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조경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형제님의 장례 미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형제님은 1934년에 태어나 슬하에 2남 3녀를 두셨으며 1991년에 도마동 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으셨고 막내아들 부부만이 2천년에 결혼을 하면서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 집안에 신앙의 씨앗을 심어주신 김양한 마리안나 자매님의 말씀으로는 형제님이 지난 23일(화)에 전임 신부님이신 오종진 베드로 신부님께 병자성사를 받으시고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고인의 바람대로 25년간 신앙생활을 이어오면서 그토록 바라던 영원한 생명으로의 초대에 응답하여 천상 낙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잠겨있는 유가족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신자가 아닌데도 고인의 뜻을 받들어 가톨릭 전통에 따라 장례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으니 주님께서 친히 여러분의 슬픔과 절망도 위로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미사는 형제님과 나누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작별 인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계실 때 형제님과 나누었던 즐거운 추억들만을 고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형제님께서 나약한 인간으로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온전히 기워 갚아주시기를 청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들도 모두 치유시켜주시기를 함께 기도해야겠습니다. 형제님은 지난 4년간의 요양원 생활 속에서 자신이 겪는 육신의 고통을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셨을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도 힘드셨다고 하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드셨을까요?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저지른 잘못에 대한 보속들을 모두 되갚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의 기도가 더욱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중풍 병자를 들 것에 들고 온 네 명의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께 형제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그리고 남아 있게 될 유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하지만 신앙이 없는 상태에서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다른 유가족들에게는 더없이 슬픈 일일 것입니다. 제가 느끼는 감정에 비하면 유가족들이 느끼는 상심은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그러니 무슨 말로 유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고인이 믿고 의지했던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기도하는 게 제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83년이라는 형제님의 일생을 온전히 지켜보신 분은 하느님뿐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남아 있는 우리들이 기억하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형제님의 생전 모습은 평생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기억의 단편들이 모아지면 형제님의 전 생애가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하나로 엮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나만 간직하고 있는 고인과의 추억들을 유가족에게 많이 들려주세요. 오종진 신부님에 의하면 매달 봉성체 때마다 형제님은 성당 공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물으시면서 새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장례 미사로 그 소원을 이룰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이제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천상 행복의 길에 오르실 형제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마지막 선물은 신앙 안에서의 관계 회복일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중에 만약 고인과의 관계 안에서 풀지 못한 매듭이 있다면 이 미사를 봉헌하면서 모든 앙금을 온전히 푸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형제님이 생각날 때마다 자주 기도해주세요. 우리의 기도가 형제님의 영혼 구원에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형제님이 하느님의 자비로 천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기를 청하면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주님, 조경연 F. H.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그에게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 “아멘”
첫댓글 얼마나 자주 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강론을 준비하는대로 올리려고 합니다.
말씀과 함께 살아 숨쉬는 공동체를 이루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포문을 장례 미사 강론으로 열겠습니다.
장례미사 참례 못해서 아쉬웠는데 글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읽겠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을 읽고 묵상하면 하루를 마감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