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에 관한 시 모음> 서정춘 시인의 '눈물 부처' 외
+ 눈물 부처
비 내리네 이 저녁을
빈 깡통 두드리며
우리집 단칸방에 깡통 거지 앉아 있네
빗물소리 한없이 받아주는
눈물 거지 앉아 있네
(서정춘·시인, 1941-)
+ 눈물은 짜야 눈물이다
눈물은 짜야 눈물이다
눈물이 그저 맑기만 하다면
그게 어디 눈물인가
눈물은 짜야 눈물인 것이다
눈물은 짜야 한다
눈물이 짜야 몸 속에 쌓인 슬픔과 고통이
미움과 절망의 찌꺼기를 깨끗이 정화해서
눈물로 내보내는 것이다
눈물은 짜야 눈물인 것이다
한껏 울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은
마음이 맑아졌기 때문이다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눈물 많은 사람은 그만큼 마음이 맑다는 것이다
눈물은 진실할 때만 보일 수 있는
인간의 원초적 순수다
(김옥림·시인)
+ 눈물
새로 돋아난
내 사랑의 풀숲에
맺히는 눈물
나를 속일 수 없는
한 다발의
정직한 꽃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처럼
간절한 빛깔로
기쁠 때 슬플 때 피네
사무치도록 아파 와도
유순히 녹아 내리는
흰 꽃의 향기
눈물은 그대로
기도가 되네
뼛속으로 흐르는
음악이 되네
(이해인·수녀, 1945-)
+ 눈물
눈물이
마음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다
눈물이
마음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다
그렇지만 눈물이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세상 사람들 눈에서 잠시 머물다
땅으로 떨어져 내릴 때
그 눈물방울이
새 희망을 찾고 있다는 걸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때로는
눈물이 핏물이라는 걸
눈물방울이 핏방울이라는 걸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눈물은 그냥 흘러내리는 게 아니다
눈물방울은 그냥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니다
(이충기·시인)
+ 눈물
마음 둘 데 없어 바라보는 하늘엔
떨어질 듯 깜빡이는 눈물 같은 별이 몇 개
자다 깨어 보채는 엄마 없는 우리 아가
울다 잠든 속눈썹에 젖어있는 별이 몇 개
(도종환·시인, 1954-)
+ 눈물아
눈물아,
제발 멈추지 말아라
흘러라
계속
흘러라
끝까지 가보게
내장이 다 쏟아져나올 때까지
빈 껍질처럼 오그라들 때까지
(이선영·시인)
+ 눈물은 주관식으로 흐른다·3
사랑했던 사람은 안다
그리움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몸도 마음도 움직이는 구체적인
동사(動詞)란 것을,
사랑 땜에 울었던 사람은 안다
눈물은 명사가 아니라
사람 그리워하는 가장 확실한
인칭대명사인 것을,
(김시현·시인)
+ 눈물의 숨은 뜻
울어 보지 않고서야
어찌 눈물의 숨은 뜻을 알까
얼음주머니도 다 소용없다
해일처럼 눈뿌리까지
콸콸 터질 때
비로소 건져 올린 알맹이 한 알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마주치는
벼랑 끝 샛별 하나
어쩌다 한번쯤은
가슴의 수압 무너져 볼일이다
오만의 방죽
무너져 볼일이다
(박인희·시인)
+ 눈물을 가슴에 담은 이들에게
무심코 바람이 불어와
눈물샘을 건드린다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듯
서러움과 한서린 시름이 모아지면
눈물비가 내린다
흐느낌도 없이
서러운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황량한 겨울숲처럼
남아 있는 삶
살아 있는 한,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누구의 인생이든
어느 정도의 비는 내린다'고
사람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운다
(이수인)
+ 눈물의 방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
거기 방이 있어
작고 작은 방
그 방에서 사는 일은
조금 춥고
조금 쓸쓸하고
그리고 많이 아파
하지만 그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방바닥에
벽에
천장에
숨겨져 있는
나지막한 속삭임소리가 들려
아프니? 많이 아프니?
나도 아파 하지만
상처가 얼굴인 걸 모르겠니?
우리가 서로서로 비추어 보는 얼굴
네가 나의 천사가
내가 너의 천사가 되게 하는 얼굴
조금 더 오래 살다 보면
그 방이 무수히 겹쳐져 있다는 걸 알게 돼
늘 너의 아픔을 향해
지성으로 흔들리며
생겨나고 생겨나고 또 생겨나는 방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
거기 방이 있어
크고 큰 방
(김정란·시인, 1953-)
+ 언제인가 한 번은
우지마라 냇물이여.
언제인가 한 번은 떠나는 것이란다.
우지마라 바람이여.
언제인가 한 번은 버리는 것이란다.
계곡에 구르는 돌처럼,
마른 가지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삶이란 이렇듯 꿈꾸는 것.
어차피 한 번은 헤어지는 길인데
슬픔에 지치거든 나의 사람아,
청솔 푸른 그늘 아래 누워서
소리 없이 흐르는 흰 구름을 보아라.
격정激精에 지쳐 우는 냇물도
어차피 한 번은 떠나는 것이란다.
(오세영·시인, 1942-)
+ 눈물
아직도 가슴에 거짓을 숨기고 있습니다.
늘상 진실을 생각하는 척하며
바로 사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나만은 그 거짓을 알고 있습니다.
나조차 싫어지는 나의 얼굴
아니 어쩌면
싫어하는 척하며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인간적,
인간적이라는 말로써
인간적이지 못한 것까지 용납하려는
알량한 나가 보입니다.
자신도 속이지 못하고
얼굴 붉히며 들키는
바보가,
꽃을, 나무를
하늘을 속이려고 합니다.
그들은 나를 보며 웃습니다.
비웃음이 아닌 그냥 웃음이기에
더욱 아픕니다.
언제쯤이면 나도
가슴 다 보여주며
웃을 수 있을지요.
눈물나는 것이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서정윤·시인, 1957-)
+ 이슬, 그리고 눈물
동터 오는 새벽녘
꽃잎에 맺힌
이슬은 얼마나 영롱한가
영혼이 맑은 사람의
눈동자에 어린
눈물은 얼마나 순수한가
이슬이 있어
눈물 같은 이슬이 있어
꽃잎은 더 아름답고
눈물이 있어
이슬 같은 눈물이 있어
영혼은 더 깊고 순결하다
오!
찬란한 햇살이여
그 눈물에 입맞춤하라
(정연복,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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