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책장 엿보기"를 통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기 올린 원고들은 거의 대부분 다듬기 전의 따끈따끈한 초고들입니다. 이것들을 새로 보완하고 마무리해서 이제 곧 한 권의 책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약 1,200매 분량의 원고를 끝내 출판사에 넘겼습니다. 빠르면 5월이나 6월쯤엔 서점에서 책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책 제목은 "강철로 된 책들"입니다. 여기 서문과 차례를 실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나는 읽고 싶지 않다.
책 ?
책이라니 !
― 마야코프스키, 「바지 입은 구름」
□ 서문
종일 꽃에 앉아 꿀을 탐하는 벌처럼 책에 달라붙어 그걸 파느라 좋은 시력 다 버렸다. 꿀을 구하는 게 벌의 본분이듯 책 읽는 일이 내 업(業)이니 누구를 원망하랴. 책에 인 박혀 그걸 안고 뒹굴며 보낸 세월 돌이키니 그저 아득할 뿐이다. 이승의 몸과 함께 좋은 눈 주신 어머니 아버지께는 죄송하다. 책 읽고 마음 닦아 새 사람이 되는 걸로 그 몰지각을 용서받을 수 있을까. 마야코프스키의 싯구 "강철로 된 책을 읽을 것 !"을 따다 책의 제목으로 삼았음을 밝혀둔다.
2003년 4월 9일
경기 남부의 수졸재守拙齋에서
장석주 씀
□ 감사의 말
이 책은 정색을 하고 쓴 리뷰가 아니다. 책을 읽고 난 뒤 스쳐 가는 비표상적 느낌과 사유들을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일흔일곱 권의 책을 고르고 선택한 것에도 일관된 기준이 없다. 순전히 자의적이고 그때그때의 즉흥적인 기분에 따랐다. 그러니 이 책은 옷깃을 여미고 너무 진지하게 읽지 말기 바란다. 독자들이 이 책을 편하게 즐기길 바란다. 글의 말미에 "함께 읽어도 좋을 책들"의 목록을 달아놓았다. 대부분 내가 읽은 책의 범주 안에서 골라 강력 추천하는 책들이다. 내가 리뷰의 대상으로 선택한 책들보다 이 책들이 더 보석 같은 책일 수도 있다.
파우스트는 아니지만 책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사람처럼 나는 책에 빠져 살았다. 책상 앞에 바로 앉아, 혹은 소파에서 쿠션을 끌어안은 채 책읽기의 삼매경에 들 때 정말로 행복했다. 그것도 모자라 책 만드는 사람으로 거의 스무 해 가까운 세월을 탕진하기도 했다. 내겐 책맛나는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이다. 책읽기는 그것 없이 삶을 제대로 세울 수가 있었을까 싶을 만큼 중요한 삶의 한 축이었다. 책 읽어 부귀영화를 구하는 요행을 꾀한 적은 없으나 책에 미쳐 보낸 세월에 성근 후회 몇 점 찍혀 있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누에가 부지런히 뽕잎을 갉아먹고 비단실을 내듯이 여건만 허락된다면 해마다 한 권씩 이런 책을 내서 그 성근 후회들을 조금씩 지워가려고 한다.
미셸 투르니에는 책 내는 일을 익명의 무리 속에 "종이로 만들어진 새떼를, 피에 굶주려 야윈 흡혈조들을 풀어놓는 것"이라고 쓴 바 있다. 새들은 무수한 독자들을 향해 흩어져 그들을 덮친다. 한 권의 책은 독자의 "체온과 꿈들"로 부풀어오른다. 나는 얼마나 많은 흡혈조들에게 살과 피를 내주고, 체온과 꿈을 얻었을까. 한 해 동안에 이러저러한 매체에 리뷰 하는 책이 일백 오십 권 안팎이라는 걸, 심심한 어느 날 혼자 꼽아 본 뒤 비로소 깨닫고 적잖이 놀랐다. 정기간행물과 시집을 빼고도 읽는 책이 그 두 배쯤 될 테니, 달마다 거르지 않고 나가는 책값도 만만치 않다. 어려움은 그뿐만 아니다. 한 해에 칠, 팔백 권씩 쌓이는 책들을 분류하고 수납하는 일도 수월치 않은 품이 들어간다.
그러나, 여전히 책방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책을 한아름씩 골라 나올 때 마음에 꽉 차는 보람과 설렘은 어쩌지 못한다. 이 즐거움을 대체 할 그 아무것도 없다. 책 탐하면 평생을 가난 면치 못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이르신 아버지의 훈화(訓話)를 따르는 것은 아예 글렀나보다. 그저 간서치(看書癡)나 간신히 모면해 볼 요량이나 세우는 것으로 족해야겠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처음부터 글로 쓴 것이 아니다. 월간 「카비전」, 월간 「엠비씨 가이드」, 월간 「더 북」, 한 인터넷서점 웹진 등등에 책에 관련된 글을 쓰고,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들도 들어있지만 그것들은 일부이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기독교방송의 「김현주의 산뜻한 오후」, 엠비씨 라디오의 「라디오 책세상」, 케이비에스 라디오의 「책마을 산책」, 에스비에스 라디오의 「책하고 놀자」, 엠비씨 티브이의 「행복한 책읽기」 등에 나가 입말로 풀어낸 걸 다시 글로 옮겨 적은 게 더 많다. 글에 비약이 있거나, 거친 단순화의 부분이 남은 것은 희미해진 기억을 살려 쓰느라 그리 되었다. 조금 고쳐보다가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두었다. 그것이 내 사유의 성글고 메마른 흔적이니까.
이 자리를 빌어 여러 방송사의 프로듀서들께 감사한다. 국은주·김한영·오준석·송경희·최석기·이대호·조순미 씨 등 유능한 프로듀서들이 바로 그들이다. 아울러 이주현·정유진·남애리·정영희 씨와 같은 방송작가들, 강영은·김현주·이주향·김영수·김갑수·김영하 씨 등의 진행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내 행운이다. 「장석주 시인의 행복한 책읽기」, 「장석주의 고전 새로 읽기」, 「장석주의 문학기행」 등등의 코너에 고정 출연하고, 방송이 끝난 뒤 더러는 더운밥과 커피를 놓고 유쾌한 담소를 나눴다. 주로 밥을 산 것은 그들이니 좋은 시절이었다. 그들은 내 부족한 점들을 채우고, 늘 나를 독려하며 충실함으로 이끌었다. 먼저 인사를 올려야 할 사람들이 있다. 순서가 바뀌었다고 해도 그들이 화낼 것 같지는 않다. 이 세상의 모든 훌륭한 저자들과, 출판인, 그리고 편집자들께 감사와 경의(敬意)를 바쳐야 옳다. 책읽기의 즐거움은 그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헌정되어야만 한다면 기꺼이 그들에게 바치겠다.
차례
제 1 부 ― 안
감각·쾌락·일상 / 관계들 ― 연애·결혼·가족 / 몸 ― 주체
제 2 부 ― 바깥
여행·유목·정체성 / 사회·역사·정치·문화·전쟁 / 건축·장소들
제 3 부 ― 너머
미래·생태·환경·식물들
제 4 부 ― 깊이
철학·지식·형이상학·책읽기 / 대중문화·현대예술 / 소설들
제 1 부 ― 안
붙잡을 수 없는, 붙잡아서도 안 되는 / 필립 들레름, '첫 맥주 한 모금 그리고 다른 잔잔한 기쁨들'
담배는 정말 숭고한 것일까 ? / 리처드 클라인, '담배는 숭고하다'
재즈를 좋아하세요 ?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예술은 술에 얼마나 빚지고 있을까 ? / 알렉상드르 라크루아 '알코올과 예술가'
사물들에게 바치는 송가 / 리아 코헨, '탁자 위의 세계'
이토록 불온한 쾌락 / 이왕주, '쾌락의 옹호'
침묵의 발견 /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 한스 노자크, '늦어도 11월에는'
연애를 읽으면 세상이 보인다 / 파비안 카스다-로자, '연애, 그 유혹과 욕망의 사회사'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남자, 그 브랜드파워 / 디트리히 슈바니츠 '남자'
사랑, 그 얼빠짐에 관하여 / 안나 가발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결혼은 미친 짓일까 ? / 울리히 벡/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 '사랑은 지독한 그러 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왜 한 남자는 한 여자와만 살아야 할까 ? / 데이비드 P. 바래쉬, 주디스 이브 립턴 '일부일처제의 신화'
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 / 최순희, '딸들이 있는 풍경'
키스를 한다는 것은 / 앙드레 지오르당, '내 몸의 신비'
질병에 대한 해석의 과잉 / 수잔 손탁 '은유로서의 질병', '해석에 반대한다'
성, 혹은 유전적 협동사업 / 매트 리들리, '붉은 여왕'
한 페미니스트의 여성자위 예찬론 / 베티 도슨, '네 방에 아마존을 키워라'
세상을 만들고 세상을 지배하는 / 마틴 바인만 '손이 지배하는 세상'
신화와 예술 속에 스며있는 피 / 구드룬 슈리, '피의 문화사'
제 2 부 ― 바깥
문화적 행위로서의 걷기 / 레베카 솔닛, '걷기의 역사'
걷기의 정신성 /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달리면서 당신의 부처를 만났습니까 ? / 요쉬카 피셔, '나는 달린다'
경관학의 탄생 강영조, / '풍경에 다가가기'
쓸쓸하고 유쾌한 노마드 / 곽재구, '포구기행'
전자-유목의 시대를 향하여 / 이진경, '노마디즘 1, 2'
먼 북소리에 이끌려 여행을 떠나다 /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여행법'
한 마리 토끼도 못 잡은 여행서 / 김미진, 로마에서 길을 잃다
당신은 부르주아인가, 보헤미안인가 ? / 데이비드 브룩스, '보보스'
전라도 사람은 산다는 것은 / 고종석 '서얼단상'
유혹하거나 유혹당하거나 / 로버트 그린, '유혹의 기술'
고통이라는 이름의 가면 벗기기 / 아서 클라인만/비나 다스 외, '사회적 고통'
정치와 지식인 / 마크 릴라, '분별 없는 열정'
텔레비전 앞의 유목민들 / 자크 데리다/베르나르 스티클러, '에코그라피'
전쟁, 혹은 광기와 맹목의 / 빅터 데이비스 핸슨, '살육과 문명'
장소들, 허구와 실제가 몸 섞는 / 박철수, '소설 속 공간 산책'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 전광식 '고향'
가우디,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 하이스 반 헨스베르헌, '어머니 품을 설계한 건축가 가우디'
건축을 사랑하라 / 지오 폰티, '건축 예찬'
집도 자란다 / 임형남, 나무처럼 자라는 집
제 3 부 ― 너머
미래를 내다보는 들창 / 자크 아탈리, '20세기 사전'
50년 뒤에 세상은 얼마나 변할까 ? / 존 브록만 '앞으로 50년'
지구생태계를 걱정한다면 / 존 라이언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
백년 뒤에도 봄은 올까 ?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풀에게 배우다 황대권, / '야생초편지'
식물들의 욕망과 사생활 / 마이클 폴란, '욕망의 식물학'
정약전의 재발견 /이태원, '현산어보를 찾아서'
제 4 부 ― 깊이
천 개의 니체 / 고병권,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슬픈 열대를 넘어서서 / 레비 스토로스 회고록,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문학비평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사로잡힌 영혼'
장충동 김씨를 위하여 / 전사섭, 장충동 김씨를 위한 책 이야기
책에 대한 경복 / 이권우,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
젊은 시절을 위한 책 / 콜린 윌슨, '아웃사이더'
한 애서가의 짧은 연애편지 /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책과의 유쾌한 연애 /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비평, 혹은 가죽이 벗겨진 소 / 김명인 외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
역사를 쓰다 / 고은, '고은 전집'
장 그르니에를 위하여 / 장 그르니에, '섬'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글쓰기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상상을 상상하다 / 김용석 외, '상상;
핑클의 정체성 / 박성봉, '마침표 아닌 느낌표의 예술'
불꽃의 삶, 프리다 칼로 / 바버라 뮤지카, 소설 프리다
우리가 잊어버린 시인들 / 유종호 '다시 읽는 한국시인 네명의 시인'
현대미술에 대해 유쾌하게 떠들기 / 신현림, '너무나 매혹적인 현대미술'
혹시 미국의 송어낚시에 대해 아세요 ? / 리처드 브라우티건, 미국의 송어낚시
검은 설탕보다 쓴 스무살의 비망록 / 전경린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살아남은 자가 쓰는 애도의 서사 / 함정임, '당신의 물고기'
탈주의 서사 / 김탁환, '나, 황진이'
신화의 서사 / 이윤기, '두물머리'
진술의 힘 / 하일지 '진술'
바스라지고 사라지는 삶들 / 하성란, '옆집 여자'
헛것을 안고 붕붕거리는 문체 / 하성란, '삿뽀로 여인숙'
낯설고 매혹적인 / 배수아, '그 사람의 첫사랑'
영등포시장에는 이야기들이 많다 / 이명랑, '삼오식당'
불륜에 대한 한 보고 / 최순희, '불온한 날씨'
유령작가 내세워 소설쓰기 / 윌리엄 골드만, '공주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