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훈련기 T-50
공격기로 개조했더니 '수출 飛上'
같은 機體인데 수출성적은 정반대… T-50은 4전4패, FA-50은 3전3승
야심작 T-50, 미운오리 새끼로,,, 2조2000억 들여 만들었는데
훈련기치곤 너무 高價… 잇단 수주戰 탈락 때 나온 말
"운전 배울 때 페라리 왜 필요"
파생상품 FA-50, 백조로 변신
형님인 T-50이 물먹는 동안 해외 나가서 잇단 수주 '잭팟'
경공격기치곤 高성능·低價… 훈련기로도 겸용 가능해 인기
후발국 넘어 美시장까지 노크, FA-50으로 노하우 배운 T-50
美공군 요구 맞게 개조키로, 伊 M-346·英 호크 등과 경쟁
지난해 12월 폴란드 정부는 차세대 고등훈련기 기종(機種)으로 이탈리아 알레니아 아에르마키사(社)의 'M-346 마스터'를 최종 선정했다. 이 프로젝트에 5년간 공을 들였던 한국 훈련기 T-50 골든이글은 또 한 번 고배(苦杯)를 마셨다. 2조2000억원을 들여 개발한 T-50은 세계 유일의 초음속 고등훈련기로 주목받았다. 세계시장을 주름잡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T-50 훈련기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의 훈련기 도입 사업에서 처음 실패한 이후, 싱가포르·이스라엘에 이어 폴란드에서까지 줄줄이 이탈리아의 M-346에 밀렸다. 지금까지 수주전 기록은 4전 전패(全敗). 양욱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T-50이 지금 같은 고성능과 높은 가격대를 고집한다면 해외 무대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11년 5월 '빅뉴스'가 터져나왔다. T-50 훈련기를 개조한 FA-50 경공격기 16대가 인도네시아에 수출된다는 내용이었다. FA-50 경공격기는 T-50 훈련기 몸체에 레이더와 미사일, 각종 전자장비 등을 달아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한 비행기다. 인도네시아에 수출된 것은 레이더와 무기를 달진 않았지만 언제든 장착할 수 있도록 개조가 끝난 상태였다. 이후 FA-50 경공격기는 무서운 기세로 세계시장을 뚫고 있다. 작년 12월엔 이라크와 24대를, 지난달에는 필리핀과 12대를 계약했다.
T-50 훈련기는 세계시장에서 외면당했는데, FA-50 경공격기로 변신한 이후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훈련기로는 미운 오리 새끼
T-50 훈련기의 폴란드 수출은 이미 3년 전 "물 건너 갔다"는 얘기가 나왔다. 2011년 11월 폴란드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훈련기 도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문제는 T-50의 가격이었다. 당시 폴란드 국방차관은 "운전 배울 때 페라리가 필요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T-50이 필요 이상의 고급 훈련기라는 뜻이었다. 작년 입찰에서 T-50은 대당 230억원, M-346은 180억원을 제시했고, 승부는 M-346으로 기울었다.
'비싼' 훈련기라는 단점은 매번 '족쇄'로 작용했다. 2010년 싱가포르가 훈련기 12대 도입을 결정할 때나 2012년 이스라엘이 30대를 도입하기로 했을 때도 번번이 높은 가격이 발목을 잡았다. T-50의 최고속도는 마하 1.5로 이탈리아 M-346의 마하 0.9, 영국 호크의 마하 0.84에 비해 월등하다. 하지만 성능만으로 국제 경쟁에서 이기기는 어려웠다.
국산 비행기의 해외 수출 경험이나 국가 차원에서의 지원 체계가 부족한 것도 약점이었다. 2009년 UAE의 훈련기 도입 사업이 대표적이다. 당시 UAE는 훈련기 수입 조건으로 우리 정부에 대규모 산업 지원을 요구했는데, 우리가 제시한 것보다 이탈리아가 내민 카드가 더 매력적이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경주대회 F-1이 열릴 수 있는 경기장을 지어주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우리 정부와 업계에선 "신부(T-50 훈련기)는 예뻤는데 혼수가 부족해서 졌다"는 말이 나왔다.
이스라엘 사업 땐 이탈리아가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우세했지만 이스라엘과 돈독한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이탈리아는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이스라엘의 중동정책을 지지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경공격기로 화려한 성공
1990년대 시작된 국산 초음속 비행기 개발 사업은 훈련기로는 T-50, 경공격기로는 FA-50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두 비행기를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T-50 훈련기를 만들고 이를 개조해 공격용 비행기인 FA-50으로 변신시키는 일종의 '일석이조(一石二鳥)' 전략이었다. 기체는 같지만 기능과 용도는 완전히 달랐고 주요 세일즈 목표도 달랐다. FA-50 경공격기는 노후화된 F-5 제공호를 대체해 우리 군이 사용할 목적이 컸고, T-50 훈련기는 해외 수출을 더 중요한 목표로 잡았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해외 수출이 기대됐던 T-50 훈련기가 국제무대에서 헤매는 사이, FA-50 경공격기가 외국에 나가 잇따라'잭팟'을 터뜨렸다.
FA-50 경공격기의 성공은 '틈새시장'을 공략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세계 전투기 시장은 미국·유럽의 대형 방산업체들이 쏟아내는 '고급' 전투기들이 대세였다. 하지만 후발국들의 '저가(低價)' 시장이란 또 다른 시장이 있었다.
FA-50 경공격기는 원형인 T-50보다는 비싸지만 경공격기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비행기로 꼽힌다. 그러면서도 성능은 우수하다. 우리 군의 F-5 제공호보다 월등하고, 적용된 일부 기술과 장비 등은 우리 군의 주력인 F-16 전투기에 버금갈 정도다.
안영수 산업연구원 방위산업연구실장은 "전투기 시장을 상·중·하급으로 나눈다면 지금 국제시장은 상급시장에만 신경 쓰고 있고, 중급시장조차 거의 형성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후발국이 원하는 제품이 나오니 당연히 인기를 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하급(low급)시장에선 스웨덴 사브가 개발한 '그리펜' 정도가 경쟁 상대이다. 하지만 그리펜은 가격이 대당 600억원 이상으로, FA-50 경공격기의 280억원에 비해 훨씬 비싸다.
FA-50이 훈련기와 공격기 기능을 모두 갖춘 것도 매력적 요소이다. 지금까지는 훈련기와 전투기가 완전히 다른 시장으로 존재했는데, FA-50이 그 벽을 허문 것이다.
공군력이 거의 없는 필리핀은 처음엔 훈련기를 도입하려다 공군이 "전투기를 사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필리핀이 중고 F-16 전투기나 그리펜을 구매할 것이란 말도 나왔다. 이때 KAI는 "전투기가 전부가 아니다. 조종사는 어떻게 양성할 거냐. FA-50은 훈련기로도, 경공격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며 집요하게 필리핀을 설득해 성공했다.
미국과의 전쟁으로 공군력이 궤멸된 이라크도 FA-50이 훈련기·공격기 겸용이라는 설득이 주효했다. KAI 관계자는 "이라크는 F-16 전투기 36대 도입을 진행하고 있는데, 조종사 양성을 위해선 훈련기가 필요하고 초토화된 공군력 복원을 위해선 로(low)급 전투기도 필요하지 않으냐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이 군비경쟁을 벌이지만 실제 전쟁을 하려 하지는 않는 상황도 중요한 변수다. 실제 싸울 가능성은 낮은데 굳이 성능 좋고 비싼 전투기를 무리해서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김대영 디펜스타임즈 편집위원은 "동남아 국가 등이 무기를 많이 구입해도 전쟁 단계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성능만 맞추면 가격이 싼 기종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미국 시장
일종의 파생상품인 FA-50 경공격기에서 성공 노하우를 익힌 T-50 훈련기는 이제 미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 지난 2월 KAI는 미 록히드마틴과 미 공군 훈련기 시장 진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성능은 좋지만, 너무 비싼' T-50 훈련기를 시장 요구 조건에 맞게 바꾸는 작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시장은 세계 훈련기 업체들의 '로망'이다. 미국 방산업체들은 저가인 훈련기는 만들지 않는다. 미 공군은 현재 T-38 고등훈련기를 약 540여대 보유하고 있는데, 도입된 지 40년이 넘어 교체가 임박한 상황이다. 세계 방산업계에선 2017년쯤 계약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쟁업체들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이탈리아 알레니아 아에르마키의 M-346은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손을 잡았고, 영국 BAE의 호크와 스웨덴 그리펜은 각각 노스롭 그루먼과 보잉을 사업파트너로 선정했다. 이 업체들이 미국 업체와 손잡는 이유는 미 항공기는 '미국에서 만든 제품이어야 한다'는 미 연방정부 규정 때문이다. 누가 만들었든 최종 조립은 미국에서 이뤄져야 한다.
기종 선정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가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KAI 관계자는 "각 후보 기종이 성능면에선 모두 미 공군 요구에 맞출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도입 가격과 30년 정도의 운영비용에서 판가름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