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이성계군이 황도에 다다라 황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15일간을 공격하였는데 도저희 성문을 열수없었다.
이성계군은 도저히 승산이 없었기에
군을 1000보뒤로 물린후/항복을 권고하기로 하고
.
황궁을 완전히 차단 포위한후 3개월 그믐날 아침 성안에서 사신이왔다.
황제와 병사에 대해 최대한 선처한다면 홀로나가 체포되도록 하겠다.
이성계장군은 즉시 확약하고 예의를 갖추었으며 전라병(경찰)만 남기고
전투군단을 내연으로 물렸고 약속대로 최영은 스스로 걸어나와 결박되었다.
당시 성안에는 병사 470명이 있었으며 모두 내시와 궁녀들이었다.
(고려시대 여성들은 모두 위급시 무장하고 말타고 다녔슴)
이후 최영장군은 이성계에 의해 중국을 정벌하려 한 죄로 처형 되었다.
현재 韓국사(고려사)에는 당시상황을 이렇게 기록해놓았다.
당시 이성계군이 황도에 이르자 최영이 궁내 화단에 숨어있다가 잡현다고
간단히 기록되있다.
이상은 연사에 기록된 내용중 이성계군의 황도전투중 일부 내용이다.
당신은 어느 쪽 말이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참고로
현재 전해지는 고려사는 조선초기 이방원의 지시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이조실록 내용 확인 부분)
운영진 공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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