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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가을여행 2
미완의 가을여행 두 번째....
그러고 보니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시작하고 나니 숙제가 되어 얼른 끝내야겠다는 생각이지만 이것 또한 마음대로 안되네요.
그나마 이렇게라도 쓸 수 있는 것은 인터넷 못 쓰는 날 메모라도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일기....
전날 밤 오랫만의 음악과 맥주에 취해 늦게 일어났다.
오늘 잘못하면 임도에서 못 내려오거나, 목적지에 한밤중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급히 나오느라 자전거 랜턴은 물론 손전등도, 핸드폰 충전케이블도 잊고 온 터라 은근 걱정...>
강릉 터미널 가서 속초행 표 끊으니 8시10분에 있었다.
오색으로 가려면 양양에서 가는 게 가깝지만, 양양에서 내리려면 완행을 타야 하고 그러면 시간이 더 걸린다.
이렇게 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싣고 갔다. 버스는 의외로 자전거 잘 실어 준다.
자전거 망가질까 좀 걱정스럽긴 하지만... 안 실어주겠다고 하면 어쩔거야. 아무 소리없이 실어준 것에 감사~~
속초 고터에 9시 20분 쯤 도착, 편의점에 폰 충전 맞기고 아침 먹고 나니 10시 10분...
여기서부터 자전거 타고 간다.
청대마을길을 지나 싸리재를 넘어 설악산 야영장 쪽으로 갈 예정이다.
싸리재 넘기 전 청대산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속초 제1경이라는데 시간이 없어 못 가봄이 아쉽다.
싸리재에 올라왔다.
여기까지는 호기롭게 언덕길도 잘도 올라왔는데...
싸리재에서 설악동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이쁜 솔밭길이다.
옹기마을부터 설악산로 따라 간다.
잠시나마 설악산을 바라보며 달리니 기분이 좋다. 비록 날씨는 흐릿하지만....
설악산 야영장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설악산 쌍천을 건너가는 도문교 위에 서니 멀리 설악파크호텔의 빨간 지붕과 저항령고개가 보인다.
한밤중에 저 고개를 넘어 정고편까지 내려왔던 아주 오래된 옛 산행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후기 보는 분들 중에 아마 몇 사람은 나와 같이 그 기억을 공유하고 있겠지.... ㅎ
선녀봉, 칠성봉, 대청봉 쪽은 짙은 구름에 휩싸인다.
나의 설아, 우리의 설악이 저기에 있는데....
설악산 야영장 앞을 지나 양양 쪽으로 달린다.
이 길을 다시 가 보는 것도 십 수년 만...
야영장 주변은 비포장 숲길이 참 아름다왔는데 동해고속도로가 속초까지 연장되면서 가까이에 북양양 나들목이 생기면서 2차선의 넓은 도로가 새로 만들어졌고, 이어지는 사진의 도로도 확장공사 준비 중이다.
설악산으로 직행하기는 편리할 듯...
멀리 대청봉을 잠깐 보고 화채능선을 서쪽에 두고 논밭 들녁을 따라 간다.
이 길을 따라 통일전망대까지... 아니 더 한반도 최북단까지 걸어가는 꿈을 꾸었었는데...
<강산에의 라구요~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양양군 강현면 회룡초등학교
고만고만한 마을들이 심심치 않게 양양군 서면까지 이어진다.
서면 상평리, 오색온천과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44번 국도와 만나는 동네이다.
아~ 저기 지금은 사라져버린 내 차와 같은 갤로퍼가 있네.... ㅡ.ㅡ
구룡령으로 가는 56번 국도와 갈라지는 논화리
여기서 잠시 4차로로 확장된 신44번 국도로 달리다 다시 옛 도로로 달렸다.
신 국도로 가면 터널을 지나고 경사도 별로 없어서 빨리 갈 수 있겠지만 총알처럼 달려오는 차량들이 너무 너무 무서버....
구비구비 옛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오니 친절하게도 북암리 송어리 표지판이 보인다.
한계령, 점봉산, 오색온천을 지나 내려오는 오색천.... 조~오기 구름 속에 대청봉
이제부터 산길 시작인데 시간은 벌써 12시 반... 속초터미널부터 30km, 2시간 20분 걸렸다.
아침에 강릉터미널에서 산 모카빵 베어 물고 커피 한잔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오르막길을 페달링....
북암리, 송어리 갈림길까지는 시멘트 포장도로, 계속 오르막이다.
갈림길 지나니 경사도 완만해지고 본격적인 임도길이다.
백두대간 북암령 아랫자락에 북암리가 있다.
십 여년 전에 비해 제법 집들이 늘었다. 마을 위로 첫 단풍이 물들고 있었다.
마을에는 대단위 표고버섯 농장이 들어섰고 옛 모습은 찾을 길 없고 인기척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마을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을 끌바로 오르니 바리케이드가 나오고 오래된 시멘트 다리가 나온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 계곡물로 목을 축였다. 여기서부터 무인지경의 짙은 숲속으로 길은 이어진다.
완만하게 주로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길
활엽수림으로 덮인 숲길은 바야흐로 단풍이 들기 시작하여 이쁘고 아름답다.
층층나무, 가래나무, 물푸레나무, 당단풍, 자작나무, 들메나무... 등 특별히 뽐내는 놈없이 은은한 조화를 이루는 숲이다.
곳곳에 작은 폭포와 개울이 흘러 넘친다.
길의 왼쪽은 사면 아래로 깊이 떨어지는데 반해 오른쪽은 곳곳에 작은 개울과 폭포가 흘러 넘쳐 목 마를걱정 없이 달릴 수 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아름다운 숲을 지나 내리막길을 만났다.
쒼나게 내리 달리는데 모퉁이에 승용차 한 대가 서 있고 젊은이 두 명이 쉬고 있었다.
모처럼 만난 내리막 길이라 내쳐 1킬로 쯤 달렸는데 갑자기 나타난 급 화살표는 언덕 위로 향한다.
삼거리길 아랫쪽에서 마침 지프 한 대가 올라와서 긴급출동 불렀냐고 물어 본다. 헐~ 이 산중에서 긴급출동이라니...
좀 전에 지나친 그들이 불렀나? 아무튼 긴급출동이 가능하다니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운전자에게 서림에서 왔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해서 내 려 가 려 다 생각해보니 그 쪽은 공수전 가는 길일 것이다.
공수전으로 가면 얼마 안 가서 도착할 것이고, 몇 년 전에 그 곳에 정착한 젊은 부부네로 갈 수 있겠지만...
그것은 최후의 선택지였고 어쨌든 나의 목적은 이 임도를 끝까지 가는 것이니....
윗 길로 올라가니 임도 끝까지 19.5km의 이정표가 나왔다.
벌써 두시 반인데 아직 2시간을 더 가야 임도가 끝난다고.... 어둡기 전에 이 산길을 벗어날 수는 있겠군...
산림조합 직원들을 만났다. 어떤 사람들은 산을 가꾸기 위해 다니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산에서 캐고 뜯고 자르고 파내기 위해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타다가 끌면서 걷다가를 반복하며 임도 공사하는 트럭과 굴삭기도 만나고 산림조합 직원들도 만나며... 오르막길은 구비구비 지루하게 이어지는데 지루하지 않다.
지루한데 지루하지 않다니 이게 무슨 말이 되는 소리냐고.... ㅎ
지치고 힘들어서 이 오르막이 언제 쯤 끝날까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가지만 숲은 봐도 봐도 좋기만 하니 그런 생각이 든 것이었다.
노루 두 마리를 만났다. 잘 들어보면 노루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갑자기 노루 두 마리가 가파른 비탈 위로 뛰어 올라갔다. 미쳐 사진 찍을 틈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노루인지 확실이 알 수 있는 것은 엉덩이가 노루궁뎅이버섯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고라니는 작고 귀엽게 생겼지만 우는 소리는 엽기적으로 컥컥대는데 비해 노루의 울음소리는 그렇게 엽기적이진 않은 것 같다. 힘 없는 초식동물들이 무서운 울음소리를 가진 것은 생존을 위한 허장성세인듯....
임도 끝까지 10km를 남긴 지점이 오르막의 끝이었다.
고생 끄~~~~읏,
이제 내리 달리기만 하면 된다아.... 간혹 울퉁불퉁한 잔돌과 웃자란 나뭇가지들이 방해하기는 했지만 내리막 30여분을 쒼나쒼나 달려서....
드디어 조침령으로 올라가는 418번 도로가 나왔다.
이제부터는 포장도로를 따라 가야 한다. 휴~ 어둡기 전에 조침령을 넘어갈수는 있겠군....
긴 오르막길을 얼마 못가 타고 가는 것을 포기하고 털레털레 걸었다.
몇 시간 째 안장 위에 있었더니 엉덩이가 아프기도 하고... 멋 모르고 패드가 들어간 자전거복도 안 입고 왔다. 이렇게 아플줄이야.... ㅜ,ㅜ
무엇보다 발이 마비가 와서 걷는 것이 오히려 편했다.
구비구비 오르막길 4km를 40분 걸려 오르니 조침령터널이다.
터널 안은 경사가 완만해서 타고 지나갔다. 건너편에서 오던 자전거족이 힘내라고 소리쳐준다. 같은 것을 해 본 사람들끼리의 동료의식...
굴을 지나면 진동리 아랫마을 쇠나드리다.
바람이 얼마나 셌으면 소가 날아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진동리야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팬션들이 넘치는 숙박촌. 날도 늦고 지치기도 했지만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아 방동리까지 가기로 한다. 짧은 가을해는 이미 넘어가고 어스름이 내리는 도로를 달리자니 춥고 다리도 아프다.
방동리까지 거의 내리막길이지만 가끔 나타나는 경사가 심하지 않은 언덕들이 마지막까지 괴롭힌다.
6시 5분전 어두워진 시간에 조경동 계곡이 방태천으로 흘러드는 곳에 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한 20년 가까이 옛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맛도 옛날 그대로고, 주인도 옛날 그대로다.
우리나라의 많은 곳에서 여행자들을 상대하는 사람들이 참 무뚝뚝하구나 느꼈다.
20~30년 전에 강원도에서 무뚝뚝함은 투박함의 다른 말이었지만 20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은 불친절의 다른 말이다. 남 얘기 할 것 있나.... 이래서 여행은 나를 돌아보게 되는구나. ㅠ.
이제 완전히 캄캄해진 도로를 달려 방동교를 건너 마을길을 더듬어서 골짜기 안으로 안으로...
목표는 방태산 자연휴양림
오래 전에 가봤던 기억을 더듬어 평일이니... 하고 갔더니 만실이라고... 단풍철이잖아요...
게다가 방이 있어도 예약을 안하면 잘 수가 없다고....
헛참 세상물정도 모르고 집을 나섰다니...
덕분에 휴양림 근처 편안하게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배터리가 거의 없어 전화기도 꺼놓으니 일기도 쓸 수 있고....
길고 힘든 하루였다.
속초터미널부터 방태산휴양림 앞까지 78km를 8시간 40분 걸렸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 자전거를 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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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라와 산티아고 가는 길을 자전거로 갔던 생각이 많이 났다.
하루에 100km씩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종마처럼 튼튼한 쿨라의 뒷 꽁무니를 쫒아가느라 얼마나 개거품을 물었었던가.
그래도 그 때는 앞서 가 있던 쿨라가 짜잔~ 하고 시원한 콜라나 맥주잔을 들고 기다려줬었는데...
아~ 옛날이여....
첫댓글 자전거를 이용해 동서로 재를 넘어 다니시니 그저 부럽습니다. 혼자여도 옛추억들과 즐거운대화나누며 8시간이 넘도록 하루를 꽉~채운 여행을 하셨네요. 노루소리가 그소리였군요. 가끔 산속에서 들어봤던..멋진 라이더 덕분에 아름다운 조침령풍경과 자연의 소리까지 즐겁게 감상합니다. 추억많이 만드는 독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ㅎㅎㅎ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는 어딜 다녀도 옛날 얘기만 하는 나이가 돼 버렸네요. 어느 새
예쁜길을따라 잔차로 씽씽달리는기분이 어떨까 생각해 봤는데 저는 못해본거라 상상이 안되네요 ~ 아직 자전거 못타본사람 여기있습니다 . 그저 부러워할 뿐입니다 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