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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인동창신동의 별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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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창신초등학교 스크랩 이호현 님의 서울창신초등학교와 봉사활동 이야기, 숭인1동 5통장 까망천사와의 대화
까망천사 추천 0 조회 212 17.04.05 01:5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이호현 님의 서울창신초등학교와 봉사활동 이야기, 숭인1동 5통장 까망천사와의 대화 인문이야기 / 창신숭인

2015.09.15. 14:16

복사 http://blog.naver.com/csteakriji/220482015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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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현 님의 서울창신초등학교와 봉사활동 이야기

숭인1동 5통장 까망천사와의 대화

 

 

이호현 님은 외할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숭인동에 정착한 집안으로 3대가 서울창신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창신초등학교 운영위원장과 지역 안팎의 수많은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까망천사 이호현 님은 2013년 NGO 대상 자원봉사 개인부문, 2015년 종로구민상 환경보호부문을 수상했습니다.

 본 인터뷰는 2015년 9월 1일 창신초등학교 건너편에서 운영하는 코리아 전기사에서 진행되었습니다.



Q. 3대가 서울창신초등학교 출신의 토박이 집안으로서 선생님 집안의 숭인동 정착 내력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A.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1957년 8월 태어났고, 결혼하고 나서 딱 6개월 나가서 생활했지요.

 이게 졸업장 앨범이에요. 이게 우리 외할머님인데 효제초등학교를 나오셨고,

그때 당시 효제초등학교 나올 정도면, 상당한 학력이라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 외할머니가 한문도 잘 아셨어요. (앨범을 보여주며) 이것은 남동생 상장이고, 이것은 여동생. 내 건 다 없어졌어요.

 

    외할머니는 효제초등학교 출신, 어머니부터 나와 두 동생, 두 아들 3대째 창신초등학교 졸업

예비군훈련장에서 받은 것도 있고, 졸업장이 있고. 이것은 창신초등학교 운영위원장할 때,

내 아내하고 같이 교장선생님한테 받은 감사장이에요. 유일한 부부감사장이죠. 

사실 어릴 적 내 꿈은 화가였어요. 외할머니가 화가한테 그림물감 남은 것을 얻어다 주셔서

그걸로 내가 사생대회에 나가서 몇 번 상을 탔어요. 그런 것 때문에 지금 내가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것 같아요.



   

    소나무 많고 공기 맑던 낙산,

    겨울에 썰매 타던 자지동천

  

Q. 어머니는 어디 출생인가요?

?

A. 어머니는 신설동에서 태어나셨고 계속 여기서 살았어요.

여기 원래 집이 어머니의 집이었어요. 외조모님께서 궁안에 지내셨는데,

몸이 안 좋아서 이쪽에 쉴 목적으로 우리 집을 산 것이고,

그때 5백 환을 주고 샀어요. 그 당시 낙산은 소나무가 많아서,

송하가루가 마당과 마룻바닥에 아주 곱게 쌓였다고 말씀하셨고,

그만큼 여기가 공기가 좋았다고도 말씀하셨어요.

?

Q. 창신초등학교 다니셨던 시절의 풍경을 설명해주십시오?

 

A. 바로 저기 앞에 개천이 있었는데, 창신초등학교 정문이 여기가 아니었었죠. 원래 저 뒷문이 정문이었고.

여기 정문은 옆문이었는데. 여기가 자지동천이라는 개천이 있어 겨울에는 썰매 탔던 장소입니다.

 개천의 폭은 대략 2-3미터였고, 1970년대에 복개되었죠. 그전에는 다리처럼 넘어가고, 비가 오면 물이 넘치고 그랬어요.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서 썰매를 타곤 했는데, 내 남동생이 여기 얼음에 빠지기도 했지요.

 

학교 안에는 앞쪽으로 위에 연못이 있었고, 수영장도 있었고, 원숭이도 키웠고, 닭, 꿩 같은 것도 키우는 동물원(사육시설)도 있었어요.

 1970년 창신초등학교 학생 수는 한 학년에 1천 6백명 정도 되었고, 122학급에 전체 학생수가 1만 166명으로 엄청 많아져서

교실 수가 턱없이 부족한 사정이라서, 1971년 낙산자락 위쪽에 명신초등학교로 교사를 분리하여 학생들을 보냈던 시절에

내가 창신초등학교를 다녔죠.

?

Q. 창신초등학교에 대한 애정으로 학교운영위원장도 여러 번 하셨고, 동창회 활성화를 위한 일을 많이 하셨는데 그것의 계기는?

 

A. 맨처음에 애들 신학기 들어가면 학부모회의를 한다고 다들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아내가 회사를 가는 바람에 내가 가봤는데, 우리 반에 학부모가 모두 3명이 왔더라고요.

여기는 봉제업에 종사하는 부모들이 많기 때문에 참여가 힘들죠. 가봤더니 헐! 3명이 있으니까, 

한 사람은 학부모회를 맡아야 되고, 한 사람은 무슨 뭘 맡아야 되고, 한 사람은 뭘 맡아야 된다 하니까,

쉬이익! 도망가다 걸렸어요. 이게 걸린 게 교장하고 부딪힌 것이 학교운영위원장을 맡게 된 동기가 되었지요.

?

Q. 창신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을 맡으신 후 어떤 활동에 주력하셨는지요?

?

A. 그 이후 부진했던 동창회를 활성화시키려고 초대 총동창회장 이종찬 씨를 찾아가 만나 설득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었고,

또한 그 당시 한성교 교장선생님을 설득하여 총동창회 사무실을 교내에 마련할 수 있었어요.?

 

               십시일반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모습의 서울창신초등학교 동창회가 되길

?

창신초 체육대회할 때, 학부모들이 참석해서 동문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직접 만드느라 아내에게 고생을 많이 시죠.

초등학교 동창회는 지역사회와 같이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요 밑에 가구점이 우리학교 동창회 후배예요.

야, 후원금 내! 없어. 만원이라도 내. 아이, 어떻게 만원을 내요. 2만원 받으세요라고. 건너편 소금집,

그리고 저 밑에 옛날에 빈대떡집, 또 약국에 가서 우리 동창회 하는데 기증 좀 해주세요! 그래서 박카스 두 박스.

저쪽 건너편 떡집, 그래서 이 동네만 한 30군데를 다 긁었어요. 왜냐하면 나는 지역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참여를 독려시키기 위해서.

그때 여기 우리 아들 친구들이 지나가는 거야. 얘들아! 천원씩 다 나눠줘. 일루 줘. 싸인 해. 후후후. 천원씩 다 기증하니까 한 30명이 돼요.

그렇게 하니까 이 동네 사람이 한 50-60명이 항상 참여하잖아요.

 지역과 함께 하는 창신초등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 얼마나 좋아요!

 제일 먼저 한 게 창신초등학교 들어가면 현관 앞에 큰 거울을 수건하고 같이 기증했어요.

그 다음에는 체육관 안에 농구 뽈대, 벽에 붙이는 뽈대. 학교에 예산이 없는 게 아니거든요.

하지만 우리 동문들이 해주겠다고 해서 하는 겁니다. 체육관에 시계도 해주고,

정문 앞에 있는 벽시계, 저건 학부모들하고 바자회 열어 물건 팔아서 만든 거고요. 하여튼 많이 했습니다.

 

Q. 창신초등학교 100주년을 앞두고, 창신초등학교가 지역사회와 주민, 동문들에게 어떤 일들을 신경 쓰면 좋겠는지

학교 쪽에 바라는 바가 무엇인가요?

 

A. 100주년이 다가왔는데도 불구하고, 졸업식이나 행사를 할 때 마땅한 기념탑이 없어요. 

그래서 기념탑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도 예전에 주장을 했었고, 자금을 조금 모아가지고,

각 기수별로 명판을 만들어서 탑에다 붙여서 올리자는 얘기까지 했었어요. 우리 부모가 나왔던 학교, 내가 나온 학교,

또 우리 자식들이 나온 학교인데 동네주민과 함께 성대하고 멋있고 뜻있는 행사를 했으면 좋겠는데...

 

 남대문 전소사건에 대한 격분으로 삼배일보하며, 인간성회복 운동추진협의회 봉사단장을 맡게 되어

 

Q. 선생님께서 종로통 블로그 기자단, 민방위 봉사활동, 최근 네팔 지진 봉사, 주민공모사업으로서 숭인공방 운영 등등

 봉사활동을 여러 가지 계속 해오셨는데, 특히 인간성회복 운동추진협의회(이하 인추협) 봉사단장의 직함으로

활동해오신 계기를 설명해주십시오?

 

A. 얼마전 민간 구조대로 다녀왔던 네팔 지진 봉사는 매몰된 사람들의 시신수습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네팔은 많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었고 지금도 필요합니다. 인추협은 인간성회복 운동추진협의회의 약자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시민단체로서 입김이 많이 커졌는데, 운동권이었었죠. 최근 데모를 하고 뭐 그러고 있으면,

맨날 시청 앞에 가서 현수막,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데, 어디서 처음 만났냐면 남대문에 불이 났을 때 격분을 했거든요.

그 다음날 행사로 불이 난 남대문현장에서 우리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삼배일보를 한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뒤로 빠져있는데, '아, 이호현 씨 왔어요.' '아 예.' 그러더니 방제복 같은 것을 입으라고 하더니만,

저기 경찰들이 쫙 있으니까 저기까지만 가면 된대요. 이 경찰들이 내가 삼배 절 한번 하니까, 다 비키는 거야.

아이씨, 남대문 한바퀴 다 돌았잖아! 무르팍 다 까지고, 거기서 도와달라 해서 몇 번 도와준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내 까망천사 블로그를 보면 잘 아시겠지만,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면 잘 안 올립니다. 거의 다 내가 찍은 사진이죠.

나는 다 퍼가라고 허락해요. 애들 뭐 봉사하는 모습들, 행사장 모습들. 지금은 그런 것 없지만 연말만 되면 봉사점수라든지

자기 포트폴리오 만들려고 그러면 블로그에 와서 다 복사해가고 그럽니다. 어떤 분은 고맙다고 음료나 과일을 사오기도 하죠.

인추협은 단체의 성격은 참 좋습니다! 그밖에 단체는 내가 한국재능봉사단이라는 단체를 가지고 있고,

사단법인 미래의 응급조치 강사단장, 참사랑봉사회, 서울시 자원봉사센터, 종로구 자원봉사센터에 있고.

내부 장애인연합회 홍보이사, NGO TV 등 조금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좋다고 판단되면 어디라도 달려가 봉사를 하는데,

가장 미안하고도 고마운 사람이 제 아내랍니다! 언제나 같이 가자고 합니다.

 

Q. 지역 내의 봉사활동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A. 나도 동네 밖에서 사업을 하였기 때문에, 동네일은 제대로 돌보지 못했어요.

코리아 전기사를 하면서부터 들어왔는데, 새벽에 보니까 노인분들이 무거운 방역기를 지고 다니면서 방역을 하시는 거예요.

다른 것은 몰라도 그건 내가 해주고 싶다. 그래서 새마을지도자로서 방역을 비롯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일 종로구에서 발족하는 것이 옛날에 있던 조직을 다시 만든 환경감시단, 그때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 남은 사람이 나 하나니까

나더러 단장을 맡으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클린넷이라고 해서 지역내 청소관계라든지 환경관계,

또 EM이라고 해서 활성액을 배포해주고 활용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봉사단체라는 걸 보면,

이 사람도 저기에 가 있고, 저 사람도 저기에 가 있고. 그게 참 문제예요!

?

Q. 숭인1동 통장 일을 10년 넘게 하시면서 느끼신 동네주민들이 바라는 주거환경, 생활환경의 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사항들은 무엇인가요?

 

A. 옛날에는 통장 앞에 이사를 가거나 그랬을 경우 확인도장을 찍었잖아요. 지금 그게 없어요.

그냥 한 달에 한번 주민등록 새로 온 사람들만 명단에서 우리보고 확인하라고 싸인해 달라는데.

주민관계에서 예전만큼은 안 움직이는 것 같고, 내가 통장인걸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요.

문제는 재개발이라는 걸 이쪽 지역에서 했다가 굉장한 다툼이 많이 있었잖아요.

그때 나는 항상 중심에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그런 입장이었었고. 속마음이나 내가 표시하는 것은 나는 이 지역에 계속 살고 싶다.

대부분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죠. 조금 뜯어고쳐서 기회만 된다면, 도시재생이나 정부에서, 구청에서 조금 뜯어고치는 것에 대해서

조금씩이라도 지원해주면, 그 집에서 계속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다수이거든요.

 

이번에 무료로 공구 빌리는 것은 이틀에 한 사람 꼴로 와서 빌려갑니다.

빌려간 사람들이 고맙다고 박카스, 음료수도 사오고, 떡, 옥수수도 갖고 오고요. 여긴 시골 같은 분위기죠. 하하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 위해 리모컨스위치와

       손잡이 지지대 제작 보급 활동 주력

?

 노인들을 위해 계단이나 벽에 고정시키는 손잡이 지지대를 내가 맞추어놓았습니다.

 만약 여기를 붕대를 감고 내가 일어난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이렇게 된 상태에서 뻗은 상태에서 일어나려고 한다면, 뭘 잡아야 되지요.

 어르신들 90%가 뭘 잡으려고 하게 됩니다. 잡으러 오다가 뒤로 자빠지고,

 팔을 대면 에누리 없이 팔을 다친답니다. 지지대로 쓸 수 있는 것이 무지 필요하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이쪽에서 누워있는데 떨어진 문 입구에 스위치가 있어요.

 그러면 거기까지 몸을 이끌고 갔다 오면서 불을 끄면 껌껌해서 지레짐작하고 와야 합니다.

 리모컨스위치가 필요하죠. 그걸 굉장히 많이 느꼈어요.

 

  주민역량 강화에 더욱 주력하길 도시재생 지원센터에 당부

 

 Q. 선생님이 생각하는 도시재생의 방향이랄까, 지역토박이로서 저희 센터나 조사하는

 저희들한테 당부하실 말씀은 무엇인가요?

 

 A. 도시재생이라는 것이 여기서 뭘 따야한다, 유치를 해야 한다고 말이 많았는데.

 그때 당시 재개발 해지시점에 그런 얘기가 나와서 그런 걸로 사람들이 인식을 또 했었어요.

말만 바꿔서 또 하는 거다. 도시재생, 선도지역 앞장서서 재개발하는 거다. 그러다보니까 개념들이 굉장히 없었어요.

그래서 인터넷 찾아보고 아! 이게 처음 시작하는 거구나. 딴 데 안 했더라고요. 개념적으로 많이 하고, 다른 데도 이제 전체적으로 해서

무슨 뭐 순천도 하고, 어디 딴 동네도 하고 그런 걸 몇 군데 들어가서 봤더니, 개판이더라고요.

기본적으로는 어디 서울시에서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는 식의 도시재생 밖에 안 되는 것 같고,

우리가 여기서 주민선도로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주민이 그렇게 할 수 있게끔 하는 게 도시재생 지원센터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新택리지 서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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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7.04.05 01:55

    첫댓글 노인들을 위해 계단이나 벽에 고정시키는 손잡이 지지대를 내가 맞추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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