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서구 문명의 모태(母胎)가 된 그리스인들의 신화(神話).
새상만사 어떻게 그리 신(神)들과 잘 짜맞출 수 있을까, 감탄스러울 수밖에 없다.
꽃도 예외가 아니다.
그 많은 꽃들의 탄생을 신들과 엮어 얘기하고, 상징적인 꽃말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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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水仙花]는 'Sacred Lily'라고도 하는데 그 뜻은 신비, 자존심, 고결을 얘기한다.
수선화의 속명(屬名)인 나르키소스(Narcissus)는 그리스어의 옛말인 'narkau'(최면성)에서 유래된 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라는 미청년이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떠나지 못하고
몇날 며칠을 바라보고 애만 태우다가 결국 말라 죽은 그 자리에 핀 꽃이라고 한다.
나르시시즘(Narcissism) 또는 자기애(自己愛)는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나르키소스의 이름을 따서 독일의 네케가 만든 용어이다.
자신의 외모, 능력과 같은 어떠한 이유를 들어 지나치게 자신이 뛰어나다고 믿거나,
아니면 자기 중심성 성격 또는 행동을 뜻한다.
대부분 청소년들이 주체성을 형성하는 동안 거치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나,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격적인 장애증상으로 보기도 한다.
나르키소스는 이기주의의 영원한 상징이 돼 나르시시즘(극단적인 自己愛)이라는 단어까지 생겨났는데,
알고 보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과잉보호가 낳은 비극적인 결말이어서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자기애(自己愛)의 저주받은 이름, 나르키소스(Narcissus)
나르키소스는 보이오티아의 강의 신 케피소스((Kephisos)와 강의 님프 리리오페(Leiriope)의 아들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데, 뛰어난 용모로 모든 이들의 마음을 빼앗았지만
그로 인해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된다.
나르키소스의 어머니 리리오페는 아이의 장래가 궁금해서 소문난 점쟁이 테이레시아스에게 찾아가 물으니,
그는 나르키소스가 자기 자신을 몰라야 불행이 비껴갈 것이라고 예언한다.
리리오페는 그 예언을 부정하고 싶었으나 테이레시아스의 예언 능력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무시할 수 없었다.
해서 주변의 모든 거울을 없애 아들이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강의 요정들에게는 그가 물에 접근하면 수면을 흔들어 자기의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명령하기까지 한다.
나르키소는는 그렇게 자기 얼굴을 모른 채 자라 열여섯살이 됐다.
출중한 외모의 청년으로 성장한 그를 본 수많은 요정들이 그에게 정신을 빼앗겼다.
그리고 앞다투어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요정들은 야속했다.
나르키소스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요정들은 점차 여위어 갔고, 특히 에코(Echo)는 최대의 희생자였다.
(나르키소스를 염탐하는 에코 / 지오반니 빌리베르티 作, 17c)
* 나르키소스와 에코 *
원래 에코는 수다쟁이로 불릴 만큼 명랑한 님프였다.
어느날 헤라는 숲의 요정과 즐기고 있는 제우스의 소재를 추적하다 우연히 에코를 만났고, 제우스의 행방을 물었다.
에코는 헤라에게 이런저런 불필요한 수다를 늘어놓았고, 결과적으로 제우스가 도피할 시간을 제공하게 됐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에코의 수다가 제우스의 애정 행각을 도운 결과가 된 것이다.
헤라는 분노했고, 에코로부터 말(言)을 빼앗고 다만 남의 말을 되받아서 그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형벌을 내리니,
그녀는 숲속 깊숙한 곳에 은둔한 채 그저 메아리가 되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에코는 사냥을 나온 나르키소스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지만 그녀가 할수 있는 말이라고는 나르키소스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밖엔 없었다.
이 이상한 행동에 나르키소스가 성가셔 하며 도망가버리자,
에코는 너무 상심한 나머지 동굴에 처박혀 시름시름 앓다가,
우리가 '에코(산울림, 메아리) 라고 부르는 목소리만 남긴 채 육체는 사그라들어 버린다.
그런 가운데 나르키소스에게 잔인하게 거절당한 한 님프가
불가능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를 나르키소스가 깨닫게 해달라고 신들께 호소를 했다.
그러자 거만한 자를 벌 주는 여신인 네메시스가 그 호소를 들어 주었다.
나르키소스가 우연히 연못 옆을 지나게 되었을 때 네메시스는 그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자신을 실컷 사랑하라지!˝
어떤 곳에 맑은 샘이 있었는데, 그 물은 은처럼 빛나고 있었다.
양치기들도 그곳으로는 양떼를 몰지 않았고, 산양이나 다른 숲 속에 사는짐승들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뭇잎이나 가지가 떨어져 수면이 더럽혀지는 일도 없었고, 신선한 풀만이 나고 바위는 햇빛을 가려 주었다.
어느날 나르키소스는 사냥과 더위와 갈증으로 지쳐 이 샘에 왔다.
몸을 굽히고 물을 마시려다가 물 속에 자기 그림자가 비친 것을 보았다.
그는 그것이 이 샘에 살고 있는 어떤 아름다운 물의 요정인 줄 알았다.
빛나는 두 눈, 디오니소스나 아폴론의 머리카락 같이 곱슬곱슬한 머리타래,
동그스름한 두 볼, 상아 같은 목, 갈라진 입술,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빛나는 건강하고 단련된 모습을 정신 없이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못 견디게 좋아 입맞춤을 하려고 입술을 대었고,
포옹을 하려고 팔을 물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마자 상대는 곧바로 달아나 사라졌고, 잠시 후 다시 돌아와 그 매력을 더했다.
그는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고 언제까지나 샘 곁에서 서성거리며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종내는 물의 요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기의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름다운 자여, 그대는 왜 나를 피하는가?
나의 얼굴이 그대가 싫어 할 정도로 못 생기지는 않았을 텐데.
님프들은 나를 사랑하고, 그대도 나에 대하여 무관심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내가 팔을 내밀면 그대도 내밀고 나에게 미소를 짓고,
내가 손짓을 하면 그대도 손짓을 하지 않는가?"
나르키소스의 눈물이 물 속에 떨어져서 그림자를 흔들었다.
그는 물 속의 상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외쳤다.
"제발 부탁이니 기다려다오. 손을 대서 안된다면 바라보게만이라도 해다오!"
그의 가슴에서 타는 불꽃은 몸을 태워 안색은 날로 초췌해지고 힘도 점점 쇠약해지면서
전에 그다지도 님프 에코를 매혹케 했던 아름다움은 사라졌다.
그러나 에코는 아직 그의 곁에 서 있어 그가 "아, 아!" 하고 외치면 그녀도 같은 말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르시소는 결국 혼자 가슴을 태우다가 죽었다.
그리고 그의 망령이 지옥의 내(川) - Styx ; 스틱스. 황천의 강 -를 건널 때
배 위에서 몸을 굽혀 물 속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찾으려 했다.
님프들은 그 모습을 슬퍼했다. 특히 물의 님프들이 그러하였다.
그녀들이 가슴을 두드리며 슬퍼하니, 에코도 자기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녀들은 나뭇더미를 준비하고 화장하려고 했으나, 시체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 한송이 꽃을 발견했는데, 속은 자줏빛이고 횐 잎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오늘날까지 사람들은 그 꽃을 나르키소스(수선화를 말한다)라 부르며, 그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있다.
* 나르키소스와 후리지아 *
봄 한철 노란색의 꽃으로 피었다 금새 지는 후리지아(Freesia).
청순함과 천진난만함, 은은하고 깨끗한 향기가 인상적인 이 꽃에도 애틋한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숲의 님프인 후리지아는 미소년 나르키소스를 사랑하게 됐지만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어서 사랑한다는 말은 고사하고 그런 내색조차 하지 못해 혼자 애만 태웠다.
그저 먼 발치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어서, 자만심 강한 나르키소스는 숫제 그녀의 사랑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르키소스가 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다 죽자,
괴로워 하던 후리지아는 그가 죽은 샘에 자신도 몸을 던져 따라 죽고 말았다.
이를 지켜본 하늘의 신은 후리지아의 순정에 감동하여 그녀를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만들어 주고
달콤한 향기까지 불어 넣어 주었다.
이런 전설 때문인지 후리지아의 꽃 모양은 가련하리 만큼 청초하고 깨끗하며,
그 감미로운 향기는 첫사랑에 눈뜬 청순한 소녀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이 꽃의 꽃말은 ´순진´, ´천진난만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