년 1월호 기사, "학생들과 연꽃모자 만들기" 참조.) 프로그램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어둡고 안개로 지척이 보이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운전하는 내가 안쓰러운지 연주정 전사는 옆에 앉아서 이런 얘기들을 들려줬다.
처음 미국 왔을 때 유치원에 들어간 아들 보원이의 학교 친구들은 그의 부모가 불자인 것을 알고는 그와 같이 놀지도 않았었다. 한번은 학교에서 International Festival을 하니 자기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소개할 것을 갖고 오라는 편지를 받았다. 연주정 전수가 연등을 하나 갖고 가라고 했더니 아들은 울면서 싫다고 했다. 그럼 내가 갖고 갈까? 하니, 연등도 싫고 학교에도 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용기를 내서 연등을 여러 개 차에 싣고 학교에 갔다. 학교 사정이 어떤지 모르니까 인덕 정사는 차에서 기다리고 연주정 전수가 연등 하나를 등뒤로 감춰들고 사무실로 갔다. 직원이 연등을 보고는 "Beautiful, beautiful," 하면서 이 예쁜 것이 하나밖에 없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저기 차안에 많이 있다고 하니 어서 갖고 들어오라고 해서 연등을 모두 가져다가 테이블마다 하나씩 달았다. 제일 큰 등에는 "Welcome Parents"라고 써서 행사장 입구에 달았다.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고 하며 이걸 어디서 사느냐, 어떻게 만드느냐,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하며 인기가 최고였다.
보원이 선생님으로부터 학교에 와서 학생들과 같이 연등 만드는 수업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연주정 전수는 솔직하게, 자기는 언제든지 가서 하고싶지만 보원이가 울면서 싫어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상의했다. 얼굴 생김도 틀리고 말도 잘 통하지 않고 교회에도 나가지 않아서 가뜩이나 따돌림을 받는 어린 아들의 학교 생활을 더 어렵게 만들고싶지 않아서였다.
연등 수업이 있는 날, 선생님은 보원이를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네가 이 등을 어떻게 만드는지 친구들에게 설명할 수 있겠니? 하고 선생님이 물었다. 보원이는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연등 한 개 만드는 분량의 재료가 들어간 종이컵을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나서 엄마가 시범하는 것을 보원이가 옆에서 영어로 설명해줬다. 학생들은 보원이가 하라는 대로 분홍색,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꽃잎파리를 부치고 초록색 잎사귀를 부쳤다. 학생들은 물론 보원이도 신이났다. 엄마가 집에서 연등을 만들면, 저걸 또 누구한테 줄려고 그러나, 하고 걱정부터 들었는데 반의 친구들이 즐거운 얼굴로 연등을 만들고 집에다 달아놓겠다고 좋아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후련하고 자랑스러웠다.
이라크 전쟁 중, 남편이나 아들, 오빠, 동생을 싸움터에 보낸 집에서는 그들의 무사 귀향을 비는 "노란 리본"을 집 앞 나무에 매어놓았었다. 연주정 전수는 여기에 착상하여 노란 연등을 만들어서 나눠주었다. 그러려니 재료를 대기가 어려웠다. "점수 딸 일이 있으면 보원이는 이제 '엄마, 무슨 색깔 불어줄가' 할 정도가 되었어요,"하고 연주정 전수는 웃었다. 한국에서 가져오는 연꽃 재료는 쓰기 전에 미리 손질을 해야 하는데, 기계로 절단된 꽃잎파리 뭉텅이를 입김으로 호- 불어 낱장으로 떼어주는 일을 '불어준다'고 부른다는 것이다. 보원이는 물론 집에 온 손님들까지 연꽃 잎파리 끄트머리에 풀칠을 해서 도르르 마는 일을 했다. TV를 보면서도, 웃고 얘기하면서도, 손은 쉬지 않고 연꽃잎을 만들었다.
"오늘도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지예. 미국 아이들도 그런데 한국 아이들이 하면 얼마나 더 좋아하겠어요. 불교가 우리 뿌리 아닙니까. 앞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대통령도 되고 대법원 판사도 될텐데 불교는 모르고 기독교만 갖고 되겠습니까. 학교에서 연등을 만들다보면 자연히 불교에 대해서도 알게될텐데 절에서 하는 한글학교가 하나도 없느니 어쩌겠습니까."
한글학교는 거의 다 교회 소속이고 절에서 하는 학교는 없기 때문에 보원이도 할 수 없이 천주교 소속 학교에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연주정 전수의 안타까운 마음이 이해되었다. 그러나 나를 감동시킨 것은 우리 아이들이 커서 대통령이 되는 날을 예비하여 그들에게 불교문화의 뿌리를 심으려는 연주정 전수의 깊은 안목이었다.
며칠 전 내린 눈 위로 햇살이 밝게 쏟아지는 2월 초순의 맑은 날, 한국 4대 종단의 하나인 진각종 법광(法光) 심인당(心印堂) 2월 법회에 참석하였다. 진각종에서는 교화 자격을 갖춘 남자 스승을 정사(正師)로, 여자 스승을 전수(傳授)로 부르며 진각종 사찰을 심인당(心印堂)이라 부른다고 한다.
인덕 정사와 연주정 전수 부부가 교화활동을 하는 법광 심인당은 메릴랜드주 벌티모어와 워싱턴 DC 중간쯤에 위치한 애쉬톤에 있다. 키가 크고 마른 체격의 인덕 정사는 쌓인 눈을 헤치고 솟아 난 굳은 의지와 생명력이 넘치는 이른 봄 연두색 대나무를 연상시킨다. 그의 부인 연주정 전수는 시골 장독대 옆에 핀 탐스럽고 싱싱한 봉숭아꽃처럼 통통한 볼이 발갛게 물들은 건강미의 여인이다. 두 분 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데 그래서인지 잔잔하고 나직한 음성이 한층 더 정답고 구수하다.
대한불교진각종은 1902년 5월 10일 울릉도에서 태어난 회당(悔堂) 손규상(孫圭祥) 대종사님이 밀교(密敎)의 중흥과 불교의 생활화를 위해 1947년 6월 14일 개종했다고 인덕 정사는 설명해준다. 밀교(Esoteric Buddhism)는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현교(顯敎)보다 우세하였으며, 한국 법당의 단청마다 쓰여 있는 옴마니반메훔의 육자진언(六字眞言)이나 여러 가지 불교 의식 속에 이어져 내려왔다고 한다. 심인당에서는 보통 사찰과는 달리 비로자나불(법신불)의 상징인 대일상과 '옴마니반메훔' 주문을 본존으로 모시고 있는데 대한불교진각종에서 발행한 "진각의 길 I"은 이런 설명이 쓰여있다.
..... 이 육자진언은 비로자나 부처님의 말씀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생들은 이 진언을 통해서 비로자나 부처님의 설법을 증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진언을 염송하면 우리의 본마음이 깨끗해지고 그 깨끗한 마음이 바로 비로자나 부처님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 법신불은 보이지는 않는 진리의 상징이고 형체가 없기 때문에 불상으로 나타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에게 무엇인가 중생들의 마음이 전해지는 길이 필요합니다. 그 길이 바로 육자진언입니다. 그래서 염송은 바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실을 개조한 법광 심인당 법당에는 '옴마니반메훔'의 육자진언이 중앙에 봉안되어 있고 양쪽으로 금강정유가삼십칠존예가 쓰여있다. 금강륜과 연꽃등으로 장식한 이 곳은 일년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불사가 있는 곳에 마땅하게 깨끗하며 잘 정돈되어 있다.
정기적인 불사는 매달 한번씩 하는데 2월 불사에는 기후 관계로 평소보다 적은 교도가 모였다. 동부지역 회장인 지명 각자 (남자교도들의 호칭)는 리치몬드에서, 심원 각자는 필라델피아에서, 물리학 박사 이 형립 각자는 뉴?j뉴스 근처에서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왔다.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고 아름다운 서원가를 부르고 인덕 정사의 설법을 들으며 한 시간 반의 불사를 마치고 화기애애한 가운데 점심 공양을 했다.
미국동부지역의 심인당이 이곳에 건립된 것은 지명 각자를 비롯하여 멀리 클리브랜드, 뉴욕, 보스턴 등에 흩어져 사는 여러 각자, 보살들의 서원이 결실 것이라 한다. 긴 이민 생활동안 집에 정진실을 만들어두고 한결같이 심인(心印) 진리를 실천하며 교도들의 신심을 강건히 해 준 지명 각자는 점심 공양 도중 누군가가, 오래 전 뉴욕의 스토니 부룩 대학에 불교학과가 처음 생길 때 기부금을 냈다는 얘기를 하자, "보시한 것은 잊어버려야합니다. 기억하고 있어서는 마음에 걸려서 안돼요," 하고 말했다. 남에게 베푼 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지명 각자의 평소 수행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제일 연만하신 심원 각자님 내외분은, '내가 먹기 싫은 것은 남에게 권치 말고,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고, 내가 듣기 싫은 소리는 남에게도 하지 말라'며, 된장, 고추장, 간장을 담아 나눠주고 산에서 직접 캔 여러 가지 나물을 만들어서 회향하는 일을 기쁘게 맡아한다. 마치 여러 젊은 신도들의 친정 부모님처럼.
인덕 정사 부부는 처음 미국에 와서 이, 삼 년간을 집안에만 있으며 교도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국과는 달리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생활불교, 실천불교를 지향하는 진각종의 본 뜻을 받들어 살기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서 "염송으로 번뇌를 죽일 것이 아니라" 눈을 바깥세상으로 돌려야했다. 우선 영어를 배우기 위해 ESOL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거기 온 한국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들의 답답하고 불쌍한 처지를 알게되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찾았다. 노인 아파트에 살며 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찾아가 얘기도 들어주고 손도 따듯하게 잡아드렸다.
한국신문에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는 기사가 난 것을 보고 노인들에게 점심 식사를 배달하는 일도 맡았다. 일주일에 3번, 교회에서 준비한 점심 도시락을 배달하는 것인데 반찬을 넉넉하게 담아서 밥만 더 지으면 하루치 음식이 되었다. 점심 기도 시간에 노인 몇 분이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것을 연주정 전수는 아린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나이 들어서 혼자 움직일 수 없으니까 오라는 절도 없다고 외로움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부모를 일찍 여윈 그네에게는 더욱 애잔했다.
지난 번 연말 경로잔치에는 컵등을 만들어서 불투명한 봉투에 넣어 갖고 갔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봉투에 넣어서 주면 혹시 꺼려할까 염려되어서였다. 점심 기도 시간에 슬그머니 빠져나가던 분들께 하나씩 드리며, 여기서 열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펴보라고 했다. 다음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눈물을 쏟으며 그 컵등을 베란다에 놓고 매일 보며 큰 위로를 받는다고 고마워했다. "우리도 기독교 친구들한테, 이리 온나, 따듯한 밥 한 그릇 멕여주께,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노," 하며 노인들은 친구들에게 베풀고싶어 했다.
진각종의 실천불교를 생활하는 인덕 정사 부부는 Korea Resource Center (KRC)에서 하는 한인사회봉사활동의 하나인 지역보건사로 자원하여 금연운동, 고혈압, 유방암 등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여러 가지 정보도 나눠주고 교육을 실시한다. 한인회 (KAA) 부설 Careline Service는 전화상담을 하는 봉사활동이다. 영주권, 교통법규, 학교, 직장 등 그들이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받았든 고통을 전화한 사람들은 현재 겪고 있었다. 아는 것은 가르쳐주고 모르는 것은 이름과 전화 번호를 받아서 경험이 많은 분들에게 전해준다. "이런 쉬운 것도 모른다고 야단치지 말고 좀 잘 가르쳐주소,"하는 부탁과 함께.
불법의 인연으로 만나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심인당 교도들의 새해 바람은 단아한 심인당 법당을 신축하여 이곳 교민들에게 열어놓는 것이다. 쓸쓸한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에게, 힘들게 생활하는 어른들에게, 미국 입양아들이나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따스한 온돌방과 맑은 된장국을 대접하고 부처님의 향기로운 법문을 들려줄 수 있는 곳으로 회향하는 것을 새해 서원으로 삼고 있다.
[2004년 3월 1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