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마지막 강행군 시작. 버스에 짐을 싣고 오르는 일행.
이곳 소흥은 가이드가 처음 가보는 곳이래서 현지 가이드를 소개받아 진행하였다.
노신고리(魯迅故里)
노신고리는 주차장부터 이렇게 노신의 냄새가 듬뿍 나게끔 꾸며놓았다.
노신고리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맞은 것은 콩이지(孔乙己)였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이곳 특산물을 선전하는 인형에 불과했지만 구걸하여 돈푼만 생기면 술 한 잔에 회향두 한 접시를 시켜놓고 양반 타령만 하던 그가 떠오른다. 끝까지 변화를 거부하다 결국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그를 만들어낸 노신의 의도는 분명하다.
그건 바로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깊이 잠든 중국인의 민족혼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고리의 벽에 금색 글씨로 새겨놓은 민족의 척추라는 글자는 노신을 평가하는데는 아주 합당한 말일 것이다.
노신고리에서 열심히 설명도 듣고 영상으로 담기도 하는 회원들. 삼미서옥이다.
이곳은 노신이 공부했다는 삼미서옥이다. 원래는 삼국시대 위나라 동우(董遇)의 고사에서 따와 삼여(三餘: 冬, 夜, 陰雨)서옥이라 하였는데 노신의 스승인 수경오(壽鏡吾)의 조부인 수봉람(壽鳳嵐)이 이렇게 이름을 고쳤다. 세 가지 맛은 도량(稻粱: 경서), 효찬(肴饌: 사서), 혜해(醯醢: 젓갈이란 뜻인데 제자백가)를 말한다. 그러니까 노신도 이곳에서 공부를 배울 때는 콩이지처럼 경서를 최고의 과목으로 생각하고 배웠던 것이다.
소흥의 물길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오봉선(烏蓬船). 이렇게 노신고리 안의 작은 물길에서도 만날 수가 있었다.
노신고리를 돌아나오는 곳의 패방. 안쪽에는 덕린(德隣)이란 글씨를 새겨놓았다. 예교의 숭상을 비판하며 <광인일기>라든가 <약> 같은 빼어난 단편소설을 지은 노신의 고리에서 이렇게 논어의 구절에서 따온 패방을 만나게 될 줄이야...
이 사람을 보고 왜 순간적으로 노신 생각이 언뜻 떠올랐을까? 이곳에서 기념품이나 팔고 있지만 노신의 후예임이 분명하다.
노신의 생가에 있는 노신의 침실. 과연 저런 침상에서 잤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침실 곁에 있는 책상. 노신의 체취가 풍기는 듯.
이곳에서는 마침 무슨 공연도 행해지고 있었는데 가자마자 끝이 나서 무슨 내용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린 노신의 모습? 이마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와서 쓰다듬었으면 저렇게까지나...
노신이 어렸을 때 제사를 지냈음직한 모습을 재현해놓은 밀랍 인형.
노신고리를 돌아나오면 보이는 광장의 안내판을 겸한 큰 벽화. 이곳에서 단체사진이나 한번 찍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매정한 가이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휑하니 다음 코스로...
심원(沈園)
애국시인 육유의 애틋한 사랑이 깃든 심원 입구. 심원과 당완의 모습을 멋진 조형물로 표현해 놓았다. 육유의 애정 방면으로는 한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부끄럽게도 이곳에 와보고서야 알았다.
심씨원 입구에서 가이드가 표를 사는 동안 기다리고 있다.
시검석을 연상케하는 이 돌에는 그러나 단운(斷雲)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육체적 사랑은 이제 끝이 났다는 뜻이다. 타의에 의해 헤어지게 된 두 사람의 애틋한 애정이 느껴진다.
연전에 진시황구선입해처(秦始皇求仙入海處)에서도 이런 주문을 걸어놓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내용으로 봐서 한국인 남자 친구를 둔 중국 여학생이 쓴 글인 것 같다. 두 사람의 사랑은 육유와는 달리 꼭 이어지기를...
심씨원 안에 있는 고학헌.
유명한 채두봉(釵頭鳳)이란 사이다. 육유와 당완이 각자의 사랑을 돌아보고 회한에 젖어 지은 내용이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오른쪽의 것은 육유가 지은 것이고 왼쪽의 것은 당완이 지은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紅酥手 붉고 고운 손
黄藤酒 황등주 권할 때
滿城春色宮牆柳 온 성 봄빛 띠었고 궁궐 담엔 버들 휘늘어졌었지.
東風惡 봄바람 사나워지더니
歡情薄 기쁜 마음 엷어지고
一懐愁緒 온 마름 수심의 실마리.
幾年離索 쓸쓸해진지 몇 해런가?
錯錯錯 틀렸어, 틀렸어, 틀려 버렸어.
春如舊 봄빛 예와 같은데,
人空痩 사람 부질없이 야위어,
淚痕紅浥鮫綃透 눈물자국 붉게 젖어 고운 손수건에 스미네.
桃花落 복사꽃 져버린
閒池閣 한가로운 연못의 누각에
山盟雖在 산 같은 맹세 있다 하여도,
錦書難託 비단 편지 부치기 힘드네.
莫莫莫 생각말자, 생각 말자, 생각을 말자.(陸游)
世情薄 세정 야박하고
人情惡 인정 사나워
雨送黄昏花易落 황혼녘에 베 내리니 꽃 쉬 진다네.
曉風乾 새벽바람에 마르는구나
淚痕殘 남은 눈물 자국.
欲箋心事 이 마음 적어 보내고 싶으나
獨語斜闌 홀로 말하며 난간에 기댄답니다.
難難難 어려워, 어려워, 어려워.
人成各 사람 각자 헤어져,
今非昨 지금 어제 아니라네니
病魂常似秋千索 병든 넋 늘 그네 줄 같다네.
角聲寒 뿔나팔 소리 차가운데
夜闌珊 밤은 다 되어가고
怕人尋問 남들 알까 두려워
咽淚妝歡 눈물 삼키고 기쁜 척 한답니다.
瞞瞞瞞 속였어, 속였어, 속인 것이었어.(唐婉)
아침부터 공원에 나와서 나란히 앉아 있는 이 노부부는 육유와 당완과는 달리 해로한 것 같은데 웬지 모를 노년의 쓸쓸한 그림자가 느껴진다.
동호(東湖)
다음에 들른 곳은 동호. 항주에 서호가 있다면 이곳에는 동호가 있다는 뜻이리라. 규모면에서는 서호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빼어난 절경이 있었다.
오봉선을 젓는 사공을 표현한 조형물. 뒤의 조각도 볼만하다.
수향(水鄕) 답게 가는 곳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돌다리가...
오봉선 선착장에 모여 있는 배들. 모두가 관광객들을 위한 배.
출항 대기 중인 사공들. 밑에서 두 번째 사공은 성질이 얼마나 못 되었는지 카메라를 들이대니 마구 화를 낸다. 하긴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예의겠지만. 나는 그 옆의 맥고모자를 쓴 마음씨 좋아보이는 사공이 모는 배를 탔다.
출항하는 커플.
택시 탑승을 기다리듯 저 옆의 쇠로 된 손잡이를 잡고 한 대씩 나갈 때마다 선착장으로 다가선다.
손과 발을 다 이용하여 배를 젓는 이곳의 사공들. 만약 누가 운전이랑 오봉선 젓 것 가운데 어떤 것이 어렵겠느냐 묻는다면 나는 분명히 "오봉선"이라고 할 것이다. 저 사공은 또 어떻게 대답을 할 지 잘 모르겠지만.
배를 타고 물위를 가는 것도 좋았지만 주변의 경치도 환상적이었다.
물길 곁의 정자. 배가 종착지에 이르렀을 때는 걸어서 탔던 곳까지 되돌아나갔다.
곽말약이 짓고 짓접 쓴 시가 절벽에 새겨져 있다. 곽말약은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전국구 인사였던 듯.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약귀산의 동호, 인공으로 팠다네. 절벽 천 자나 서 있는데, 길 좁아 통과하기 어렵다네. 큰 배 동굴로 들어가니, 우물에 앉아 함께 하늘 보는 듯. 호수 작다 말하지 말라, 하늘 그 가운데 있다네.(箬簣東湖, 鑿自人工. 壁立千尺, 路隘難通. 大舟入洞, 坐井并觀空. 勿謂湖小, 天在其中)"
석굴의 마지막 지점에서 올려다본 하늘. 이곳 사람들은 일선천(一線天)이라고 한단다. 작년 무이산의 일선천과는 또 다른 감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손님을 실어나른 후 빈 배를 저어 줄줄이 돌아가는 뒷모습에서 웬지 모를 짠함을 느끼게 한다.
저런 다리도 한번 호젓하기 즐기며 걸어보고 싶었는데...
이곳의 운하는 처음 팠을 때나 마찬가지로 아직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석탄인지 뭔지를 싣고 운하기를 따라 이동하는 바지선.
쉬는 시간. 이렇게 손님이 없으면 배 위에서 대기하면서 잠을 자는 듯.
점심을 먹은 세무파영(世茂波影: 스마오뿨잉)호텔.
첫댓글 이번 답사는 갈 수록 더 분위기있고 음식도 좋았던 듯했습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소흥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노신과 육유 우리 동양고전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꼭 만나고 싶은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