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동문들의 봄나들이
올해는 유달리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늦게까지 기승을 부리더니 결국 두 손을 들고 화창한 봄 햇살에 밀려났다. 늦게 온 봄이 다 가기 전에 우리 진주여고 동문 선후배 170여명이 1박2일로 봄나들이에 나섰다. 이 나이가 되어도 봄 소풍을 나서려니 가슴 설렘은 소녀 시절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가 보다.
밤새 잠을 설치고 얼떨떨한 정신으로 아침을 맞게 되었다. 압구정동 출발지로 속속 집결한 동문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에 서로들 인사하느라고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 할 지경이었다.
버스 4대에 기수별로 나누어 탔는데 내가 타게 된 1 호차는 제일 높은 선배들, 원로이며, 노고(老姑)들의 집합소였다. 그러나 모두들 마음만은 마냥 소녀 같았다. 흥도 제일 많아 다른 3대에 탄 후배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고, 열기 또한 충천하였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나무들이 연한 속살로, 아기 손 같은 보드라움으로 내민 이파리들이 손짓하고 있었지만, 창밖으로 눈을 돌릴 사이가 없도록 차안의 열기가 후끈거렸고 흥겨움에 취해 버렸다. 사회를 보는 후배의 애교 만점, 재치 있는 사회는 웃음을 그칠 줄 모르게 했고 나중에는 배꼽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어느새 첫 번째 목적지 함양에 닿았다. 원래 일정에는 산청의 성철스님 생가와 문익점 목화시배지에 들릴 예정이었으나, 170여명이 일시에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구할 수가 없어서 부득이 행선지가 함양으로 바뀌었다.도착하니 그 곳엔 진주에서 회장이하 집행부들이 먼저 와서 떡과 전통차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기도 했고 진주 동문들의 따뜻한 후의에 감사한 마음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점심 식사 후 삼삼오오 짝을 지어 그 지방의 명승지로 이름 난 상림 숲을 거닐면서, 피톤치드 내뿜는 싱그러운 공기도 마시고 연초록 잎새들과 은밀한 속삼임을 나눌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거가대교를 왕복하고, 거제도 장승포 비치호텔을 통 채로 빌려 여정을 풀었다. 바다가 내 집 마당 같은 방들을 배정 받고, 잠깐 휴식을 취했다. 저녁식사 후 가면무도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잔뜩 기대를 하면서 호텔마당으로 모였다. 장승포 밤하늘에 별이 총총 떴는지 올려다 볼 생각도 못한 채, 축제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회장의 아이디어로 마당에 차려진 만찬 식탁은 너무나 훌륭했다.
식사를 끝내고, 모두들 왕관과 가면을 쓰고 힘껏 분 부풀은 풍선들을 흔들며 음악에 맞춰서 행사장에 입장 하였다. 가면무도회가 시작되었다. 의자에 풍선을 놓고 엉덩이로 터뜨려 액운일랑 모두 날려버리는 의식, 어버이날에 즈음하여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감동스런 절차를 거친 후, 촛불을 밝혀들고 장승포의 밤 바닷가에 불꽃무늬를 수놓았다. 연이어 후배들의 멋진 춤 솜씨, 노래실력에 그저 들썩들썩, 모두가 흥에 겨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가면이란
자신의 본색을 숨기고, 다른 얼굴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니 나의 본색을 숨겼으므로 거리끼고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나 싶은 생각에 절로 신이 났다. 가면은 숫기 없는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요술의 힘이 작용하는 것 같다.
남들 앞에서 평소에 몸 한번 흔들 줄 모르던 몸치인 내가 신나게 흔들어 보기도 처음이다. 그렇게 하고나니 스트레스가 확 풀린 느슨함에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난생 처음 그런 좋은 경험을 한 내가 나같지 않았다. 가면 무도회가 나를 이렇듯 다르게 만들 줄은 미쳐 몰랐다.
옛날에 이상구 박사가 엔도르핀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키더니 내겐 이제야 그 단어가 실감이 났을 정도였다면 알만 하지 않을까? 밤을 지새워도 모자랄 것 같이 흥은 계속되었지만 다음날의 일정을 위해 아쉬움을 달래며 가면무도회를 끝내야만 했다.
이튿날 아침 통영으로 출발, 충무 김밥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많은 인원이 식당 안에 다 들어갈 수가 없어서 선배기 들은 식당 안에서, 나머지 후배들은 버스 안에서 식사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저런 사연으로 이번의 남도 봄나들이 행사를 버스 4대분의 인원으로 참가인원을 마감을 했는데, 서울에 돌아가면 조금 늦게 신청하여 동참하지 못한 동문들의 원성을 부득불 들어야 하게 될 것 같다. 모두가 다 참가하는 행사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화가 전혁림 미술관을 거쳐서, 소설가 박경리 선배의 묘소를 찾아 자랑스러운 선배를 둔 후배들이 무리지어서 참배를 하였다. 선배의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박경리 선배와는 생전에 여러 번 뵌 적이 있었기에 이제 영원히 뵐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더 가슴이 아려왔다.
일정을 모두 끝내고 일행은 귀경길에 올랐다. 돌아오는 차내 열기도 여전히 뜨거웠다. 서울이 가까워져 오는 것이 다들 못내 아쉽다는 표정들이었다.
이번 봄나들이의 행사 계획과 가면무도회의 아이디어, 준비물과 선물 등을 손수 준비하고 현지답사도 몇 차례나 거친 회장의 추진력과 치밀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기업을 운영하는 오너가 다르다며 모두들 칭송이 자자했고, 힘찬 박수로 회장의 노고를 치하했다.
1박2일의 잊을 수 없는 일신 동문들의 즐거운 이번 여행은 길이 남을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