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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溫故知新』 원문보기 글쓴이: 常綠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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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일도 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용기이다. 개인적 차원의 이러한 용기는 함부로 막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될 수 없다고 판명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억지이다. 억지는 용기가 아니다. 가끔 용기와 억지가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역사에서, 처음에는 억지로 보였던 일이 사실은 용기로 밝혀지고, 처음에는 용기로 보였던 일이 나중에 보면 억지로 밝혀진 일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것이 억지인지 용기인지가 처음부터 분명하다.
삶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지내는 것도 아름답지만 가끔은 엄청난 용기를 내야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는 반드시 그 일에 대한 자신의 능력이 충분한지, 자신의 성격이 그러한 일에 적합한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短경汲深(단경급심)’이라는 말이 있다.
‘短’은 ‘짧다’는 뜻이다. 이로부터 ‘숨이 짧다, 부족하다, 뒤떨어지다’라는 뜻이 나왔다. ‘短見(단견)’은 ‘짧은 견해, 짧은 생각’이라는 말이고, ‘短評(단평)’은 ‘짧은 비평’이라는 말이다. ‘短命(단명)’은 ‘명이 짧다’, 즉 ‘일찍 죽다’라는 말이 된다. ‘短點’은 ‘부족한 점, 뒤떨어진 점’이라는 말이다.
‘경’은 ‘두레박 줄’이라는 뜻이다.
‘汲’은 ‘물을 길어 올린다’는 뜻이다. ‘及(급)’은 원래 ‘…에 미치다, 도착하다’라는 뜻인데, ‘汲’은 ‘수(물 수)’와 함께 있으므로 ‘물에 미치다, 물에 도착하다’, 즉 ‘물을 길어 올리다’가 된다.
‘深’은 ‘깊다’는 뜻인데, 여기에서는 ‘깊은 우물’을 나타낸다.
以上의 意味를 整理하면 ‘短경汲深’은 ‘짧은 두레박 줄로 깊은 샘의 물을 길어 올린다’는 말이 된다. 아무리 힘이 세고, 아무리 용기가 있어도 짧은 두레박 줄로 깊은 샘의 물을 길어 올릴 수는 없다.
이것은 可能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可能하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勇氣라고 主張한다. 이것은 勇氣가 아니다. 이것은 世上을 속이려 드는 것이 아니면 스스로 無知한 것이다
常 識 (항상 상 / 알 식)
- 상식의 오류를 바꾸는 것이 곧 지식인의 역할 -
5.31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무엇보다 ‘常識의 저항’이라는 측면이 강한 듯하다. ‘민주’니 ‘개혁’이니 하는 공허한 구호만을 외치지 말고 국민들의 삶 속에 깊이 파고들어 함께 호흡하며 常識的인 생활정치를 실현하라는 시민들의 준엄한 명령이라는 것이다.
常識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지식이다. 소수의 이론가들이나 지식인들의 머릿속에만 맴도는 理想(이상)이나 시대적 소명 같은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甲男乙女(갑남을녀)라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소박한 생각이 바로 常識이다. 그저 아래로만 흐르는 물길처럼, 무조건 위로 향하는 불길처럼, 논리적인 설명이나 구체적인 제시 없이도 있는 그대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곧 常識인 것이다.
常識에만 의지하는 것도 문제이기는 하다. 불과 수백 년 전까지만 해도, 天圓地方(천원지방;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과 天動說(천동설)이 常識이었다. 그런 常識의 오류 때문에 먼바다로 나가는 것은 위험시되었으며, 地動說(지동설)을 주장하던 과학자들은 종교재판 등을 통해 박해를 받아야 했다. 요즘엔 이미 과학적 常識으로 이해되는 지진이나 일식만 해도, 과거엔 위정자에 대한 하늘의 경고나 징벌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그런 常識의 오류를 바꾸는 것은 지식인의 몫이기는 하지만, 常識의 오류는 단기간에 바로잡히지 않는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와 달리, 정치나 정책은 常識的으로 납득될 수 있는 방식으로 행해지고 수립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지식인 또는 이론가들이 그들만의 관점과 논리에 따라 정책이란 수단을 통해 常識과 관행을 깨려고 하므로 문제가 복잡해지게 된다.
常識의 常은 ‘범상하다’는 뜻이다. 상놈으로 비하된 常人(상인)의 常이 그러하다. 常人은 본디 한자 뜻 그대로 ‘보통 사람’이었던 것이다. 常은 ‘늘’ ‘항상’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를테면 늘 푸른 나무니까 常綠樹(상록수)이고, 늘 준비하고 있는 약이니 常備藥(상비약)이다.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변하지 않는 도리등에도 常을 붙인다. 五常(오상) 常道(상도)가 그러하다.
識은 ‘알다’ ‘식견’ 등의 뜻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識에는 ‘적다’라는 뜻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식’이 아닌 ‘지’로 읽는데, 기물이나 서적등의 題字(제자)에 쓰이는 款識(관지)의 識가 그러하다. 책의 서문 말미에 적는 識 역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