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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부흥하는 교회는 활발한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다. 활발한 예배란 찬양이 살아서 움직이는 예배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성령 충만을 받아서 드리는 예배이다.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예배이다. 활발한 예배는 또한 회중이 참여하는 예배이다. 전통적인 교회는 목회자 중심의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활발한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모든 회중이 참여하는 예배를 드린다. 1. 활발한 예배는 교회 성장의 원동력 활발하게 드리는 예배를 순복음식 예배라고 하면서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많은 장로교나 개신교 신학자들은 이러한 활발한 예배야말로 바로 전통적인 교회가 본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장로교의 박 아론 교수는, 그의 '오순절 주의의 인기와 그 위험성'이란 논문에서 오순절 파의 여러 가지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활발한 예배는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오순절주의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교인들에게 예배학적 참여의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비 오순절계 교회에서는 예배 시에 교인의 참여도가 매우 낮다. 앉아서 찬송이나 부르고 기도는 눈감고 듣고 설교도 앉아서 듣고 교회 광고까지 들으면 예배는 다 끝나고 만다. 그러나 오순절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찬송가를 여러 장 부르고 「아멘」이 계속 터져 나오며 신앙의 간증과 고백을 서로 주고받고 「방언」하며 「신유」를 연출하는 등, 「시끌시끌」한 분위기 가운데 사회자 목사와 교인회중이 혼연일체가 되어 어울려서 예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교인들이 「제3자」, 「구경꾼」이라는 소외감을 전혀 갖지 않는다. 정말로 예배의 헤프닝의 주역으로서 교인들은 예배에 「몰두」(?)하며 심취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예배는 어떤 평론가의 말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될 수가 있다. 오늘날 기성교회는--비 오순절계 개신 교회들--은 너무나 주일 예배 시에 교인회중의 예배자로서의 역할이 부족한 것 같다. 몇몇 「성악가」들(?)에게 맡기고 의존하는 실정이니까 말이다." 개혁 신학자인 안토니 훼크마(Anthony Hoekema)도 그의 저서인 [방언 연구]에서 박 교수와 비슷한 의견을 제시한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예배와 성도들의 반응에 대하여 지금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발성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 . . 「불충분하고 무미건조하며 동일한」 교회의 예배도 사람들에게 큰 유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왜 개인 한 사람[목사를 가르침]이 항상 공적인 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공적인 예배에는 성도들의 많은 반응이 존재하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몇 사람의 잘 훈련된 성가대의 찬송에 대한 오늘날의 강조가 모든 성도들의 영적인 찬송을 강조하는 것을 약화시킨다면 우리는 참으로 예배의 프로그램을 잘 진행시키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후퇴시키는 것인가?" 교회 성장학 교수인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는 그의 저서 [성령의 능력과 교회성장]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그는 남미 개신교 신자들의 80% 정도를 점유하는 오순절 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로 활발한 예배를 꼽는다. 와그너 교수에 의하면 "그들은 교회 가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좀 길지만 인용해 보자. "여러분이 라틴 아메리카의 오순절 교회 예배에 참석할 때 주목할 첫 번째 것들 중의 하나가 얼마나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오순절 예배들에서 찾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큰 하품이다. 불행하게도 하품은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다른 많은 교회들에 있어서는 모두 너무 자주 일어나는 것이다. 예배는 지루하며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주일에 교회에 한 두번 가는 것조차 싫어한다. . . . 그러나 오순절 신자들은 교회에 가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을 망서리지 않는다. 기도의 시간에 조차 그들의 소음수준은 높다. . . .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 되면 방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말하고 그 소음은 큰 포효 소리와 같이 들린다. 원기 왕성한 예배자들은 특별히 그들의 목소리 수준을 자제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으며 또 어떤 사람은 그들이 기도하는 동안 최고의 목소리로 소리친다. 이것이 비 영적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수백의 사람들의 예배는 고도의 영적인 예배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예배를 돕는가? 물론이다. . . . 그것(통성기도)은 높은 극적 느낌을 생산하고 감정을 살지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신자들에게 보다 실제적으로 느끼게 한다. . . . 문법상의 실수나 성직자적인 품위의 결여가 옆자리에 있는 사람에 의해 결코 알아차려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예배는 한낱 수동적인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강단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다. 청중은 '아멘'과 '할렐루야'와 '주를 찬양하라'로 참여한다. . . . 오순절 교회에서 하품을 줄이는 한 가지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 . . .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도 또한 맥박을 고동치게 한다. . . . 이것은 '적당하게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는 바울의 교훈을 위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은 세밀하게 계획되고 잘 훈련된 오순절 예배 형태이다. 이것은 그들에게는 가장 적절한 예절과 질서의 부분이다. . . . 내가 처음으로 라틴 아메리카 오순절 운동에 소개되었을 때 본 가장 비현실적인 것 중 하나는 기타, 만돌린 및 아코디언이 기본 악기인 약 500명의 오케스트라였다. 파이프 오르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대의 파이프 오르간이 500명의 악기의 소리와 같은 소리는 결코 낼 수 없으리라.... 많은 라틴 아메리카 인들에게는 파이프 오르간보다 기타나 아코디언이 보다 매력적이다.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더 '성경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보다 중요한 질문은 '어느 소리가 우리 회중에게 더 좋은가?'하는 것이다. 음악에 맞춘 리듬으로 손뼉을 치는 것은 라틴 아메리카 오순절 교회 예배에서는 평범한 일이다. 이것은 개인의 예배참여를 증대시키고 거룩한 소음수준을 몇 데시벨(decibles) 높이며 드라마의 톤을 높인다." 2. 한국의 교회들 신00 목사는 그의 저서 [이런 교회가 성장한다]에서 뜨겁고 영감 있고 활발한 예배를 교회성장의 주요요인 중의 하나로 제시한다. 몇 교회를 예를 들어보자. 광림교회. "주일대예배를 축제분위기로 이끌어간다. 예배시작도 팡파레의 음악과 함께 시작하여 예배 담당자들이 통로를 통해 입장하는 장면이라든지 찬양대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진행되는 것을 보면 예배에 있어서 개신교의 약점인 보는 면을 강조하고있다." 금란교회. "찬양하는 교회라는 데에 성장의 이유가 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당시 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교회였다. 그런데 금란교회를 보면 첫째로 찬양대의 기술과 열심이 보통이 아니다. 둘째로 가스펠 성가대원들이 예배시간에도 자유롭게 활동하고 교회의 분위기를 뜨겁게 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통성기도하는 것을 보았는데 방언기도를 비롯해서 온 성도들이 뜨겁게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바로 그 교회의 힘이요 성장요인이 된다." 사랑의 교회. "옥 목사의 예배 인도를 보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많이 의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른바 기계적이지 않다. 그는 설교하다가도 함께 복음송이나 찬송을 교인들과 함께 부르기도 하고 성경의 요절을 외우게도 한다. 특별히 회개의 기도를 하도록 유도한다." 수영로교회. "수영로 교회의 예배 분위기를 보면 예배를 드릴 적마다 부흥회처럼 뜨겁고 은혜가 넘친다." 온누리교회. "예배 분위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는데 성장의 비결이 있다. 주일대예배는 예배 전부터 찬송과 복음송으로 온 교인이 입석 하여 찬양을 드리는데 감사와 기쁨과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분위기가 그대로 예배로 이어지기 때문에 하 목사는 「경배와 찬양」이란 말을 많이 한다. 이것이 바로 온누리 교회의 특징이다. 성도들이 찬양을 드리는 동안 찬양대는 질서정연하게 한 줄로 서서 강대상으로 입장하여 대중 석을 마주본다. 입석한 자세로 묵상기도와 찬송과 기도의 순서가 이어지고 찬양대가 찬양을 드린 다음 찬양대는 조용히 내려가서 찬양대 석에 앉는다. 그리고 담임목사인 하 목사가 설교 전에 기도제목을 주고 통성기도를 하게 한 다음 설교를 시작한다. 그래서 매주가 축제의 분위기요 부흥회의 분위기가 된다. . . . (또한) 목요 경배와 찬양에 성장의 비결이 있다. . . . 중요한 것은 뜨거운 분위기가 주일의 예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장은 뜨거워야 하듯이 예배는 누가 뭐래도 뜨거워야 한다. 예배에서의 뜨거움을 비경건하다고 보는 것은 참 경건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주안교회. "주안 교회의 6개 성장 요인 중의 하나는 찬양예배이다. 나 목사의 특별한 점은 성령 운동이다. 장로교에서는 성령 운동하면 순복음 운동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할렐루야, 아멘」이란 말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은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다." 회중이 참여하고, 통성기도를 하고, 각종 찬양곡--찬송가 및 복음성가--을 섞어서 부르는 활발한 예배는 오순절파 뿐만 아니라 오늘날 부흥하는 교회들이 적극적으로 취하는 예배 형태이다. 이들 교회의 찬양은 대부분이 키보드나 신세사이즈(Synthesizer)로 온갖 악기의 소리를 내면서 트럼펫이나 기타의 보조로, 최신 「컨템포라리」 곡들을 최소 30분에서 1시간 이상씩 부른다. 찬양 인도자는 빠른 곡과 느린 곡을 잘 섞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연스럽게 맡기며, 회중들은 오버 헤드 프로젝터를 통해 스크린에 비춰진 가사를 보며, 곡에 따라 손뼉을 치거나 한 손 또는 두 손을 자연스럽게 든다. 즐거운 곡이 나올 때는 얼굴과 온 몸이 기쁜 표정을 짓고 슬픈 곡이 나올 때는 눈물을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때때로 전체가 일어서서 박수를 치거나 손을 올리고 심지어는 기뻐서 깡충깡충 뛰는 춤을 추기도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들은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시 22: 3)과 살아있는 깊은 교제를 나눈다. 이들은 한마디로 찬양을 즐깁니다. "의인은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시 6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