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손두부의 추억/전 성훈
맛집! 유명한 미슐랭 맛집 소개에 대한 기사를 접할 때마다 늘 맛집 평가에 대한 궁금증을 풀길이 없다. 맛집이 도대체 뭘까? 어떤 음식점을 맛집이라고 부를까? 궁금하여 사전을 찾으니, “음식의 맛이 좋기로 이름난 음식점”이라고 한다. 맛집의 사전적 정의는 한마디로 뜬구름 잡는 기분이 든다. 같은 음식이라도 사람마다 맛을 달리 느낀다. 같은 사람이라도 분위기에 따라서 음식 맛을 다르게 느끼기도 한다. 하물며 맛집을 평가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맛을 느낄 줄 아는 미각을 가진 사람인지, 평가 대상 음식점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인지, 공정한 자세로 평가하는지 등을 떠올리면 맛집 평가를 믿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행을 누구보다도 좋아한다. 그러나 맛집 찾아가는 여행에는 취미가 없다. 맛집이라고 알려진 집에 줄서서 기다리는 걸 끔찍하게 싫어한다. 게다가 신발까지 신경 써야 하는 음식점은 딱 질색이다. 아무리 음식이 맛있다 해도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맛집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임에도 일부러 찾아가는 음식점이 있다. 한 곳은 어머니 묘소에서 가까운 송추 고기집이다. 한식과 추석 즈음에 어머니 산소에 참배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찾아가 점심 식사를 한다. 음식이 깔끔하고 식감이 괜찮다고 식구들이 좋아한다. 나는 고기보다는 오히려 식탁에 차려놓은 밑반찬에 마음이 더 간다. 명이나물, 홍어무침, 얇게 썬 양파 무침, 갓 김치, 총각김치나 물김치, 가느다란 청포묵 등이 정갈하다. 그리고 주차장이 넓어서 좋다. 다만 한 가지 흠이라면 음식 값이 좀 비싼 편이다. 평소에는 직장생활 하는 자식들이 식대를 낸다. 그런데 이 집을 찾을 때는 내가 음식 값을 지불하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를 뵙고 온 기분에 더하여 우리 부부 결혼기념일 및 아내 생일 축하 모임을 겸하기 때문이다.
또 한 곳은 고기집과는 다른 분위기로 콩을 재료로 쓰는 손두부집이다. 손두부 맛이 기막히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어릴 때 외갓집에서 먹었던 고향 냄새가 난다. 외할머니와 엄마의 손길을 진하게 느낀다. 음식 값이 아주 싸서 마음이 더 끌린다. 쟁반 손두부, 모두부, 도토리묵, 양푼이 보리밥에 이 나물 저 나물을 넣어 참기름 한 숟가락 붓고 비벼서 마음껏 먹어도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 탈이라면 다소 거리가 먼 게 흠이다.
봄이 무르익어 춤추는 주말, 직장생활의 피곤함을 풀려는 듯 아들이 손두부가 먹고 싶단다. 그 말을 듣자 나도 먹고 싶다. 어디서 먹을까 하니 < 할머니 손두부집 >에 가자고 한다. 집에서 가려면 자동차로 최소한 한 시간 반 정도 걸려 조금 멀다. 그 먼 곳까지 가서 손두부를 먹어야하나 하며 아내 얼굴을 쳐다보면 내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내비게이션에 ‘할머니 손두부’를 치니 똑같은 이름의 손두부 집이 많았다. 지역을 경기도 포천으로 제한하여 목적지를 찾고 이동경로를 보며 주말이라 막히면 시간이 꽤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천으로 가는 길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아들이 운전을 하기에 마음 편하게 바깥 구경을 하였다. 뒷자리에서 끝없이 재잘거리는 손녀와 손자의 재롱에 간간히 뒤를 돌아보면서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포천 길로 들어서면서 옛일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어릴 때 어머니를 모시고 찾았던 < 할머니 손두부집 > 음식점 마당에서 손두부 만드는 아낙네와 이러저런 말씀을 나누시던 어머니, 어린 시절 생각난다고 하시며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이라 몇 번이나 갔다. 다행히 아이들도 손두부를 좋아했다.
< 할머니 손두부집 >에 손님이 가득하였다. 마침 적당한 자리가 비어 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자 한 상 가득히 음식이 나왔다. 뜨거운 손두부를 그릇에 덜어 호호 불어 식혀 손녀와 손자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속으로 삼켰다. 손녀와 손자가 오물오물 거리며 손두부를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니 손두부 쟁반에 환하게 웃는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는 듯했다.
음식점 길 건너에는 제법 넓은 폭의 개울이 있다. 여름에는 물고기 잡는 사람도 간간히 보인다.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일동과 이동, 백운계곡과 광덕산 그리고 산정호수가 나온다. 텐트를 치고 아이들과 반도를 가지고 물고기 잡던 추억 속의 개울이다. (2019년 4월)
할머니 손두부
웬 같은 이름이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네모 손두부, 세모 손두부, 동그라미 손두부
게다가 할매 이름 붙은 할머니 손두부까지
오래 전 엄마가 가르쳐 준 할매 손두부 맛
손두부 안에 어떤 미약이 들어있는지도 몰라
내가 아들에게 아들이 손녀와 손자에게
대를 이어 손두부 맛을 못 잊어 하네
화창한 봄 날 할머니 손두부 찾아 포천으로 달리는 길 자락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한 마디 한다
손두부 한 쟁반, 도토리묵 한 접시, 모두부 한 그릇 모두 싹 비워요
할아버지 맛있어요 네 살 손녀가 한 마디
하부지 맛있어 세 살 손자도 중얼중얼
아버지 들어 보세요 아들도 한 마디
삼대가 먹는 손두부 쟁반 가득히 빙그레 웃는 울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