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다.
내가 사는 산청도 지리산 너머 봄바람이 불어온다. 군데군데 새싹이 돋는가 싶더니 어느새 꽃이 지천에 피기 시작한다. 우리집 마당에는 진달래가 맨 먼저 피어 무채색 같던 겨울을 분홍빛으로 바꾼다.
분홍을 샘내듯 히어리가 노랑방울을 조롱조롱 매단다. 그러더니 한쪽에서 수선화가 ‘나 여기 살아 있었어요’ 하며 샛별같이 노오란 얼굴을 내민다. 이때부터는 벌들도 분주해진다. 지난겨울 날이 추워 힘들었을 텐데 꽃들도 벌들도 다들 용케 살아있다.
이제 목련이 껍질을 터트려 꽃잎이 보이기 시작하면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목련꽃이 피기 전에 꽃을 따서 꽃차를 만들어야 한다. 올해도 목련을 한 움큼 따서 꽃차를 만들었다. 이쁘다. 꽃차를 만드는 일은 함께 마실 사람 생각해서 그런지 힘들어도 기분 좋은 일이다.
11월부터 꽃망울을 쥐고만 있던 동백은 4월이 되어서야 꽉 쥔 손을 놓아 얼굴을 보여준다. 동백 옆에는 라일락이 연보라향을 내뿜고 있다. 마을길을 따라 벚꽃이 아스팔트를 가리고 부풀어 올랐다.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하다. 봄이 한껏 멋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봄이 이렇게 달려올수록 마당에선 해야 할 일들은 넘쳐난다. 겨울동안 쌓인 낙엽들을 갈퀴로 삭삭 긁어 걷어내야 한다. 나무 마다 불필요한 곁가지들도 다듬는다. 그리고선 올라오는 잡초를 뽑아야 한다. 잡초는 비와서 심심한날 우산 쓰고 뽑는 게 제격이다.
‘손질할 정원이 한 뼘도 없는 처지’ 영국인들은 가난을 한탄할 때 이렇게 비유한다. 좋은 차를 못타고,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못 보내도 견딜 수 있지만, 가꿀 정원이 없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난이라 여길 만큼 영국인들에게 정원은 매우 소중한 삶의 일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영국에서는 독신형 원룸아파트에도 테라스 정원이 있다.
우리는 개인 주택을 버리고 아파트의 삶을 선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주거비율은 전 세계 최고인 75%에 달한다고 한다. 나도 시골로 오기 전까지는 아파트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그때는 아파트가 너무 좋았다. 편리하고 안전하고 쓰레기 처리하기도 편하고.
이제는 그 편리함 대신 불편함을 가졌지만, 그 대신 정원이 있다. 그것도 자연스러움을 미덕으로 하는 영국식 정원이랄까? 아님 아무렇게나 내맘대로식 정원이랄까? 암튼, 봄에 따듯한 햇살을 등에 업고,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호미를 들고, 흙을 만지면서 알았다. 영국인들이 왜 그토록 정원을 사랑하는지.
식물을 만지고 흙을 만진다는 것은 자연과 적극적 교감을 하고 있다고도 불 수 있다. 많은 스트레스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자연을 가까이하며 힐링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원예치료다.
원예치료란 식물을 심고 가꾸는 원예활동을 통해서 사회적, 교육적, 심리적 혹은 신체적 적응력을 기르고, 육체적 재활과 정신적 회복을 추구하는 전반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이미 선진 유럽에서는 노인이나 장애인들에게 정원활동을 하도록 도움으로써 정신적, 신체적 활력을 주는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노인요양원에는 노인들이 직접 가드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고, 장애인에게도 농장에서 꽃이나 채소 등을 길러 농장마켓에서 직접 팔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삶의 활력과 사회적응력이 길러지고 건강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파트거주 비율이 높기 때문에 자연을 접할 기회가 적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는 일찍부터 흙을 만지고 식물을 길러봄으로써 얻는 삶의 풍성함은 어떤 교과서보다 훌륭한 교육이 될 것이다.
내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 내가 사는 공간이 멋있어지는 기쁨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베란다면 어떠하고 마당이면 어떠하랴! 한 평의 작은 정원일지라도 그 공간을 정성껏 가꾸면서 계절을 느끼고, 삶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모두가 가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