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소풍과 사탕
송진련
문우들과 가을 소풍을 간다. 진등재 문학회가 주최지만 내 주변 사람 몇 명을 합류시키려니 맘이 무겁다. 성의를 보이려고 약속 시간 전에 도착해 조용히 차에 오른다. 당일치기로 남도의 이름난 문학의 성지를 두루 다녀본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내가 추천한 문우들이 모두 도착하니 마음이 놓인다.
삼시세끼 밥도 줄 것이고, 기행 장소에도 데려다 줄 것이고, 실컷 구경하고 나면 출발한 이 장소로 원상복귀 시켜 줄 것이니 신선놀음의 시작이다. 대형 버스는 설렘과 어색함과 동료의식이 한껏 어우러진 인연들을 싣고 무르익은 가을 속으로 질주한다.
남해고속도로로 진입을 하니 젊은 문우들이 순발력 있게 먹거리를 나른다. 떡, 호두과자, 귤, 음료수가 오더니 자잘한 사탕도 몇 개 나누어 준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준비해준 문우들이 고마워서 가슴이 찡하다. 아무리 먹성이 좋지만 오늘 하루에 다 먹지는 못할 것 같다.
은박지에 쌓인 김밥을 먼저 먹어 보니 소고기를 넣은 고급 김밥이다. 가끔 기름기가 입 안에 돌지만 영양가는 그만일 것 같아 한 줄 먹고 나니 든든하다. 요즘은 김밥도 즉석으로 살 수 있지만 우리 애들 소풍갈 때는 새벽부터 분주했지. 저녁까지 때울 요량으로 김밥을 대량으로 말았으니까.
문학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곳을 다녀 보았으나 아주 특별한 곳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작가의 생가를 복원하고 유품을 전시, 대표작품 전시 등 그 지방의 재정이나 관심 정도에 따라 스케일의 크기가 조금씩 다를 뿐 대동소이 하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작가나 문학 작품에 대한 호기심은 적어지고 동행하는 사람을 알아가는 기쁨이 커진다. 종일 빈 집을 지키며 사람이 그리워 괴롭기만 하던 시간들이 내 속에 침잠되어 있었나 보다.
점심 먹으러 들어간 식당 입구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긴 의자에 앉아 고기 굽는 냄새들 사이에서 가을 꽃 한 줌 낚아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뒤란에 대봉감이 땅에 붙어 있다. 장정 주먹만한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으니 가지도 힘에 겨운 모양이다. 아홉 자식을 온 몸에 달고 힘든 고갯길을 넘으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잘 익은 감을 꼬옥 안아 본다. 동행한 동생도 같은 생각인지 감나무 안으로 들어가 고개를 내밀며 진한 감빛 미소를 짓는다.
부지런히 달려서 도착한 하멜의 동상 뒤로 큰 풍차가 서 있다. 코스모스 꽃도 주인을 닮은 건지 유난히 키가 크다. 탐스런 대봉감과 활짝 핀 코스모스 밭에서 보낸 시간만으로도 이번 기행은 성공이다. 하늘은 어쩌면 이리도 선명할꼬. 나는 하늘색이고 너는 구름색이라고 편을 딱 가르고 있는 듯하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황홀한 풍광들도 게을러서 사진에 담지 못하고 눈과 마음에만 담는다. 내일이 오기 전에 발랄한 문우들의 솜씨로 재방송 될 것을 기대하며 나의 게으름을 자책한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단톡방에 불이 나지 않을까싶다.
씩씩한 문우들을 종종걸음으로 따라 다니다 보니 출출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인지 먹거리에만 자꾸 관심이 간다. 출발 직전에 나누어준 음식을 넣어 둔 검정 비닐 안에 손을 넣어 수시로 꺼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달달한 것이 생각나서 사탕 하나를 꺼내보니 말랑말랑한 사탕 봉지 가운데에 ‘배고파요...’ 라고 씌어 있다. 참 재미있는 이름이라 옆에 앉은 문우에게 자랑했더니 그녀의 것도 똑 같은 이름이다. 집으로 돌아와 언니에게 보여주었더니 자기는 다른 이름이더라며 주머니를 뒤지니 ‘먹고 힘내요’가 나온다. 한 봉지 안에 든 사탕의 이름이 각각 다르다는 걸 준비하신 분은 알고 있었을까.
창원중앙역에서 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큰 마트에 들러 똑 같은 사탕봉지를 찾아낸다. 뜯어보니 ‘배고파요...먹고 힘내요’ 말고도 언제나 함께, 행복하자, 고마워, 사랑해, 잘 될거야, 집중 집중, 노 스트레스’ 다양한 이름표를 단 사탕들이 들어 있다. 눈깔사탕, 알사탕 이후 다양한 사탕이 나왔으나 한 가지 이름만 가진 사탕보다 훨씬 재밌게 먹을 수 있겠다 싶고 신기하다. 골라 먹는 재미도 있지만 얼마나 귀여운 이름인가.
큰 맘 먹고 장거리 기행을 다녀왔으면 여행길에서 만난 훌륭한 작가들을 떠올리는 글을 쓰든지, 들국화가 흐드러지게 피고 알곡이 속을 다져가는 가을 들판을 노래하든지, 문우들과 혼연일체가 된 단합된 모습을 표현해야 하는데 자꾸만 사탕의 이름이 내 발목을 잡는다. 사탕 봉지에 ‘배불러요, 먹으면 힘 빠져요, 언제나 따로, 불행하자, 미워해’ 라는 글씨가 쓰였다면 기분 나빠서 안 먹을 거라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하며 내친 김에 짧은 글짓기를 해 본다.
어젯밤 잠을 설친 탓인지 입맛이 없어 굶고 나왔더니 ‘배고파요’ 먼 곳에서 새벽길 달려온 내 짝꿍도 이 사탕 먹고 ‘힘 내세요’ ‘언제나 함께’할 문우들도 드시구요. 오늘 기행 중에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있더라도 다 지나가는 것이려니 하고 ‘행복하자’라고 나를 세뇌시켜 보세요. 이 여행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은 젊은 문우님들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마지막으로 ‘집중 집중’해서 들어 보세요. 합포고 정문에 도착하면 단골 주점에서 생맥주 한 잔 같이 해요. 남은 안주도 갖고 갑니다.수업 시간에 내 작품에 대한 혹독한 평을 한 문우의 뒷담화를 해보면 어떨까요. 취중진담이라는 말도 있으니 술의 힘을 한 번 빌어 보자구요. ‘스트레스’가 확 날아갈 것 같지 않은가요.
첫댓글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좋은 글을 쓰시다니 놀랍습니다
대봉감, 하늘과 구름, 사탕에 대한 형상화가 아주 잘된 작품으로 사료됩니다
말하자면 동화적 형상화가 일품입니다
우뢰와 같은 박수를, 사탕봉지마다 담아서 보냅니다
잘 챙겨주셔요^♡^
어제 합평받았어요
역시 합평은
우리의 희망이자 길잡이♥
참대단합니다
늘 유쾌한 에너지를 선생님께 얻습니다.
같이 보고 행동한 것에 선생님에
따라 어떤 느낌이 올까 참 궁금합니다.
이번 기행수필 유독 관심이 갑니다.
재미있게 읽으며 그 날을 생각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가볍게 읽다가 대봉감이 나오면서 어머니 생각을 하였습니다.
즐거운 문학기행에 같이 가지 못한것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