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자체의 창작과 감상
그리고 예술정신이나 기법이 활용되는 모든 교육을 포함하며,
크게 문학·미술·음악 등의 분야로 나뉜다.
예술교육의 목적은
개인에게 잠재되어 있는 예술적 능력을 계발하고,
예술적 감성을 기름으로써
전인적인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
예술교육은
그리스·로마 시대에 크게 번성했는데,
플라톤은
〈국가 politics〉 제2부에서
개성의 조화로운 발달을 실현하기 위해
음악교육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음악교육은
현대의 음악교육과 달리
음악이 수학과 관련된 이성적인 학문으로 이해되었다.
플라톤 이후 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성립된
'7자유과'(seven liberal arts)에
음악이 포함된 것은
이러한 전통을 반영한 것이었다.
플라톤 이후 19세기까지 예술은
직업적인 전문가만이 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들에 대한 교육은
학교교육이 아닌 도제교육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산업혁명 이후
근대국가의 산업화와 기계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학교교육이
점차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직업적 실용주의로 바뀌자
예술교육은 잠시 쇠퇴하는 듯했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에 이르러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에서
예술교육운동이 일어남으로써
예술교육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교육개혁이 시도되었고,
전인적인 교육목적을 중시하면서
창조적·생산적 활동,
인간성 해방과 자아표현의 수단으로서
예술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영국에서 근대생활의 예술적 개조운동으로 시작된 예술교육운동이 독일에 전파되어 학교교육의 개조를 뜻하는 운동으로 폭넓게 전개되었고, 이어 20세기초의 범세계적 교육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예술교육이 교육과정의 중요한 분야가 된 것은
음악을 비롯하여
시각예술과 율동예술이 강조된 20세기 이후이다.
이론적으로는
심리학이 발달하면서
게슈탈트 학파 및 프로이드 학파의 이론이
인간발달의 정의적인 영역을 주목하게 했고,
민주주의 교육철학이
인간의 전형적인 발달을 강조했던 것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특히 H. 리드의 저서
〈예술을 통한 교육 Education through Art〉(1943)은
예술교육의 방향을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키는 인간교육으로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의 예술교육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시경 詩經〉을 중심으로 행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중국 은나라에서 춘추시대까지 전해오는 고시 가운데
공자가 추려낸 311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풍(風 : 각 국의 민요)·
아(雅 : 조정의 음악)·
송(頌 : 조상의 덕을 기리는 시)의 3부로 나뉘어 있다.
〈시경〉의 내용은
한국 고대문학에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인격함양에 큰 역할을 했다.
고려시대 이래 시행된 과거제도에서는
시문학이 큰 비중을 차지했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시문학에다 서법까지 강조되었다.
조선시대의 많은 사대부들이
문집이나 시화(詩畵)를 많이 남기고 있는 것은
예술교육이 인격함양에 필수적이었음을 나타내준다.
상류층이 〈시경〉을 중심으로 성균관 등에서 교육을 받은 것과 달리
평민들은
음악·춤 등을 개인적인 전수과정을 통해 훈련하는 도제식 교육으로 배웠다.
예술교육은 이러한 방식으로 이어지다가
개화기를 맞아
일대 변혁을 맞이하게 되었다.
新思想으로 말미암아
학제와 교육과정이 바뀌고
예술교육 분야도
서양의 음악·그림·무용 등의 영향을 받아
창가·체조·수공·작문이 초·중등 교육과정에 채택되었다.
그러나 필수과목이 아니라
사정에 따라 줄이거나 생략할 수 있는 과목으로 채택되었고,
교과내용도
전통적인 것보다 서양이나 일본의 예술 위주로 실시되어
예술교육의 서양화 현상을 초래했다.
일제의 탄압이 거세어
우리의 것을 사용할 수 없게 된 1930~40년대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1945년 8·15해방이 되면서
모든 분야가 그렇듯
예술교육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문학교육의 경우
일제시대 말기에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결과
한글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우선 한글을 널리 알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쳐
해방 후 20년간
한글전용과 보급 위주의 국어교육을 실시했으며,
이런 언어 이해 차원의 교육을 실시한 결과
문학의 각 장르에 대한 교육은 상대적으로 소홀해졌다.
그런가 하면 음악교육의 경우
그동안 부르지 못했던 우리 동요와 가요에 치중하는 한편,
서양의 노래를 번역해서 불렀는데
이때 반주는
대부분 양악기를 사용하여 국악기는 소외되었다.
미술교육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정립된 이론이 없기 때문에
일제시대에 해오던 방식대로 하다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서양미술에 치중하게 되었다.
따라서 해방 후 20년간 행해진 예술교육은
지나치게 서양예술 위주로 교육된 결과를 빚어
동양예술과 우리의 전통예술이 크게 발전하지는 못했다.
1970년대 2차, 1980년대 3차 교육과정 개정을 거치면서
예술교육은 차츰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국어교육의 경우
언어교육에 치우친 과거와 달리
글쓰기를 통한 예술적 감지력과 표현력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했으나,
오랫동안 행해진 입시 위주의 교육에 밀려
글쓰기 교육과 문학적 감상력을 기르는 교육은 여전히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음악교육의 경우
소홀히 해온 국악에 관심을 갖고
국악과 민요 등을 많이 다루게 되었고,
교육내용도
단순한 가창영역에서
기악·감상·창작의 영역으로 나뉘어 지도하며
그에 알맞는 교재와 교구의 개발에 노력을 기울였으나
궁극적으로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할 수 없다.
외래음악의 수용에 있어
우리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수용해야 하며,
전통음악의 현대화에 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문제점이 남아 있다.
미술교육의 경우
국민정신교육에 큰 비중을 두었고
교육내용과 방법, 교과용 도서와 교재의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나
이 또한 기능 위주로 진행되어
궁극적으로
미적 정서를 기르고 인격발달을 도모하려는
기본적 교육목표에 소홀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예술교육은
심리학적·철학적·사회학적 연구의 기초 위에
각 분야의 교육과정 및 지도방법 등을 개발하고,
본래의 교육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교수방법을 止揚(지양)시켜
외래문화와 전통문화가 조화를 이루도록 힘써야 함이
과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