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

삼십대 후반이었나. 어느 날 우연히 고3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분의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네. 바람결에 들은 그 소식은 가슴 한켠 쓸쓸한 파장을 일으키고 휑하니 사라졌지. 그 분이 계신 곳과 내가 있는 곳은 그리 먼 곳도 아니었는데 나는 이 나라에 살고, 그 분은
저 나라에 사는 사람처럼 아득한 거리가 느껴졌기에 그 아픈 소식을 쉽게 외면해 버렸어.
그리고도 한참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또다시 그 분의 소식을 들었다네. 노랗고 붉은 가을날이 노을처럼 지고 있는 창가에서 말이야.
“선생님이 널 보고 싶어 하셔...꼭 연락 해 봐”
고향 친구들 모임에 나타난 그 친구는 마치 전령사처럼 이 말 한마디를 던지고
휑하니 사라졌다네.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난 급하게 말했지. “막내딸은 예쁘게 잘 자라고 있지?” 뒤돌아보는 그의 입가 미소가 이렇게 대답하대. “아암!! 멋지게 크고 있지”
그 친구가 빠져나간 도시의 길가에는 말일세. 자기들이 보았던 거리의 추억은
죄다 노란색 되어 져버린다나? 하면서
가을의 메신저 은행잎들이 나비되어 끊임없이 파닥거리고 있었다네.
나는....28년 만에 옛 선생님을 만나러 갔어.
자네들 혹시..풍기고등학교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가. 경북 항공고등학교 라는 명칭이 내게 낯설 듯, 자네들도 풍기 고등학교라는 이름이 낯설 테지만 어쨌든 그런 학교가 있었다네. 그 곳에는 아주 오래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학교 앞마당을 지키고 있고, 470살 먹은 향교가 뒷마당을 지키고 있는 시골의 작은 고등학교였지. 나는 28년 전에 그 학교를 졸업했고, 나는 나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지나간 28년 동안 진통을 겪었던 걸로 짐작하네. 풍문에 풍기고등학교가 사라지고, 종합고등학교가 들어섰다는 말을 들었을 때던가. 찌그러진 자동차 한 대가 교문 초입에 낡은 동상처럼 누워 있는 걸 보고 고개를 돌려 버린 기억이 나.
그 낯설고 기이한 기계덩어리 너머로 은행나무만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내 아름다웠던 여고 시절을 떠올리려 했지만....아무 것도 기억해 낼 수가 없었지.
그 때, 무너진 고향 옛 개울가에 절망하고, 달라진 학교 이름이 곤혹스러워 도망치듯 고향을 빠져 나왔던 나는, 지금 자네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의 28년 선배 되는 사람이고, 그러니까 그대들은 까마득히 어린 내 후배가 된다네.
후배라고 불러도...괜찮겠지?
이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한다네. 아~ 이럴 줄 알았다면 TV 단막극에 나오는 엑스트라라도 되어 있을 걸. 어둑한 무대 뒤 쪽에 웅크리고 앉아 자기 역할을 기다리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무명 연극배우라도 되어 있을 걸. 몇 권의 책값을 지불하고 에세이 작가라는 명칭이라도 사서 달을 걸. 도대체 내세울 거라곤 26회 졸업생이라는 명함뿐이라는 게 정말 미안해진다네. 그렇지만 읽어 주시게. 비록 내세울 자격은 빈곤하나, 나는 지금 몹시 간절하다네.
앞에서 했던 이야기를 우선 마무리해야겠어. 28년 만에 가진 고3 담임선생님과의 해후 말일세.
장형원 선생님께서 찍어주신 주소를 찾아 서울 목동의 새샘 교회라는 건물을 발견했을 때 나는 좀 놀랐다네. 그 교회의 모양새가 여느 교회와는 좀 달랐기 때문이야. 하얀 목조로 지어 진 그 교회는 흡사 알프스 산장을 옮겨다 놓은 듯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종교의 위엄을 내세우기보다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들여다보고 싶을 만큼 작고 아름다운 이웃집 같았지.
언덕 위 귀퉁이에 세워진 그 교회에 노을이 질 때면 말이야. 앙증맞은 꼬마 천사들이 바구니 하나 가득 작은 별들을 담아 들고 날개 짓하며 하늘로 올라갈 거 같은 그림이 떠오르대. 붉은 빛과 푸르고 노란빛의 애기 단풍잎 같은 그런 별들을 뿌리기 위해서 말이야. 어째 상상이 되시는가?
우리는 포옹을 하며 기쁨의 웃음을 터뜨렸고, 반가움으로 손을 잡았지. 눈가의 주름은 세월의 흔적을 제자와 스승 모두에게 만들어 주었지만 아~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숨차게 풍기 고등학교로 달음질쳤다네. 순식간에 난 열아홉 소녀가 되었고, 수줍어지고 명랑해졌어. 내가 가진 기억과,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기억을 짜 맞추고 그 시절 내가 쓴 글과, 내 사진과, 내가 불렀던 노래 제목까지 기록되어 있는 교사 수첩을 들여다보면서, 감탄과 감동의 표현을 으아아!! 비명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네. 생각해보게나. 짐작치도 못한 30년 전의 자기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는 것을. 그대들도 15년 전 자기 모습을 떠 올릴 수 있다면 아마 이 세상에 불효자는 존재할 수도 없을 거야. 어쨌든 놀랍고 경이로운 들여다보기였다네.
남편을 병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오랫동안 혼자 지내다가 올 일월 재혼하신 선생님은 행복해 보였고, 같은 상처를 가진 목사님은 한없이 따뜻한 미소와 눈길로 울 선생님 주위를 감싸며 보호해 주시고 계셨지. 놀라지 마시게 자네들. 예순이 넘어서도 사람은 사랑을 한다네.
이 또한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어쩐지, 난 아이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남들에게 털어 놓기 싫었던 이야기도 하게 되었고 그 분은 늙은 제자의 등을 한없이
쓰다듬으며 위로해 주었지. 뒤 늦게 고향과 화해하고, 고향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는 말에 선생님은
말씀하셨어.
“어쩌면 네가 글을 쓰도록 하기 위해 그런 고통을 주셨을 거야”
목사님께서는 단 한 번도 내가 소리 내어 해 본 적 없던 기도를 해주셨다네. 전투기 조종 훈련을 받고 있는 내 아들의 소망과, 내가 뒤늦게 이루고자 하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축복과 영성을 달라고...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만 감사한 마음에 눈물을 글썽이며 함께 기도했어.
그렇게 기분 좋은 만남을 갖고 돌아오면서 문득 자네들을 떠올렸다네. 그 옛날 우리들이 앉은 자리에서, 내가 품었던 불안과 조바심까지도 고스란히 안고 있을
내 어린 후배들에게 이 가을이 다 저물기 전에 한통의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 말이야.
아마, 신금식 선생님을 모르는 이는 없겠지? 그 분을 2년 전에 만나면서 나는 학교 소식을 들었어. 항공 고등학교로 다시 모교의 명칭이
바뀐 것과 학교가 여러 가지 변화와 진통의 역사를 겪었음을 알게 됐지. 지금 교감 선생님으로 재직하시는 그 분을 만나기 위해 작년 여름날 난 다시 내 모교를
찾았다네. 입구에 누워 있던 자동차가 치워지고 비행기가 교문 담장에 올려져 있더군.
운동장에 들어섰어. 아카시아 무성한 봄 날, 농구장에서 윗통을 벗어젖히고 우르르 몰려다니던 내 학창 시절의 남자 동창들 고함 소리가 제일 먼저 튀어 나오고, 검고 굵은 은행나무 몸통에서 어찌 저리도 아름다운 빛깔을 만들 수 있을까를
상상하며 한 팔을 괴고 앉은 소녀들의 아득한 눈빛들이
창가에 걸쳐져 있는 걸 보았지.
오른 편 테니스장에는 커다란 격납고 같은 건물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내겐 친구와 팔짱을 끼고 앉아 ‘이건너와 나만 알고 있는 비밀!’ 운운하며 손가락을 걸었던 실루엣이 떠올라 가슴 한쪽이 아릿해졌지.
고향을 품었을 때와 고향을 외면했을 때의 감정이 이리도 다르다니.... 놀랍더군.
교무실로 들어 서기 전에 너희들을 만났어. 어쩌면 그리도 그 때 우리들과 닮아 있던지.. 땡땡이치려는 남학생을 잡아 세우고 협박 반
하소연 반으로 설득하고 있는 선생님마저도 어찌 그리 옛날 모습 그대로인지..
우리가 떠난 자리를 버티고 계시면서 학교 역사의 산증인으로 사신 그 분은 아마 마지막
열정이 다 할 때까지 잔소리를 하시겠지. 생각 같아선 너희가 사는 방 안까지 쫓아가서 한마디라도 더 거들고 싶어 하실걸? 세상에, 잔다르크가 딴 나라 여인인 줄 알았는데 이곳에 있었네 하면서 혼자 웃었다네.
그 분은 언제나 아쉬운 게 많은 거 같아. 55회 졸업생을 배출 할 때까지 동창회가 결성 되지 않은 게 아쉽고 이름이 바뀌었다고 뿌리가 달라지냐? 졸업생들의 외면이 섭섭하고 변화 없는 발전이 어디 있겠느냐며 학교가 없어지면 누구의 손해인가 자긍심 없는 우리들을 꾸짖었지. 창피하기도 하고, 부끄러웠지만 그런 선생님이 모교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웠어.
교무실을 둘러보고, 운동장 저 끝에서 단발머리 소녀가 총총총 걸어오는 환영을 바라보며
허전함과, 그리움과, 아련함에 쌓여 추억 속으로 발걸음을 뗐다네. 우리 학년만 해도 남학생 260여명..여학생 130명. 그 많은 아이들의 추억을 베어 문 하늘은
여전히 그 하늘빛인데, 이제는 자네들을 굽어보고 있더군.
한 번씩 이런 생각이 들지 않던가? ‘왜 내가 이곳에 있지? 왜 하필이면 서울도 아니고 부산도 아닌 풍기지?“ 도대체 어떤 경로를 통하여 어떤 운명이
예정되어 있기에 나는 지금 이곳에 있어야하는가...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의문의 증폭으로 미래는 불안하고, 보이지 않는 운명에 대처하는 빈약한 자아에 머릿속은 어수선한 서랍장 같지 않은가?
나는 오로지 탈출 풍기! 만을 목표로 잡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명확한 이유도 모른 체
읽고 외우고 써댔다네. 왠지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너무나 찬란한 딴 세상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확신하면서
말이야. 어처구니없는 착각이었지. 물론 한 번쯤은 그런 원망도 했다네. 누군가가 나를 조금 잡아주었더라면.. 수많은 암초를 숨기고 있는 인생의 항해 길을 노련하게 헤쳐 나가는 선장을 만나
동행했더라면... 그랬더라면... 하고 말이야. 하지만 이제 나는 알게 됐다네.
그런 행운의 부재를 원망해봐야 소용이 없고, 따지고 보면 숱한 행운이 찾아 왔음에도
그걸 차 버린 건 내 자신이라는 걸 말이지. 아무리 작고 초라한 시골 학교라 하더라도 훌륭한 스승님은 있게 마련이고, 어디에서
살게 하던 우리들 부모님은 위대하시다네. 긴 긴 길을 돌고 돌아 결국 내 근원의 뿌리가 이 곳임을 알았을 때,
아~ 나는 마흔 여섯 살이 되어 있었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마흔 여섯이라는 숫자를. 그대들은 이 숫자에 고개를 저을지 모르나 나는 그 숫자에 희망을 품었다네. 작년부터 내 고향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모르고 지나쳤던 전설을 만나고,
숨겨진 스승과 대면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속살에 안기면서 새로 태어난 거야. 졸필임에도 내 고향 풍기 인들의 격려와 사랑으로 신이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제 그 글들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니 참으로 놀랍지?
고향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나의 모교 풍기고등학교를 가슴 깊이 묻어 두었다네. 풍고는 없어진 학교이고 추억만을 숨겨 놓은 비밀의 정원이라 생각했기에. 그런데 비밀의 정원에서 한 통의 졸업 증명서를 보내 주었다네. 덤으로 생활 기록부까지 첨부해서 말이야. 뒤늦게 다시 공부하고 싶은 열망에 내가 원래 가고 싶었던 국어 국문학과를 가려고 서류를 준비하는데 항공 고등학교에서 그걸 보내준 거야. 편입이 가능하다해서 그 서류를 제출하지는 않았지만 그 때 난 알았지. 풍기 고등학교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시크릿 가든이 아니라 그 전보다 훨씬 아름답고 힘차게 도약하는 해 뜨는 정원으로 변모하는 과정이라는 것도 알았지.
자네들이 얼마나 우리들에게 자랑스럽고 희망을 주는 존재라는 걸 아시는가. 올해 55회 졸업식이라지. 우리들의 역사를 싹뚝 잘라
먹은 한 자리 숫자의 졸업인 줄 알았는데........얼마나
좋은가..그 많은 선배들이 자네들을 응원하고 있으니. 한동안 사람들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대 풍고, 대 풍고~ 이렇게 불렀다네. 아마도 선지자적인 예견을 했는가보이. 확실히 큰 학교가 되었으니 말이지.
이제 그대들의 학교가 명문으로 도약하고 있다지. 아무나 가던 학교에서 아무나 갈 수 없는 학교로 바뀌고 있다지. 풍기에 새로운 명품이 또 하나 탄생하기 직전이라지. 그 곳에 보내기 위해 재수를 시키는 부모도 있다하니
정말 대단해. 적어도, 자네들은 졸업 후 진로를 걱정하며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된다지. 그래서 잠깐 내 아들의 사촌 형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네. 그 청년도 자네들처럼 진주 공군사령부 안에 있는 항공 고등학교를 다녔지. 어린 나이에 군대 생활을 7년인가 하고(아마 의무 복역이라는 것 같아) 그는 안정된 군 공무원직을 포기하고 올해 사회로 나왔다네. 군에서 그냥 데리고 있었겠나? 일류 기술자를 만들어 주었지. 사회 어디를 가도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기술을 갖고 나와서 그는 취직 대신에 자신의 기술을 살릴 수 있는 전문대학을 선택하더군. 어떻게 됐을 거 같은가? 그는 첫 학기에 전 과목 A+를 받아 수석을 했고 교수님들이 서로 자신의 프로젝트에 그를 참여 시키려고 경쟁을 한다는 거야. 그 청년은 그걸로 만족할 수가 없대. 무엇이 그를 만족시킬 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토익 공부를 계속하는 걸로 보아 아마 외국을 나갈 생각을 하는 거 같아서 그게 쉽겠냐고 물었어.
씨익 웃으며 대답하대. 군대 있을 때 모든 자격증을 다 따놨다고. 남은 건 토익점순데, 틈틈이 계속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 거라면서 말야. 자기는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고. 아마 그는 나처럼 공부에 대한 열망이 많았나 봐. 27살 먹은 학생이 대학 공부가 정말 재미있다면서 행복하다는 말을 주저하지 않고 하는 걸 보면 말이야. 짐작컨대, 그대들도 비슷한 진로를 밟을 거 같아서 지어 낸 이야기가 아닌 실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라네. 어떻게 좀 도움이 되겠는가?
교장 선생님 이름 석 자를 가슴 깊숙이 새겨두게. 부임 그 자체로 화제가 되신 그 분의 이름은 배.창.식 이라네.
내 아들이 그러더군. 평생 악수 한 번 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일 분이라고. 나는 평범한 여인이니 영광일 것 까지는 없을 거 같은데 우리 아들은 군인이라 그리 말하는
거겠지. 하지만 사실은 우리 지역민들 모두의 화젯거리가 되고도 남았다네.
나는 그 분이 삼성 장군 출신이고 공군 작전사령관이었고 어마어마한 직위를 가진 분이라는 것에 놀라는 게 아니네. 작은 시골에, 이름도 촌스러운 풍기라는 곳에 그것도 알려진 적이 없는 초라한 고등학교에,
교장 직을 수락했다는 것이 너무 놀랍다네. 그걸 추진한 사람도 대단하지만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수락하셨는지가
말할 수 없이 궁금하다네. 나 같으면 풍광 좋은 소백산 자락에 별장이나 지어 놓고 살 것 같은데 어떤 의지와 기백이
그를 움직이게 했을까 정말 수수께끼 같은 일화가 탄생한 거야. 짐작이나 하실까? 마음깊이 우리 지역민들은 그 분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자네들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그 분의 제자임을 팔고 다니게. 똑바로 가지 못하고, 자꾸만 휘청거리고, 매사 되는 일이 없다고 한탄스러울 때도 그 분의
이름을 부르시게. 나는 배.창.식 장군님의 제자다! 그렇게 소리 지르시게. 교과서 들고 단어 한 마디 가르쳐야 스승인가. 나에게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알게 하고 깨닫게 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면 그것이 바로 스승님 아니겠는가.
대한민국 제 일의 일승지 풍기에서 대한민국 제 일의 명산 소백산 아래에서 대한민국 제 일의 스승님 곁에서 자네들은 지금 공부를 하고 있다네. 그러므로 자네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고등학생임을 잊어선 안된다네.
그대들이 어디에서 살다가 왔는지 나는 모르고 그대들이 어디로 떠나 살 것인지 그 또한 알 수가 없지만 ‘풍기’를 기억해 주시게나. 인삼과 사과와 인견을 기억하는 것도 좋지만 풍기 바람과 풍기 사람을 잊지 마시게나. 소백산 비로봉과 국망봉과 죽계계곡과 황준량 선생님까지 알아둔다면 더 좋고. 아마도 그 전의 우리처럼 별로 알고 싶지 않겠지만 먼 훗날이라도 반드시 자네들은 다시 이곳을 찾아 올 걸세. 다시 찾을 땐 그랬으면 좋겠네. 부족한 선배가 쓴 책이지만 풍기 아리랑 한 구절이라도 읽고, 내가 느끼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흠모하는 풍기 속살을 한 번 들여다보시게. 얼마나 매력적이고, 알수록 알 수 없어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풍기의 매혹을 느껴보시게나. 그래서, 자네들도 풍기의 일부분이 되어 주신다면 난 더 바랄 것이 없다네.
마무리를 해야겠지. 길게도 썼네만 지겹지는 않았는가?
‘앵무새 죽이기’ 라는 책을 읽어 보셨는가? 무시당하고, 차별 당하는 약자들에게 어른들이 얼마나 편견과 냉혹함으로 대하는 지를 아이의 눈으로 보고 외치는 근사한 소설이라네. 이 소설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고 하는데 검증된 건지는 잘 모르겠어. 이 소설을 쓴 ‘하퍼 리’ 라는 작가는 오직 이 한권의 책만 썼다하네. 난,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지.
그런데 말이야. 풍기 아리랑 7편 죽계계곡을 쓰다가 우연히 습작해 놓은 내 소설을 읽다 그만 절망에 빠져버렸다네. 뒤늦게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잘난 척하다가 망치가 뒤통수를 내려치는 충격에
휘청한 거야. ‘하퍼 리’ 가 배시시 웃더군.
내가 존경하는 박경리 선생님은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그리고 꼬박 두 달 보름을 멍하니 방구석에 앉아 있었지.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고.. 자조하고, 낙담했어. 산을 찾아다니고, 사람을 만나러 다녀도 소용이 없었지. 조바심은 불안을 키우고 난 또 다시 숨어 버리고 싶었다네.
그런데, 다시 만난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 네가 얼마나 악바리 같고 근성 있고 속이 넓었는지 아느냐고.. 자존심도 대단했지... 라고.
그 순간 나는 알았다네. 내가 잠시 악바리 근성을 멀리 보내 버렸다는 걸. 세상에 나와 30년 가까이 짜고 뒤틀리면서 낡은 행주처럼 후즐근 해져버렸다는 걸.
다시 그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대. 고등학교 시절에 갖고 있었다면 지금도 있겠지. 주인 잃은 근성이 이제나 저제나 절 불러주길 기다리겠지. 그래, 다시 한 번 일어나자. 그러자 응? 했다네. 제자들의 기록을 30년이 다 될 때까지 버리지 않고 보관해 오신 나의 스승님께서 응차! 또
다시 늙은 제자를 일으켜 세워 주시지 않는가. 얼마나 감사한지..
언젠가 그랬음 좋겠어. 기특한 후배들을 찾아가서 당당하고, 멋지고, 폼 나는 선배 노릇 한 번 했으면 정말 좋겠어.
너희들의 뜨거운 에너지를 힘차게 느끼고 뜨겁게 안아봤음 좋겠어. 많이 노력하겠네. 자네들은 그 곳에서 나는 이곳에서 다 함께 견디어 보세.
명심하게나. 세상은 저 하기 나름이라는 걸. 자네들 가슴에 위대한 우주가 움트고 있음을 절대 잊어선 안 되네.
가을이 끝나가는 자락에 이렇게 그대들을 만나서 영광이었네. 수많은 추억과 이야기를 포개 안고 여기까지 날아와 준 풍고의 은행잎 덕분에 이 선배 잠시 동안 행복했다네.
이쯤에서......사랑한다 말하고 싶은데 괜찮겠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창 밖 은행나무가 노란 리본을 흔들고 있지만...... 우리 풍기인들 모두, 그대들을 사랑한다네. 진심으로....
그럼, 다들 건강하시게...
2010년 11월 17일 풍기 사람 이 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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