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
김미옥 시인은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2014년 『문학청춘』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어느 슈퍼우먼의 즐거운 감옥』이 있고, 제2회 문학청춘동인지상을 수상했다. 선경문학상 운영위원, 문학청춘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충주에서 새한슈퍼마켓을 경영하고 있다.
*김미옥 시집 「목련을 빚는 저녁」의 특징
김미옥 시의 피부에는 아름다운 반점이 여럿이다. 자칫 흉터로 오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처에서 출발하여 시에 도달한 무늬들이다. 시집 『목련을 빚는 저녁』에는 시인의 내밀한 상흔이 꽃피운, 밀도 높은 언어들이 가득하다. 이번 시집에는 새로운 변전의 표정도 나타난다. “솟대 위에 깎아놓은 붙박이 새처럼” 살았던 삶이 지향하는 대상은 솟대가 삭아 부러지는 순간 날아오를 한 마리 새다. 세계와의 접속을 통해 생성과 변이의 과정을 거쳐 닿은 신생의 지점에서 시인은 “생의 진저리”를 지나 비상의 방향을 응시한다. “낯선 말들이 오고 가는 한 귀퉁이에”서 헛헛한 그림자로 존재하던 시인은 “첫닭이 울면 가게 앞 목련도 문장 하나 하얗게 내밀어 보는” 것처럼 신고辛苦의 오랜 시간을 지나 쉰다섯 편의 시를 낳았다. 낱낱의 개별성을 확보하고, 내면의 상처를 명징한 언어로 형상화한 이번 시집에는 작품에서 배어 나오는 깊고 고유한 향이 있다. 성찰의 시선으로 포착한 삶의 다양한 풍경을 담고 있는 『목련을 빚는 저녁』이 주는 귀한 선물이다.
- 홍일표(시인)
-발명의 시학
김미옥 시인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만두가 목련으로 호명되는 세계라 할 수 있다. 전자가 일상의 세계라면 후자는 예술의 세계이고, 전자가 존재자의 세계라면 후자는 새롭게 접합된 존재의 세계다. 이러한 “예기치 않은 소통”으로서의 “바꿔 연결하기”(東浩紀, 『관광객의 철학』)는 삶-미학을 매개하는 미학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목련을 빚는 겨울이 있다
겨울은 모서리가 지워지고
찜 솥에는 활짝 핀 목련들이 가득 들어 있다
눈은 분분이 내려
꽃을 빚는 저녁
젖은 햇빛 몇 줌과
붉게 지는 노을과
칼칼한 저녁 냉기와
들락거리는 바람을 꾹꾹 눌러 넣고
한 장 한 장 꽃잎을 일으키면
눈송이가 눈사람이 되듯
만두가 목련이 되는 밤이 있다
어딘가에서 목련은
차가운 꽃망울의 잠을 견디고 있고
이 저녁, 만두는 터질 듯 부풀어 올라
당신이 모르는 꽃이 된다
-「목련을 빚는 저녁」 전문
이 시에서 화자는 “모서리가 지워지”는 늦겨울의 저녁 어느 날 만두 아니 목련을 빚는다. 여기서 만두를 빚는 과정은 목련을 피워내는 자연물의 그것과 동일시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색체와 모양의 유사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는 데 이 시의 놀라움이 숨어 있다. 먼저 꽃잎의 재료는 분분이 내리는 눈으로, 그 속에 “젖은 햇빛”과 “붉게 지는 노을”과 “칼칼한 저녁 냉기”와 “들락거리는 바람”이라는 소를 “꾹꾹 눌러 넣”어 “한 장 한 장 꽃잎을 일으키면” 만두는 하얀 목련으로 태어난다.
목련은 그저 시기에 맞추어 피는 게 아니다. 잘 알려진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와 같이 한 송이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전 우주가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목련은 어딘가에서 “차가운 꽃망울의 잠”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화자는 눈 내리는 차가운 겨울 만두를 빚으며 “터질 듯 부풀어” 오를 목련의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봄은 그저 오는 게 아니다. 이 갸륵한 기다림이 곧 봄을 잉태하는 겨울의 노심(勞心)이기 때문이다.
“만두를 빚으면서도 자꾸만 시를 생각”(「만두 빚는 시인」)하는 시인에게 시는 세상사를 견디게 하는 방패이며 창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지옥은 있기 마련이다. 그 자리에서 빚어낸 목련과 같은 시편들은 자폐적 미학에 탐닉하는 우리 시단의 한 경향과는 반대로,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길어올린 생의 진여를 담은 시편들로서 ‘시의 삶-되기, 삶의 시-되기’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목련의 만두-되기, 만두의 목련-되기를 이제 당신들이 목격할 차례다.
-김겸(시인ㆍ문학평론가)
첫댓글 늘 노력하는 선생님,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목련과 만두는 보면 선생님 생각이 제일 먼저 날 거예요.
기쁜 가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