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뇌의 ‘주의 네트워크(attention brain networks)’를 재구성한다
우울증과 뇌 네트워크의 상관관계 최신 연구 결과 발표
2024.11.13
우울증, 소리 없이 찾아온다
우울증은 고도화된 현대 사회에서 소리 없이 찾아오는 가장 무서운 질병 중 하나이다. 겉으로 보기에 표시가 나지 않을뿐더러 지인이나 가족들이 알아채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우울증은 ‘나태’에서 오는 질병이며 강한 정신은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팽배해 우울증을 겪더라도 쉽게 주변에 알리지 못했다.
우울증에 대한 주변 인식 등이 달라지기 시작하고 있다. © Getty Images
하지만 최근에는 여러 주변 환경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호르몬 변화 등으로 우울증이 유발되며, 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우울증이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학적 사실이 밝혀져 우울증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이나 관련 질환은 사람들이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 외에도 뇌의 내부 통신 체계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진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하여 뇌 영상을 촬영했고 이를 통해서 우울증이 동기부여, 주의력과 관련된 주요 뇌 네트워크를 재구성함을 발견했다. 이는 우울증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획기적인 발견으로 여겨진다.
살아있는 뇌와 네트워크를 관찰하는 방법
뇌에는 대략 860억개 가 넘는 신경세포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뉴런(신경계를 구성하는 최소단위) 내에서 전기적 신호가 전달되면 뉴런과 뉴런 사이 시냅스에서 신경전달물질을 통한 정보 전달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신경세포가 활성화되면서 뇌 혈류량과 산소 소모량 등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변화와 뇌의 활성화 영역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를 통해 측정할 수 있다. 약 2000년대 중반부터 활발히 연구되기 시작한 뇌의 기능 연구를 통해 ‘뇌의 연결성 및 네트워크(human brain network)’이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뇌에는 다양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뇌가 쉬고 있을 때에도 활성화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 우리 몸을 관장하는 중앙 집행 기관인 ‘전두정엽 네트워크(Frontoparietal network)’, 전두엽과 뇌섬엽(insula)을 포함하는 복잡한 신경 회로 ‘현저성 네트워크(Salience network)’등이 뇌 네트워크 모델로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이나 관련 질환은 사람들이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 외에도
뇌의 내부 통신 체계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GettyImages
현저성 네트워크는 복잡한 신경 회로로 환경의 중요한 자극 감지, 주의력 자원의 할당, 감정적 반응의 조절, 의사결정 과정 등을 담당한다. 현저성 네트워크의 기능은 여러 신경전달물질 시스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주로 보상과 동기부여를 담당하는 도파민, 기분 및 감정 상태를 조절하는 세로토닌, 주의력과 각성 상태를 조절하는 노르에피네프린등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우울증 환자에게 발생하는 이러한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의 불균형이 현저성 네트워크의 확장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현저성 네트워크의 확장은 우울증 환자의 뇌가 주변 환경의 부정적인 측면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도록 만들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우울증 환자들이 흔히 경험하는 부정적 편향을 신경학적으로 설명해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우울증 상태에서 발생하는 뇌 네트워크의 재구성
뇌 네트워크의 재구성은 신경가소성이라는 뇌의 기본적인 특성을 반영한다. 우울증 상태의 뇌는 시냅스 연결의 재구성, 신경회로의 기능적 재배치, 뇌 영역 간 통신 패턴의 변화, 에너지 할당의 변화 등이 발생한다. 현저성 네트워크의 확장은 뇌의 에너지 사용 패턴도 변화시키는데, 이를 통해 우울증 환자들이 경험하는 피로감과 에너지 저하를 설명할 수 있다.
연구진은 현저성 네트워크의 변화가 우울증 발병 전에도 감지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현저성 네트워크의 확장은 단순한 병리적 현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스트레스나 역경에 대한 뇌의 적응적 반응일 수 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새로운 치료 접근법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한, 예방법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발견이 될 수 있다.
10-12세 아동의 뇌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저성 네트워크의 변화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이 시기는 뇌의 ‘가지치기(synaptic pruning)’ 과정이 활발히 일어나는 때로, 불필요한 신경 연결은 제거되고 중요한 연결은 강화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신경발달학적 관점에서도 큰 의의를 지닌 발견으로 여겨진다.
우울증 치료를 위한 새로운 접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확장된 현저성 네트워크의 활동을 조절하는 것을 목표로 ‘경두개 자기 자극(TMS)’이나 ‘심부 뇌 자극(DBS)’ 같은 새로운 뇌 자극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개별화된 약물 치료, 맞춤형 인지행동치료, 개인별 생활습관 변경 등 다양한 형태의 향후 치료 방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발달 과정에서의 네트워크 변화 추적, 치료 반응에 따른 변화 관찰, 재발 위험 예측 요인 파악,
통합적 접근의 중요성 등을 통해서 우울증의 복잡한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 Getty Images
또한, 현저성 네트워크의 변화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종단 연구(Longitudinal study: 조사 대상에 여러 차례에 걸쳐 동일한 질문을 되풀이함으로써 집단 성향의 변화를 파악하고자 하는 연구 방법)가 필요한데, 발달 과정에서의 네트워크 변화 추적, 치료 반응에 따른 변화 관찰, 재발 위험 예측 요인 파악 등 통합적 접근을 통해서 우울증의 복잡한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수준의 분석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유전자 발현과 단백질 변화의 분자 수준 변화, 신경 네트워크의 기능과 구조 등의 회로 수준 변화, 임상 증상의 행동 수준 변화, 스트레스 요인과 사회적 지지 등의 환경 수준 변화 등의 분석이 필요하다. 또한, 현저성 네트워크의 변화를 모니터링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 회복 탄력성 훈련, 사회적 지지 네트워크 강화, 치료 효과 모니터링 등을 통해서 더 효과적인 치료 계획 수립을 가능하게 해주는데, 뇌 네트워크의 조기 변화를 감지함으로써 우울증 발병 위험이 높은 개인들에 대한 예방적 중재가 가능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