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3일
핵심 구절 2b-3: “예수께서 그들 앞에서 변화하시니 그 옷이 밝고 매우 희어졌는데, 이는 지상의 어떤 표백제도 그렇게 희게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음, 소망, 사랑이 필요합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려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사랑이 필요합니다. 또한 미래에 대한 희망이 필요합니다.
오늘 저는 희망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희망을 잃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성경 본문은 우리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희망을 더욱더 분명히 갖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이 성경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배우고 우리 자신의 부활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천국을 향한 희망찬 순례를 할 수 있습니다.
1. 변화산(2a 절)
2a 절은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시니, 오직 그들만 올라가시더라”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고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한 지 6일 후에 예수님은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산에 오르셨을까요?
기도를 통해 자기 죽음과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눅 9:28).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 세 제자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나서 후에 예수님의 부활을 굳게 믿고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 제자와 함께 산에 오르신 것은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자신의 모습과 천국을 알려 부활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굳게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천국에서 교제할 시간이 가까워지기 때문에 우리는 나이 듦을 산을 오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더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2 변화 (2b-3절)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께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2b 절과 3절은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변하시니 그 옷이 밝고 매우 희어졌는데, 이는 지상의 어떤 표백제도 그렇게 희게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았더라”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17장 2절은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변하시니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그 옷이 빛과 같이 하애지더라.”
그의 옷이 희었다는 것은 그의 거룩함과 영광을 의미합니다. 그의 얼굴이 해처럼 빛났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에서는 예수님의 얼굴이 태양처럼 빛나기 때문에 해나 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이전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사귀었습니다. 그분은 비천하고 가난했지만 친절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예수님만 믿었다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동화에서 가난하고 비천하나 친절한 왕자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물들은 우리를 도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 제자에게 자신의 천국에서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이 모습이 그분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그분은 창조 이전에 이미 이 모습으로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들의 친구가 되시고 우리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우리를 위한 속죄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자신을 비우고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은 후 부활하여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이 세상의 종말에 그분은 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를 모아 하늘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도 같은 영광스러운 몸을 입혀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기 전에도 세 제자에게 하늘나라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굳게 믿고 모든 사람에게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겸손하고 친절한 예수님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이미지도 마음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이미지를 우리 가슴에 지니면 항상 희망과 기쁨이 넘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어려움과 유혹을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확신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천국입니다.
세상에는 종종 불의와 죄가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추한 일들을 많이 경험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추악한 세상의 이미지를 마음속에 품어 이로 인해 많은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들은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하늘나라에서 왕과 주님으로 통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이미지를 마음속에 품음으로써 세상의 추한 이미지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아직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매우 두려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체포되던 날 밤, 그는 죽음 위험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마음에 품게 되자 그는 용기와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는 박해로 인해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드린 것은, 교묘하게 꾸민 신화를 따라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위엄을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존귀와 영광을 주실 때에, 곧 지극히 영광스러운 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 하실 때에, 우리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벧후 12장 16-17절)
3.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우리의 부활 모습 (4절)
4절은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함께 말하더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자신의 율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 율법을 어겼고 그에 대한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들을 보내 회개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나님은 모세와 엘리야를 보내셔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걷고 죽음에서 부활하도록 격려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완수하게 되었습니다.
두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서 고난의 삶을 경험했습니다. 모세는 반역하는 백성들 때문에 40년 동안 큰 고난을 겪었고 돌에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의 핍박으로 큰 고통을 겪었고, 왕실과 백성들의 죄에 맞서 홀로 싸워야 했기에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이들의 지상의 삶만 바라본다면 그들의 고통에 큰 동정심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 본문은 두 사람이 육체적 죽음 이후 하늘나라에서 영광스럽게 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고통의 시간은 하늘의 영광스러운 시간에 비하면 한 순간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현재의 고난은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가치가 없음을 확신합니다.“ (로마서 8:18).
우리가 부활하면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뵙고 그와 함께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은 새로운 부활의 세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장막을 보라!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매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저희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모든 것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1-4).
우리 모두는 죽음에서 부활하여 죽음도 고통도 이기심도 없는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형제자매를 내 몸처럼 사랑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미래의 하늘 세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피조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곧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에게 찬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리니, 24장로들이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앞에 엎드려 면류관을 주 앞에 얹고 말하더라: <주 우리 하나님이여, 당신은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니 만물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뜻으로 만물을 지으셨으니>"(계 4:9-11).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장로와 사도, 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을 만나 뵙고 그분께 경배할 것입니다.
4 베드로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르침(5-6)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어떻게 행동했나요?
5-6절이 알려줍니다:
“베드로가 시작하여 예수께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기에 좋사오니. 우리가 장막을 세 개 짓되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겠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혼란스러워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원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는 문제와 어려움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통 없이 영광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7절과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구름이 와서 그들을 가리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니 <너희가 들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그들이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제자들과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얻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이 세상의 어려움과 고통을 극복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저는 에스더가 본향집으로 돌아갔을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암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2019년 12월 9일(월)부터 10일(화) 자정까지 에스더는 치열한 사투를 벌였고, 그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큰 고통 속에서 에스더는 하나님께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요?”라고 세 번이나 물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아빠, 아빠, 아빠!”하고 세 번 불렀습니다. “아빠"는 에스더가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세 번 말했습니다.
저는 에스더가 자신의 고통에 대해 하나님께 불평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한 후 에스더의 얼굴은 놀랍도록 평화로워졌고 곧 잠이 들었습니다. 병실에서 내내 함께 있었던 제가 에스더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에스더는 12월 13일 오후 4시에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까지 평화롭게 잠을 잤습니다.
저는 에스더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믿을 수 있었기에 모든 슬픔을 이겨내고 기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스더의 묘비에 요한복음 11장 25절을 새기도록 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과 부활의 형상을 마음속에 품고 산 소망을 갖고 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