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사기와 협잡이 난무하고/시기와 질투로 얼룩지는/어둡고 음산한 무대에서/누가 예술가라 칭하는가//협박과 공갈이 지배하고/말술과 광기가 번뜩이는/후미진 뒷골목 술집에서/누가 예술가라 칭하는가’
자신이 운영하는 ‘제주음악’ 홈페이지(www.jejumusic.net)에 올린 ‘누가 예술가라 칭하는가’라는 제목의 자작시(詩)는 그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예술인으로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보여준다.
최근까지 문화예술계의 최대 이슈였던 ‘섬 집 아기 노래비 건립’ 문제가 아니었다면 그를 아는 사람이 드믈 정도로 작곡가 이현근씨(41.제주음악 대표)는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저도 ‘섬 집 아기’ 노래는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하지만 친일행위자의 노래비를 세운다는 것은 역사의식을 넘어 후손들에게도 분명 부끄러운 일입니다.”
당시 신문지상과 온라인을 통해 맹위를 떨쳤던 그는 섬 집 아기 노래비 건립을 추진한 음악협회 제주도지부 내부에서조차 건립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스스로 ‘야성’ 기질이 있다고 고백할 만큼 ‘혁명보다 점진적인 개혁이 중요하다’는 그는 어쩌면 원칙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였다.
하지만 자신의 색깔을 물어오자 바로 ‘회색주의’라는 답이 돌아왔다. “무조건 옮고 그름을 구분짓지는 않아요. 양쪽이 모두 옮다면 양쪽 손을 모두 들어줄 수 있습니다.”
그는 중학교 때 국어교과서에 실린 시로 처음 작곡을 할 정도로 일찍부터 실험성과 창의성을 보여왔다.
심지어 학창시절엔 편곡을 즐겨 했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 또한 특출했다. 시에 대한 관심도 많아 학창시절부터 끄적거렸던 시가 300편이 넘었다. 하지만 모두 내다버렸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충분이 내보일 정도의 ‘철학’이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음악(예술)이 너무 상업적으로만 흐르고 있는 현실이 싫어서’음대를 박차고 나왔지만 결국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스물다섯 살 때 다시 음대에 들어갔다.
“솔직히 ‘증’이 필요해 교육대학원까지 내달렸다”고 말한 그는 “하지만 진정성이 없는, 작품만을 위한 작품은 의미가 없다”며 자신의 음악철학을 분명히 했다.
“예술이 대중과 함께 가지 못한다면 예술가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볼 수 없지요.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합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1991년부터 창작 뮤지컬 작업을 해왔다. 지난해 2002 제주월드컵 문화행사로 치러진 ‘제주의 숨결’공연 중 뮤지컬 ‘범섬의 숨비소리’에 대한 총기획과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
“뮤지컬을 통해 이 땅의 삶과 주인은 제주인임을 나타내고 싶었다”는 그는 “창작이 있지 않으면 문화의 발전은 없다”고 강조했다.
“제주국제관악제도 세계의 관악인들이 오지만 정작 얼마나 제주관악이 발전하고 있는지는 자문해봐야 합니다. 숱한 공연들이 행사로서 성공했을지 몰라도 ‘문화’로서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해요.”
제주민요 역시 박제된 문화에서 오페라와 뮤지컬 같은 새로운 작품으로 창작.계승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벌써 자신의 홈페이지에 제주음악가 200여 명의 목록을 꼼꼼히 챙겨두고 제주 시인들의 작품 50여 편에 곡을 붙이는 작업을 몇 년째 진행 중이다.
제주인의 이야기가 담긴, 제주인이 만든 작품들이 연중 내내 공연돼 문화상품으로서 가능성까지 접근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한 일이다.
“작품 속에는 자신만의 얘기에서 벗어나 공동체 의식이 깔려 있어야 한다”고 여전히 믿는다.
아내 김미숙씨(39.이슬비음악학원 운영)도 작곡을 전공했고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는 큰딸 슬비(13)와 아들 소낙(6) 역시 그의 말대로 ‘보장되지 않은’ 음악의 길을 걷고 있다. 한마디로 ‘음악가족’인 셈이다.
“예술가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며내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진정성마저 없다면 위선이지요.”
고등학교 때 우연히 놀러갔다가 노을과 풍광에 반해 예술적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잡은 서귀포는 지금도 그의 안식처다.
“꿈이요?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순수한 작곡가로 남는 것입니다.”
▲이현근 씨는… 중.고등학교 시절 트럼펫을 불고 잠시 연극도 해봤다는 그는 제주대 음악학과와 제주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91년부터 뮤지컬 ‘빨간머리 앤’, ‘혹부리영감님’, ‘토끼와 자라’ 등과 음악극 ‘하나님 비상예요’, ‘방황하는 별들‘, ‘범섬의 숨비소리’ 등을 작곡했다.
오페라 ‘춘희’ 기획(제37회 한라문화제 및 제79회 전국체전), 오페라 ‘카르멘’ 무대감독(제39회 한라문화제)을 맡는 등 10여 년간 뮤지컬 작업만 해왔다. 지금도 2평 남짓한 방에서 종일 음표와 씨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