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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10. 토요일
지난 9월 20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일환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모습은 우리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 왔다. 우리도 백두산에 한번 가보자는 얘기가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올 때에 퇴직 후 힐링투어 여행사를 차린 박경원선생의 주선으로 나도 백두산에 오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지인들이 모인 카톡방에서 선착순으로 모집된 우리 일행 12명은 지난 11월 10일 오전 7시 30분에 김해공항 국제선 청사에 모여 에어부산 비행기를 타고 백두산 여행길에 올랐다. 이때 다른 여행사를 통해 모집된 4명의 부산출신 중년 남자들이 우리 팀에 합류하여 2박 3일의 여행을 함께 하였다.
11월 초순은 여행하기 좋은 가을이지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시기에 백두산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매우 추운 날씨라고 해서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방한내의와 롱 패딩 점퍼를 구입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옷가지는 몇 개 안되는데도 부피가 커서 여행 가방이 빵빵하였다.
우리를 태운 에어부산 비행기는 오전 9시경에 이륙하여 힘차게 창공을 날았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밥을 못 먹어 배가 고프던 차에 마침 기내식으로 치킨순살 강정볶음밥이 아침으로 제공되어 다행이었다. 밥을 먹고 잠시 졸다가 눈을 뜨니 비행기는 2시간 40여분을 날아 우리시간 11시 40분경에 중국 연길 공항에 도착하였다. 우리보다 1시간이 늦은 현지시간으로는 10시 40분이었다.
(사진 1) 김해국제공항에서 에어부산 비행기 탑승
(사진 2) 아침 기내식 치킨순살 강정 볶음밥
(사진 3) 연길 국제공항
수하물을 찾아 로비로 나가니 조선족 현지 가이드 양화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버스에 태우고 자신을 양귀비로 불러 달라는 말과 함께 여행안내를 시작하였다.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구에 위치한 연길시는 인구가 50만으로 상당한 규모의 도시였다. 최근에 지은 빽빽한 아파트 숲도 눈에 띄었다.
연길공항을 비롯하여 길거리의 안내 표지판과 간판에 한글과 한자가 병기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였는데 한글이 한자보다 앞이나 위에 먼저 놓인 것에 특별한 감동을 느꼈다. 그곳이 옛날 우리 땅이었고 현재도 우리 동포들이 더 많이 살면서 한글 간판을 쓰고 있는 것을 보니 우리가 중국에 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우리는 우선 ‘미연랭면’이라는 간판이 걸린 식당에 들어가 면류로 점심을 먹은 후 바로 1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두만강 조중 국경지대인 도문으로 이동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두만강이 보이는 강변공원으로 걸어가니 어디선가 풍악이 울렸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음악에 맞춰 노래와 춤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곳으로 달려가 함께 춤을 추고 싶었는데 이를 아랑곳 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안내하는 가이드를 놓칠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긴 채 발걸음을 돌렸다.
강변공원에서 마주한 두만강은 생각했던 것 보다 폭이 좁았고 깊이도 얕아보였다. 강 건너편이 바로 북한인데 마음만 먹는다면 들키지 않고 그렇게 어렵지 않게 국경을 넘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에 강이 얼면 더 쉽게 건널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는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추가비용을 부담하면 다리중앙의 국경선까지 가볼 수 있다고 하면서 그렇게 하겠냐고 제안하였다.
우리는 만장일치로 이 제안을 받아들여 다리의 중앙까지 걸어들어 갔다. 빨갛게 그인 경계선을 넘어가면 북한이다. 경계선 부근엔 통제하는 경비병도 없어 북한쪽으로 조금 더 넘어 갔다 와도 표도 안 나고 괜찮을 것 같은데도 우리는 지레 겁을 먹고 선을 조금도 넘지 못하고 선을 밟고 서서 판문점 남북 정상 만남 장면을 패러디하여 기념 촬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는 다리위에서 다시 중국 쪽으로 걸어 나와 다리입구 탑문 옥상 전망대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강 건너 북한의 모습을 관찰하였다. 북한쪽 다리입구에는 ‘남영역’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역사 위쪽으로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강변으로 아파트단지도 있었는데 망원경으로도 아파트 내부는 볼 수 없었다. 우리가 다녀왔던 기존 다리 옆으로는 왕복 6차선 가량의 대형 다리가 건설되고 있었다. 다리의 규모로 보아 이곳을 통하여 북한과 중국과의 경제적 교류가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음이 짐작되었다.
(사진 4) 관광버스에 올라 현지 가이드 양귀비의 안내를 받는 중
(사진 5) 점심을 먹은 식당
(사진 6) 두만강 조중 국경지대 1
(사진 7) 두만강 조중 국경지대 2
(사진 8) 두만강 뗏목 관광 매표소
(사진 9) 북한과 중국을 잇는 두만강 다리
(사진 10) 두만강 다리위에서 휴대폰 카메라로 북한쪽을 근접 쵤영한 모습
(사진 11) 두만강 다리위 조중 국경선
(사진 12) 다리위 조중국경선에서 판문점 남북 정상 만남 패러디
(사진 13) 다리위 조중국경선에서 중국쪽 다리입구 탑문을 바라본 모습
(사진 14) 중국쪽 다리입구 탑문 옥상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쪽을 관찰하는 모습ㅂ
(사진 15) 중국쪽 다리입구 탑문 옥상 전망대에서 북한쪽을 바라본 모습
(사진 16) 중국쪽 다리입구 탑문 옥상 전망대에서
우리는 탑문 전망대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가곡 '선구자'의 배경이 되는 용정으로 이동하였다. 이 노랫말을 지었다는 윤해영과 이를 작곡한 조두남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는 바람에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투사들의 기상을 생각하며 이 노래를 즐겨 불렀던 많은 사람들의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나 또한 실망이 커서 이 노랫말을 인용하기가 찜찜하기는 하다.
하여튼 ‘선구자’ 노랫말 중의 일송정과 해란강이 이 지역에 있다고 하는데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차창 밖의 어느 곳을 가리키는 가이드의 안내에도 불구하고 어디가 어딘지 제대로 감을 잡지 못했다. 우리는 용정이라는 지명의 기원이 된 용두레 우물가에 내려 유적지를 관람하였으나 특별한 감동을 느끼지는 못하였다.
그곳에서 단체로 기념촬영을 한 다음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날 백두산 관광을 위해 4시간을 달려 이도백하로 이동하였다. 이도백하[二道白河]는 백두산 북쪽 비탈에 위치하여 백두산 관광의 기점이 되는 마을이다. 백두산을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고도 하고, 그냥 백산(白山)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모두 '백하'라고 하는데 하천이 너무 많다보니 순번을 부여해 일도, 이도, 삼도…십팔도, 이십 몇 도까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오후 6시 40분경에 이도백하에 도착하여 불고기전골로 저녁식사를 한 후에 시내에 있는 장백산호텔로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우리 일행은 박경원선생 방에 잠시 모여 다과를 함께 하며 다음날 백두산 천지를 반드시 볼 수 있도록 날씨가 잘 받쳐주기를 기원하였다.
(사진 17) 용정지명의 기원이 된 용두레 우물 표지석
(사진 18) 용두레 우물
(사진 19) 용두레 우물 앞에서
(사진 20) 용두레 우물앞 혁명지구 표지석
(사진 21) 저녁 먹은 식당
(사진 22) 저녁 식사 불고기 전골
(사진 23) 1일차 숙박한 장백산 호텔
(사진 24) 호텔 로비에서 방배정을 받는 중
(사진 25) 도착 첫날 저녁 숙소에서 간담회를 갖고 다음날 천지를 볼수 있도록 좋은 날씨를 기원함
2018. 11. 11. 일요일
드디어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날이 밝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창밖을 보니 날씨는 비교적 괜찮아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나는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은 후 미리 준비해간 털모자와 롱패딩 점퍼로 완전무장을 하고 다소 들뜬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다른 일행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모두 마음이 들떠있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데 과연 우리는 천지를 볼 수 있을까?
모두가 알고 있듯이 백두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나는 아직도 백두산의 높이가 2744m로 기억하고 있는데 최근 자료에 의하면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의 높이가 2750m라고 한다. 백두산은 북한 량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길림성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머리가 하얀 산’이란 뜻의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흰색 부석(浮石)이 온 산을 뒤덮고 있어 붙여졌다고도 하고, 1년 중 겨울이 230일 이상으로 정상에 흰 눈이 쌓여 있는 기간이 길어 붙여졌다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창바이 산(长白山)’이라고 부른다.
백두산에 오르는 길은 여러 코스가 있는데 북한쪽 우리 땅을 통하여 올라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아직 남북분단의 비극적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관계로 우리는 아쉽게도 중국을 통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현재 중국령에 속하는 백두산 북파 · 서파 · 남파 코스 중에서 차를 타고 편안히 백두산에 오를 수 있는 북파(北坡) 코스로 가게 되었다.
우리는 관광버스를 타고 30여분을 달려 백두산 입구인 장백산 국립공원 매표소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입장료를 내고 출입구를 통과한 다음 그곳에 마련된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한참을 더 달려 천문봉으로 올라가는 산 중턱까지 올라갔다. 그곳에서 다시 6인승 짚차로 갈아타고 정상으로 올라갔는데 노랗게 물들인 머리의 매력적인 어느 중국 아가씨가 우리 일행들 틈에 끼어 서성이다가 나와 같은 짚차에 우연히 동승하여 함께 가게 되었다.
창밖을 보니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좁은 길을 따라 관광객을 싣고 천문봉 정상까지 오르내리는 짚차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도로 주변으로는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장관을 이루었다. 자칫하면 벼랑으로 굴러 떨어질 매우 위험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짚차 운전자들은 숙련된 기술을 뽐내려는 듯 상당히 빠른 속도로 운행하였다. 좁은 공간에 바짝 붙어 앉아 있던 중국아가씨와 나는 짚차가 급커브인 코너를 돌때마다 관성에 따라 몸이 더욱 밀착되어 묘한 상황에 처하였다. 그녀는 이 상황이 싫지 않은 듯 내가 휴대폰을 꺼내 셀카 인증 샷을 찍을 때 고개를 돌려 피하지 않고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였다.
몇 마디 중국어를 기억해 내어 중국 남부 소주 출신이라는 그녀와 좀 더 대화를 나누려고 하던 차에 짚차는 어느 덧 천문봉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나는 그녀와 기약 없이 작별하고 우리 일행들과 함께 천지 전망대로 향하였다. 그곳엔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북적거렸다.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니 사람들의 틈새로 드디어 천지의 모습이 보였다. 날씨가 아주 맑지는 않았으나 다행히 천지의 모습은 환하게 드러나 있었다.
날씨가 변화무쌍하여 3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데 우리 일행들은 서로 당신 덕분이라며 덕담을 나누면서 천지 관람의 감격을 나누었다. 백두산에서 내려다본 만주벌판의 웬만한 산들은 그냥 평원으로 보였다. 기쁜 마음으로 인증 샷 사진을 이리 찍고 저리 찍고 하는 중에 짚차에 함께 탔던 그녀가 또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와 나는 천년지기를 만난 듯 반가워하며 연인의 포즈로 기념 촬영을 하였다. 영어로 몇 마디 물어 보았으나 그녀가 못 알아듣는 것 같았고 중국어로 대화하기엔 내 실력이 짧아서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고 각자의 길로 갈라섰다.
(사진 26) 중국쪽 백두산 입구에서(북파 산문)
(사진 29) 백두산 입구에서 중턱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
(사진 30) 백두산 중턱의 짚차 환승장에서
(사진 31) 백두산 중턱에서 정상까지 운행하는 셔틀 짚차
(사진 32) 짚차에 우연히 함께 탄 중국 아가씨
(사진 33) 천문봉 주차장에 내려서
(사진 34) 천지 표지석 앞에서
(사진 35)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 36) 짚차에 우연히 함께 탔던 중국 아가씨를 천지를 보다가 또 다시 우연히 만나서
(사진 37) 천지를 보기위해 몰려드는 관광객 들
(사진 38) 천지를 뒤로하고 백두산에서 내려다 본 만주 벌판
(사진 39) 백두산 천지 관람을 마치고 관광 안내소에서 하산 짚차를 타기위해 대기하는 중
감격의 천지 관람을 마친 우리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가이드의 재촉에 따라 짚차로 하산하여 다시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장백폭포로 향하였다. 중국에서는 장백폭포로 부르지만 우리는 예부터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비룡 폭포(飞龙瀑布)라고 불러왔다. 천지 북쪽의 천문봉과 용문봉 사이에서 흘러내린 물이 68m 높이의 장대한 폭포를 힘차게 떨어진다. 이 물은 바로 송화강의 원류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셔틀버스에서 내려 폭포까지 1km정도를 방부 목으로 잘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걸어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목에 여러 군데에서 온천수가 솟아오르고 땅 밑에서 수증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온천군을 지나 가파른 산책로를 좀 더 오르니 눈앞에 폭포가 나타났다. 폭포 주변이 눈에 덮이고 일부 얼어서 폭포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그런지 기대해했던 것 보다 장엄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폭포 관람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는데 한쪽에 눈길을 따라 운행하는 썰매를 발견하고 우리 일행들은 둘씩 짝을 지어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재미도 느꼈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가이드가 우리에게 자그마한 온천 달걀을 2개씩 선물하였다. 온천물에 잘 삶겨진 달걀은 제법 맛이 있었고 허기진 배를 달래기에 아주 적합하였다. 우리는 하산하여 점심식사를 한 후 다음 날 귀국을 위해 다시 버스로 4시간을 달려 공항이 있는 연길로 이동하였다.
우리는 오후 7시경 연길에 도착하여 양꼬치 구이 특식으로 저녁을 먹은 후 바로 마사지 숍으로 이동하여 전신마사지를 받으며 백두산 여행에 따른 피로를 풀었다. 연길로 돌아오는 길목 어느 곳에선가 25년 묵었다는 더덕뿌리를 일행들이 십시일반 10만원에 구입하여 한 뿌리씩 나눠가졌다.
(사진 40) 장백폭포로 올라가는 길목에 김을 모락모락 내뿜는 노천 온천
(사진 41) 장백폭포를 배경으로
(사진 42) 장백폭포 입구 썰매장
(사진 43) 백두산 관광을 마치고 하산하여 점심 식사
(사진 44) 25년 묵은 더덕
(사진 45) 저녁 특식 꼬치구이
(사진 46) 저녁 특식 꼬치구이
2018. 11. 12. 월요일
백두산 관광이 여행의 주된 목적이었기 때문에 3일째 되는 마지막 날은 쇼핑 말고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나온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라텍스 판매점과 보이차 가게, 농협을 순차로 돌며 하고 싶지 않은 쇼핑을 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안사야지’라고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가이드의 눈치를 견딜 수가 없어 싸게 판다는 보이차 한통을 사서 가방에 넣었다.
마지막 코스로 들린 진달래 광장은 추운 날씨 탓에 노니는 사람도 없고 너무 썰렁하여 상징탑 앞에서 단체로 한번 기념 촬영만하고 얼른 버스에 올라 공항으로 이동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이번 여행은 쉽게 볼 수 없다는 백두산 천지를 한번 만에 온전히 보았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예전에 한라산 정상에 올라 백록담도 보았고 이번에 백두산 천지도 가 보았으니 대단히 감격적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북한 쪽으로 올라가 천지에 손을 담가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것이다. 당장은 통일이 어렵겠지만 앞으로 남북교류가 자유롭게 되어 우리 국민들이 우리 땅을 통하여 백두산에 오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진 47) 숙소에서 바라본 연길 시내의 아침
(사진 48) 중국 보이차 쇼핑센터에서 차를 시음하며 안내원의 설명을 듣는 중
(사진 49) 진달래 공원의 상징탑 앞에서
(사진 50) 귀국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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