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 철이 아니어도 해외로 여행 가려는 이들로 공항은 북적인다. 비단 오늘날만이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해외로 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다만 오늘날과 다르다면 그 당시에는 대부분 사절단으로 중국 연경을 다녀왔다는 것이다.
연암은 연행을 먼저 체험한 벗들로부터 청문명의 번화함을 듣고 중원을 동경해 오던 터에 삼종형 박명원이 중국황제의 만수절 축하사절단으로 간다기에 비공식수행원으로 따라간다. 이들은 기존의 사절단과 달리 연경을 거쳐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열하까지 가는데 이는 연경에 있어야 할 황제가 하계별궁이 있는 열하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암은 만수절 행사에 모여든 이민족들의 기이한 행렬을 목격하고 돌아와 열하일기를 쓴다.
독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대학 4학년 때 우연히 참가한 고전문학 강의에 매료되어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을 전공,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연구공동체인 '수유+너머'를 결성하여 강연 및 집필을 하면서 고전문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집필하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책이다.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실학자이자 소설가다. 벼슬아치에 대한 염증, 정치에 대한 환멸, 과거장의 타락을 목격하고는 과거에 고의적으로 낙방하고 학문과 저술에 전념했다. 청나라의 신문물에 관심이 많고 북학파의 영수이자 중상주의를 주장하였다.
열하일기는 "형식상으로는 압록강을 건너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마테오리치의 무덤에서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시작도 끝도 아니다. 언제나 중도에 있으며 어디서 읽어도 무관하게 서로 독립된 텍스트"(p132)로, "뿌리라는 중심이 없고 목적, 방향도 없이 접속하는 대상에 따라 자유롭게 변하는 덩이줄기라는 뜻의 리좀과 같은 특성을 지니는데"(p125) 이것이 연암체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는 조선시대의 앎은 고전으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리좀과 같은 소품체의 글은 경박하다고, 소설은 허구성 때문에, 고증학은 쪼잔한 시야로 인해 기존의 주류적 언어를 균열시키고 문장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고 해서 정조의 주도하에 문체반정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연암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주류에서 벗어난 마이너들이고 저잣거리 이야기, 이국 장사치들의 이야기 등이 스스럼없이 펼쳐진다. 처음 본 코끼리의 움직임을 풍우가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하는가 하면, 청명한 하늘에 천둥번개가 휘몰아치는 과정을 바둑돌, 맷돌 가는 소리로, 글쓰기를 전쟁의 수사학에 비유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필자의 마음을 후려잡는 명쾌한 문장은 단연 "하늘은 새파랗지만 하늘天 자는 전혀 푸르지 않다."(p376)이다. 그 누구도 이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연암의 언어에 대한 촌철살인의 아포리즘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유머의 천재를 알고 싶어서, 열하일기의 웃음을 사방에 전염시키고 싶어서, 그 웃음의 물결이 삶과 사유에 무르녹아 열정적인 무늬를 만들어 내는지 보여주려고 이 글을 썼다고 한다.
필자는 웃음으로 힐링하고 싶다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싶다면, 아포리즘 같은 글들을 만나고 싶다면, 글을 쓰는데 멋진 수사학이 필요하다면 이 책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열하일기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남희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