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izen Photo News'. ● 조선 침략 첫 전진기지…이순신 장사진에 패퇴 ‘증언’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 ② 부산 증산왜성 등 4개성 ◇ 왜군 선봉을 맡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선조 25년(1592년) 음력 4월13일 아침 대군을 이끌고 쓰시마를 출발해 이날 저녁 부산 앞바다에 도착했다. 왜군의 첫 공격목표는 부산진성이었다. <△사진:>부산 동구 좌천동 증산공원에 있는 증산왜성 2곽 성벽. 시멘트를 곳곳에 덧칠해 옹벽이 된 상태이다. 부산/김영동 기자
☆*… 부산 동구 좌천동에 있었던 부산진성은 첨절제사 정발 장군이 지키고 있었다. 왜군 침략 보고를 받은 정발 장군은 급히 군사와 백성을 끌어모았지만, 그 수는 수백명에 불과했다. 왜군은 다음날인 14일 아침 부산진성을 겹겹이 에워싸고 “길을 빌려달라”는 내용의 목판을 성 앞에 세웠다. 정발 장군은 이를 무시했다. 왜군은 조총을 쏘며 공격했고, 조선군은 화살과 돌을 던지며 성을 지켰다.
◇ 조선 침략의 전진기지 구실을 한 부산항 주변 왜성. 파란색 선: 1910년대 부산의 해안선, 1: 증산왜성, 2: 자성대왜성, 3: 박문구왜성(멸실), 4-1, 4-2: 추목도왜성 추정지), 5: 한국해양대, 6: 부산역, 7: 부산항 북항, 8: 부산 중구청, 9: 용두산공원
☆*… 정발 장군은 성의 서문에서 분투했지만, 수적 열세에 밀려 전사했다. 이날 오후 부산진성은 왜군 손에 떨어졌다. 왜군은 임진왜란 첫 전투인 부산진성 전투에서 최후까지 용맹하게 그들을 막아선 정발 장군을 ‘검은 옷을 입은 장군’(흑의장군)으로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 초기 왜군은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부산 동구 범일동·좌천동의 해발 130m 증산 꼭대기를 깎고 일본식 석성을 쌓아 7년 전쟁 기간 내내 이 성을 사용했다. 조선에 건설된 최초의 왜성인 ‘증산왜성’이다. (...) '기사 전문, 계속보기 △ 사진을 두 차례 클릭하면 더 크게 확대됩니다. ☆*… 왜군은 또 증산왜성에서 동쪽으로 1㎞가량 떨어진 곳에 지성 격인 자성대왜성을 쌓았다. 본성인 증산왜성 방어와 해상 보급로 확보를 위해서였다. 이어 왜군은 부산 앞바다를 감시하려고 영도 동삼동 언덕 또는 현재 한국해양대가 있는 영도 앞 조도로 추정되는 추목도에도 왜성을 세웠다. 경남 거제 쪽에서 들어오는 조선 수군을 감시하려고 중구 중앙동 옛 부산시청사 쪽엔 박문구왜성을 쌓았다. 증산왜성과 주변 3개의 지성이 유기적인 방어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로써 부산은 왜군에게 임진왜란을 시작하고부터 1598년 일본으로 철수할 때까지 병력 보충, 전쟁 물자 보급, 일본 본토와의 연락을 위한 전진기지 구실을 했다.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위력 앞에서 이들 4개 왜성은 방어기지 구실밖에 못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 등은 전함 166척으로 연합함대를 편성해 1592년 9월1일 왜군의 본거지였던 부산포 앞바다로 진출했다. 당시 부산포에 정박해 있던 왜군 함선은 430여척에 이르렀다.(...) ☞ 원본글: 한겨레 신문| Click.○ 닷컴가기. 변조금지,저작권 있음. 도매인: 한국 네티즌본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