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으며 피어나는 꽃
정 성 천
교육복지사 선생님이 환한 얼굴로 교장실로 들어온다. “교장 선생님! 수빈이가 그곳 백일장에 참가하여 장원을 했답니다.” 순간 수빈이가 누구인지 기억을 더듬는다. “아! 생각이 난다.” 그 말썽꾸러기가 어떻게 글을 쓰고 장원까지 했단 말이냐?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빈이라면 전번에 M 시의 보호시설로 거주를 옮기고 그 인근 중학교로 전학을 갔던 그 수빈이 말입니까?” “예, 교장 선생님, 그 수빈이가 그곳 시청에서 주최하는 청소년백일장에서 당당히 장원을 했답니다.”
수빈이는 올해 우리 학교에 복학했던 3학년 학생이다. 작년에 가출로 인한 무단결석이 많아 법정출석일수를 채우지 못해 유예했었다. 학년 초 학적 계 선생님이 복학 의사를 타진하는 전화를 했을 때 중학교를 꼭 졸업하고 싶고 고등학교 진학도 하고 싶다고 했단다.
복학하러 온 수빈이를 교장실에서 처음 만났다. 노랑 염색 머리에 빨간 입술화장, 무척 짧은 치마 등 여중생답지 않은 차림이 수빈이가 살아 온 지난 1년 동안의 삶이 어떠했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상담하는 동안 나와 눈이 마주치면 나의 눈을 피했다. 나와 눈 맞추기를 꺼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간간이 시선이 마주칠 때 나는 그 아이의 눈 속에서 분명히 보았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절망이 그 아이의 검은 동공 속에 짙게 서려 있었다. 그 무엇이 여린 소녀의 마음에 분노와 슬픔을 키우게 했는지? 한창 꿈에 부풀어 맑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소녀의 눈망울에 그 무엇이 절망과 분노의 표독함으로 넘쳐나게 했는지? 가슴이 먹먹했다.
나의 상담은 겉으로만 맴돌고 수빈이의 마음속에는 한 발짝도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끝났다. 앞으로 학교생활을 잘하고 결석도 하지 않겠다는 건성으로 하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었다. 상담 선생님을 불러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수빈이를 상담해볼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틀림없이 수빈이는 또 무단결석을 할 것이다.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든 결석일 수를 줄이고 중학교 과정을 무사히 마치게 해 주는 것이 수빈이에게는 가장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수빈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이혼으로 남동생과 함께 엄마와 다른 도시에서 생활했었다. 하지만 이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생계를 책임지던 엄마가 뺑소니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남동생과 함께 다시 이곳으로 와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매일 술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나약한 사람이어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의 술주정과 궁핍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말 아버지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아 요양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는 그나마 아버지가 함께 생활하여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자 때마침 겪게 되는 사춘기의 방황으로 누구 하나 다잡아 줄 사람이 없는 수빈이는 비정상적인 생활로 빠져들었고 결석이 잦아지더니만 끝내 가출했었다. 가출하여 인근 도시에서 불량 청소년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생활하다가 절도사건에 연루되어 법원에서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장기간 무단결석으로 담임교사와 교육복지사의 각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석 일수 미달로 3학년 1학기 말에 유예되었다고 했다.
복학을 하고 1개월을 잘 버티더니만 수빈이는 다시 결석하기 시작했다. 근 열흘 정도 무단결석을 하더니만 학교에 다시 출석했다. 그것도 아침에 정상적으로 등교하여 수업을 받는 것도 아니고 점심시간에 잠깐 왔다가 점심 식사만 하고 다시 무단으로 외출을 한다. 아무래도 수중에 돈도 없고 어디 점심 식사할 곳이 없었던 모양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점심 식사만은 마음 편히 꼭 먹을 수 있도록 급식 교사에게 미리 부탁을 해 두었다. 그리고 수빈을 점검하기 위해 정기적인 모임을 제의했다. 담임교사, 학생부장, 상담교사, 진로 부장, 교육복지사 그리고 교감 이렇게 일곱 명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수빈이 상태를 체크하기로 했다. 그 정기미팅에서 상담 선생님은 수빈이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한다.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했었고 그 시도로 손목의 동맥을 그은 적도 있었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이 암울한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수빈이가 어엿한 인생을 당당히 살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나게 할 수 있을까?
담임선생님에게는 먼저 수빈이네 집을 가정방문 해보고 혹시라도 동네에 수빈을 다잡아 줄 어른이라도 있는지 알아보라고 부탁했다. 복지사 선생님에게는 시청 사회복지과에 연락하여 수빈을 도울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라고 했고 상담 선생님에게는 수빈이에게 항상 따뜻하게 다가가 수빈이가 가장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상담실이 될 수 있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내가 만나기를 원하고 있고 마음 내킬 때 언제라도 교장실을 방문해도 된다고 나의 말을 전해 달라고도 했다.
며칠 뒤 수빈이가 교장실을 찾아왔다. 머뭇거리는 수빈을 들어와 앉으라며 반가이 맞이했다. 하지만 들어와 앉기는 앉았으나 마지못해 상담 선생님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심드렁한 분위기와 자세였다.
“ 어때, 학교생활은 할 만 하냐?” 가볍게 물었다.
“그럭저럭 할 만 합니다.”라고 대답은 했으나 속으로는
“당신 같이 환경 좋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나의 어려움을 십 분의 일이라도 알기 나 하겠는가?”라는 다소 반항적이고 나를 무시하는 어조였다. 그리고 대충 둘러 될 터이니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답을 기대하지 말고 빨리 끝내 달라는 듯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그래서 돌아가신 엄마에 관하여 물었다.
“엄마가 수빈이를 많이 사랑하셨다며?” 그 순간 그 아이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처음으로 그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 맞춤이었다. 그렇게 동급생들에게 강하게 군림했고 나에게 조그만 빈틈 하나 보여 주지 않았던 수빈이의 그 돌처럼 굳은 마음에도 삼손의 머리털처럼 약한 곳이 있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엄마였다. 수빈이의 검은 눈에는 전에 보았던 분노와 절망의 표독함이 사라지고 눈물 가득 고인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나나? 엄마도 어디에선가 수빈이를 생각하고 있겠지?”
수빈이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울음을 참는 것 같더니만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뛰쳐나간다. 자존심이 강한 아이라 나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때의 그 만남이 우리 만남의 끝 이었다.
시청의 사회복지과와 상의 끝에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복지시설에 그 아이들을 맡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수빈이도 더 이상 방황하는 것이 지쳤는지 아니면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마음을 바꾸었는지 몰라도 전과는 달리 동생과 함께 복지시설로 가는 것을 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수빈이가 보호관찰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인근에 있는 복지시설들은 모두가 수빈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복지관청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수소문한 끝에 멀리 떨어져 있는 M시의 한 복지시설로 옮기고 그 인근 중학교로 전학을 갔었다. 전학 가는 날 공교롭게도 나는 출장으로 수빈이를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그곳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였다니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눈물을 글썽이며 뛰쳐나가던 수빈이의 뒷모습이 생각나 가슴에 싸한 기운이 스친다.
수빈이는 잘 성장 할 것으로 믿는다. 15세의 소녀는 생활이 주는 무거운 압력에 자기의 의지를 쉽게 허물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갈팡질팡, 좌충우돌 삶과 부딪치며 상처받으며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그런 못된 짓은 이제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선다. 미국의 소설가 ‘에다 퍼브’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글쓰기를 사랑하는 자를 결코 진정으로 좌절시킬 수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삶 자체를 연인으로 두는 일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바람이 불고 비가 오듯이 이 세상 모든 청소년은 어른으로 꽃 필 때까지 수많은 비바람을 맞을 것이다. 부모가 있고 튼실한 가정이라는 비 가림 속에서 성장하는 청소년들은 쉽게 비바람을 피할 것이다. 하지만 가정이 파괴된 청소년들은 비 피할 곳이 없는 노천에서 그대로 비바람을 맞아야 한다.
“비에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하지만 비바람이 심하면 꽃이 꺾이고 생명 자체가 죽어 버릴 수도 있다. 피워 보지도 못하고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청소년들이 이 땅 위에서는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인데.... 오늘도 바람이 심하게 나무를 흔든다.