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감천면 석송령(醴泉 甘泉面 石松靈)
천년기념물 제 294호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804
이 석송령은 소나무의 한 품종이며,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가 4.2 m, 키가 10 m 에 이르는 큰 나무로서, 나이가 약 600 여년으로 추정된다.
일명 반송(盤松) 또는 부자나무 라고도 불리며, 현재도 마을의 단합과 안녕을 기구하는 동신목으로 보호받고 있다.
전하는 밀에 의하면 약 600 여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졌을때 석관천(石串川)을 따라 떠내려 오던 것을 지나가던 과객이 건져 이 자리에 심었다고 하며, 그 후 1930년 경에는 당시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李秀睦) 이란 사람이 영험있는 나무 라는 뜻으로 석송령(石松靈) 이라는 이름을 짓고, 자기 소유의 토지를 상속 등기해 주어 이 때부터 이 나무는 수목으로는 드물게 토지를 가진 부자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나무가 토지와 같은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해마다 농지를 경작하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아 은행에 저축하고 있으며, 제반 세금은 물론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새벽에 동제를 지내는데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가 동리를 수호해 주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이 나무를 베려고 하다 피해를 입고 중지하였다는 말도 전하여지고 있으며, 마을 노인들은 이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송계를 만들고 있다.
예천 금당실 송림 (醴泉 金塘室 松林)
천년기념물 제 469 호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542-1 외
예천 금당실 송림은 천재나 전쟁에도 마음 놓고 살 수 있다는 땅을 일컫는 십승지지의 한군데로 오미봉 밑에서 용문초등학교 앞 까지약 800 m에 걸쳐 소나무가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다.
금당실 송림은 여름철 수해 방비와 겨울철 북서한풍을 막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조성하였으나, 1894년
동학혁명 당시 노비 구출 비용 마련을 위한 나무 벌채가 심하여 1895년(고종 32년) 법무대신이던 이유인이 금당실에 99칸의 집을 짓고 거주 하면서 이 숲을 보호하여 왔다고 한다.
오랜 기간 마을 주민들이 마을 보호를 위하여 이 숲을 보호하고 관리하여 왔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휴식처와 행사의 중심지로 활용되는 등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큰 마을 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