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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도마석상과 의성군 소문국 경덕왕릉
글쓴이: 임원주 (스토리텔링 작가, 저서: 허왕후 스토리텔링)
1. 누가?
안녕하세요?
의성군 조문국의 가이드북입니다.
조국현 교수는 이철우 경북도지사(당시 김천지역구 국회의원)에게 고등학교 지구과학1 교과서의 심화학습 자료를 제공하여 2010년 지구과학1 교과서에 추가한 경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도마(Thomas AD 2-72)가 한국에 왔었고, 의성군 조문국 경덕왕(재위 AD 10-74)을 만났습니다.
2. 언제?
사도 도마가 한국에 왔었을 때는 AD 42년이고, 경덕왕이 왕이된 후 32년입니다.
경덕왕의 재위 때 사도 도마가 한국에 왔었습니다.
3. 어디서?
이스라엘 레위지파 제사장들이 한국에 와서 소도(도피성)를 다스리는 천군(天君,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의성군 소문국은 소도였고, 사도 도마는 잃어버린 양과 같은 유태인 마을 조문국을 방문 하였습니다.
한자 소(召)는 역사로 읽을 때는 소, 지명으로 읽을 때는 조로 발음 하는데, 의성군에서는 조문국만 사용합니다.
조문국의 제철소에 사도 도마가 방문하여 강철 기술을 전하였습니다.
일본 오사카 엑스포 행사장이 있는 오사카에는 오사카성이 있어서 좋습니다.
대구경북엑스포의 행사장 중의 한 곳인 의성군에는 조문국사적지가 있어서 좋습니다.
4. 무엇을?
삼한시대 변한에서 철을 수출하였는데, 삼한의 감문국 천군 조슈아가 철기를 강철로 만들어 수출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제자 사도 도마를 한국에 초청하였습니다.
삼한(마한 54개, 진한 12개, 변한 12개)시대 변한의 철 수출을 이어 받아서 가야국은 철의 왕국이 되었습니다.
5. 어떻게?
A. 변한의 철 수출
삼한시대 변한은 낙동강 지역에서 철기를 수출 하였습니다.
삼국시대 사도 도마는 낙동강 지역 26곳의 제철소에서 강철 만드는 기술을 전하였습니다.
삼국사기 잡지 3에 나오는 불 화(火) 지명은 제철소가 있던 곳입니다.
B. 조슈아가 사도 도마를 초청
조슈아는 삼한의 감문국 천군(레위지파 제사장) 이었습니다.
국립김해박물관에 히브리어 알파벳이 그려진 토기파편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은 천군들이 히브리어를 사용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삼한의 감문국 천군 조슈아가 예수님의 제자 사도 도마를 한국에 초청하였는데, 조슈아와 김수로왕과 사도 도마는 함께 다녔습니다.
C. 도마석상
예수님 제자 사도 도마가 한국에 왔었고, 이를 기념한 도마석상이 경북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산 87-3에 있습니다.
의성군 조문국 경덕왕이 도마석상을 만드는데 총감독을 하였습니다.
머리가 없는 도마석상의 손 위에는 십자가를 물고있는 비둘기가 양각으로 조각되어 있고, 발에는 발가락이 드러나 있습니다.
도마석상 오른쪽에 도마(1세기 히브리어 알파벳 타우, 멤)와 왼쪽 호를 쓰는 곳에 지전행(地全行, 땅 전부 다닌 사람, 막 16:15)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도마석상의 글과 사진 43장이 다음의 블로그(9번 글, 9번 사진)에 있습니다.
blog.naver.com/story4006
도마석상은 1987년 여의도 순복음교회 유우식 장로님(당시 고등학교 역사교사)이 발견하여 CBS '새롭게 하소서'에 방송 되었습니다.
D. 십자가 3개의 못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빈 십자가에서 3개의 못을 도마가 가졌고, 정을 만들어 한국에 와서 도마석상을 만들었습니다.
E. 철의 왕국 가야
사도 도마가 전한 강철 기술로 가야국은 철의 왕국이 되었습니다.
6. 왜?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벌휴왕 2년(185) 2월에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를 좌우 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벌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삼한시대는 기록이 없다는 것은 일본식민사관에서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삼한의 조문국은 21대 왕 369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한시대는 한국에 불교, 유교, 도교가 한반도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불교는 고구려에 372년에 전래되었고, 527년 신라에서 공인 되었습니다.
삼한시대 민속종교는 유태교였고, 삼국시대 민속종교는 기독교였습니다.
7. 기타
도마석상 동영상(2분 33초)을 조국현 교수가 스마트폰으로 드립니다.
---◇---<● 부록 1 ●>---○---
[신약성경 유다서 1장] 표준새번역
인사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1)동생인 나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2)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 주시는 이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2 자비와 평화와 사랑이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거짓 교사들에게 내릴 심판(벧후 2:1-17)
3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우리가 함께 나눈 구원에 관해서 편지를 써 보내려고, 여러 가지로 애써 준비를 해 왔는데 이제 여러분에게, 간곡한 권고의 편지를 쓸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에게 한 번 결정적으로 전해진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여러분이 힘써 싸우라는 것입니다.
4 어떤 침입자들이 여러분 가운데 몰래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옛날부터 정죄를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들입니다. 그들은 경건하지 못한 자들로서,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해서 방종한 생활을 하고, 오직 한 분이신 통치자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5 여러분이 이미 다 알겠지만, 내가 다시 여러분의 기억을 일깨워 드리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3)주께서는 백성을 이집트에서 한 번 결정적으로 구원해 내시고서, 그 다음에 믿지 않는 자들을 멸하셨습니다.
6 또 자기네가 통치하는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들의 거처를 떠난 천사들을, 그 큰 날의 심판에 붙이시려고, 영원한 사슬로 매어서 어둠에 가두어 두셨습니다.
7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위의 성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음란함에 빠져서 다른 육체를 좇았으므로,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써,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8 이와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도 몽상에 빠져서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4)영광스러운 존재들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9 천사장 미가엘은 모세의 시체를 놓고 악마와 다투면서 논쟁을 할 때에, 차마 모욕적인 말로 단죄하지 못하고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바란다'고만 말하였습니다.
10 그런데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자기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욕합니다. 그들은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무엇이든지 본능으로만 알고, 바로 그 일로 멸망합니다.
11 그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그들은 가인의 길을 걸었으며, 삯을 바라서 발람의 그릇된 길에 빠져들었으며, 고라의 반역을 따르다가 망하였습니다.
12 이 사람들은 자기들만을 생각하면서, 염치없이 먹어 대므로, 여러분의 사랑의 식탁을 망치는 암초입니다. 그들은 바람에 밀려다니는 구름 곧 비를 내리지 않는 구름이요, 가을이 되어도 열매 하나도 맺음이 없이 죽고 또 죽어서 뿌리째 뽑힌 나무요,
13 자기들의 수치를 거품처럼 뿜어올리는 거친 바다 물결이요, 길을 잃은 별들입니다. 짙은 어둠이 영원히 그들에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14 이런 사람들을 두고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5)"보아라, 주께서 수만 명이나 되는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셨으니,
15 이것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모든 불경건한 자들이 저지른 온갖 불경건한 행실과, 또 불경건한 죄인들이 주님을 거슬러 말한 모든 거친 말을 들추어내서, 그들을 정죄하시려고 하는 것이다."
16 이들은 불만에 쌓여서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이요, 자기들의 욕심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입으로 허풍을 떨다가도,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는 남에게 아첨을 합니다.
훈계와 권면
17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고한 그 말을 기억하십시오.
18 그들은 여러분에게 말하기를 6)"마지막 때에는 여러분을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경건하지 못한 욕정을 따라 살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19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들이며, 성령을 받지 않고 본능대로 사는 자들입니다.
20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가장 거룩한 여러분의 믿음을 터로 삼아서, 스스로를 세우고,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면서 스스로를 지키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22 7)의심을 품는 사람들을 동정해 주고,
23 불구덩이에 빠진 사람들을 끌어내어 구원해 주십시오. 또 본능적인 욕정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욕정으로 더럽혀진 그들의 속옷까지도 미워하되, 그들에게는 조심스럽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축복
24 여러분을 넘어지지 않게 지켜 주시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의 영광 앞에 기쁘게 나서게 하실 능력을 가지신 분,
25 곧 우리의 구주이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영광과 위엄과 주권과 권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 전에서부터 이제와 영원까지 있기를 빕니다. 아멘.
---♤---<● 부록 2 ●>---♧---
제목: 사도 도마가 신약성서의 유다서를 썼습니다.
신약성서의 야고보서 저자가 야고보인 것처럼 유다서의 저자는 유다(도마)입니다.
다음의 글은 윤사무엘 박사의 유다서 강해입니다.
윤사무엘 박사는 경북고등학교, 하바드대학교에서 고대근동학을 전공(석사, 세계적인 고고학자) 하였습니다.
본문: 유 1:1~24
일자: 2019년 11월 3일
설교자: 윤사무엘 박사 (겟세마네 장로교회)
오늘(2019년 11월 3일)은 동로마(“새로운 로마”)의 수도이며 비잔틴 시대(Byzantine, AD 330~1453) 중심지인 이스탄불(비잔틴=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주일예배를 아침에 드리고, 유람선을 타고 터키를 출발하여 그리스 네압볼리 항구로 출발합니다.
지난 4일간 사도바울의 1차 선교 여행지, 요한계시록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갑바도기아, 동방정교회 발상지 이스탄불을 순례하고, 이제 그리스(Greece)로
가서 사도바울의 2, 3차 선교여행지(빌립보, 데살로니키(데살로니가의 현재 발음), 베레아, 아테네, 고린도), 그리고 메테오라(그리스 반도
중앙지대, “공중에 떠 있다”는 뜻, 수 백 미터 암벽 산정에 있는 헬라정교회 수도원) 지역을 방문합니다.
갑바도기아 지하 동굴교회에서 대를
이어 예배를 드린 모습과 메테오라 수도원에서 평생, 혹 수년간 수도하는 수도원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계속되는 성지순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까지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다시 오시리라”(“마란-아타”=마라나타)는 주님의 재림 약속과 앞으로 들어갈 새 예루살렘의 천상
예배를 미리 보면서 종말의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신약성경의 일반서신 혹 공동서신(General Epistles 약, 벧전, 후,
요일, 이, 삼, 유)를 차례로 강해하면서 은혜를 받겠습니다. 요한계시록과 가장 가까이 있는 유다서를 먼저 묵상합니다. 신약성경에서 한 장으로
한 책을 구성한 책은 빌레몬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그리고 유다서입니다. 공동서신의 독자들은 유대인으로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입니다(Epistles to the Jewish Christians). 공동서신은 거짓 교리 영지주의에 대한 영적 싸움을 합니다.
유다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육신의 친동생인 도마(막 6:3)입니다.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라고 말합니다(1절).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후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네 아들이 태어났는데 야고보, 요셉, 유다(=도마), 시몬입니다(마 13:55, 막 6:3, 요
7:3, 5, 10, 행 1:14, 갈 1:19). 이중 유다와 시몬은 쌍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평소에 동생 유다를 “도마
Thomas”(아람어로 디두모)라고 별명을 부르셨는데 그의 이름처럼 되었답니다. 유다(도마)는 17절에서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자신을 사도들과 구별시키는 것 같습니다. 비록 외경이긴 한데 콥틱으로 기록된
“도마복음서” (1945년 이집트의 나그함마디에서 발견, 예수님의 어록집)에 의하면 유다가 사도 도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도마 1:1).
유다서는 2세기경에 벌써 허마와 폴리갑은 본 서신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유다서 1장 9절과 14절에 인용된 말들이 모세의 승천이나 에녹서 같은
위서(僞書 Pseudepigrapha)를 인용했으므로 영감된 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지만, 공통적 원천인 구전(口傳)에서 인용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편적 견해입니다. 본 서신의 저작 연대는 베드로후서가 기록된 지 여러 해 후일 것입니다. 인도의 첸나이에 있는 도마
기념교회(My Lord My God Church)에 가보면 가톨릭에서는 도마가 AD 72년에 순교했다고 하지만, AD 75년경이라고 디이슨
학자는 주장합니다.
본서의 특징적 주제는 거짓 교훈인 영지주의를 물리치고 ‘진리를 위한 싸움’입니다. 사도 유다(도마)는 이단들(영지주의)에 대해 자세히
묘사합니다(4-19절). 본서의 교훈은 말세를 당하여 배교와 타협과 혼란에 대항하여 진리의 말씀위에 굳게 서자는 것입니다.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라
1) 수신자와 문안인사 (유 1:1~2)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James)의 형제인 유다(Jude)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거룩해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전되고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 긍휼(mercy)과 평강(peace)과 사랑(love)이 여러분들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bemultiplied).”
유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는 형님이나 신앙 안에서는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에게 신앙의 대상이요 순종의 대상이십니다. 유다는 편지 받을 성도들을 세 마디로 표현하고 있는데, 첫째로,
그들은 부르심을 입은 자(called)들입니다. 그것은 단지 전도로 죄인을 부르시는 외적 부르심을 의미하지 않고 죄인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와 구원에로 부르심을 의미합니다. 둘째로,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거룩해진 자들(sanctified)입니다. 개역이나
개역개정역에서는 ‘사랑을 얻고’라고 번역되어지는데 전통사본(개혁자들 성경)에는 ‘거룩해졌고’(헤기아스메노이스 hegiasmenois")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셔서 부르시고 그들의 죄를 씻으셨고 그들을 거룩케 하셨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전함을 입은 자들(preserved)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키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더욱 많기를 기원합니다. 바울서신에서 안부 인사를 구약 인사인 평화(평안 shalom)와 신약 인사인
긍휼(은혜, 은총, mercy)에 아가페(Agape, 사랑)을 함께 나눕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사랑을 입어
구원을 받은 자들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주시는 영육의 평강을 소유하고 누리는 자들입니다.
(글의 분량이 많아서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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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위의 글은 윤사무엘 박사가 신약성경의 전체를 강해설교한 것의 유다서 부분입니다.
윤사무엘 박사 홈페이지에서 전문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부록 3 ●>---♡---
도마 성지순례 가이드 도마연구소장 조국현 교수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일주일 후 도마 성지순례에 참여하는 사람인데요, 아는 것이 없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이렇게 대답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 성지순례 갈 때 가이드북을 보고 가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도마 성지순례 전에 도마 성지순례 가이드북을 읽어보면 좋습니다.
가이드북은 종이책이 아니어서 무료이고, 지금 스마트폰의 문자메시지로 받아서 읽으시면 됩니다.
문자메시지(카톡 등)로 가이드북을 드리겠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에게는 1988년부터 36년간 100회 세미나를 한 결과 만들어진 약 3분짜리 동영상 100편이 있습니다.
(믿을 만한 근거가 있습니까?)
전문가가 해설하면 좀 더 신뢰가 갈 것입니다.
김건수 장로는 인하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중공업에서 근무한 철의 전문가입니다.
한국사교과서에 삼한(변한)에서 철을 수출하였고, 가야는 철의 왕국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삼한의 천군 조슈아가 철기를 강철로 만들어 수출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제자 사도 도마를 한국에 초청하였습니다.
국립박물관과 경북대학교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고학 연표를 참고하여 해설하고 있습니다.
---□---<● 부록 4 ●>---◇---
<2025년 제7회 워크숍 강의 계획>
일시: 2026년 제7회 강의 계획안
장소: 더케이호텔경주
주최: 경북대구엘더아가페봉사회
강사: 전재규
(사)한국순례길 이사장, 의사, 계명대학교 의과대학장 역임, 대신대학교 명예총장
강사: 조국현
도마연구소장, 대구세계문화엑스포 이사장
강사: 김영수
의성군의회 의장 역임
(참고) 제5회 워크숍의 조국현 교수 강의는 대구관광 명예홍보대사 서효명(배우, MC)이 대신 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도마 성지순례 가이드북 표지의 서효명 대구관광 명예홍보대사입니다.
------<제7회 워크숍 조국현 교수 강의 내용>------
제목: 사도 도마 성지순례 경북 12곳
글쓴이: 도마연구소장 조국현 (박사, 교수)
<들어가는 말>
예수님의 제자 사도 도마가 한국에 남긴 흔적 30곳(도마 성지순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청라언덕, 2. 도마(달성)공원, 3. 도마(대구)공항, 4. 팔공산 신림봉, 5. 도마재, 6. 불로동고분군, 7. 금호강, 8. 도마연구소, 9. 국립대구박물관, 10. 설화리(화원유원지), 11. 연오랑 세오녀 테마파크, 12. 국립경주박물관, 13. 대릉원, 14. 경주 감포항, 15. 감문국이야기나라, 16. 도마의 숨결, 17. 도마석상, 18. 조문국사적지, 19. 청도박물관, 20. 청도군 성곡리, 21. 청도군 팔조령, 22. 고령군 장기리 암각화, 23. 국립김해박물관, 24. 구지봉, 25. 수로왕비릉, 26. 대성동고분군, 27. 봉황동유적지, 28. 수로왕릉, 29. 도마리와 대국산성, 30. 남해군 상주해수욕장
위의 30곳 중 경북지역 12곳(11번부터 22번까지)을 워크숍에서 소개하는데, 이 내용은 도마 성지순례 가이드북 A번 글과 B번 댓글란에 이미 올렸습니다.
다음의 사진과 글은 좀 더 쉽고 깊게 이해 할 수 있도록 드리는 보조자료입니다.
저(조국현)는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당시 김천지역구 국회의원)에게 고등학교 지구과학1 교과서에 들어갈 심화학습 자료를 제공하여 2010년 고등학교 지구과학1 교과서에 들어갔습니다.
역사는 지질(지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 되려면 유물(1차 사료)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6하원칙으로 설명되어져야 합니다.
한국사교과서에 예수님의 제자 사도 도마가 한국에 왔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들어가야 합니다.
11. 연오랑 세오녀 테마파크 (경상북도 포항시)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실려 있고, 신화처럼 느껴지는 우리나라 유일의 일월(日月) 이야기이며, 일본의 건국과도 관계가 있는 작품입니다.
다음의 글은 경북일보 2015. 1.20. 기사(곽성일 기자)입니다.
'연오랑 세오녀 설화가 깃든 포항시와 일본 이즈모시의 시의회가 민간차원에서 의회교류방안 세미나를 통해 지역협력 공공방안체계 구축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포항시의회는 20일 오후 5시 포스코국제관 회의실에서 (사)포항지역사회연구소 주최로 열린 이즈모 시의회간 교류방안 세미나에서 양 도시간의 지역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연오랑세오녀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알려면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의 귀비고를 방문하여 역사적 자료를 보야아 합니다.
그리고 역사의 배경이 된 지구의 지질과 지형을 알아야 합니다.
포항의 지질에는 형산강지구대가 있고, 이스라엘에 요르단지구대가 있는데, 이것은 마치 마라톤에서 출발점과 골인지점에 출발선과 결승선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에서 1세기 땅끝나라 한국에 왔었던 예수님 제자 사도 도마가 포항(흥해)의 형산강지구대를 퇴화(退火, 삼국사기 기록)라 하였습니다.
<참고 자료>
다음의 글(형산강지구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가져왔습니다.
신라가 일찍부터 강원도 강릉 일대와 함경도까지 진출한 것도 경주에서 동해안으로 나오는 형산강지구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경주분지는 이 지구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규모 구조선들이 교차하여 사방으로 뚫린 교통의 요지를 이루고 있다.
현재도 지구대는 포항∼경주∼울산 간의 주요 교통로로 동해남부선과 7번 국도가 지나는데, 오래 전부터 영남 내륙과 동해안을 연결하는 통로의 구실을 하였다.
형산강지구대는 동북·동남으로 동해까지 연장되어, 동해안에서는 보기 드문 깊은 만입지(灣入地)인 영일만과 울산만을 형성하고 있다.
조차가 작은 동해안에 깊은 만입지가 있다는 것은 최적의 항만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울산은 조선 세종 때 왜구에게 개항한 삼포 중 하나였을 정도로 일찍부터 이용되어 왔다.
최근 현대적인 중화학공업단지의 입지 장소로 영일만(포항)과 울산만(울산)이 선정된 것도 이러한 지형적 이점에 따른 것이다.
지구대(地溝帶, Rift valley)는 두 개의 평행한 단층애(斷層崖; 단층운동으로 형성된 절벽)로 둘러싸인 요철(凹凸) 형태의 좁고 긴 골짜기이며, 일종의 긴 축선을 이루기 때문에 주요 교통로로 활용됩니다.
요르단 지구대 (Jordan地溝帶, 이스라엘 지구대)는 서아시아의 요르단강, 사해(死海), 아카바만을 잇는 낮은 지대의 이름이고, 길이는 500km입니다.
바다의 실크로드는 지중해 - 이스라엘 - 홍해 - 인도 - 말라카 해협 - 제주도 - 김해만(현재는 김해평야) - 일본(오사카, 이즈모시)입니다.
지구의 아라비아판과 쿠로시오 해류가 바다의 실크로드 형성에 기여했습니다.
예수님 제자 사도 도마는 이스라엘 지구대와 아라비아판이 만든 바다의 실크로드를 통하여 한국에 왔었습니다.
사도 도마가 인도 공주였던 허왕후와 한국의 김수로왕을 중매하여 AD 48.7.27. 김해시 봉황동유적지에서 혼인식을 가졌습니다.
허왕후가 인도에서 배타고 한국으로 온 기록이 가락국기에 있는데, 양택석 선장(해군 중령 출신)이 직접 항해하며 해류와 풍향 등의 기록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허왕후의 인도에서 배타고 한국으로 온 가락국기 기록이 역사적 사실임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었습니다.
일본식민사관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인은 서양의 고대신화는 역사적 사실처럼 이해하려하고 한국사의 역사적 사실은 신화처럼 이해하려합니다.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는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입니다.
연오랑세오녀 동영상(3분 6초)이 있습니다.
12. 국립경주박물관
한 공간에서 6개의 금관과 6개의 금허리띠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장소 :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3a실
전시기간 : 25.10.28.(화) ~ 12.14.(일)
(APEC 정상회의 관련 특별전시)
경주의 고대역사를 삼국사기를 통하여 분석해 봅니다.
다음 사진의 글은 삼국사기 내용입니다.
BC 57년 박혁거세는 큰 알에서 탄생한 신화적 인물인데, 삼한시대 유태교 성경의 알(알 하느님, 엘로힘)이 생각되어집니다.
박혁거세의 왕비는 오른쪽 갈빗대에서 나왔는데, 이 또한 삼한시대 유태교 성경의 창세기에서 하와가 갈빗대에서 나온 것과 같습니다.
삼한에는 군장(정치인, 군수)과 천군(종교인, 제사장)이 있었는데, 경주에는 여섯 촌락이 있었습니다.
삼한시대 경주 땅의 군장은 이알평이고, 화백회의 의장이 되었습니다.
삼한시대 경주 땅의 천군(제사장)은 소벌공(최 씨) 이었습니다.
경주이씨의 시조는 신라 사로 6촌 중 알천양산촌의 촌장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입니다.
이알평은 6촌 촌장의 수장으로 화백회의를 주재하고 박혁거세를 옹립해 신라 건국의 원훈으로 좌명공신이 되었고 아찬에 올랐다고 전합니다.
AD 32년(유리이사금 9) 알천양산촌이 급량부로 개칭되며 이씨 성을 사성받았다고 합니다.
경주 최씨의 시조는 신라 말기 학자 최치원입니다.
최치원은 신라 6부 촌장 소벌도리의 24세손으로,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鄭) 씨의 조상은 지백호였고, 김천시 감문국(감로국 甘路國)의 왕(군수) 이었습니다.
신라 6성의 조상들은 고조선이 BC 108년에 멸망하자 박혁거세를 왕으로 세우며 신라(서나벌)를 건국 하였습니다.
경주에는 BC 37년 목책과 토성으로 축조된 금성(金城)이 있었는데, 월성(AD 101년) 옆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경주에서 황금(사금)이 많이 생산되어 금성이라 하였습니다.
경주에서 황금이 많이 생산된 흔적은 국립경주박물관 전시실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경주에는 기원전후 하천에 50%(금반 모래반)의 사금이 있었고,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께 드린 황금은 경주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방박사의 황금 예물은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의 재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대 경주시의 금성(金城), 의성군의 금성(金城), 김천시의 김천(金泉)은 모두 황금(金)의 생산지였습니다.
AD 102년 신라의 음집벌국과 실직곡국의 경계 다툼이 있었을 때 금관국(金官國) 김수로왕이 초청 받아 해결한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는데, 금관국은 황금(金)과 쇠(金)를 관리하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삼국사기 시조 박혁거세 때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변한이 항복해 왔다.
마한 왕이 진(辰, 진한), 변(변한) 두 나라는 우리의 속국인데 근년에 조공을 바친 일이 없으니 사대(事大)의 예가 이를 수 있소?'
위의 기록으로 보면 신라는 변한은 흡수 하였으나 마한은 흡수하지 못하였습니다.
경주 고대역사 동영상(3분 29초)이 있습니다.
위에 신라가 주변을 정복한 기록이 있습니다.
삼한의 나라들을 신라가 멸망시킨 년도가 나옵니다.
경주의 삼한시대 민속종교는 유태교였고, 삼국시대 민속종교는 기독교였습니다.
신라에 불교가 AD 527년(이차돈의 순교) 공인되기 전의 시대를 전불(前佛)시대라고 합니다.
신라 전불시대에 7개의 가람(교회)이 있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습니다.
AD 42년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도마가 한국에 왔었고, 그후에 기독교인이 많아지고 강가에서 예배 드리다가 강변에 예배당을 건축 하였습니다.
가람은 강(江)인데, 강에서 기독교인들이 예배드려서 가람은 예배당의 뜻이 되었습니다.
가람(기독교 교회)이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고난 후 불교 사찰이 되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입니다.
다음의 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가져왔습니다. (일부 축소 수정)
'토착화 신학은 기독교를 모르는 토착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기독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것인가 하는 선교적 관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첫 토착화 신학자입니다.
19세기 말 내한한 개척 선교사들은 토착 교회 육성을 목표로 한 네비어스 선교정책을 채택하여 토착 문화와 상황에 적응하는 선교를 추구하습니다.
유동식 연세대학교 교수는 『한국종교와 기독교』(1965), 『한국 무교의 역사와 구조』(1975), 『풍류도와 한국신학』(1992) 등의 저술을 통해 한국인 고유 사상의 원류를 무교와 풍류도에서 찾고 그것을 풍류 신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토착화 신학은 시작부터 보수적 신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습니다.
장로교 신학자들은 토착화 신학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고 혼합주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이것은 일본식민사관을 벗어나지 못한 결과로 한국 고대에는 한국인의 조상들이 무속(샤머니즘)이었다고 생각하였고, 유동식 교수는 한국의 무속에서 기독교의 사상을 발견하려 하였다가 비판 받았습니다.
윤사무엘 박사와 저(조국현)는 울산교회사연구소(이상규 교수) 주최 세미나에서 토착신학을 새롭게 발전 시켰습니다.
다음은 국제기독신문 기사입니다. (일부 축소 수정)
국제 기자 25-11-01 02:56 [김소영 기자]
페이스신학대학교 및 대학원이 개교 37주년을 맞아 ‘서양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기 이전 한반도에 들어온 기독교 흔적’을 주제로 지난 27일 수원 한성교회(유명재 목사)에서 관련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공식적으로 한국교회는 선교사가 140년에 복음을 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앞서 고대에 복음이 한반도에 전해졌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며, 현재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있는 예수제자 사도 도마의 흔적들이 말해주고 있다,라는 학술적 제기와 함께 예수 탄생 시점 큰 별 따라 아기 예수를 경배한 동방박사 고국은 신라인들이며, 이후 사도 도마가 신라에 와서 직접 와서 세례를 준 것으로 사도 도마의 선교 여정과 한국 내 복음 전래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각계 연구자들의 발제가 이어졌다.
학술대회에 앞서 드려진 예배는 송인성 학장의 인도로 정명범 목사(대학원 동문회장)가 기도하고, 심영미 목사(대학원 간사)가 창세기 10장 25~31절 성경봉독한 후 성중경 목사(만수감리교회 원로)가 ‘단군과 개천절’ 제하의 설교 말씀, 임재천 목사(대학원 조교)의 봉헌기도, 심평종 목사(세기총 전 대표회장)의 축도, 윤사무엘 목사의 환영사, 서요한 교수(전 총신대학교)는 축사, 유명재 목사의 광고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인사말에서 윤 사무엘 총장은 “한국의 신학과 복음이 세계 속에서 인정받는 시대를 준비해왔다. 이제 서구 신학은 한계에 이르렀고 세계는 동방의 신학 특히 한국에서 비롯된 영적 본질을 배우길 원하고 있다.”면서“신학은 과거를 재조명함으로써 현재의 사명을 더욱 분명히 하는 학문이다. 한국교회 복음의 뿌리를 찾는 일은 단순한 역사 탐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새롭게 확인하는 믿음의 여정이다.”고 강조하고“복음은 서구 문명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 속에서 동방으로 흘러온 생명의 역사임을 본 학술대회를 통해 다시금 확인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축사에서 서요한 교수(전 총신대학교)는“오늘 이 자리는 단순히 학문적 발표의 자리가 아니라 한국 기독교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뜻깊은 시도다.”면서“기존의 역사 학계가 두려움 속에 진실을 외면해온 부분이 있었다.”고 지적하고“역사의 시작은 언제나 작은 물방울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양심을 회복하고 진실한 신앙의 역사를 기록해야 할 때가 되었다.”면서“오늘의 학술대회가 앞으로 이어질 연구의 촉매제가 되어, 한국 기독교가 세계 속에서 다시 한번 우뚝 서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며“연구를 해온 학자들의 노고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첫 발제자로 나선 대신대학교 전 총장 전재규 장로(사단법인 한국순례길 이사장, 의사)는 ‘사도 도마의 순례길 소개’에서 “그동안 사도 도마가 주후 1세기에 가야국을 방문했을 것이란 가능성은 신학적·역사적 근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장로는“이는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보여주실 표적 가운데 하나로,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는 계획 속에 숨겨진 계시일 수도 있다.”며“오늘날 한국교회는 선교의 최전선에 서 있지만, 사실 우리의 선교적 DNA는 이미 초대교회 시대부터 이어져 온 ‘사도적 신앙’에 닿아 있다.”며 “이러한 역사적 이해는 한국교회가 단지 복음을 ‘받은 자’가 아니라, ‘전하는 자’로 부름받은 존재임을 일깨운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도마박물관 관장 조국현 교수(도마연구소장)는 ‘사도 도마의 한국 선교 흔적’을 주제로 발표했다.
“한국교회의 선교 역사는 결코 근대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사도적 정신과 맞닿아 있다.”면서“사도 도마가 세운 교회들이 페르시아, 인도, 중국으로 이어졌고, 그 신앙의 흐름이 한반도에까지 미쳤다는 다양한 역사적 정황이 있다.”며“예수님의 제자 사도 도마가 한국에 남긴 흔적은 청라언덕, 달성공원, 팔공산 도마재, 불로동고분군, 경주 감포항, 김해 구지봉 등 30곳에 달한다.”며 “삼한시대의 민속종교는 유대교였고, 삼국시대의 민속종교는 기독교였다는 점에서 우리의 고대 역사는 복음의 뿌리 위에 세워졌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 박사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 제1의 성지라면, 대한민국 대구는 제2의 성지로 불릴 만큼 도마의 흔적이 남아 있다.”며 “도마 성지순례는 고대와 근대 기독교의 길을 잇는 역사적 여정이다.”고 강조하고“오늘날 한국교회의 세계선교 사명은 이러한 ‘사도적 복음의 계보’를 계승하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은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2천 년 전부터 이어진 하나님의 구속사에 동참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조 박사는 “이제 한국교회는 복음의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조국현)는 1978년 공군 중위 때 한국 고대역사 연구를 시작하였는데, 특히 가락국기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1988년 공군소령으로 전역하여 경산시(영남대 정문 맞은편) 임당고분 발굴 현황과 유물을 현장소장(고고학자)으로부터 직접 브리핑 받았습니다.
저는 한국 고대역사를 연구하다가 일본식민사관에 가려진 한국 고대 기독교 역사를 발견하였습니다.
이제는 삼한시대 민속종교는 유태교였고, 삼국시대 민속종교는 기독교였다는 역사적 사실(팩트 facts)을 기초로 토착화 신학이 발전되어야 합니다.
13. 대릉원
성경의 황금과 한국 동영상(1분 27초)이 있습니다.
인터넷 구글 창에 질문하였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AI가 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624호는 경주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慶州 皇南大塚 北墳 琉璃盞)입니다.
이 유물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발견지: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한 신라시대 고분인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되었습니다.
특이점: 이 유리잔은 1세기에 이스라엘 헤브론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기독교의 성찬식에 사용되던 축사잔일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역사적 의미: 신라 고분에서 이스라엘 헤브론 지역의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고대 한반도와 서역 간의 활발한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14. 경주 감포항
인터넷 구글창에 질문하였더니 AI가 다음과 같이 대답 하였습니다.
감포는 경주 시가지에서 동쪽으로 토함산을 넘어 동해 바다에 접해 있는 지역으로, 신라 건국 초기부터 신라 6촌 중 하나인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에 속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감포 지역이 이미 삼국시대 이전인 삼한시대부터 사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동해안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초기 신라의 해양 활동이나 왜구 방어에 중요한 거점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음의 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가져왔습니다.
『삼국사기』 권 1 신라본기 1 시조 혁거세거서간 즉위조에서 금산가리촌을 비롯한 6촌을 '진한육부(辰韓六部)'로 표현한 것을 중시하는 연구자도 있다.
6촌은 곧 진한의 6개 소국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하면서 6촌의 위치도 경주 지역이 아니라 진한 소국들이 분포한 경상도 전역으로 범위를 넓혀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의 2개 글에서 실마리를 얻어서 역사적 사실을 추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금산(金山)은 김천시의 삼한시대 감문국 지명으로 황금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가리(加利)는 이익을 더하다라는 뜻으로 무역을 뜻하고, 김천시 감문국(甘文國)의 무역을 뜻합니다.
감문국 왕(군수)은 지백호였는데, 정(鄭) 씨의 도시조였습니다.
지백호(정 씨)는 김천시 감문국, 동해안 영일 지역, 경주시 금산가리촌을 다스렸습니다.
지백호는 박혁거세를 옹립해 왕으로 세웠고, 후손이 AD 32년 신라로부터 정(鄭) 씨 성을 받았습니다.
감포라는 지명의 유래가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삼한시대의 감포(甘浦)는 감문국(甘文國)의 무역항이고, 지백호가 다스린 지역인 것이 틀림 없습니다.
4번 국도는 김천시 - 대구광역시 - 경주시 - 감포항인데, 산과 계곡 사이로 난 길이어서 삼한시대부터 있었습니다.
대구공항의 터에 있었던 법궤는 4번 국도를 통하여 AD 142년 일본 도쿠시마현으로 건너가 오미코시 축제가 되었습니다.
경주 감포항 동영상(3분 3초)이 있습니다.
15. 감문국이야기나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231년(조분이사금 2)에 이찬(伊飡) 석우로(昔于老)를 대장군으로 삼아 감문국을 토벌하고 그 지방을 군으로 삼았다고 한다.
또, 『삼국사기』지리지 개령군조에 본래 감문소국이었던 것을 557년(진흥왕 18)에 군주(軍主)를 두고 청주(靑州)라 하였으며, 진평왕 때는 주를 폐하고 661년(문무왕 1)에 감문군을 설치했다고 한다.
또, 『동국여지승람』권29 개령현의 고적조에 감문국 때의 궁궐유지가 있다고 하며, 감문현 북쪽 20리에 감문국왕인 ‘김효왕릉(金孝王陵)’이 있고, 현의 서쪽 웅현리에 감문국 때 장부인(獐夫人)의 묘로 전하는 ‘장릉(獐陵)’이 있다고 한다.
개령은 낙동강 지류인 감문천 중류에 있으며, 감문천의 하류에는 선산(善山)이 있어 30리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선산일대의 토성 및 많은 대형고분군과 개령의 토성 및 고분은 당시 감문국의 배경을 짐작하게 해주는 유적이라 생각된다.
16. 도마의 숨결
도마의 숨결(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521번지)은 삼한시대 추풍령휴게소였고, 제(조국현)가 출생한 곳이며 상속 받은 유적지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제가 경험한 삼한시대의 전통을 알려드려서 누구나 삼한시대가 친근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 김천(金泉)과 황금소(黃金所)
김천시(金泉市)는 옛날 지도에 금산(金山, 황금의 산)이었고, 황금소(黃金所)가 기록되어 있는데, 황금소는 금천(金泉 황금의 샘)에서 퍼올린 황금을 두는 장소였습니다.
경상도의 땅 경상분지는 육성층 퇴적암으로 깊이 8km의 누층군 지질입니다.
도마의 숨결의 땅 1m 아래에서 중국 양자강과 황하에서 굴러온 동그란 돌과 모래가 있는 것을 제가 발견 하였습니다.
양자강과 황하의 그 많은 토사가 추풍령(217m)을 넘어올 때 무거운 황금이 소(沼)를 이루면서, 추풍령 아래 김천시 봉산면(황금소면)에는 황금 웅덩이가 있었습니다.
진나라시대와 삼한시대에는 김천시에 두레박으로 금을 퍼올리는 샘이 있어서 김천(金泉)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할 때에는 냇가의 모래에 90%가 금이어야 사금을 알아 볼 수 있어 채취 하였습니다.
고대에는 지구에서 튀르키예의 리디아와 한국의 김천 2곳이 사금의 생산지였습니다.
김천의 황금을 유태인 상인이 이집트로 가져갔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 할 때 받아나온 황금은 광야에서 모세가 법궤를 만드는데 사용 되었습니다.
나. 김수로가 살았던 금화마을
금관가야(金官 금을 관리하는 加耶)의 왕이 되기 전 김수로(金首露, 황금의 노다지를 찾는 팀장)가 살았던 금화(金華)마을이 극락산 밑에 있습니다.
다. 황금을 싣고 이스라엘에 갔던 주조마국의 말
김천시의 황금소에 모아둔 금은 삼한시대 주조마국(走漕馬國 현재 김천시 조마면)의 말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에 수출 하였습니다.
주조마국의 말은 황금을 싣고 초원의 실크로드로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 옆에 있는 가버나움에 도착하였고, 황금을 청동과 1:1로 교환하여 돌아 왔습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에서는 황금이 필요하였고, 동양에서는 위세품(청동검, 구리거울 등)의 청동기가 필요 하였습니다.
주조마국의 말들은 김천시 황금소에서 갈릴리 호수의 가버나움까지 가는데 약 3개월 걸렸습니다.
초원의 실크로드 가이드는 시대별로 스키타이, 흉노, 선비족이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 갈 때에는 갈릴리 호수를 이정표로 찾아갔고, 한국에 올 때 이정표는 김천시 봉산면에 있는 극락산(고지도에 기록) 이었습니다.
라. 극락산은 동양의 황금산지 이정표
극락산은 한국에 불교가 들어오기(불교 전래 AD 372) 전부터 있었습니다.
봉계초등학교 교가에 극락산이 나옵니다.
극락 성산 높은봉 새빛을 받아 영남 명지 봉계에 서기 어린다 ~~
김천시는 일제강점기에도 황금이 많이 생산되어 황금정이 있었는데, 현재 황금동이 되었습니다.
마. 저의 고향 마을에 금방앗간
제가 어릴적에 봉산면 직동 새터마을에 금방앗간이 있었고, 새터마을의 여나동에 할아버지(조재홍 장로)가 살았습니다.
금방앗간에서 일했던 조운현(1952년생) 씨가 현재 김천시에 거주하고 있고, 저(조국현)를 폐광에 안내하였고, 현재는 없어진 금방앗간의 당시 상황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바. 저의 조상은 대대로 가이드
저의 조상은 김천에서 추풍령 고개를 넘어 영동까지 약 30km를 여나동(추풍령 고개를 10여명이 모여서 넘던 삼한시대 동네 지명)에 살면서 가이드 하였습니다.
저는 한국 고대역사 탐방(도마 성지순례) 가이드를 1988년부터 36년간 3,000여 회를 하였는데,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등산가를 돕는 셰르파처럼 가이드 하였습니다.
사. 저의 가통은 붓글씨
저는 어릴적부터 붓글씨를 가통으로 배웠습니다.
BC 3세기 저의 도시조 조슈아가 황금과 철의 무역을 하면서 가통이 조무둔필(조 씨는 둔필이 없게 하라) 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어릴적부터 붓글씨를 배웠고, 평생 붓글씨 쓰면서 벼루 2개가 움푹 파였습니다.
아. 도마의 숨결은 한약방하던 집
삼한시대 추풍령휴게소였고 허왕후 약방집(분점, 출장소)이었던 도마의 숨결에 1세기에 사용하던 약을 가는 돌과 허왕후 떡차를 말리는 돌들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동네 사람들이 저를 약방집 아들이라 불렀는데, 이 약방집은 1세기 허왕후 때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있었습니다.
자. 도마의 숨결을 유적지로 발굴복원
정명남 역사발굴 관광자원화 연구소장이 2020.9.14. 경북도청 교육정책관실, 문화유산과, 관광마케팅과에 도마의 숨결 발굴복원한 결과를 보고 하였습니다.
차. 삼한시대 솟대 전시
BC 3세기 도마의 숨결에 살았던 천군(레위지파 제사장) 조슈아가 만든 소도의 솟대가 발굴복원되어 있습니다.
조슈아의 묘(문당동1호 목관묘)에서 BC 3세기 청동검과 옥목걸이, 토기 등이 출토 되었습니다.
카. 사도 도마가 한국에서 만든 돌절구통
AD 1세기 감문국 천군 조슈아가 철기를 강철로 만들어 수출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제자 사도 도마를 한국에 초청하여 가이드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수천년동안 나라없이 떠돌며 그들의 발자취를 다 기록한것이 이스라엘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코헨들은 이스라엘 종신 공무원이 되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응답 받으며 이스라엘을 뒤에서 통치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보는 성경과 함께 나라없이 수천년을 떠돌며 기록한 내용을 우리들은 인정할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코헨이 이스라엘 수장고에 보관된 기록에서 찾은 정보를 저에게 주었는데, 저의 도시조 이름이 조슈아라는 것과 사도 도마가 한국에 오기 전에 1세기 조슈아와 김수로왕을 알고 있었다는 내용 이었습니다.
도마의 숨결은 삼한시대 추풍령휴게소였고, 조슈아가 살던 집에 도마가 방문하여 돌절구통을 만들었습니다.
그 후 약방집이 되어 담으로 둘러져 있어서 유물이 집안에 고스란히 보존 되었고 발굴복원하기 쉬웠습니다.
삼한시대 도마의 숨결에서 강강수월래가 있었기 때문에 강강수월래 보존회 유명해 회장이 방문하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도마의 숨결 동영상(2분 36초)이 있습니다.
타. 도마의 숨결은 삼한시대 추풍령휴게소
현재 봉계천은 일직선이지만 삼한시대는 도마의 숨결을 휘감아 돌았습니다.
추풍령 고개를 넘어 가는 길은 말달리며 가는 길과 걸어서 가는 길 2가지가 있었습니다.
파.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선
다음의 글은 김천신문(권숙월 기자) 2015. 4.22. 기사입니다.
'극락산자락에 위치한 입석마을은 정승바위를 경계로 안쪽마을을 내입석(안선돌), 바깥쪽 마을을 외입석(바깥선돌)이라 했는데 지금도 양 마을 입구에 1m 남짓한 돌이 세워져있어 입석이라는 마을지명의 유래를 짐작하게 한다.
충청도와 경상도를 구분하는 표지석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하. 정 씨와 조 씨가 삼한시대부터 현재까지 사이 좋은 집성촌
삼한시대 감문국에는 군장(왕, 군수) 정(鄭) 씨의 도시조 지백호가 김천시 교동에 살았고, 천군(제사장) 조(曺) 씨의 도시조 조슈아가 봉산면에 살았습니다.
2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봉산면 봉계 마을(인의, 예지, 신리)에는 정 씨와 조 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17. 도마석상
도마석상 동영상(2분 33초)이 있습니다.
18. 조문국사적지
의성군 금성(金城)면의 역사에 황금(黃金)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금성산 화산 폭발 때 황금이 많이 나왔고 솔로몬의 사신이 금성면의 황금을 구하러 왔었습니다.
소문(召文)은 솔로몬의 뜻이며 소문은 황금이란 뜻이 되었습니다.
고구려 장군 연개소문(淵蓋蘇文 )을 고대에는 연개금(淵蓋金)이라 쓰고 연개소문이라 읽었습니다.
소문국의 이름에는 솔로몬과 황금의 뜻이 담겨 있고, 솔로몬의 성전에 소문국의 황금이 사용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역사로 읽을 때는 소문국(召文國)이고, 지명으로 읽을 때는 조문국(召文國)입니다.
의성군 금성산에 관한 위키백과의 글입니다.
금성산(金城山)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해발 531 m의 산이다.
사화산으로, 화구는 없으며, 성층화산이다.
다만, 옆의 비봉산과 이어지는, 거대한 칼데라가 있다.
백악기 때 분화한 기록이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화산이다.
때문에 정상에 1,000여평의 평지가 남아 있으며, 화산답게 모양이 독특해 눈에 띈다. 이 산에 가려면 중앙선을 이용하여 탑리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주변에는 경상 누층군 상에 놓인 의성 제오리 공룡발자국화석 산지가 있으며, 지금도 이 화산의 화산재로 이루어진 땅에서 의성마늘을 재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문국을 조문국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벌휴이사금 2년 (185)조에는 “파진찬(波珍飡) 구도(仇道)와 일길찬(一吉飡) 구수혜(仇須兮)를 좌우군주(左右軍主)로 삼아 소문국을 공벌(攻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문소군(聞韶郡)은 본래 소문국(召文國)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였고 지금의 의성부(義城府)이니 소속 현은 네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도 의성에는 소문국이 있었던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읍지(邑誌)』에는 소문국의 옛 터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서 남쪽으로 25리 떨어진 금성면 일대라 하고 있다.
실제 의성 지역에 많은 고분군이 있는데, 금성산 고분군이라고 일컬어지는 금성면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대 고분은 군집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신라 마립간시기 왕족의 무덤인 적석목관분과 매우 흡사한 구조여서 주목된다.
19. 청도박물관
인터넷 구글 창에 질문하였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AI가 하였습니다.
청도박물관에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부터 삼국시대 굽다리 접시, 고려시대 청자, 조선시대 목판, 교지, 호패 등 시대별 대표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신당리 지석묘, 예전리 출토 비파형동검, 다양한 청동기 시대 유물들이 주요 전시물에 포함됩니다.
인터넷 구글창에 한국사교과서의 일본식민사관을 질문하였더니 AI가 다음과 같이 대답 하였습니다.
한국사 교과서의 식민사관은 일제 강점기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한국 역사를 부정적인 시각에서 왜곡한 학문적, 정치적 이념을 말합니다.
주요 내용은 한국 역사의 자율성보다 타율성을 강조하는 타율성론, 만주와 조선을 하나로 보고 한반도가 만주에 종속적이라고 주장하는 만선사관, 그리고 한국인이 이기적이고 분열적인 민족성 때문에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당파성론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식민사관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한국 역사를 부정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타율성론: 한국 역사는 스스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외세의 영향으로 발전했다는 주장입니다.
만선사관: 만주와 조선의 역사를 하나로 보고 한반도가 만주에 종속적이라고 보는 시각입니다.
당파성론: 한국인들은 이기적인 당파 싸움만 했기 때문에 국가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주장입니다.
20.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청도군 이서국 동영상(3분 27초)이 있습니다.
인터넷 구글 창에 질문하였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AI가 하였습니다.
청도 성곡리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5세기 이후의 3,600여 점의 토기와 철기, 금제 유물 등이 있으며, 특히 창녕 지역의 양식과는 다른 성곡리 고분 양식 토기와 이서국과의 연관성이 주목됩니다.
이 유물들은 5세기 이후의 청도 지역 고분 문화를 재조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서국(伊西國)은 삼한 시대에 있던 변진(弁辰) 계통의 부족국가로, 신라 초기에 복속하였다. 현재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과 화양읍 일대에 위치해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유사는 유리 이사금 통치기인 건무 18년(42년)에 이서국을 정벌해 멸망시켰다고 전한다.
이후 삼국사기는 유례 이사금 14년(297년)에 이서국 사람이 금성(金城)을 공격하였다고 한다.
신라는 대병으로 막았으나 역부족이었으며 이에 위협당하고 있을 때 홀연히 이병(異兵, 죽엽군)이 나타나 신라병을 도와 이서국을 물리쳤다고 한다.
삼한시대의 이서국이 2번 멸망(AD 42년과 297년)한 것은 일본식민사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의 증거 중 하나였습니다.
인터넷 구글창에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질문하였더니 AI가 다음과 같이 대답 하였습니다.
일본 식민사관의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일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한국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고안된 정치적 주장이자 식민주의 사학의 핵심 논리 중 하나입니다.
주요 내용 및 목적
임나일본부설 정당화: 일본 식민사학자들은 야마토 정권이 4~5세기에 한반도 남부 가야 지역에 '임나일본부'라는 식민 통치 기관을 두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임나일본부에 대한 언급이 없고 오히려 삼국이 일본에 문명을 전파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신뢰성을 부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한국 역사의 축소 및 비하: 『삼국사기』의 건국 연대와 초기 역사를 부정하여 한국 역사가 일본 역사보다 뒤떨어졌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한국인의 민족적 자긍심을 말살하고자 했습니다.
『일본서기』 중심의 역사관: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내용이 상충될 경우, 『일본서기』의 기록을 일방적으로 신뢰하고 『삼국사기』를 허위로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서기』 자체도 연대 조작과 변개가 심한 역사서라는 것이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도 인정되는 사실입니다.
특정 시점 이후의 역사만 인정: 신라의 경우 내물왕(재위 356~402년) 시기 이후의 기록만 사실로 인정하는 등, 삼국의 초기 수백 년의 역사를 부인했습니다.
학계의 대응 및 현재
한국 사학계의 비판과 반박: 해방 이후 한국 사학계에서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역사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불신론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초기 기록에 기록 연대상의 문제점은 있을 수 있으나, 전반적인 사실 관계는 신뢰할 수 있다는 '수정론' 또는 '긍정론'이 제기되었습니다.
민족 사학의 관점: 신채호, 박은식 등 민족 사학자들은 일제 식민사학의 논리를 비판하며 『삼국사기』가 사대주의적인 면모는 있으나 고대사 연구의 핵심 사료임을 강조했습니다.
고고학적 성과: 고고학 유물과 유적 발굴이 활발해지면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사실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학문적 실증이 아닌,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고안된 식민사관의 산물입니다.
21. 청도군 팔조령
인터넷 구글 창에 질문하였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AI가 하였습니다.
삼한시대 청도군 팔조령은 변한 지역에 속했으며, 현재의 팔조령이 삼한시대의 역사와 연결됩니다.
팔조령은 조선시대 영남대로의 주요 길목이었으며, '팔조령'이라는 이름은 도적이 많아 8명 이상이 뭉쳐야만 넘을 수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습니다.
현재는 청도군과 대구광역시 달성군을 잇는 고개로, 고개 밑으로 터널이 개통되어 교통이 편리해졌습니다.
삼한시대와의 연관성: 청도군은 삼한시대에 변한에 속했으며, 팔조령은 그 지역의 중요한 교통로 중 하나였습니다.
이름의 유래:
조선시대의 전설: 팔조령(八助嶺)이라는 이름은 도적이 많아 최소 8명의 사람이 '서로 돕고(助)' 넘어야만 안전했다고 해서 붙여졌습니다.
인터넷 구글창에 일본식민사관 만행을 질문하였더니 AI가 다음과 같이 대답 하였습니다.
일본의 식민사관(植民史觀)은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조작된 역사관으로, 그 만행은 역사 왜곡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주요 만행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역사 왜곡 및 날조
조선사편수회 설치 및 역사서 편찬: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고 16년에 걸쳐 방대한 분량의 역사서를 편찬했는데, 이는 철저하게 일본 제국주의 관점에서 한국 역사를 재단하고 왜곡한 것이었습니다.
2. 민족정신 말살 정책
민족문화 말살: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부정적이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묘사하여, 한국인 스스로 민족적 자긍심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강제 동화 정책: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학교에서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며,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등 한국인을 뼛속까지 일본인으로 만들려는 '정신 개조'를 자행했습니다.
3. 연구의 악용 및 탄압
학술 연구 빙자한 차별: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혈액형 연구를 진행하며 A형이 많은 일본인이 우월하고 조선인은 열등하다는 식의 황당한 우생학적 식민사관을 퍼뜨리려 했습니다.
역사학자 탄압: 민족주의 사학자들을 '정신병자'나 '또라이' 취급하며 매도하고, 그들의 연구를 탄압했습니다.
이러한 식민사관의 만행은 단지 과거의 역사 왜곡에 그치지 않고, 광복 이후에도 한국 사회와 역사학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오늘날 일본 우익 세력의 역사 왜곡 시도(교과서 검정 문제 등)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2. 고령군 장기리 암각화
고령군 알터 암각화 동영상(3분 32초)이 있습니다.
대가야향토사연구회장 김도윤 장로는 철의 왕국 가야의 철에 대한 전문가였는데, 저와 가야철기 유물 답사를 다니면서 다음과 같은 정보를 주었습니다.
화강암을 조각 할 수 있는 쇠로된 정은 동양에서 4세기에 처음 만들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려대학교 금속공학과 교수가 한국에서 1세기에 만들어진 정을 발견 하였습니다.
특히 영주시 도마석상의 히브리어 알파벳 타우, 멤(도마)은 1세기에 정으로 새겨졌고, 장기리 암각화는 1세기에 덧새겨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 사도 도마가 1세기에 한국에 정을 가져왔기 때문이라 생각되어집니다.
<맺는 말>
인터넷 구글창에 '한국인이 백인과 유색인을 대하는 차별'을 질문하였더니 AI가 다음과 같이 대답 하였습니다.
한국 내에서는 인종차별이 존재하며, 일반적으로 서구권 백인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동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의 유색인종에게는 편견과 차별이 심한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경제적 이해관계, 그리고 '단일민족' 의식과 결합된 민족주의적 성향이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백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인식 및 태도 차이
백인: 한국 사회에서 종종 '지나치게 친절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으며, 이는 '서구 문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결합된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 동아시아인을 '유색인종'으로 분류하고 백인을 우월하게 여겼던 역사적 관점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유색인종: 다른 아시아 국가나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에게는 인종차별적인 태도가 더 흔하게 나타납니다.
이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과 편견, 경제적 이해관계 충돌 등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합니다.
제가 위의 AI 대답 글을 올린 이유는 한국인이 서양 고대역사와 한국 고대역사의 인식에도 백인과 유색인종 차별만큼 차별적 생각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예를들면 바울의 서양 선교역사는 무조건 사실로 보면서 사도 도마의 동양 선교역사는 정설이 되었는데도 가설로 보려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양 전도 지도가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역사부도)에 들어가 있는데, 그 옆에 사도 도마의 동양 전도 지도가 진작에 들어가 있어야 맞습니다.
한국인은 서양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리잔은 술잔이라도 성찬기로 보려하고, 한국 고분에서 출토된 유리잔은 성찬기라도 술잔으로 보려합니다.
사도 도마가 1세기 한국에 가지고 온 보물 제624호 로만글라스 성찬 축사잔은 한국 고대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는데, 한국인은 고대 동서교역 가능성의 증거 자료 정도로 폄하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처럼 도마행전을 보고, 마태복음처럼 도마복음을 보는 차별없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도마행전과 도마복음서를 외경이나 위경으로 폄하하는데, 이것은 낡은 서양식 사고의 결과입니다.
도마행전과 도마복음서는 곱틱어로 기록되었고, 초대교회 시대 성경을 정경, 외경, 위경으로 분류 할 때 서양에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시대에 곱틱어 도마복음서를 외경이나 위경으로 분류하며 정경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핀잔을 주는 것은 마치 씨름 선수에게 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느냐고 핀잔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신약성경의 유다서는 사도 도마(Thomas AD 2-72)가 기록하였는데, 유다서의 해설란에 유다(본명)가 도마(쌍둥이, 별명)라고 설명하면 좋겠습니다.
도마서(유다서)가 신약성경의 정경인 것을 모르고, 도마복음서와 도마행전을 외경, 위경으로 말하지 않기 바랍니다.
사도 도마는 땅끝나라 한국까지 다녀간 1차 선교를 마치고 AD 50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갔었고, 이때 도마서(유다서)가 기록 되었습니다.
사도 도마는 이집트를 거쳐서 인도 남부지역에서 2차 선교를 하다가 순교 하였습니다.
이때 도마복음서와 도마행전의 곱틱어 원자료가 있었고, 1945년 이집트에서 곱틱어 도마복음서가 발견 되었습니다.
성경의 정경은 헬라어 ‘카논’에서 비롯된 신앙의 기준 목록으로, 헬라어 성경과 교부들의 논의가 그 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곱틱어 도마복음서가 헬라어 정경에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이것은 마치 고대 올림픽의 참가 자격이 헬라어를 사용하는 그리스의 도시국가 시민권이 있는 자(백인)인데, 곱틱어를 사용하는 이집트 사람(흑인)이 고대 올림픽에서 참가하여 월계관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도마행전과 도마복음서를 역사적 사료로 보면 한국에 왔었던 사도 도마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입니다.
마라톤에 비유하면 이스라엘은 출발점이고 한국은 골인지점입니다.
예수님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명령을 1세기에 사도 도마가 땅끝나라 한국에서 세계 최초 기독교 국가인 가야국을 건국하며 1차 달성 하였습니다.
마라톤의 시작 때는 출발점(이스라엘)에 사람이 모이지만 마라톤이 끝날 때는 골인지점(한국)에 사람이 모입니다.
이제는 역사 마라톤의 골인지점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도마 성지순례 가이드북에서 한국에 있는 도마 성지 30곳을 소개 하였습니다.
도마 성지순례 가이드북이 나온 것은 1988년부터 36년간 3,000여 회를 가이드한 결과이며, 사도 도마가 1세기 한국에 왔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정설인 것의 확증 자료입니다.
세계에서 이스라엘에 가던 성지순례객 연간 400여만 명이 한국의 도마 성지순례에 오도록 하는데 도마 성지순례 가이드북이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가이드북이 나오고 성지순례가 대중화 되려고 하는데 아직도 사도 도마가 한국에 왔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설로 생각하는 것은 일본식민사관을 벗어나지 못한 결과입니다.
사도 도마가 한국에 왔었던 내용을 가설로 가르치는 사람은 지동설을 가르쳐야 할 사람이 천동설을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일본식민사관을 벗어나지 못한 학자는 서양의 고대 역사는 가설인데도 정설로 보고, 한국의 고대 역사는 정설인데도 가설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식민사관에서는 삼한시대를 선사시대로 분류하여 한국인의 조상들은 미신적이고 야만적이어서 연구할 가치조차도 없다고 착각하도록 하였습니다.
일본식민사관을 벗어나지 못하여 사도 바울과 사도 도마를 차별하는 것은 한국인이 백인과 유색인을 차별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한 것은 사도 바울만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8절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사도 도마의 고백은 한국대학생선교회 사영리의 영접기도문(지금 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에 있습니다.
사도 도마의 고백이 모든 기독교인 신앙의 시작에 꼭 필요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의 사도 도마의 고백은 기독교인이 평생동안 '오직 예수'로 살다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가장 큰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고, 예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능력 주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윤사무엘 박사는 '복음은 서구 문명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 속에서 동방으로 흘러온 생명의 역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사도 도마는 서양의 백인이 아니고 동양의 유색인 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를 시작한 때는 AD 45년인데, 사도 도마는 그보다 3년 전인 AD 42년에 한국에 도착하여 기독교 국가인 가야국을 건국하도록 김수로왕을 도왔습니다.
김해시기독교연합회에서는 제8회 세계 최초 기독교 국가 가야국 축제를 하였는데, 손길문화원 주관 가야건국 기념예배 및 포럼이 2025.4.10. 김해시 양문교회에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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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 도마석상과 의성군 조문국 사적지에 초대
도마석상이 경북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산 87-3에 있습니다.
도마석상의 왼쪽 손 위에는 십자가를 물고있는 비둘기가 양각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도마석상 오른쪽 위에 1세기 히브리어 알파벳의 글자 형태로 타우, 멤(도마)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왼쪽 아래 호를 쓰는 곳에 지전행(地全行, 땅 전부 다닌 사람, 막 16:15)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의성군 조문국은 21대왕 왕력과 369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SBS-TV 다큐방송에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한국에 오다'가 2025년 50분씩 2회 방송 되었고, 이를 기념한 '도마 성지순례 가이드북'(별도의 자료)의 H번에 자세한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https://cafe.daum.net/thomas7
https://blog.naver.com/story4006
도마연구소장 조국현 교수
010 4391 4006
도마 성지순례 가이드북
A. https://cafe.daum.net/thomas7/M0aN/8?svc=cafeapi
B. https://cafe.daum.net/thomas7/M0JL/160?svc=cafeapi
C. https://cafe.daum.net/thomas7/M0JL/106?svc=cafeapi
D. https://cafe.daum.net/thomas7/M0JL/72?svc=cafeapi
E. https://cafe.daum.net/thomas7/M0JL/73?svc=cafeapi
F. https://cafe.daum.net/thomas7/M0JL/76?svc=cafeapi
G. https://cafe.daum.net/thomas7/M0JL/75?svc=cafeapi
H. https://cafe.daum.net/thomas7/M0JL/74?svc=cafeapi
도마연구소장 조국현 교수 드림
010 4391 4006
<대학교 학술대회 계획>
일시: 2025. 10. 27.(월) 오전10시 - 오후 4시
장소: 수원 한성교회
주최자: 전재규
주관자: 윤사무엘
주제 강연: 조국현
강사: 이용봉, 이경운
주제 내용: 도마 성지순례 가이드북(한국에 왔었던 예수님 제자 도마가 남긴 유적지 30곳)
SBS-TV 다큐방송에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한국에 오다'가 2025년 50분씩 2회 방송(전재규 대신대학교 명예총장, 윤사무엘 세계적인 고고학자 출연) 되었습니다.
이를 기념한 '도마 성지순례 가이드북'(별도의 자료)이 있습니다.
도마 성지순례 가이드북 B번(NOTICE) 댓글란에 도마 성지순례지 1 - 10번까지 소개되어 있습니다.
1. 청라언덕
2. 도마공원
3. 도마공항
4. 신림봉
5. 도마재와 도마재골
6. 불로동고분군
7. 금호강
8. 도마연구소
9. 국립대구박물관
10. 설화리(화원유원지)
이곳 'H.의 댓글란에 11 - 22번의 도마 성지순례지(경상북도 소재)를 소개합니다.
11. 연오랑 세오녀 테마파크 (경상북도 포항시)
한국에 왔었던 1세기 사도 도마의 한국 선교 흔적을 알면 쉽게 풀려지는 고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1의 연오랑 세오녀(延烏郞 細烏女) 이야기 입니다.
신라 아달라왕(AD157) 때 연오랑, 세오녀 부부가 동해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AD 372년 고구려에 불교 전래)
그러던 어느날 연오(제철소의 단야장)가 일본으로 갔고, 일본인들은 비범한 사람이라며 왕으로 삼았습니다.
세오(비단 짜는 여인)도 일본으로 갔고, 세오는 연오와 재회해 왕비가 되었습니다.
한편, 그 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는데, 제철소에서는 연오가 없어서 제철이 중단된 것입니다.
이에 신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연오와 세오에게 돌아오도록 촉구했으나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들은 사도 도마가 한국에 전해준 제철 기술과 기독교 복음을 일본에 전하러 갔었습니다.
대신 세오가 직접 짠 비단(제철 기술의 비법이 기록된)을 보내었습니다.
왕이 그 비단을 받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고, 신라의 제철소는 다시 가동 되었습니다.
그 비단을 국보로 보관한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였습니다.
12. 국립경주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쇠뿔모양 손잡이 달린 항아리는 삼한시대 소도(도피성)에서 천군들이 기름을 담아 도유식 때 사용한 의기(儀器)였습니다.
삼한시대 민속종교는 유태교였고, 삼국시대 민속종교는 기독교였습니다.
신라 유리왕 9년(AD 32년), 육부를 두 패로 나누어 길쌈 내기를 하고, 8월 보름(추석, 초막절)에 진 편이 이긴 편을 위해 노래와 춤을 즐겼습니다.
이때 ‘회소, 회소’라 하여, 이를 ‘회소곡’이라 불렀습니다.
회소곡(會蘇曲)은 '소도(蘇塗)에 모여서(會) 노래(曲)하자'라는 뜻인데, 사도 도마가 '예수(야소 耶蘇)님께 모여서 노래하자'라고 하였습니다.
야소는 야화화(耶華和 여호와의 음역)의 부활(蘇 소생)의 뜻인데, 사도 도마가 예수님 이름으로 처음 사용 하였습니다.
오소운 작사 회소곡이 1961년까지 한국찬송가에 수록되어 있었는데,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혼인 내용입니다.
사도 도마가 한국의 김수로왕과 인도 공주였던 허왕후를 중매하여 AD 48.7.27. 김해시 봉황동유적지에서 혼인식을 가졌습니다.
허왕후의 딸이 신라 석탈해왕의 며느리가 되면서 가야의 기독교가 신라에 전해졌습니다.
13. 대릉원 (경상북도 경주시)
대릉원의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보물 제624호 로만글라스는 1세기 이스라엘 헤브론에서 만들어진 성찬식 축사잔인데, 사도 도마가 한국에 가지고 왔었습니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물이 58,441점입니다.
경주에는 형산강지구대가 있는데, 쉽게 이해하려면 7번 국도의 형산강을 따라난 포항가는 길과 경주에서 울산가는 국도입니다.
삼국사기 잡지 3에 흥해가 퇴화(退火)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지구대에서 온 사도 도마가 형산강지구대에 제철소(퇴화)를 세웠습니다.
마라톤의 출발점과 골인지점에 선이 그어진 것처럼, 이스라엘에는 이스라엘지구대가 있고 땅끝나라 한국에는 형산강지구대가 있습니다.
지구대(地溝帶, Rift valley)는 두 개의 평행한 단층애(斷層崖; 단층운동으로 형성된 절벽)로 둘러싸인 요철(凹凸) 형태의 좁고 긴 골짜기입니다.
울산 달천광산에서 캐낸 비소가 포함된 철광석을 배로 포항에 옮겼습니다.
연오랑 세오녀는 포항시 해맞이 공원에 있는 대보항(大甫港)에서 철을 실은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갔었습니다.
14. 감포항 (경상북도 경주시)
동해안의 경주시 감포(甘浦)는 삼한시대 때 김천시에 있었던 삼한의 감문국(甘文國) 소속의 지점 이었습니다.
삼한시대(BC 400년) 한국에 왔었던 법궤는 에티오피아의 악숨에 있던 법궤의 복제품 이었습니다.
법궤는 제2의 예루살렘 대구의 압독국 소도 미리(美里, 대구공항의 터)에 있었습니다.
금호강에서 초막절날 법궤 메고 강건너기 행사를 하였습니다.
한국에 있었던 법궤가 AD 142년 감포항을 통하여 일본 도쿠시마현으로 갔습니다.
일본에서는 법궤 메고 강건너기 행사인 오미코시(神輿) 축제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법궤는 4번(김천 ~ 대구 ~ 감포) 국도를 따라 감포항까지 갔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는 4번 국도를 따라간 고대의 마차 바퀴자국이 있는데, 마차폭이 로마의 마차폭만큼 넓습니다.
마차는 법궤를 제사장들이 메고 갈 때 천군이 타고 따라갔던 위세품 이었는데, 마차의 청동 부속품들이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AD 146년 겨울 10월에 압독(押督)이 반란을 일으키니, 군사를 출동시켜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그 남은 무리를 남쪽 지방으로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5. 감문국이야기나라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국이야기나라는 김천시에서 199억원으로 조성한 삼한의 사적지입니다.
삼한시대에 마한 54개, 진한 12개, 변한 12개 소(小)국가가 있었습니다.
감문국은 낙동강으로 형성된 국가연합인 변한에 속하여 금과 철을 수출하고 있었습니다.
삼한시대는 군장(정치인, 군수)과 천군(종교인, 제사장)이 각각 지방자치단체장이 되어 다스렸습니다.
감문국 군장은 지백호(정鄭 씨의 도시조)이며 김천시 교동에서 근무 하였습니다.
감문국 천군은 조슈아(조曺 씨의 도시조)였고 감문면에서 근무 하였습니다.
김천(金泉)의 지명은 금의 샘이란 뜻이고, 고대에는 사금이 많이 생산 되었습니다.
김천시의 조마면은 삼한시대 주조마국이었습니다.
주조마국은 김천에서 생산된 황금을 초원의 실크로드로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 가버나움에 가져가서 청동과 1:1로 교환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김천에서 가버나움까지는 말을 최대속도로 달려 3개월 걸렸습니다.
초원의 길 가이드는 스키타이인, 흉노, 선비족이 하였습니다..
김천의 사금은 고대지도에 극락산 옆에 황금소(黃金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도마의 숨결 (경상북도 김천시)
청동기 시대의 추풍령휴게소는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였고, 계명대학교박물관에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도마의 숨결(김천시 봉산면 신리 521번지)이 추풍령휴게소였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는 봉산면 광천리에 추풍령휴게소가 있습니다.
도마의 숨결(추풍령휴게소)은 한반도의 교통 요충지여서 감문국에서 지점으로 천군을 파견 하였습니다.
천군이 도마의 숨결에 전시되어 있는 솟대를 쌓았고, 정명남 역사발굴 관광자원화 연구소장이 발굴복원 하였습니다.
정명남 소장이 경북도청 교육정책관실, 문화유산과, 관광마케팅과에 보고 하였습니다.
조슈아의 묘(BC 3세기, 문당동1호 목관묘)에서 청동검과 옥목걸이 토기 등이 출토 되었습니다.
조슈아는 장남에게 대물림 되던 이름인데, 1세기 조슈아가 예수님의 제자 사도 도마를 한국에 초청하였습니다.
변한의 철을 강철로 만들어 수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도마의 숨결에 전시된 돌절구통은 사도 도마가 머물면서 강철의 정으로 1세기에 만든 것입니다.
17. 도마석상 (경상북도 영주시)
도마석상의 글을 써야하는 오늘(2025.10.3.) 마침 도마석상 성지순례가 있어서 제가 가이드 하였습니다.
기독교 대한감리회 동부연회 춘천북지방 샘솟는교회
(김동윤 목사)의 11명이 성지순례 하였으며, 일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0:30 - 11:00 도마석상
13:30 - 17:00
의성군 금성산, 조문국사적지, 조문국박물관
도마석상은 1987년 유우식 장로(당시 고등학교 역사교사)가 발견하였습니다.
도마석상 우측상단에 히브리어 알파벳 타우, 멤(도마)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1세기 히브리어 알파벳 글자 형태를 알면 누구나 도마라고 읽을 수 있는데, 글자를 외면하고 해설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왼쪽 하단(호 위치)에는 지전행(地全行)이 예서체(한나라 시대, 1세기)로 새겨져 있는데, 한자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왼손 위에는 십자가를 물고있는 비둘기가 양각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발가락 10개가 선명하게 새겨진 것은 중동사람 사도 도마의 샌들을 뜻합니다.
도마석상을 사도 도마를 모르는 사람이 해설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며 엉뚱한 말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18. 조문국사적지 (경상북도 의성군)
일본인은 일제강점기에 한국민족 말살정책으로 일본식민사관을 만들었습니다.
삼한역사의 고서적을 불태우거나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일본식민사관의 삼한 역사는 고조선 멸망(BC 108) 후부터 삼국(신라 BC 57)시대 전까지 선사시대 51년간인데, 이것은 말이 안되지만 한국사교과서와 한국인은 이 왜곡된 역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벌휴왕 때에 “185년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를 좌우군주로 삼아 소문국(召文國)을 정벌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경덕왕릉의 발견은 조선 숙종 때 간행된 미수 허목의 '미수기언'에 설화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성군수의 꿈에 경덕왕이 나타나 능의 개보수를 명하고, 이에 경덕왕릉을 조성했다'
박창화 선생은 1933년 ~ 1942년 사이에 일본 궁내성에서 촉탁(계약직)으로 근무 하였습니다.
서릉부에는 일제가 규장각 등에서 약탈해 간 비공개 고서가 많이 있었고, 10여년간 여러 책들을 읽고 손으로 옮겨 적었는데, 삼국사의 소문국 왕력은 21대왕 369년입니다.
제1호 고분 경덕왕의 재위(AD 10-74)와 사도 도마의 일생(AD 2-72)이 겹칩니다
19. 청도박물관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박물관에 청도의 고대역사가 유물과 함께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유리 이사금 통치기인 건무 18년(AD 42년)에 '사로국이 이서국을 정벌해 멸망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신라(사로국)가 이서국을 AD 42년 멸망시켰는데, 가야국의 건국이 AD 42년입니다.
AD 42년 김수로왕이 이서국의 군장이었다가 사도 도마에 의하여 AD 42년 가야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후 삼국사기에서는 유례 이사금 14년(AD 297년)에 이서국 사람이 금성(金城)을 공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신라는 대병으로 막았으나 역부족이었으며 이에 위협당하고 있을 때 홀연히 이병(異兵, 죽엽군)이 나타나 신라병을 도와 이서국을 물리쳤다고 하였습니다.
이서국은 AD 42년과 AD 297년 2번 멸망한 기록이 있는데, 이것으로 일본식민사관에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2번 멸망 기록이 정확한데, AD 42년에 기독교가 되려는 이서국을 유태교의 사로국이 멸망시켰습니다.
그후에 이서국은 유태교로 남았고, 사로국은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AD 297년 유태교의 이서국이 기독교의 사로국을 공격하다가 멸망 하였습니다.
20. 성곡리(聖谷里) - 소도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에 916기의 고분이 있고, 그 유물이 청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삼한시대(신구약 중간사)에 성곡리는 소도(蘇塗, 도피성)였습니다.
AD 42년 이서국 군장(군수) 김수로(뇌질청예)가 사도 도마의 도움으로 금관 가야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인용된 최치원의 저술
「석이정전」에 '가야 산신 정견모주(正見母主)는 천신 이비가에게 감응하여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金官國, 가야국)의 왕 뇌질청예(惱窒靑裔, 김수로왕) 등 두 사람을 낳았다'고 하였습니다.
석이정전의 기록은 신화화 되었으나 성모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된 탄생 내용이 있고, 대가야와 금관가야의 시조왕이 천신(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태어났다는 내용입니다.
김수로왕은 AD 42년 3월 15일 부활절날 금관가야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김해시기독교총연합회에서는 2025년 제8회 세계 최초 기독교 국가 가야국 축제를 하였습니다.
군장이 없어진 이서국에 성곡리의 천군(유태교 제사장)은 백곡토성을 쌓고, AD 42 - 297년까지 다스렸습니다.
21. 팔조령 (경상북도 청도군)
팔조령(八助領) 지명 유래는 고갯마루에 도적이 많아 적어도 행인 여덟 명이 모여 무리를 지어 서로 도우면서 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한국 고대역사에 유태인 상인이 귀금속을 가지고 고개를 넘을 때부터 시작된 이름입니다.
팔조령은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의 소도(도피성)에서 대구광역시 동구 소도(도피성, 대구공항의 터)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청도군 기독교 연합회에서 근대 기독교 100주년을 기념하며 팔조령에 세운 기념물이 대구 방면 도로 좌측에 있습니다.
(사)한국순례길 이사장 전재규 장로는 팔조령이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의 복음전래길인데, 또한 팔조령은 사도 도마의 선교길이어서 함께 발굴복원하고 있습니다.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산과 계곡의 지형으로 난 길이어서, 사도 도마의 선교길과 베어드의 선교길이 같습니다.
22. 장기리 암각화 (경상북도 고령군)
김해시 금관가야와 고령군 대가야는 AD 42. 3. 15. (부활절날) 기독교 국가로 건국 되었습니다.
김해시에는 도마 성지순례지를 순례객이 많이 가는데, 고령군에는 장기리 암각화 외에 순례객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김해시 금관가야는 가락국기의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언 제 33권 외편 동사2 가락(駕洛)의 기록입니다.
〈석이정전(釋利貞傳)〉에 이르기를,
“대가야는 초기에 신녀(神女)가 있었는데, 이비가(夷毗訶)에게 감응하여 뇌질주일(腦窒朱日)과 뇌질청예(腦窒靑裔)를 낳으니, 이들은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 탄생한 것이다. 주일은 대가야의 군왕 이진아치(伊珍阿致)이고, 청예는 가락의 시조 김수로이다.”
위의 글은 최치원(AD 857 - 908)의 전설같은 기록입니다.
그러나 사도 도마(AD 2-72)가 한국에서 복음 전한 때는 정확하게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고령군의 대가야 초기역사를 가락국기를 참고하여 유적과 유물을 관람하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장기리 암각화는 고대의 기존 암각화에 사도 도마가 복음 전하는 교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덧새기기를 한 기하학적인 문양입니다.
<참고 사항>
위 H번 댓글란의 11 - 22번 글들은 사도 도마 한국 선교의 경상북도에 남아 있는 흔적들입니다.
도마 성지순례 가이드북 A번에 있는 경상북도의 성지와 일치합니다.
다음 23 - 30번까지의 글은 도마 성지순례 가이드북 E번 댓글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