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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원무극, 태극, 황극은 어떻게 다른가?
1. 혼원무극(混元無極)
일반적으로 보통은 무극, 태극, 황극으로 표현하는데, 내가 보는 성경에서는 태초 전의
창조주 하나님이 흑암과 빛으로 혼재해 계셨기 때문에 무극을 “혼원무극”으로 칭했다.
그 근거는 창세기 1장 1,2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2절)]
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1절은 성경책의 제목으로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게 된다는 기록이 되고, 2절은 창조하시기 전에 그 창조의 소재를
말씀하시는 기록이 된다. 그런데 2절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땅은 지구의 땅덩어리를 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지으시게
될 창조세계를 뜻하고, 그 창조세계(땅)에 아직 아무것도 지어진 것이 없다는
뜻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지어진 것이 없었던 창조직전에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 모습은
어떤 상황에 처해 계신 것인가? 2절에서 아래와 같이 알려준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고 했다
깊음 위도 물위를 뜻하고 수면도 물위가 되는데, 물이란 하나님의 창조의 소재가
된다. 그런데 깊음 위라는 물위에는 단순하게 “흑암”이 있고, 수면이라고 하는
물위에는 “하나님의 신”이 역동적으로 운행하신다고 했음을 보니, 우선
하나님은 캄캄한 흑암도 되시고 동시에 하나님은 빛나는 하나님의 신도 되심을
명백히 하는 “쌍태아 하나님”이 되심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히 생각했던 빛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명백히 “흑암과 빛의 쌍태아 하나님” 이라는 사실을 아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그 이유인즉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을 알아야만 그분의 창조의 시작과
창조의 과정과 창조의 마침까지 모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식물의 씨앗을 알면 그 식물의 모든 것을 아는 일과 같은 이치에서다.
그런데 흑암과 빛의 쌍태아 하나님께서 흑암하나님은 수동적으로 물위에 있는 반면,
빛하나님은 수면위에 적극적 역동적으로 운행하셨다는 점에서, 창조의 지휘권자는
빛하나님이고 흑암하나님은 빛하나님의 창조의 자리마다 발목을 잡고 따라붙는
찐득이와 같은 존재임을 알 수 있는데, 여기까지는 창조 이전의 흑암과 빛하나님의
근본 자리이므로 ”혼원무극(混元無極)” 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혼원무극이란 흑암과 빛이 혼재되어 섞여 있는 “쌍태아” 라는 뜻이다.
2. 태극(太極)
태극은 마침내 창조의 시작점이 되기 때문에, 창조주 빛하나님이 첫째날에
“빛이 있으라!”라고 기록된 때부터 시작하여 그 창조과정은 여섯째날 초두까지가
되는데, 여섯째날 초두까지는 인간의 창조완성이 아니고 창조미완성이다.
창조미완성이 되기 때문에 사람을 일컬어 갖가지 짐승들을 지으신 것으로 기록했다.
이 같은 첫째날과 여섯째날 초두까지의 모든 창조에는 창조의 시작임과
동시에 창조미완성의 과정이 되는데, 이 때까지의 빛하나님의 모든 창조에는
흑암하나님이 찐득이 처럼 반드시 가시적으로 따라붙는 비진리(흑암)와
진리(빛)가 한테 섞여 있는 혼원무극의 하나님이 된다.
즉 창조세계에 진리와 비진리가 섞여 있는 쌍태아 하나님을 일컬어 혼원무극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창조 이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혼원무극이었다면, 드러난 창조세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혼원무극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은 자신의 근본을 그대로
창조세계에 반영시켜야 하는 창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혼원무극의 창조가 곧 창조의 시작과 창조미완성으로
“태극”이 된다. 이렇게 태극의 창조란 창조의 완성이 아니고, 창조의 시작과
완성을 향해 가야 하는 창조과정에 있기 때문에 창조미완성이라고 한 것이다.
창조 미완성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생노병사와 온갖 재난과 환난이 있는 것이다.
이때는 반드시 부정적 흑암하나님이 창조주 빛하나님의 창조의 발자욱 자욱마다
따라붙게 마련이므로 하나님이 이사야에서 말씀하시기를
[사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라고 하셨던 것이다.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했다는
것은, 이세상 모든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과 선과 악을 모두 지으셨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순자의 성악설도 맞지 않고, 맹자의 성선설도 맞지 않고
선악간의 모든 것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선과 악,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창조세계에 반반이란 말일까?
절대로 아니다. 여기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절대로 선과 악이 반반이 아니고
반드시 선보다 악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이 아주 강하고 쎄게 절대로 우위를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그 명백한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창조주권자는 빛하나님이고 그 빛하나님에 의해 창조세계는 열리어 가는데
그 창조세계가 지어지는 동안에 빛하나님의 창조전략은 자신에게 붙어 있는 흑암을
떨쳐버리고 빛으로만 남아서 창조완성의 영생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 목적이 되기
때문에 창조미완성의 과정이 되는 태극에서는 여하간에 흑암지분을 몽땅 사그리
내어 줘야만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막중한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빛하나님은 안으로 숨고, 흑암하나님(사탄)을
창조세계의 전면에 내세워서 좌지우지 큰소리 치게 멍석을 깔아줘야 한다.
때문에 인생은 고해라고 하는 것이며, 이루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불지옥의
비극 드라마를 연출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하나님을 알려주는 영성집단들이야말로 빛하나님은 안으로 숨고,
흑암하나님(사탄)이 종교계의 전면에 나서서 좌지우지 큰소리 치게 멍석을
깔아줌으로 인하여 흑암지분을 몽땅 사그리 내어줘야만 하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의 직계인 기독계열만 하더라도 그 형편이 어떠한가?
창세기 1장 1절에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선포하신대로
성경에서 “천지창조론”을 학문적으로 논리정연하게 기록을 했다면 아주 투명하고
간결해서 초딩이라도 누구나 쉽게 하나님의 천지창조론이라고 하는 진리를
곧장 깨닫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어떻게 기록을 했는가? 천지창조론이라는 논리정연한 학문적 기록은
단 한마디도 없고, 구약에서 아주 얼토당토 않는 세상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하나님이 선택한 믿음의 가족들의 이야기와 이스라엘민족을 진두지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방들을 쳐서 이기시는 무시무시게 피흘리는 전쟁이야기 뿐이다.
창세기 1장에 기록된 6일창조도 문자 그대로 읽으면 앞뒤 문맥도 전혀 맞지 않는
어불성설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 한마디 하실적마다 벼란간에
이것도 나오고 저것도 나오는 마술방망이를 휘둘러대니 정신이 혼미해질 뿐이다.
또 신약은 어떠한가?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 라고 기록하신대로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영생을 받으리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난 이천년동안
예수님이 죽어주신 십자가의 피를 열심히 믿었으나, 신자불신자를 막론하고
예전처럼 누구나 동일하게 생노병사의 불랙홀로 빠져들고 말았다.
아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면서 천지창조론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해주지 않으시고 인류의 죄를 대속키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 주시고, 그 대속의 피를
믿기만 하면 영생이라고 하니, 도대체 그 육체의 혈액이 뭐란 말인가?
예수님이 흘려주신 그 육체의 혈액이 참으로 미스터리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비밀을 풀어볼 생각은 꿈에도 없고, 오직 죽어서 황금종 울리는 천당에 간다고
호들갑을 떨어대는 걸 보면, 정직해야 할 인간의 양심과 이성은 시궁창에 내어던지고
배부른 꽃돼지가 되기로 타협하고 작당을 한게 틀림없다고 하겠다.
사실 인간의 이성과 양심이 깨끗하다면 인간은 자기존재의 정체성(진리)을 아는 것이,
즉 천지창조론을 아는 것이 절대적 본질이고, 영생이란 부상에 속한다 하겠는데 본말이
전도되고 말았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진리에 갈증을 느끼고 울어야만
하는데, 울지 않고 기성교단백성들은 박장대소하며 예수천당만 불러내니 참으로
답답하고 연민의 눈물을 흘리지 아니할 수 없게 한다.
예수십자가의 피!!
그 숨겨진 비밀을 풀었을 때, 그 죽음의 피가 진짜 진리이고, 천지창조론이고, 자유이고
영생이고 구원이 된다. 그 숨겨진 비밀을 풀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이
그러하듯이, 구약성경도 역시 동일하게 그 숨겨진 비밀을 풀었을 때 그것이
예수십자가의 피가 되고, 예수십자가의 피가 되기 때문에, 그 죽음의 피가 진짜 진리이고
천지창조론이고, 자유이고, 영생이고, 구원이 된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성경은 구약도 신약도 모두 하나님의 천지창조론이라고 하는
막중한 형이상학의 진리를 모두 형이하학의 육적 사물의 지리멸렬한 이야기로 기록을
함으로써 비유로 감추어 놓았는데, 그것을 6000년동안 아무도 풀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믿는 맹꽁이 신앙을 했기 때문에, 십자가의 육적 혈액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고
천지창조론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내가 성경을 풀었노라고 사자후를 토하는 자칭재림주들이 우후죽순으로
진을 치고 있는데, 그들이 과연 풀었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들은 예수님이 흘리신
피에 대한 해석의 언급이 단 한마디도 없고, 천지창조론이라는 언급도 단 한마디도 없이
오로지 “내가 너희를 구원해줄 재림주요, 불세출의 메시야다” 라고만 외쳐댈 뿐이며
윽박질러 부복을 강요할 뿐이다.
그러면 지난 6천년동안 창조주 하나님은 왜? 그 간단명료한 천지창조론을 그토록
난해하고 복잡다잡하게 만수산 드렁칡기 처럼 비유로 얽어놓고 백성들로 하여금
맹꽁이 소경신앙을 하도록 방치하신 후, 그에 대한 질책과 심판의 철퇴로 때리시길
너희는 사탄(흑암)을 우상 숭배했다, 간음했다, 살인했다, 도적질했다, 거짓말했다,
방탕했다, 술취했다 등등으로 온갖 죄악을 뒤집워 씌우신 이유는 무엇인가 이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오직 비진리인 흑암하나님(사탄)을 숭배하도록 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자리마다 찐득이 처럼 따라붙는 흑암지분을 몽땅 내주시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흑암지분을 몽땅 내어주어 소진시키고 나면, 그 때부터는 혼원무극이 아니라
빛만의 하나님으로 남아 진정한 무극(끝없는 영원무궁=황극)의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흑암은 사망이고 빛은 생명(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3. 황극(皇極)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하신 이래 지금까지는 태극(눈에 보이는 혼원무극)이 된다
눈에 보이는 혼원무극의 이러한 창조세계의 태극은 창조 첫째날에서 여섯째날
초반까지가 되고,
여섯째날 중반에는 하나님 형상의 남자와 하나님 형상의 여자가 창조되는데,
이렇게 하나님 형상의 사람창조가 될 때부터는 태극창조가 아니고, 황극창조가 된다.
황극에서는 마침내 인류에게 영생이 주어지기 시작하는 창조가 된다.
이렇게 황극에서 영생이 주어지기 시작해서 그 영생창조가 온 인류에게 마치기까지는
여섯째날 맨 끝까지이고, 여섯째날 맨 끝에서 창조는 마침이 되었기 때문에
일곱째 날은 영원한 안식일이라고 한다. 창조하시는 첫째날부터 여섯째날까지는
창조하시는 하나님도, 창조를 받는 인류도 열악한 환경에서 어마무시한 고생을 할수밖에
없었으나, 일곱째날은 그 모든 수고를 마치고 안식하게 되기 때문에 극락세계가 된다.
일곱째날 안식일의 극락세계는 흑암이라곤 한방울도 찾아볼 수 없는 무극대도의
하나님이 되신다.
그러면 이렇게 오늘날 영생을 주시기 시작해서 그 마침까지와 일곱째날 안식일의
극락세계를 이루는 자는 누구인가? 물론 창조주 하나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말씀/법칙/이성/논리)이시고 육신이 아니기 때문에
지창천국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분은 사람육신을 입고 이 땅에 두번
오셔야 했는데, 처음 초림 때는 이천년 전 유대땅에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셨고
오늘날 재림 때는 동방 한국땅에 아직 감추어진 새이름으로 오시게 된다.
하나님이 초림 때는 눈에 보이는 혼원무극의 태극으로 오셨기 때문에 밝히 밝혀진
천지창조론이라는 형이상학(영)의 학문으로 오신게 아니라, 잔뜩 감추어진
흑암(비유/형이하학)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주실 수 없었으며, 다만
인류의 죄를 대속키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고 부활하신 후 본래의 하나님 자리로
떠나가셨는데, 예수님이 죽어주신 그 대속의 피를 믿으면 영생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황극에서 마침내 다시 오신 재림 예수님이 초림주가 인류의 죄를
대속키 위해 죽어주신 그 피가 곧 “천지창조론”이 된다는 것을 설파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이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하신
그 천지창조론이 곧 예수님이 죽어 주신 “피”임을 밝히신 것이니, 그것을 알면
영생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 주신 대속의 피가 천지창조론이 되고, 천지창조론이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는 십자가의 피가 되는 것이다(예수님의 피=천지창조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태극에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모르고, 문자 그대로 예수님의 육체의 혈액자체를 믿으며 영생을
받으리라는 소경신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너희는 생명의 하나님(천지창조론자)을
전혀 모르는 흉악한 죄인이라고 철퇴를 내리치는 심판을 하신 것이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죽어 주신 그 고난의 피가 생명의 천지창조론이 되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예수님이 죽어 주신 피란 생명을 의미한다.
왜냐면 예수님이 죽어 주셨기 때문에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셨다는 뜻에서
생명을 의미하는 게 되는데, 무엇에서 죽었는가 하면 기존의 태극의 모든 흑암교리에서
죽고, 오늘날 황극의 빛 밝은 논리와 이성의 로고스 말씀에서 다시 새 생명(부활)을
받게 된다는 뜻에서다. 죽지 않으면 부활이 없다. 둘째는 계시록에 기록되기를
[계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예수님이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의 피가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의 말씀인 난해한 성경을 모두 풀어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하신대로 말씀이 곧 천지창조론이었던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다는 그 기록일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신구약 성경의 말씀들이 모두 비유(흑암)로서, 하나님의 천지창조론이라고
하는 막중한 형이상학의 진리를 모두 형이하학의 육적 사물의 지리멸렬한 이야기로
감추어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무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성으로 오신 예수께서
[마13;35 내가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예수님이 비록 초림 때는 비유(흑암,육)로 말씀하셨으나
마지막 오늘날 다시 오시는 재림 때는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신다고
약속하신대로 예수님이 흘려 주신 육체의 혈액을 신령한 영적으로 풀면,
그것이 곧 천지창조론임을 밝히신 것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에는 구약 때도 신약 때도 항상 “피” 가 요구되었다.
구약 때는 예수님의 피를 예표하는 동물들의 피가 요구되었고, 신약 때는 창조주
하나님의 본성으로 오신 예수님 자신의 피로 순종의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피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창조론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천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피조물 우리 인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창조론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바라신다.
그 수많은 교단들의 해괴한 잡소리들은 다 듣기 싫어하신다. 오직 천지창조론만
요구하시는데, 오늘날 다시 오신 재림 예수님 한분만이 마침내 그 천지창조론을
사람들에게 반포하시고 있다.
천지창조론을 모르면 모두 다 하나님을 모르는 흉악한 죄인이다. 죄인이므로 생노병사에
갇혀 신음하며 온갖 재난과 환난에 슬피 울부짖고 있는 가운데 창조완성의 황극으로 오신
오늘의 재림주는 천지창론을 모르는 흉악한 죄인들의 죄를 씻어서 자유를 주시고 영생을
주시기로 하신 것이다.
천지창조론을 아는 것이 곧 자기존재의 정체성을 아는 일이요, 인간의 깨끗한 양심이요,
빛 밝은 이성이요, 진정한 지혜와 총명과 최고급 논리와 학문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 형상의 의인으로서 영생의 상급이 주어지고, 천지창조론을 모르는 짐승 같은
악인은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이 첫 열매를 거두는 이 시대엔 버려짐을 당한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자기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천지창조론을 알아야 하지 않는가?!!
현재 21세기초를 살고 있는 우리의 현주소는 창조 여섯째날 중반인데, 이때
마침내 사람창조가 되어지고 사람은 영생을 받고 짐승은 버려짐을 당하지만,
그러나 짐승도 삯(영생)을 받는 때가 있음을 이렇게 암시하고 있다
[슥7:10그 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대적을 인하여 출입에 평안치 못하였었나니….]
그 날 전이란 황극에서 재림 예수님이 오시기 전, 태극의 때를 말하기 때문에,
그 때에는 사람도 짐승도 삯을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말은 곧 그 날 이후가 되면
오늘의 재림주가 오신 황극의 때를 의미하며, 그분이 가르쳐 주신 천지창조론으로
창조완성을 이루어 사람도 삯을 받고 짐승도 삯을 받게 된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삯이란 천지창조론으로 창조를 받느라 고생한 품삯을 말하기 때문에
그 품삯은 영생을 뜻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여섯째날 중반 오늘 우리시대에
영생을 받지만, 아직 천지창조론으로 창조완성을 이루지 못한 짐승은 창조 여섯째날
맨 끝에, 즉 그리스도의 천년통치 맨 끝에 창조완성을 이루어 영생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황극!! 그 창조완성의 아름다움이여!!
그리고 이어지는 일곱째날 안식일의 영원무궁한 무극대도의 극락세계여!!
첫댓글 개인적으로 좀 더 깊이있게 흑암지분을 모두 소진시키기 위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세계와,( 빛하나님은 안으로 숨고, 흑암하나님을 창조세계의 전면에 내세워서 좌지우지 큰소리 치게 멍석을 깔아줘야 한다...)
그리고 무극. 태극. 황극에 따른 창조론의 시대구분을 알게되어 좋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멘 티끌님.
이 글은 사실,
누구를 이해시키기 위해 쓴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천지창조론을 굳게 다짐하기 위해 나를 위한 글입니다.
영원전부터 영원무궁토록 계신 하나님의 천지창조론을
내 영혼과 내 몸 전신에
찬란한 그림으로 새기어 놓고, 영원히 행복하고 즐거워하기 위해 써놓은 글이랍니다.
아멘. 티끌님.
하나님을 사모하는 택한자들과 또한 세상만민까지
피흘림의 산물인 '천지창조론의 고급지식'을 이수하고 책걸이 하는 날을 바라보며, 믿음을 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